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허, 허히이이익! 끄아아악!”
아, 피했다.
고통 없이 단숨에 목을 쳐 줄 생각이었는데, 놈이 발악하는 바람에 괜히 반대편 어깨를 베고 말았다.
땅을 구르면서 고통에 비명 지르는 놈을 보니 아까 전 건방 떨던 것까지 합쳐져서 엄청 추한 모습에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풉, 뭐야? 너 짭퉁이었냐? 소문에 의하면 진짜 서울 길드의 강남 에이스들은 자존심 쩔어서 고문이나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가오를 잡는다는데.”
“으윽… 끄윽… 으아아, 나, 나는 짭퉁이 아니야!”
“아무튼 짭퉁이든 진짜든 저승 가면 다 똑같으니까 얌전히 가라.”
“아, 아냐. 나는… 나는! 나, 나는……!”
이게 놈의 최후의 말이었다.
그래도 나름 ‘강남 에이스’라는 명성답게 살려 달라느니 하는 구차한 꼴은 보이지 않은 채 목이 날아갔다.
사실 내가 놀려서 그렇지, 이 정도만 해도 엄청 자존심 세운 거다.
대체 신강남 놈들은 애한테 뭘 주입시킨 건지. 어이가 없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지?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제 이 일을 수습할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은 네 사람의 머리를 챙기고, 쏟아져 나온 소지품들을 챙기는 것부터 했다.
일단 대충 싹 쓸어서 가져간 다음 나가서 조사할 생각이었다.
주의할 것은 딱 하나. 혹시라도 녹음기나 영상 촬영을 하는 아티팩트가 없나, 그 배영훈이라는 놈의 물건에서 확인하는 것이었다.
‘혼자라 시신은 제대로 수습 못하고, 머리만 가져왔다고 하면 되겠지?’
공식적으로는 E+급 헌터인지라 소지품과 아이템을 우선적으로 챙기느라 무게 한도가 꽉 찼다고 하면 그만이다.
스캐빈저는 어차피 유족도 없을 거고, 배영훈 저놈이 좀 걸리지만 소지품이랑 고가의 아이템들로 가득한데 그것만 가져다준 것만으로도 감사해하겠지.
‘특히 현금이 많아서 좋았어. 역시 스캐빈저라 인벤토리에 돈을 싸 들고 다니는 게 대박이네.’
천 명 단위를 털고 죽인 거물급 스캐빈저답게 셋이 각자 10억가량의 현금은 물론 마정석과 보석을 비롯한 값나가는 아이템들을 잔뜩 들고 있었다.
당분간 돈 걱정할 필요 없을 정도로 엄청난 대박을 터뜨려 버리자 나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으으! 아직 좋아할 때가 아니야! 정신 차려! 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난 다음에 뭘 해도 되니까 지금은 정신 차리자!”
가장 위험한 적은 나 자신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고 정신을 집중한다.
엄청난 이익을 얻었지만 완전히 상황이 종료가 된 게 아니기에 바로 움직이기로 했다.
일단 시나리오는 스캐빈저 셋과 배영훈이 싸워서 양패구상했다는 결론으로 만들고, 머리들을 증거로 내밀 생각이었다.
‘나는 어차피 E+급 애매한 놈이라 도움도 안 되었다고 하면 되겠지.’
비겁자라고 욕은 먹겠지만, 어설프게 강자의 싸움에 끼어들어 죽어서 시체나 유품도 회수가 안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하면 그뿐이다.
그래, 시체의 일부를 거두어 주고 유품에,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사람에게 뭐라고 못할 테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대체 그 강남 에이스 녀석이 왜 스캐빈저들을 생포하는 것에 집착했는지를 듣지 못했네.’
소지품을 열어서 조사하고 싶었지만 전자 기기여서 손댈 수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에 도는 소문과 아카데미아에서 들은 지식으로 어느 정도 유추는 가능했다.
서울 길드. 그랜드마스터 사태로 인해서 대한민국 헌터 방위망에 구멍이 생겨 전국에 난리가 난 상황에서 설립된 길드이다.
오직 ‘서울 수호’만을 목표로 성좌도 섬기지 않는 길드. 보통 이름을 날리는 길드는 청룡처럼 성좌와 함께 세력을 키워서 강성해진 반면 이곳은 특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오늘 본 걸 전제 삼아서 역산해 보면 예측이 가긴 해.’
성좌의 가호를 받지 않는 길드가 3대 길드만큼 우뚝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본력과 영입 수단, 정치력이 좋아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득이 되지 않는다.
그걸로 될 거였으면 진작 쓰리 스타즈 길드, LLL 길드 같은 곳이 여럿 만들어 졌겠지.
그러면 서울 길드에서는 통상적으로 불가능한 비장의 카드가 있어야 할 것이고, 내가 오늘 본 것이 그 한 일부분일 터였다.
‘생포한 스캐빈저를 경험치 팩으로 삼나?’
경험치 팩 설은 결국 자질과 재능이 뛰어난 각성자가 있어야만 했다.
메마른 땅에 농사짓는 것보다 비옥한 땅에 농사짓는 게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적절한 인재를 찾는 것에서부터 경쟁이 심각하다.
‘아니면 결국엔 남은 건?’
각성자를 이용한 생체 실험이려나?
성좌의 제물이라기엔 서울 길드의 헌터들은 각 특성이나 능력 계통이 모두 달랐다.
도살왕의 수하들만 해도 클래스 차이는 있지만 전부 다 피와 고기, 악마에 관한 마법이나 스킬들로 계통이 통일되었는데, 서울 길드에 단 2명 있는 S급 헌터 둘은 서로 아예 계통이 달랐다.
‘하아~ 이 새끼고, 저 새끼고 참~’
사람을 사육해서 인간 목장을 만든 SS급 마인 인간 사육사 이 목사와 싸우는 게 각성자로 생체 실험을 하는 서울 길드라는 생각을 하니 역겨운 기분이 올라온다.
그리고 아직 밝은 태양이 떠 있는 낮인데도 하늘이 어둡게 느껴진다.
물론 어둡더라도 살아갈 사람은 살아가야겠지.
‘그냥 내 음모론으로 끝내고 말지, 이딴 걸 진실인지 확인하고 싶지 않다.’
일전에 정민수의 수첩을 보았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 감을 잡은 시점에서 더 이상 파고들어가지 않고 멈추는 것. 굳이 스스로 더러운 곳을 헤집어서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파고들면 일단 뒷감당도 문제이고, 서울 길드 문제를 파고들다가 내가 황금 기사라는 걸 들키기라도 하면 피곤하니 말이다.
‘그저 내막만 알아낸 걸로 충분하다.’
그렇게 체념한 채로 협회로 간 나는 던전 내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약간의 각색을 덧붙여서 보고를 했다.
스캐빈저 3인방과 서울 길드의 강남 에이스가 싸움을 했고, E+급 쩌리 헌터인 나는 숨어 있다가 나와 보니 스캐빈저 3인방이 기진맥진한 상태여서 그걸 막타 쳐서 마무리했다는 전개였다.
“그, 그거 엄청 큰일이셨겠네요.”
“그리고 시신보다는 그… 서울 길드분의 소지품이 더 중요할 것 같아서 물건은 다 챙겨 왔습니다. 하지만 제 인벤토리 무게 한도가 있어서 머리만 가져왔죠.”
“아, 아! 알겠습니다. 바로 인수 절차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서울 길드분에게 연락도…….”
역시 공식 E+급 헌터라서 그런지 다행히 협회 직원은 전혀 의심 안 하고 던전 클리어를 인정해 주었고, 이어서 서울 길드 사람을 불러 주겠다고 했다.
대강 시신 인계와 신원 확인 절차를 비롯해서 스캐빈저 3인에 대한 정보까지 넘기고 난 다음에 서울 길드 직원과 만날 수 있었다.
“서울 길드의 정약수입니다. 저희 길드 헌터의 장비와 시신을 회수해 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뇨. 오히려 힘이 못 되어 드려서 제가 더 죄송합니다. 그래도 최대한 소지품과 장비를 이렇게 다 챙겨 왔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세상에 이런 분도 다 계시군요.”
“저도 엄연히 길드 사람이고 목숨을 구제받았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날 버러지라고 불렀던 놈에 대해 마음에도 없는 립서비스를 해 주면서 정약수 직원이 물건을 확인하는 걸 바라본다.
아까 신원 확인도 끝났고, 놈이 가진 전설급이나 영웅급 아이템도 고스란히 넘겨주었기에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전부 맞는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뭔가 답례라도 하고 싶은데, 스캐빈저들의 현상금을 드리는 건 어떤지요?”
“아뇨. E+급 헌터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금액인 데다 갑자기 많은 돈이 생겨도 쓸데가 없습니다. 그저 D급 던전 보수만 받으면 족합니다. 또 그분이 목숨 걸고 잡은 스캐빈저인데 제가 현상금을 받는 건 어불성설이지요.”
“오오, 이 삭막한 세상에 이런 훌륭한 인격을 가진 분이 계셨을 줄이야.”
“아뇨. 주제를 알 뿐입니다. 조금이라도 욕심이 있었더라면 아마 스캐빈저들의 물건을 더 챙기려고 던전에서 꾸물대다가 잔여 몬스터들에게 당했을 겁니다.”
사실은 스캐빈저들의 돈과 장비를 챙겼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이고, 현상금도 넘긴 판국이니 가지고 있다는 걸 들키면 그것까지 줘야 하기에 여기서는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어차피 알아도 날 죽이지 않는 이상 증명할 수단도 없고, 저쪽에게 챙겨 줄 건 다 챙겼으니 아무 문제없겠지.
“으음,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예.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정약수는 아직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남은 시선으로 날 바라봤지만 그래 봐야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없고, 이쪽은 나름 도리를 다 했기에 파헤치기도 애매할 것이다.
애초에 내가 던전에다가 죄다 두고 왔다고 하고 챙겼어도 할 말이 없는 판국인데, 현상금까지 준 거면 많이 내준 거다.
인적 손실은 뭐, 헌터 업계에서는 늘 있는 일이니 어쩔 수 없고!
‘좀 더러운 꼴을 보긴 했지만 아무튼 금전 이익도 봤고, 저놈들 뜻대로 안 되게 되었으면 그만이겠지.’
그렇게 D급 던전 보수를 받고 관리소를 나온 나는 아카데미아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그러면서 동시에 평소엔 그냥 아니꼽기만 했던 신강남 특별 요새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기분 나쁘게 보였다.
***
서울 길드, ‘강남 에이스’ VIP 접견실.
크게 보면 이런 던전 내에서의 분쟁과 싸움은 흔한 일이며, 헌터든 스캐빈저든 언제 어디서나 죽을 수 있는 게 이 업계의 현실이다.
그리고 유성원과 서울 길드는 그 점을 잘 알고 있기에 서로 크게 손해가 안 나는 선에서 장비 및 시신, 현상금 회수 등등 분배를 확실하게 한지라 합의가 깔끔하게 이루어졌었다.
“자네,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나? 우리 영훈이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리가… 죽을 리가 없어!”
“흑흑흑… 아이고, 영훈아! 영훈아아아아!”
“배정수 회장님, 헌터 일이라는 게 본래 삶과 죽음 사이에서 싸우는 일입니다. 특히 영훈 도련님은 B급 헌터이지만 상대는 천 명 이상 죽이고 노예로 만든 C급 스캐빈저 셋이었습니다. 상당한 난적이었죠.”
하나,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타협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합리적인 증거와 자료를 보여 주어도 자식의 죽음을 부정하고, 혹은 음모에 당했다고 생각하는 게 그들의 마음이었다.
“이렇게 시신과 유품을 온전히 챙겨 온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배 회장님, 저희 길드도 훌륭하고 고귀한 ‘강남 에이스’의 일원이며, 장차 서울 길드를 이끌 핵심 인재인 그가 죽어서 정말 참담하고 슬픈 심정입니다. 차라리 부상을 당했더라도 살아 돌아왔다면 어떻게든 조치를 했을 텐데, 정말 슬픕니다.”
“닥쳐! 버러지 같은 놈! 너 같은 놈이 뭘 안다고 그래! 젠장! 젠장! 고귀한 이 신강남의 아들인 우리 영훈이가 어째서 죽어야 하는 거냐고! E+급 같은 버러지 같은 놈이 살다니!”
“여보 말이 맞아요. 이건! 이건 분명 무언가 잘못된 일이에요. 분명 그 버러지 놈도 한패일 거예요! 당장 잡아서 처리해야 해요!”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하는데……. 그럴 놈이었으면 유품이랑 장비를 일일이 챙겨서 가져오지 않았겠지. 그놈만 불쌍하게 되었군.’
직원은 배영훈 헌터의 부모들이 현실을 부정하고 엉뚱한 곳에 증오와 원망을 퍼붓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정해 줄 수 없었다.
‘강남 에이스’라고 하는 서울 길드 내의 특수 조직원인 배영훈의 부모는 이 서울 길드의 설립은 물론 신강남 특별 요새 건축을 위한 자금을 지원한 후원자 기업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내 목숨도 중요하니까.’
행여나 옳아도 거슬리는 말을 했다가는 당장 오늘 지하 실험실로 끌려가 실험체가 될 수 있기에 직원은 직언을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