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다음 날.
황금 마인 기사가 일으킨 신강남 전투는 인명 피해나 사상자 수치는 그리 크지 않았다.
격돌한 것은 5인에 지나지 않는 황금 마인 기사 측과 서울 길드뿐이며, 민간인 피해는 거의 없어 약 700여 명의 사상자가 난 게 전부.
하나 이 전투로 인해 입은 피해는 여느 전쟁만큼이나 거대한 상처를 남겼다.
“이제 서울 길드는 3대 길드라고 할 수가 없는 쪽팔린 길드지.”
“서울 길드 지망하던 애들 다 청룡이나 올림푸스로 바꾸려고 난리라며?”
“그러게 말이야.”
그 여파는 이곳 아카데미아 천(天) 클래스 교실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서울 길드를 지망하던 학생들은 어제의 패전 소식을 듣고 바로 계약을 끊고 위약금을 내고서라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으며, 서울 길드와 친인척 관계에 있는 학생들은 단 하루 만에 죄인처럼 고개도 못 들고 기죽은 채로 사는 처지가 되었다.
“학생회장님은 어떻게 됐는지 알아?”
“몰라. 잠적했어. 솔직히 나 같아도 잠적하겠다. 키킥.”
“인우 그 병신도 그렇지만, 신강남 순혈 새끼들 다 X 됐던데? 천(天) 클래스 애들은 못 건드리지만 그 밑으로는 죄다 줘팸 당하더라. 히히히.”
“인과응보지. X밥 새끼들이 나댔으니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니까. 교관이랑 선생들도 지금 혼란 상태던데…….”
단 하루 만의 사건으로 인해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었고, 새롭게 서열 정리가 되어 간다.
하나 서울 길드에는 이것보다 더 큰 타격이 존재했는데… 간신히 구출한 박순원 길드장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이었다.
패배로 인해 실의에 빠져서 잠든 그는 눈뜨자마자 몸이 무겁고, 전신에 힘이 없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 상태창을 열자, 거기에는 충격적인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이게… 이게 무슨 소리야?”
[당신은 전장에서 도망쳐 ‘기사도’를 더럽혔습니다. 명예롭게 당신과 맞서 싸우러 나온 ‘황금 마인 기사’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기 전까지는 ‘기사’로서 대우를 받을 수 없습니다.]
[불명예의 대가-당신은 지금 ‘기사’가 아니기에 ‘기사’로서 사용 가능한 스킬이 모두 봉인되며 임시 클래스 명칭 ‘서울의 빤쓰런맨’이 적용됩니다.]
“아니, 무슨! 뭐야? 이 형편없는 능력치는? 스킬들이… 내 스킬들이!”
[클래스:서울의 빤쓰런맨]
[스테이터스]
Str:105 Dex:85 Vit:120 Mag:75
[보유 스킬]
(영웅)수호 기사의 명예(봉인됨)
(영웅)용기의 상징(봉인됨)
(희귀)대마법의 문장-모든 마법 저항력이 상승합니다.
(전설)서울 수호의 서약(봉인됨)
(영웅)기승(A+)(봉인됨)
(희귀)환영 검술(봉인됨)
등등…….
자신의 모든 스킬을 확인해 보자 죄다 이 모양이었다.
기사에 관련된 스킬들이 모두 봉인되었고, 남아 있는 스킬이 몇몇 개 있었지만 스테이터스가 단숨에 C급 헌터 수준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그는 더 이상 S급 헌터라고 할 수 없었다.
“젠장! 젠자아앙! 황금 마인 기사, 이것도 그놈 짓인가? 이걸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충격을 받은 박순원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상태창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봉인 해제 조건은 결국 황금 마인 기사를 찾아서 그에게 사죄하는 것이었기에 어떻게든 그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평생 C급 헌터의 스테이터스로 사는 건 물론 ‘서울의 빤쓰런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클래스명을 계속 달고 살아야 한다.
“하아~ 놈을 어떻게 찾아서 사죄를 하지? 젠장!”
S급 헌터로 살아온 그에겐 지금의 C급 상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원래대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황금 마인 기사를 찾아야 했다.
어떻게 찾아야 하나 싶어 머리가 아프던 찰나, 옆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허, 헉! 너, 너 경훈이 이 녀석, 언제?”
“진작부터 있었습니다. 길드장, 아니 서울의 빤쓰런맨 님. 후우~ 기껏 살려 놨더니 왜 이렇게 된 겁니까? 스테이터스도 떨어져 있더군요.”
“그 황금 마인 기사가 날 이렇게 만들었네. 무슨 기사도니 뭐니 하는 페널티 때문에 지금 스킬들 대부분이 봉인당해서…….”
“C급 헌터 수준이 되었다는 거군요.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해결 방법은 뭡니까? 저주 해제 담당을 부를까요? 아니면 뭔가 제물이 필요한 겁니까? 아니면 마정석? 돈? 빨리 풀고 할 일 하러 가시죠. 지금 장난 아니니 말입니다.”
성좌들이 존재하는 시대에 사는 만큼 저주나 페널티 같은 건 일상이라서 이것만으로는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닌 듯이 반응한다.
하지만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쉽게 풀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박순원은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설마 못 푸는 겁니까?”
“아니, 못 푸는 건 아닌데……. 말할 수 없는 걸세. 허허. 아, 아무튼 무슨 일부터 해야 하나? 지금 매우 바쁠 텐데, 말해 보게.”
박순원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빠르게 화제를 돌리고자 노력한다.
잠깐 생각을 해 보니 사죄라는 건 어설프게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그 망할 황금 마인 기사가 받아 줘야 하는 것일 테니,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었다.
놈을 찾는 것도 문제였지만, 만약 놈이 사과를 안 받아 주면 자신은 평생 스킬이 봉인된 채 살아야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직 그걸 들키지 않았으니 괜찮아. 들키면 곤란해.’
물론 C급에다 다양한 던전 경험이 있는 만큼 헌터로서 아예 쓸모없는 레벨은 아니지만, 그 또한 오랫동안 S급 헌터 생활을 했기에 이 자리에서 내려가는 건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러면 이것부터 처리해 주십시오. 길드장 사직에 관한 서류입니다. 역시 C급 헌터는 내세울 수 없으니 일단 이것부터 해 주시죠.”
“…그, 그런가? 알았네. 사정은 상처로 인한 요양과 수련으로 하면 되겠나?”
“그거면 될 것 같습니다.”
S급 헌터가 한 명 줄었다는 건 길드에 큰 타격이었다.
감추기 위해서 이유를 적당히 꾸며 내는 건 당연한 선택지였다.
이미 3대 길드 선에서는 무시당했지만, 그래도 나머지 하위 길드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정도 조치는 해야만 했다.
그렇게 길드장 사직에 관한 서류를 마무리한 그는 오경훈에게 주었고, 이제 다음 서류를 달라고 한다.
하나 서류를 챙겨 넣은 오경훈은 갑자기 꾸물대는 모양새를 보였다.
“자자, 계속 주게. 지금 한창 바쁘지 않나?”
“아뇨. 할 일은 다 끝났습니다. 이제 푹 쉬러 가세요.”
“자, 잠깐, 그게 무슨!”
“그… 길드장님의 상태창 말입니다만? 버프 주는 저에게도 웬만큼 다 뜹니다. 아니, 저뿐만 아니라 그때 같이 파티에 넣고 버프 드린 다른 친구들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황금 마인 기사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것까지 말이죠.”
오경훈의 말을 들은 박순원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이미 길드장의 자리까지 수월하게 이양했으니 더 이상 자신에게 볼일은 없을 테고, 그다음 처분은 안 봐도 뻔했다.
황금 마인 기사에게 사죄를 해서 스킬의 봉인을 푸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에 결국 박순원 길드장에게 미래는 없었다.
“하지만 당분간 우리 길드에서 S급이 한 명 사라진 걸 알리면 안 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폐관 수련’ 한다고 해 놓을 예정입니다.”
“…그, 그러면 비공식은?”
“안 그래도 그 황금 마인 기사에게 져서 불편한데……. 어디 돌아다니다가 들키지 않도록 잘 ‘숨겨’ 놔야겠죠.”
“이봐, 잠깐만! 그, 그냥 신원 세탁을 해 주면 안 되나? 지금 이렇게 클래스명도 변했으니 그냥 협회 정보만… 잠깐! 잠깐!”
문답무용. 오경훈은 말없이 박순원 ‘전’ 길드장에게 다가갔다.
아무리 서포터형 S급 헌터라 할지라도 C급으로 뚝 떨어진 박순원 길드장을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단숨에 박순원을 제압해서 기절시킨 오경훈은 밖에 있는 자신의 직원들을 불러 그를 냉동시켜 관에 넣은 다음 길드 지하에 있는 레어 아이템 창고에 넣어 두기로 한다.
“그냥 묻어 버리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그 ‘황금 마인 기사’가 죽거나 하면 스킬의 봉인이 풀릴 수 있으니 이렇게 넣어 두는 수밖에 없군. 하나 차라리 부러울 지경이네.”
어제의 패배로 이미 서울 길드는 복부에서 내장이 흘러내리고 피가 흐르는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빠르게 응급조치를 하지 못하면 살아나기 어려운 상황.
후원자들 가문에서도 벌써 신강남 붕괴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기에 오경훈은 어떻게든 그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차라리 얼음 속에서 쿨쿨 자고 있으면 되는 박순원이 부러울 지경인 그는 한숨을 쉬며 사무실로 나선다.
***
같은 시각.
유성원은 한가롭게 서울 쪽 모텔에서 푹 자고 일어난 상태였다.
숙소로 돌아가기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우선 바깥에서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영이랑 어머님에게서 문자 엄청 왔네. 흐음~ 누가 걱정해 주는 느낌도 참 낯서네.”
메신저는 물론 문자 메시지까지 산더미처럼 쌓인 것을 보며 유성원은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그가 상황을 지켜보자고 한 것은 어제 일으킨 신강남 사태의 여파를 협회, 정부, 길드에서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방향을 보기 위함이었다.
괜히 먼저 길드 쪽으로 돌아갔다가 그쪽에 폐를 끼치면 곤란하니 말이다.
“일단은~ 당분간 조용히 있는 게 좋을 테니 지방으로 뜰까?”
배 회장 집에서 나오는 알리바이를 만들었다곤 하지만 사람의 의심이란 끝을 모른다.
그렇기에 최대한 안전한 수를 찾던 유성원은 서울에서 빠져나가자고 생각한 것이었다.
거기에 3대 길드에서 나온 서울 길드로 인해 서울의 질서가 재편되어야 하는 점과 신강남 지역에 있을 혼돈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별다른 계획 없이 C급 던전으로 진출하는 건 또 다른 혼돈의 도가니겠지?”
현재 45레벨, D급 던전으로 올릴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한 유성원은 C급 던전으로 진출해야 했다.
하지만 난이도에 비해 가장 이윤이 높은 C급 던전의 공략권은 경매를 통해서 팔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적절한 크기의 마정석은 기본, 운이 좋아서 와이번, 드레이크 같은 용종이 나오면 비늘까지 챙길 수 있고, 피는 고급 물약을 만드는 연금술 재료까지 되니 경매로 돈을 주고 사도 이득이었다.
‘그런 만큼 함부로 발 올리려 했다가는 눈초리가 엄청나겠지?’
역으로 서울 길드가 이렇게 침몰할 것 같은 상황에서 손을 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유성원의 소시민 근성은 위험부담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쪽으로 기울었다.
“아무튼 일단 잠수 타는 건 기본인데……. 뭔가를 해야겠지.”
그냥 나태하게 숨어서 놀기도 영 그랬기에 유성원은 모텔 안에서 생각을 계속한다.
무언가 해야 할 것,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지금 있는 이 모텔과 숙소를 번갈아 생각하면서 ‘자신의 집’이라는 것에 대해 떠올리기 시작한다.
‘내 집이라. 내 집, 내 집, 내 집… 그래! 왜 이걸 생각 못했지?’
서민의 꿈! 서민의 희망! 내 집 마련! 상상만 해도 흥분이 몰려온다.
나의 보금자리! 나의 휴식처! 나의 잠자리! 나만의 안식처!
‘그래. 요새 지방의 산이랑 국립공원 관리가 안 돼서 가격이 엄청 싸졌으니 내가 가진 돈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어. 아니야! 기왕 인력(?)도 있으니까 만드는 건 어떨까? 그래! 설비만 갖추면 문명과의 거리감도 없을 거고! 교통수단이야 말하면 피곤하지!’
지금 이 상상이 그저 꿈만이 아니라 현실 가능성이 있다는 걸 떠올린 그는 눈을 번뜩이며 계획부터 세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