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오경훈은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황금 마인 기사 일행을 보며 피식 웃었다.
처음에 자리를 잡을 때 이미 방진은 완성되어 있었다.
후열의 저격수와 궁수, 마법사 파티원들이 일제히 공세 준비를 마쳤고, 맨 앞줄엔 든든하게 버프까지 다 두른 A급 탱커들부터 시작해서 공격수들 배치도 끝나 있었다.
‘제 발로 죽으러 들어오는구나.’
A급 헌터들이라곤 하지만 S급 헌터, 더 로드 클래스의 오경훈이 가진 각종 버프들을 통해 S급 헌터가 달려들어도 막을 수 있는 방어력과 능력치를 지닌 상황이었다.
언뜻 보면 복장도, 무장도 제각각이라서 통일성이 없었지만 모두들 오경훈의 버프를 최대한 받기 위해 훈련도 충분히 받았었다.
‘이게 우리 강남 에이스의 필승 공식이지. 후후, S급 몬스터와 싸워서 이겼다면 기껏해야 S급 헌터일 테니…….’
그런 상황 덕분에 A급 던전, S급 던전도 능히 가능하다는 분석이 곳곳에서 나왔고, 세계에서도 평가가 좋고 명성이 높은 강남 에이스였다.
‘게다가 그 커다란 용은… 음? 후방 대기인가?’
유일한 우려거리였던 골드 드래곤은 전투가 시작됐는데도 의외로 후방에서 얌전히 있었다.
아무래도 포위되지 않게 후방을 지키면서 지원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면 오히려 좋지.’
그렇다면 자신들의 승리를 의심할 요소는 전혀 없었다.
대한민국은 망해도 신강남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나타낼 정도로 자신감이 가득한 오경훈이었다.
방진, 병력과 숫자, 사전 준비까지, 어딜 봐도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준비를 해 왔다.
‘근력 증가 버프 2개, 방어력 증가 버프 3개, 보호막 2개 상시 치유와 피로 완화 등등 각종 도핑 효과까지! S급 헌터에 비견되는 방어력을 가진 우리 탱커들을 어디 뚫을 테면 뚫어 봐라. 세상에 우리 강남 에이스의 힘을 제대로 보여…….’
기자들과 카메라도 많은 만큼 이번 전투는 확실히 승리해야 했기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온 것이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스스로를 판단할 때의 일이고, 현실은 달랐다.
“으아아아아악!”
‘뭐?’
콰장창!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그가 자랑하던 A급 헌터의 튼튼한 방진은 황금 마인 기사의 티탄의 말뚝에 의해 파괴되어 버렸다.
마치 빗자루에 먼지가 쓸리듯 강남 에이스들이 날아다니자 오경훈은 물론 뒤에 있던 대원들까지 경악한다.
“이, 이게 뭐야?”
“맙소사!”
“오경훈 팀장님! 저, 저기만 아니라 다른 곳도 위험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황금 마인 기사가 공격한 곳뿐만 아니라 흩어진 다른 기사들이 있는 곳에서도 일어난다.
크록베인, 아칼론, 섬멸, 가울프 모두 강남 에이스의 진형을 각자의 방식으로 분쇄하는 중이었다.
크록베인은 압도적인 피지컬, 가울프는 새까만 심연 마법을 사용해서 시야를 가리고 급소에 정확한 공격, 섬멸은 바람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적의 급소를 노렸다.
그리고 아칼론은 근접 무기와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총기류를 갈기면서 강남 에이스들을 쓸어 나간다.
“제, 젠장! 마법팀, 뭐 하는 거야? 디버프랑 저주 훈련받은 대로 안 넣고 뭐 해?”
“너, 넣고 있습니다!”
“황금 마인 기사는 저 갑주가 아티팩트인 건지 모두 튕겨 내었고, 다른 기사들은 저 흑기사가 뿌리는 검은 연기에 보호받고 있어서 힘듭니다.”
“잠입 중인 암살대원들의 말로는 어떻게 잠입을 해도 마치 눈이 있는 것처럼 알아낸다고 합니다.”
“젠장! 대마법, 대암살 능력 모두 보유라고?”
황금 마인 기사 본인은 그저 기사들이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그들은 서로에게 각자의 능력으로 시너지를 내 주고 있었다.
개별적으로도 강한데 이렇게 서로 단점까지 보완하니 신강남 최강이라 불리는 강남 에이스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박창성, 유종훈, 주지환, 이현기 대원 사망! 버, 벌써 강남 에이스 100명 중 31명이 당했습니다. 팀장님! 후열에 있는 팀원들의 사기도 떨어지고! 어떻게든 살리려고 하지만 저놈들이 급소만 노리거나 목을 완전히 날려서! 이미 살릴 수 없는 경지에까지……!”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뭔가 다른 수단을 써야 합니다.”
부관의 말대로 지금 이대로 있다가는 소중한 강남 에이스들이 모조리 죽을 판이었다.
오경훈은 일단 밀리는 기세를 막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하고 검을 든다.
“일단 이 상황을 진정시켜야! ‘전법술:고무!’ 우리가 누구인지 잊지 마라! 우린 신강남의 방패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역시 쉽게 무너지진 않나? 뭔 놈의 사기가 이렇게 높은 건지.’
티탄의 말뚝을 휘두르며 적들을 분쇄하던 유성원은 꽤 많은 이들을 쓰러뜨렸음에도 전혀 물러나지 않고 싸우려 드는 강남 에이스들을 보며 혀를 내두른다.
게다가 하나하나의 강함은 물론이고 서포트도 좋아서인지 급소를 제대로 때려서 죽이지 않으면 금방 회복해서 돌아와 더욱 성가시다.
‘레그혼만큼 무서운 건 아니더라도 끈질기네.’
“죽어라! 어설트 슬래시! …크억!”
‘차라리 이렇게 달려들어 주면 좋을 정도야.’
콰득!
자신에게 기습을 거는 놈의 머리를 티탄의 말뚝으로 분쇄한 유성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특히 앞줄에서 방패를 들고 탱커를 자처하는 놈들은 그저 공격을 받아 낼 생각만 해서 뚫기가 쉽지 않았다.
“제길! 실드 강화까지 사용한 헤파이스토스 장인이 만든 방패가 깨진다고?”
‘그거라서 깨지는 걸로 끝난 거야!’
최정예라는 특성상 장비 품질도 매우 좋았기에 티탄의 말뚝의 파괴력이 발휘되기가 힘들었다.
하나 그래도 다행인 것은 상대의 공격 능력이 너무 형편없어서 자신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암살자 클래스 및 마법, 저격 등의 공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무재 스킬 혹은 금빛 신수의 갑옷에 막혔고, 자신의 빈틈을 주변에서 기사들이 철저히 지원해 주고 있었다.
“휴우~”
[계약자여, 조급해해서는 안 되네. 설사 패배로 몰리고 있어도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는 판국인데 승리하는 중에 그래서야 쓰나? 하핫. 항상 웃으며 공포를 지배하게.]
“조언은 감사한데… 완전히 틀렸어. 쫄고 있는 게 아니라 그 반대야.”
유성원은 지금 스스로가 너무 고양되어 있다는 것에서 위화감을 느낀다.
그동안 싸움이나 죽고 죽이는 전투는 있었지만 이런 대규모 전쟁은 오늘이 처음이다.
자신에게 천성적으로 영웅의 자질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는데, 지금 그는 이 전장에서 너무 편안했다.
‘이게 말이 되나? 군필이긴 하지만 전쟁은 한 번도 못 겪어 봤는데? 기분이 왜 이러지?’
“으아아아앗! 어설트 슬래시!”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공격이 들어왔지만, 가볍게 피하고 머리 부분을 티탄의 말뚝으로 후려쳐서 그대로 터뜨린다.
그래도 명색이 3대 길드라고 불리는 서울 길드의 최정예라서 그런지 각자의 무장 수준이 매우 좋아서 급소를 노리지 않으면 금방 회복하여 일어나 버리기에 처리하는 게 좀 성가신 편이었다.
‘레그혼 때의 경험이 정말 큰 재산이군.’
그 닭대가리의 무시무시한 투기에 비하면 여기 헌터들의 기백은 햇병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빡센 걸 한번 맛보고 오니 그 아래는 태연해지는 그였다.
“안 돼! 사, 살려 줘어어! 으아악!”
콰득!
마치 채소나 야채를 다듬듯 자비 없이 티탄의 말뚝을 휘둘러서 머리를 때려 확실히 처리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던 서울 길드의 강남 에이스들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적에게 믿었던 아군들이 계속 죽어 나가자 금방 사기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이봐! 이건 뭔가 아니잖아. 저거 버프랑 힐! 다 주고 있던 거 맞아?”
“맞는다니까요. 그냥 저것들이 괴물인 거예요.”
“마법이랑 독으로 지원하려고 해도 뒤에 드래곤이 성가시게 커버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마법을 쓰려면 아군이 휘말리는 바람에 그러지 못해서…….”
“말만 하지 말고! 뭐라도 어떻게 해 보라고! 경훈 팀장님은 뭐 하는 거야?”
앞 열에 있던 탱커 계열 헌터들이 모두 무너지자 그들을 커버하던 이들은 안색이 파래지면서 해결책을 바랐다.
하지만 지금 이 전황에서는 해결책이 있을 리 없다.
보고를 받은 오경훈은 안색이 파래진 채 이 전쟁 자체가 실수였다는 걸 깨닫는다.
‘젠장! 우리가 자만했던 건가?’
S급 헌터들도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강남 에이스에 대한 자신감, 거기다 드래곤에 대한 대비도 충분히 해서 왔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드래곤은 뒤에서 보조나 하고 있는데도 저 다섯 기사에게 강남 에이스의 귀한 인재들이 모두 죽어 나가고 있었고, 피해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었다.
“일단 후퇴한다. 이대로 계속 불리하게 싸울 이유가 없다. 다들 길드 본부로 퇴각해라. 전략을 수정한다.”
“아, 예!”
그렇게 결국 서울 길드는 굴욕적인 퇴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적들의 역량이 이렇게 강한 이상 두 번 다시 정면 승부할 생각을 버리고 추격을 위주로 한 기습과 저격을 동반한 유격전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는 오경훈이었다.
[퇴각하려는 모양이다만? 고객님, 브레스 옵션은 신청했으니까 저기에 확~ 뿌려 주면 적절할 것 같은데…….]
“그건 따로 쓸데가 있어서. 지금은 제 걸 쓸게요.”
고금동서 후퇴하는 적을 유린하는 것은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기에 제안한 엘드라엔이었지만, 그를 거부한 유성원은 도망치는 서울 길드원들을 향해 티탄의 말뚝을 겨눈 채 늘 해 오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늘이여! 지고(至高)에… 이른 나의 검을 확인하도록 해라. 이 일격은 내가 이 대지에 선 별이라는 것을 증명할지니!”
패황천검류(覇皇天劍流) 제1장-지성섬(地星閃).
검의 파동이 대지를 흔들어 부수면서 후퇴해 가는 서울 길드원들을 덮친다.
물론 그들도 후퇴할 때의 위험성을 모르는 건 아닌지라 각종 방어 마법 및 스크롤을 쓰고, 또 후미에 방패를 든 이들도 있었지만 S급 몬스터와 헌터도 견디지 못한 힘은 참혹한 피해를 가져다준다.
“으아아아악!”
“아아아악!”
“팀장니이이이임! 사, 살려…….”
파괴의 폭풍이 지나간 뒤 바닥에는 시신이 나뒹굴고, 즉사하지 않은 이들이 상처를 부여잡은 채 구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오경훈은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갔다.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오직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살려서 길드에 복귀하는 것뿐이기에 그는 침통해하면서도 달려 나갔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자아아아앙!”
“으으음…….”
오경훈의 비명을 뒤로한 채, 눈앞의 참상을 보며 유성원은 뭔가 찜찜한 표정을 짓는다.
역시 패주하는 적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죽은 이들에 대한 감상이었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젠장!’
이런 걸 보고도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자기 자신이 찜찜한 것이었다.
스킬들의 영향으로 전쟁 체질이 되어 가는 건지 사상자가 나뒹구는 전장을 보면서도 편안해지는 감성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건 그거고! 제길! 하던 건 마무리해야겠지. 엘드라엔! 브레스 쓸 일이 생겼다.”
[좋아. 드디어 실력 발휘를 할 때가 왔군.]
“저 장벽들을 최대한 주의해 가면서 날려 버려. 아칼론, 섬멸, 너희는 하늘을 날 수 있는 탈것이 있으니 바로 보조하고, 나는 그동안 서울 길드 놈들이 다른 짓 못하도록 시선을 끌게.”
이곳에서 서울 길드를 격파하는 건 일차적 목표. 그다음 목표는 이제 신강남의 장벽이었다.
신강남 특권층의 오만과 자신감의 상징, 저 장벽 자체는 부서지면 다시 만들면 그만이지만, 난공불락이라 불리던 자존심은 다시는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