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좋아. 옷도 갈아입었으니 슬슬 가 볼까?”
적당한 알리바이도 만들었으니 이제 꺼릴 것이 없었다.
황금 갑옷을 입은 유성원은 엘드라엔을 불러서 그녀의 등에 올라타는 동시에 자신의 기사들을 불렀다. 그러자 그들도 각자 탈것을 타고는 그대로 도로를 당당히 걸어 배 회장의 집으로 향한다.
‘이거 은근 쪽팔리지만… 방법이 없지.’
“으아아! 저거 뭐야?”
“황금 마인 기사!”
“저게 왜 신강남 내부에? 다, 당장 서울 길드에 신고해!”
“몬스터라도 나타난 건가?”
대낮에 등장한 거대한 골드 드래곤과 각자 탈것을 탄 기사들의 모습은 신강남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자연히 이 도시를 본거지로 삼고 책임지는 서울 길드에도 그 소식과 영상이 전해진다.
“뭐라고? 황금 마인 기사가 신강남 내부에 나타났다고? 흐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사실인가 보군.”
서울 길드의 길드장 박순원은 평화롭게 업무를 보던 중 그 소식을 맞이했다.
그리고 여러 길드원이 가져온 자료와 PC에 나타난 영상으로 그의 등장을 확인한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황금 마인 기사의 모습에 놀란 그였지만, 3대 길드장으로서 수많은 사선을 넘어온 건 사실이기에 침착하게 할 일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일반 시민들을 피난시키고, 주변 길드와 국방부에도 소식을 알려! 그리고 당장 애들 소집하고, 경훈이 녀석에게 강남 에이스들을 소집해서 출동하라고 하게.”
“예. 그리고 또 하나 문제가 있는데… 배 회장님 댁에 웬 이상한 악마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쪽에도 지원을 해 달라고…….”
“배 회장인가? 후우~ 아들 장례를 끝내자마자 무슨 난리인 건지.”
“아마도 죽은 배영훈 군과 관련된 스캐빈저 놈들이 보복하러 온 게 아닐는지요?”
“그건 아니겠지만…….”
스캐빈저들의 이기적인 성질을 아는 박순원 길드장은 놈들이 동료의 복수 같은 걸 하기 위해 움직일 정도로 친한 관계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나, 지금은 황금 마인 기사라는 미증유의 존재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는 만큼 일단 그쪽에 대한 생각을 접는다.
“아무튼 지금은 그걸 확인할 겨를이 없으니……. 종석이네 파티를 보내게. 나는 곧바로 국방부와 협회에 연락해서 대책 논의를 하겠네.”
“아, 알겠습니다.”
‘하아~ 평소에도 이런 사고는 터졌었지만… 이번엔 기묘하군.’
난공불락이라 불리는 신강남이라곤 해도 아예 사고가 하나도 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수많은 스캐빈저들의 도전을 받았던 것이다.
게다가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신강남의 후원자 놈들이 갖가지 사고까지 쳐 대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다만 기묘한 것은 두 가지 일이 한 번에 터졌다는 점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 두 사건 모두 하나의 일이 시발점이 되었을 가능성이 큰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것을 확인할 새가 없었다.
자신은 엄연히 길드장.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기에 박순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협회와 국방부에 연락부터 취한다.
***
그렇게 난 엘드라엔을 타고 배 회장의 저택에 금방 도달하였다.
일부러 약간 먼 곳에서 엘드라엔을 소환해서 온 거라 시간이 꽤 걸렸는데, 이미 배 회장의 저택은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 불바다가 되어 있었고, 가울프는 시체의 산 위에 앉아서 날 맞이해 주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전투였다, 계약자여! 흠핫핫.]
“살려 두라는 건 살려 뒀겠지?”
[물론이지.]
“지하의 인간들은?”
[아무 문제없다. 그 감옥이라는 것들은 화재에도 강하더군. 그리고 맡겨 놓은 쓰레기들은 제대로 살아 있다.]
현장이 좀 참혹하긴 하지만 아무튼 녀석은 내가 시킨 일을 제대로 잘 해냈다.
그럼 이제 여기서 손님 맞을 준비만 하면 된다.
내 계획은 단순히 알리바이를 만들어서 도망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일단 날 건드린 배 회장은 물론이고, 이 엿 같은 신강남에 큰 빅엿을 먹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가끔은 크게 불을 질러 줘야 하는 법이지.’
어차피 황금 마인 기사랍시고 마인 취급이니, 나는 역으로 그걸 이용할 생각이었다.
이미 하늘에 드론들과 헬기들이 떠서 우리를 촬영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상태창의 확장 시스템으로 뉴스에서 우리에 대한 소식이 퍼지고 있는 것을 확인한다.
『현재 ‘신강남’에 나타난 ‘황금 마인 기사’는 배정수 회장의 자택에 쳐들어가서 난동을 부린 뒤 시체를 산으로 쌓고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배정수 회장과 그 부인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 길드에서는 급히 헌터들을 파견한다고 했으며 시민들에겐 빨리 대피하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오경훈 팀장을 중심으로 ‘강남 에이스’들도 바쁘게 움직일 전망이니 안심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박순원 길드장은 ‘이런 위협이 있을 것을 알기에 우린 늘 대비해 왔다.’면서 협회와 국방부와 작전 합의를 하러 먼저 움직였습니다.』
기레기들의 정보 제공이 너무 친절해서 고마울 지경이다.
날 마인(魔人)으로 지정했다는 건 잠재적인 위협 요소 취급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날 촬영해서 기삿거리로 쓰는 거라면 몰라도 서울 길드의 움직임을 모조리 알려 주는 건 분명 반역이라고 해도 모자랄 정도로 웃긴 일이었다.
“아, 이거 실시간으로 보여서 좋네.”
“단장님, 적들이 오고 있습니다.”
“빨리 오면 나야 좋지.”
위풍당당한 트레일러들과 마정석 전차, 헬기와 같은 병기들까지 포함해서 말 그대로 군대가 몰려오고 있었다.
서울 길드의 제복을 입은 병사들의 앞에는 각자 색깔이나 스타일이 통일되지 않은 한 무리의 인간들이 나타나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오히려 나는 그들이 서울 길드 에이스인 강남 에이스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서울 길드는 중심이 되는 성좌가 없으니…….’
‘서울을 지킨다.’라는 목적을 중심으로 모인 길드이기에 헌터들 간의 통일성은 약한 편.
그나마 하위 길드원들은 파티나 팀을 짜면서 통일성을 갖추지만 오직 강한 자들만 모아 둔 강남 에이스들은 그런 연계성을 거의 생각하지 않았기에 저렇게 복장이나 무기가 전부 제각각이었다.
[아아! 거기 황금 마인 기사, 들리나? 무슨 이유로 배 회장님의 저택에 나타난 건지 모르나! 너는 이미 포위되었다. 그러니 순순히 투항하라!]
그들 중 특히 화려한 은빛 갑옷을 입은 느끼하게 생긴 녀석이 맨 앞에 서서 메가폰을 잡고 나에게 투항을 권고하고 있었다.
나름 유명인이라서 나도 잘 아는 놈이었다.
오경훈. 서울 길드에 둘밖에 없는 S급 헌터이면서도 아주 희귀한 S급 서포터인 더 로드 클래스의 보유자.
A급, B급들이 가장 많은 서울 길드의 전력을 끌어올려 주는 핵심 인사였다.
‘그리고 아마 서울 길드의 실세였던가?’
서울 길드의 장은 박순원이었지만, 그에겐 대부분 귀찮은 일을 맡기고 대외적 활동이나 방송, 연예 쪽에서 움직이는 건 오경훈으로, 이는 서울 길드 최고의 전력들만 모은 강남 에이스들을 이끄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아무튼 내 할 일을 해야겠지.’
[인질을 잡고 있어도 소용없다. 우리 ‘서울 길드’는 국제법상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의미한 저항은 그만두고 인질을 해방해라. 황금 마인 기사!]
슬슬 때가 되었음을 짐작한 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어제 실컷 짜 둔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 시체의 산에서 내려가 그 은빛 갑옷을 입은 놈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
황금 마인 기사가 시체의 산에서 내려와 서서히 다가오자 그에 맞춰 그가 탔던 골드 드래곤과 기사들이 호위하듯 서서 위치를 잡았다.
그러자 거대한 압박감이 오경훈과 서울 길드원들에게 전해진다.
S급 몬스터를 잡았다는 기록을 접했기에 다들 긴장한 채 그가 혹시나 해 올 기습에 대비하던 그때, 말소리가 들려온다.
“훗, 딱히 나도 저 쓰레기들을 가지고 협상할 생각은 없다. 그저 이 신강남에 뿌리내린 악(惡)을 벌하러 왔을 뿐이다.”
“악이라고?”
“그래, 이 쓰레기들이 행한 짓을 너희는 아는가? 모르겠지. 아니, 모르고 싶을 거야. 배정수 회장! 신강남 바깥에 있는 무고한 이들을 잡아서 지하실에 가둬 인격을 말살시키고 고문과 살인을 하는 자! 그 부인도 마찬가지! 사악하기 그지없지.”
배정수 회장은 엄연히 서울 길드를 후원하는 큰손 중 하나이며, 이곳 신강남을 구축하는 핵심 인사였다.
그가 죽으면 빈자리에 다른 사람을 채우거나 후원자를 모집하면 그만이지만, 그가 지하실에 동물원을 만들어서 사람을 가두고 죽이는 사이코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서울 길드의 명예가 크게 실추될 터였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인데. 그러면 증거를 보여 주면 되겠군. 지하실에 만들어 놓은 배정수 회장의 추악한 인간 농장을 감상하는 건 어떤지?”
배정수 회장도 그렇지만 신강남의 VIP들은 대부분 바깥 사람들을 ‘버러지’ 혹은 ‘인간 부품’ 같은 것으로 취급하면서 자존감을 채우고, 바깥 인간들에 대한 혐오감을 풀기 위해서 각자 다른 악취미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연 이러기 위해서 주변에 사람들과 저 기자들을 끌어모은 건가?’
불행이라면 이 사건을 촬영하는 기자들이 너무 많았다는 점.
그리고 배 회장의 자택에서 싸움이 열린다는 것으로, 증거가 있는 지하실이 코앞이다.
저 안에 펼쳐진 그의 악취미를 세상 사람들이 안다면 분명 큰 여파가 있으리라.
하나, 그렇게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었다.
“푸하하하핫! 어디 해 봐라! 어리석은 놈 같으니~”
가당치 않다는 듯 웃기 시작하는 오경훈이었다.
고작 그런 사건 하나 들춰내 봤자 배 회장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꼬리를 자르면 그만이다.
언론, 법조계, 정치계를 다 휘어잡고 있는 게 신강남의 VIP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지배자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그런 폭로로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지금 여기서 그걸 보인다고 한들~ 누구도 신강남과 우리 서울 길드의 몰락을 바라지 않는다. 푸하핫!”
그 말대로였다.
아무리 진실이어도 사람들이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건 진실이 아니다.
이미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카르텔의 힘으로 눌러 버리고, 혹시나 그것에 혹한 자들은 스캐빈저의 이름을 빌려서 모조리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버리면 된다.
“성좌와 각성자가 없던 옛날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무리다. 멍청하기는! 하하핫!”
“…아니,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어. 그냥 이건 절차 같은 거라서 말이지.”
“절차?”
“너희랑 이 서울 길드를 조져도 되는 절차.”
절대적인 통제와 힘의 차이로 인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도 사람들은 소망한다.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세상, 그리고 악(惡)이 벌을 받고 정의가 세워지는 것.
그 소망으로 인해 수많은 창작물이 나오고, 사람들의 욕구는 언제나 존재했다.
“나는 너희가 부르는 대로 황금 마인 기사라는 자. 가증스러운 악(惡)을 심판하기 위해 이 세상에 나타난 자. 진실과 소망을 가리는 검은 연막 같은 너희를 벌하겠노라!”
[완벽하면서 동시에 매우 훌륭한 선전포고입니다. 기사도의 구현에 가까워져 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명예로운 선전포고를 기념하여 기사도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기사도의 보상:스킬 포인트 +1]
콰직!
눈앞에 뜨는 상태창을 무시한 채 유성원은 티탄의 말뚝을 휘둘러 배 회장의 머리를 터뜨린 다음 곧바로 서울 길드의 진영으로 돌진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이 한결같은 쓰레기들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앞을 막는 강남 에이스에게 티탄의 말뚝을 휘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