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신강남에서 일어난 전투는 엄연히 유명한 서울 길드와 그곳의 최정예인 강남 에이스들이 참전한 덕에 대한민국 국민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헌터계에서 주목하고 있었다.
드래곤까지 참전한 황금 마인 기사 측에 과연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했고, 나름 세계에 이름이 알려진 특수 부대인 만큼 그들의 힘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나 처참하게 박살이 나 버렸다.
***
인천, 청룡 길드 인공섬.
『으아아악! 살려 줘!』
『젠장! 이게 무슨!』
『여러분, 지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강남의 보루인 강남 에이스가 처참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개자식들, 꼴좋네. 맨날 비싸게 굴더니 실전 경험 부족해서 털리는 것 좀 봐. 호호홋.”
청룡 길드에서는 지원 요청을 받았음에도 말로만 준비한다고 하고는 대놓고 무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맨날 토벌령을 무시하고 자존심 박박 세우는 서울 길드가 아주 제대로 걸려서 대차게 깨지길 바랐고, 결과가 예상대로여서 내심 즐거웠다.
“근데 저 황금 마인 기사가 생각 이상으로 강한데요? 저 정도면 진짜 SS급도 과언은 아니겠어요.”
“대체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온 거지?”
“그걸 알면 저희가 이러고 있겠습니까? 그보다 아직 사태가 안 끝난 것 같은데요? 저거 좀 보시죠. 저 비싼 장벽이 점점 쓰러지는데요?”
화면에선 골드 드래곤이 브레스를 뿜으며 마치 레이저 절단기로 쇠를 자르듯 신강남의 장벽을 잘라 내고 있었다.
당연히 그걸 가만히 놔둘 협회와 군대는 아니었지만, 장벽 내부 쪽에서 작업을 하고 있기에 제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국방부에서 이야기하기로는 대상이 ‘장벽 내부’ 쪽 사각에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투기 및 헬기를 통한 미사일 공격은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헌터들을 이용한 특수 작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서울 길드에서는 지금 신속히 헌터팀을 재편성하여 ‘신강남’을 수호하겠다고 했으며 시민들에겐 안심하고 대피소에서 절대 나가지 말라고 공식 발표하였습니다.』
『골드 드래곤이 뚫고 있는 ‘신강남’의 장벽은 ‘성좌 산거정’이 있는 남쪽 방향으로, 만약 파괴될 경우 복구 작업까지 타격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신강남’의 안보 체계가 무너진 것이 스캐빈저들에게 알려질 경우…….』
『현재 실시간으로 ‘신강남’과 ‘서울 길드’ 관련 회사들의 주식이 대폭락하고 있습니다. 주로 강한 안보를 밑바탕으로 투자를 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번 사태로 인해 모두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가운데 하락은 계속되어질 전망입니다. 정부와 기획재정부에서는 이번 사태의 쇼크로 인한 여파를 막기 위해…….』
단 한 번의 전투를 했을 뿐인데, 서울 길드와 강남 에이스에 대한 평가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에 따른 여파가 바로바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난공불락 아성의 상징인 신강남의 장벽까지 무너지게 되면 더더욱 안 좋은 여파가 커져 나갈 것이고, 이는 대한민국 전체에 불이익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 서울 길드는 필사적으로 나서는 건 물론 다른 3대 길드에 구원 요청을 넣었지만, 결국 늦어서 지금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마냥 보고만 있을 수 없지. 정보 수집은 해야 하니 정찰대만 몇몇 보내라.”
“아, 알겠습니다.”
“황금 마인 기사의 정체를 어떻게 해서든 알아야 한다.”
저 황금 마인 기사가 지금은 자신들을 노리지 않을지 몰라도 차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손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고천수 길드장은 곧바로 지시를 내리면서 계속해서 TV 화면을 바라본다.
이미 사선으로 절단이 완료된 신강남의 장벽은 그대로 균형을 잃고 무너져 내려갔다.
『아아아! 무너지고 있습니다! ‘신강남’의 아성이! 장벽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성좌 산거정’ 방향에 있는 장벽이 완전히 무너지고, 이미 대피가 끝났다곤 하지만 헌터 관리소까지 휩쓸리면서 ‘신강남’의 경계가 무너집니다아아아아아!』
“훗, 스캐빈저와 놈들이 좋아하겠군.”
“길드장님, 아직 싸움이 안 끝났습니다. 이거 보시죠.”
채지영이 보여 준 휴대폰 화면에는 서울 길드 본관에서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황금 마인 기사와 검푸른 갑주를 입은 또 한 명의 기사가 그의 앞에 마주 서 있었다.
바로 서울 길드의 길드장, 초대 서울 길드장에게 임명된 서울 수호의 사명을 받은 후계자 박순원 길드장이었다.
『아, 드디어 나타났다! 서포터형 S급 헌터 오경훈과는 다른, 최전선을 누비는 진퉁 S급 헌터!』
『‘서울의 수호 기사’ 박순원 길드장이 직접 나섰다. ‘황금 마인 기사’와 충돌 직전! 떨어진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지금 막 칼을 빼 들었습니다!』
“…다른 쪽은 온갖 죽어 나가는 뉴스인데, 여기는 무슨 스포츠 중계처럼 떠드네. 낄낄.”
“기레기 새끼들이 다 그렇죠.”
“영상 녹화하고, 정찰팀 애들 분리해서 현장 직촬도 하라고 전해라.”
고천수는 뉴스로 나오는 중계 영상을 보면서 곧바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S급 헌터끼리 부딪치는 일은 거의 없기에 일어난 싸움은 좋은 자료가 된다. 그러므로 자료 수집은 꼭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사이, 서울 길드의 길드장은 검을 빼 들고 겨누며 무언가 말하기 시작한다.
***
서울 길드 본부 앞.
본래 내 목적은 엘드라엔이 열심히 신강남의 장벽을 파괴하는 동안 시간 끌기였기에 본부 앞에서 농성하는 거면 충분했다.
근데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갑자기 저 검푸른 갑주를 입은 중년 아저씨가 나타나서 내게 검을 겨누며 도발하기 시작했다.
“황금 마인 기사! 나는 서울 길드의 길드장이자! 서울의 수호 기사 박순원이다. 떨어진 우리 길드의 명예를 다시 세우고 불필요한 희생을 없애기 위해 너에게 일대일 승부를 신청하겠다. 그 모습과 내 스킬 특성에 반응하는 걸 보니 네놈도 일단은 ‘기사 클래스’! 그렇다면 당당히 응해라!”
“…아니, 우리 일 다 봤는데 응할 이유가 없…….”
[우리 대장은 강하다아아아아아아! 당연히 응한다아아아아!]
[흠하하핫, 기사끼리의 일기토는 안 보고 넘어갈 수 없지.]
아니, 왜 니들이 멋대로 받아들이는 건데?
왜 내 의사에 상관없이 결투가 확정 난 거야?
하지만 내 눈빛을 받은 그들은 말없이 엄지손가락만 척 내밀면서 싸우라는 듯 좌우로 길을 내준다.
‘이렇게 된 마당인데, 이거 안 받으면 또 기사도 특성님이 난리 치겠지?’
이젠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터라 그러려니 하고 나선다.
하지만 별로 내키지 않는 싸움이다.
신강남을 이따위로 만들어 놓은 양반이 명예?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라 비아냥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예이, 어서 오십시오, 시궁창의 기사님. 기꺼이 상대해 드리죠.”
“시궁창……?”
“배 회장 같은 쥐새끼를 지키는 양반이면 당연히 시궁창의 기사죠. 뭘 새삼~ 게다가 서울의 수호 기사라는 것치고 서울 전역에서 활동하기보다는 죄다 신강남 후원자들의 똥꼬나 빨러 다니는 것밖에 안 하는데……. 애널 써킹 나이트가 더 어울리겠네요.”
내 비아냥거림에 어찌나 열이 받았는지 갑옷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긴 3대 길드 중 하나로 불리는 서울 길드의 수장으로서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나름 무시 못할 위치에 있는데, 이런 모욕은 참을 수 없을 터였다.
“감히 서울을 지키는 기둥인 나를…….”
“기둥은 무슨. 썩은 꽈리고추 줄기 같은 놈이…….”
“황금 마인 기사! 이 모욕,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타아아앗!”
더 이상 참지 못한 박순원 길드장이 먼저 전신에 푸른빛을 휘감은 채로 달려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에 맞서서 나도 한 방에 날려 버릴 기세로 달려가 티탄의 말뚝을 휘둘러 공격한다.
이런 지저분한 인간이랑 별로 오래 어울리고 싶지 않기에 순살할 생각으로 전력을 다해 휘두른다.
“하앗!”
“오?”
콰드드득!
서로의 무기가 부딪치면서 충격음과 반발력에 의해 바닥의 콘크리트가 깨져 나간다.
순간 나도 깜짝 놀란 게, 이때까지 각성자들 수준에서는 힘으로 밀린 적이 없던 느낌이었는데 처음으로 맞수가 나타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놀라선 안 되는 부분인데 말이지! 젠장!’
“뭐야? 말도 안 돼! 오경훈의 버프까지 받은 나와 호각이라니! 네놈은 대체?”
‘과연 그 강남 에이스들을 이끌던 놈의 버프를 받은 건가?’
서포트형 S급 헌터의 버프를 받은 S급 헌터라면 확실히 이 정도 능력치 포텐셜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더구나 최상위 길드장인 만큼 장비 수준도 매우 높겠지.
하지만 박빙이라고 해서 딱히 두렵지는 않았다.
어차피 단숨에 제압당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한 수준이면, 계속 싸울 시 무재(武才) 스킬에 의해 내가 결국 우위에 서게 돼 있다.
‘그보다 저 칼, 좋은 건가 보네. 티탄의 말뚝과 부딪쳤는데 날도 안 상하고. 저것도 헤파이스토스 장인의 작품인가?’
“하아앗! 나인 엘더리 슬래시(Nine Elderly Slash)!”
첫 스킬을 선보인 순간, 나는 방금 전 내렸던 판단을 고쳐야 했다.
스킬을 쓰면서 달려드는데, 위협은커녕 공격이 다 보여서 시시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 양반은 무재 스킬의 경험치도 못 되는군. 대체 어떻게 S급을 딴 거지? 레그혼급은 아니더라도 A급 몬스터 이상은 다수 잡아야 저 자리에 올라가는 거잖아.’
스킬까지 섞은 파괴적인 맹공에 주변이 산산조각 나고, 땅이 울렸지만 나는 크게 동하지 않았다.
분명 S급 헌터에 내 스테이터스와 맞먹을 정도로 나름 강한 편이긴 했는데, 뭔가 실속이 없다고 해야 할까?
‘차라리 청룡 길드 양반들이 훨씬 낫겠네.’
“크억! 허억… 허억…….”
콰아앙!
내 일격에 밀려난 박순원 길드장은 숨을 몰아쉬면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저건 나라도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양반은 어찌나 싸움의 공백이 큰 건지, 현장에서 너무 멀어지는 바람에 전장의 공기를 잊어버린 것이다.
‘호흡 조절도 못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네.’
“크억! 큭! 어, 어떻게 이런…….”
“적당히 놀았어야지.”
이게 자신보다 약한 상대와 싸울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맞수나 그 이상의 상대와 싸울 땐 격의 차이가 확 드러난다.
십수 년에 걸쳐 얻은 강함이 자신의 나태와 서울 길드로 인해서 제힘을 발휘 못하고 이렇게 밀리고 있지 않은가?
“젠장할! 어떻게 이런!”
‘유리할 때 확실히 처리하는 게 좋겠지?’
이미 나는 이 신강남과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니 지금 확실히 죽여서 후환을 없애는 게 나을 것이다.
스테이터스 차이를 좁혔으니 싸우지 않아서 떨어졌던 원래 기량을 회복하면 큰 위협이 될 터였다.
‘잡았다.’
채앵!
그렇게 제대로 마음을 먹고 공격을 튕겨 낸 순간, 큰 틈이 바로 생겼다.
무기는 맞먹는 성능을 가질 수 있어도 머리 부분은 투구 너머 죽을 만큼의 충격량을 전해 줄 수 있다.
“뒤져라.”
“사, 살려 줘!”
부우우우웅!
대답을 거부하고 티탄의 말뚝을 휘둘렀지만, 막상 특유의 손맛이 없었고 작은 빛무리만이 반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딱 봐도 공격당하기 직전 마법으로 내뺀 것이 분명했다.
결국 이렇게 빤쓰런 할 거였으면 뭐 하러 일대일 결투를 신청한 건지 어이가 없을 정도다.
‘뭐, 나라도 불리하면 도망쳤겠지만…….’
아무튼 이대로 가기엔 아쉬우니 선물이라도 하나 해 줘야겠다.
호흡을 가다듬고, 남은 마력을 전부 티탄의 말뚝에 모았다.
그리고 본래 저 장벽을 부수려고 아껴 둔 패황 기사 유찬의 두 번째 스킬을 사용하기로 한다.
“땅과 하늘의 경계인 지평(地平)이여, 나 그 궤적을 따라 태양과 달을 베기 위해 이 검을 휘두르노라! 패황천검류(覇皇天劍流) 제3장-지평참(地平斬).”
쩌엉!
거대한 사선 베기. 그 궤적을 따라 말 그대로 지평선 같은 황금의 선이 그어진다.
그리고 서울 길드의 본부는 그 궤적대로 건물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안에서 숨어 있던 인간들이 당황하는 비명이 들려온다.
“이제 됐다. 자, 가자.”
그렇게 난공불락의 장벽은 남쪽으로 시원하게 뻥 뚫려 버렸고, 3대 길드랍시고 뻗대던 서울 길드와 강남 에이스는 시원하게 깨졌다.
이걸로 이제 신강남은 두 번 다시 개 같은 자존심을 못 세우고, 그 오만함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나는 이곳을 떠나 그대로 당당히 붕괴된 남쪽 장벽을 향해서 엘드라엔의 마법으로 귀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