[69화]
다음 날.
오전 6시 30분, 서울 아카데미아 체육관.
“자, 민방위 소집에 응하신 분들은 이쪽으로 오셔서 줄 서시면 됩니다.”
한 달간 즐겁게 힐링 생활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망할 서울 길드 놈들! 최약체라 불리는 성좌 산거정 하나 극복 못하고 멀쩡한 사람을 민방위 비상소집에 오게 만들다니!
어제까지 한가롭게 낚시를 하던 나는 현재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줄을 선 채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영이도 그렇고, 소미 길드장님도 헌터는 군 면제라서 안 가도 되는 거 아니냐 했지만…….’
‘지금 난 E+급으로 등록했으니 와야지.’
물론 D급 헌터로 인정을 받으면 되긴 했지만 승급 시험을 거쳐야 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저번 토벌에 소집이 된 탓에 백야 길드는 이번 신강남 사태 때는 면제였고, 그쪽도 나설 일이 없어서 나는 얌전히 민방위 소집에 응했다.
“자, 이거 받으세요.”
민방위라서 실제 전투는 하지 않고 그냥 노동이나 보조 업무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익숙한 K-2 총기에 실탄까지 손에 들리니 당황스러운 나였다.
“뭡니까? 이거?”
“…호신 도구입니다. 작업하러 가는 곳에 야생 몬스터가 있을지 몰라서요.”
“이거 탄약, 마정석탄 아닌 것 같은데?”
“뭐, 아무것도 안 든 것보단 낫잖습니까?”
낫기는. 그냥 재고가 썩을 정도로 남아돌아서 우리에게 떠넘기는 거라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하지만 직접 말할 용기는 없었기에 상상만 하고 적당히 자리에 가서 휴대폰을 보며 대기한다.
그렇게 잠시 있으니 머리 중앙이 휑한 중년 남성이 나와서 지휘를 시작한다.
“자, 총기랑 다 받으셨죠? 너무 큰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거 쓰는 순간이 우리 죽는 날이니까요. 그럼 우리 임무를 설명드리겠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신강남으로 가는 물자 보급 작업, 진지 건설이 주가 될 건데 그에 따른 임무 배분이 이루어질 겁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임무가 배분되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아 전직 스태프였던 덕분에 나는 이곳 아카데미아에 저장되어 있는 보급 물자들을 차에 실어 보내는 일에 편성되었다.
‘옛날로 돌아온 기분이구먼. 읏챠~ 오~ 전쟁터 현황인가?’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말고, 어차피 휴대폰으로 정보를 다 입수하니 대놓고 방송으로 신강남의 상황에 대해 알려 주고 있었다.
『현재 ‘성좌 산거정’의 사도 ‘기르마크’와의 전투가 아직도 지속되는 가운데 끝없이 밀려오는 ‘산거정의 약탈자’들을 상대로 헌터들이 고전하고 있습니다. 수도방위사령부에서도 이미 지원 병력이 갔지만 동시에 북쪽에서 ‘성좌 도살왕’의 몬스터들과 스캐빈저들이 움직이는지라 대응하기가…….』
“어라? 나쁜 성좌끼리 협동인가? 의외네.”
“성좌들도 각자 호불호가 확실하니 말이지.”
도살왕과 산거정이 손을 잡은 건가?
확실히 둘은 인간에 적대적인 성좌이면서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성좌 도살왕은 인간 고기를 바치는 걸 좋아하는 반면 성좌 산거정은 돈과 보물 약탈을 좋아하고 그것들을 바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양측 사도나 스캐빈저들이 서로 연결해서 협공한 것이리라.
‘저들도 멍청하진 않으니 양면 공격이 유리한 걸 알겠지. 으음~ 그래도 뭐, 알아서 하겠지.’
“자자, 빨리빨리 움직입시다. 지금 전쟁 망하면 우리도 다 죽어요.”
“예끼! 이 사람아, 우리가 빨리 움직인다고 저기 전황이 바뀌나? 쯧쯔쯔. 결국 헌터들과 군바리들이 다 잘해야지.”
“아유, 박순원 그 양반 없으니 서울 길드 걸레짝 나네. 병신들, 잘난 척은 엄청 해 놓고 황금 마인 기사도 못 막는 주제에 호구라고 놀림받는 성좌 산거정한테 얻어터지네. 쯧쯔쯔, 길드 운영이 얼마나 개판인 거야?”
“아무튼 후딱 해결되고 집에나 갔으면 좋겠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다들 신강남에서 구르고 있는 헌터들에 대해 욕하면서 계속해서 지시받은 임무를 해 나간다.
사실상 성좌들이 협력한다고 해서 망하는 걸 걱정하는 건 거의 의미가 없다고 보면 된다.
어차피 서울 길드가 없으면 청룡 길드와 올림푸스가 있고, 그 아래로도 명성은 조금 모자라도 실력 있는 헌터들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꼭 착각하는 게 3대 길드랑 10명의 헌터가 우리나라를 다 수비하는 줄 안다는 거지.’
또 산거정, 도살왕에 만만치 않은 수많은 성좌들이 그 길드들을 돌보고 있는 만큼 걱정은 기우에 가까웠다.
그저 시간과 과정의 문제일 뿐, 비상소집으로 인해 시간을 좀 낭비하긴 하지만 저기 양반들이 고생하는 걸 보며 즐기면 그만이다.
“자, 그럼 한 타임 쉽시다.”
“아이고~ 허리야. 썩을 놈들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쉴 때, 나는 아영이에게 연락을 해서 전황에 대해 물어보았다.
뉴스는 어디까지나 선전용이자 사람들에게 던지는 프로파간다인 만큼 제대로 된 사실을 물으려면 관련자에게 듣는 게 좋았다.
「유성원:상황 어떰?」
「우주최강아영이:개판이에요. 도살왕네까지 또 움직인다니까 다들 어수선하다나요? 북쪽은 일단 다시 ‘청룡’이 막고 신강남은 ‘올림푸스’가 지원 간대요.」
「유성원:예상했던 대로군.」
「우주최강아영이:근데 아저씨는 뭐 해요?」
「유성원:나? 민방위 임무 중~ 대충 트럭에 짐을 실어 나르거나, 마정석들 물량 확인하는 거?」
「우주최강아영이:와, 그건 무슨…….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지만 기록이 남아서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아영이는 말을 얼버무린 것 같았다.
하나 그 뉘앙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SS급 인정받은 전력이 민방위나 와서 이러고 있으니 답답하다는 거겠지.
“아무튼 이거 끝나면 바로 D급 승급하고 지방이나 내려가야지.”
하지만 결국 나에겐 남의 일이고, 남의 사정일 뿐이다.
과거 지구 반대편의 분쟁 지대에서 일어나는 전쟁 같은 거고, 북한에서 식량이 모자라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미 황금 마인 기사라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기에 이제 와서 좋은 일 해 봤자 득이 될 것도 없고 내가 노림받을 이유만 늘리는 셈이다.
“보자. 짱 박힐 곳은… 역시 산이 좋을까?”
그렇게 나는 한가롭게 산에 대해 검색해 보면서 시간을 죽였고, 잠시 후 쉬는 시간이 끝나자 다시 민방위 업무에 돌입했다.
제2차 신강남 사태가 어찌 되든 말든 세상은 굴러간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같은 시각.
‘제2차 신강남 사태’ 특별 본부.
한가로운 유성원과 달리 높으신 분들은 제2차 신강남 사태를 매우 심각한 사태로 보았는지 특별 본부까지 만들어서 움직일 정도였다.
성좌 산거정 세력 혼자였다면 3대 길드 총력을 동원해서 단숨에 밀어 버릴 수 있겠지만 문제는 성좌 도살왕, 스캐빈저 세력들과 함께 움직인다는 거였다.
“일단 도살왕 쪽은 다행히 아크데몬 비스트들이나 이 목사는 나오지 않았지만, A급 용족 도살자와 B급 거인 도살자들을 위주로 수많은 놈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목사는 지금 개성에서 한창 정비 중이라 오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스캐빈저를 파견해서 문제입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스캐빈저는?”
“이번엔 스캐빈저들이 더 성가십니다. 장벽 재건 사업으로 인해 신강남 내부로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유입이 되었는데, 그 속에 섞여 있어서 도저히 구분이 어렵습니다. 그러면서도 공사 방해와 야간 기습, 시설 파괴 등으로 성가시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아~ 배신자 놈들. 진짜 미칠 노릇이군.”
어차피 전면전은 공군과 육군의 지원을 받는 서울 길드를 중심으로 한 헌터들의 협공으로 어떻게 풀어 나갈 수 있었지만, 게릴라전을 해 대는 스캐빈저들은 정말 성가신 놈들이었다.
반대로 스캐빈저 대응팀이 있긴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테러하는 쪽이 지키는 쪽보다 훨씬 쉽다.
“그나저나 신강남은 대체 왜 이렇게 정체가 되는 겁니까? 국방부까지 본격적으로 나서서 폭격 허가에 공군, 육군의 지원이 계속 들어갔는데!”
“그, 그게… 성좌 산거정의 사천왕들이 모두 나섰기 때문입니다. 도살왕으로 치면 아크데몬 비스트들이죠. 그래서 피해가 생각보다 극심합니다. 발표는 안 했지만 공군, 육군 피해가 벌써…….”
“하아, 아주 제대로 각을 잡았군요. 그 약탈마 자식!”
“옛날엔 금괴만 좀 주면 물러나곤 했었는데… 이젠 안 속겠죠?”
다른 성좌들처럼 성좌 산거정의 미덕 역시 ‘약탈’로, 뭐든 빼앗는 걸 좋아한다.
그들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는 ‘황금’, 그다음이 ‘마정석’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황금을 줘서 구슬리거나 황금을 미끼로 해서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었었다.
“현장에서 이미 실험해 봤다는데… 안 통한답니다. 놈들 옆에 스캐빈저들이 같이 공투하고 있다나요?”
“그놈들에게서 없던 지혜가 나온 건 그놈들 탓이군요. 하아~”
“실제로 현장에 보니 지휘관 스캐빈저가 산거정의 세력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고…….”
“쉬운 게 없군요. 하루라도 빨리 사태가 끝나야 하는데…….”
뭔가 쉽게 풀리는 게 없기에 근심과 걱정이 늘어 간다.
더 걱정인 것은 이런 사태들이 장기화될 경우 국가 전체에 피해가 누적된다는 점이었다.
이미 사태는 집값 하락 같은 걸 걱정할 단계를 넘어서인지 그곳에서 대피한 신강남 시민들과 바깥사람들 간의 대립도 심각했다.
“신강남 시민들을 수용한 대피소에 최근 다른 시민들이 폭언과 욕설을 던지고 간다고 합니다.”
“인터넷 여론도… ‘금수저들 죽창 맞아서 개꼬심.’ 이러고 있고, 계층 차이가 너무 커서 동정 여론이 거의 없더군요.”
“자업자득이죠. 아이고~ 서울 길드도 지금 막 불쌍한 척하는데, 그동안엔 어땠습니까? 몬스터나 스캐빈저 잡자고 토벌령 나오면 귀신같이 우리는 서울을 지킨다면서 내빼기만 했으면서 신강남이 털리니 도와주세요, 하며 징징대고!”
“여러분, 그, 그거야 그렇지만 신강남은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이니…….”
“게다가 거기 후원자들도 보통 부패한 게 아니잖습니까?”
이 시급한 위기 와중에도 싸움은 거르지 않는 것도 인류의 특징일 것이다.
애초에 신강남은 그동안 많은 폐단과 부패를 쌓아 왔던 만큼 그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이 기회에 몰락하게 만들자고 생각하여 방해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었다.
‘개 같은 신강남, 진짜 망해 버려야 한다. 그 망할 적폐의 도시를 이 기회에 없애 버려야지.’
‘몬스터고 뭐고, 그놈들은 망해야 하니 적당히 해야지.’
‘스캐빈저에게 던질 제보 없나?’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내부의 적이라는 말이 있듯 협회와 길드 직원들은 물론 전쟁 현장에 나가 있는 군인과 정부 사람들 속에 자리 잡은 신강남에 대한 반발심도 꽤 컸다.
그렇게 중요한 사람들이 모인 회의는 무언가 확고한 계책이나 방안 없이 혼돈 속에 빠진 채로 시간만 날려 먹고 있었고, 신강남은 서서히 보이지 않는 늪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들 무엇 하는 겐가? 정신들 차리게나. 불만만 내놓는다고 일이 해결되진 않지. 그리고 외부의 일보단 내부가 심각한 법이니 우선 내부 문제부터 풀게!”
그리고 어느 조직에나 멍청한 사람이 꼭 있다면, 멀쩡한 사람도 일단 존재하는 법이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연로한 여성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일갈하면서 일의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창 싸우던 이들도 표정을 찡그리거나 불편해할지언정 정면으로는 맞서지 못하고 따르는 척을 한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인물은 바로 현 아카데미아 학원장, 구세대의 레전드로 불리는 S급 헌터 백가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