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윽끄아아아아아악!”
“혀를 잘라 놨으니 이제 다른 수작은 못 부리겠지. 읏챠.”
놈은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진도희의 혀를 뽑아서 단검으로 잘라내었다.
그대로 방준식과 최석필과 함께 묶어 버린 다음 잘린 팔다리의 단면에 포션을 조금 발라 지혈을 완료한다.
이런 일을 많이 해 본 듯한 손놀림이다.
대체 이 녀석, 누구지?
“저기, 당신은 대체… 누구… 신지?”
정체를 알기 위해 먼저 그의 신분부터 알아내기로 했다.
적어도 C급으로 추정되는 스캐빈저 셋을 기습이라곤 하지만 순식간에 제압한 것부터가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증거였기에 일단 정중하게 질문을 한 것이다.
“너 같은 놈이 알 필요 없어. 죽기 싫으면 얌전히 그놈들이 딴짓하는지 지켜보기나 해라. 보스 몬스터는 내가 처리하지.”
세상에,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지?
미쳐도 보통 미친놈이 아닌 것 같았지만, 불필요하게 부딪칠 필요도 없으며 굳이 싸울 일도 없기 때문에 뒤로 가서 짜진다.
“이, 이봐! 형씨! 유성원 형씨! 우리 좀 도와줘! 제발! 이 미친놈이 갑자기 우릴 기습한 걸 보면 이놈이 나쁜 놈인 거 알잖… 쿠억!”
“닥쳐.”
묶여 있던 방준식이 나를 향해서 절규하듯 도와달라고 외쳤지만, 순식간에 배영훈(?)에게 걷어차이고 입을 다물게 된다.
그러고는 배영훈은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는데, 그래도 다행히 나는 멍청한 답을 제시할 놈은 아니었다.
“아… 그러니까 그 세 연놈이 스캐빈저라는 건 느낌이 왔어요. 예. 그러니까 하라는 대로 하죠.”
“주제를 아는군. 그래, 이 연놈들은 스캐빈저 3인방이다. 피해자 규모는 약 1천 명. 가족들이나 친척들까지 포함하면 수천은 더 늘어나겠지. 가장 악질은 이년으로 청순한 신관인 척하면서 사람을 끌어모으고 뒤통수를 후리는 역할이었지. 현상금만 해도 인당 10억이 넘어. 훗.”
와, 저 스캐빈저들, 내 생각보다 훨씬 거물이었네.
직접적인 피해자가 1천 명? 그 정도면 연쇄살인마로서 역사에 이름이 남을 레벨이다.
반드시 잡혀야 할 놈들이었는데, 아무튼 이제라도 잡혔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스는 내가 처리할 테니 너는 그놈들을 감시해라. 이미 무력화해 놨으니 이상한 짓거리 하는 것만 막으면 된다. 혹시나 놈들을 풀어 주거나 아니면 현상금 욕심이 생겨서 내게 덤빌 생각을 한다면 너도 저놈들과 같이 처리해 주지.”
‘끝까지 반말이네. 하지만 생포해 가는 건 아마 다른 목적이 있겠지?’
확실히 그냥 죽이는 것보다 데려간 다음 피해자를 확인하고 노예로 팔려 간 루트를 확인하거나 시신을 찾아낸 뒤 법정에 세워서 사형대로 보내는 게 나을 것이다.
‘그나저나 감쪽같이 속았네. 분명 스테이터스 정보는 사실이었는데 대체 어떻게 숨긴 거지? 대형 길드에 연줄이라도 있나?’
스캐빈저 사냥꾼이라는 걸 듣기만 하고 실제로 이렇게 만난 건 처음이기에 놀랍기도 했다.
분명 신분이나 정보는 정확했는데… 어떻게 가짜를 만들어 놓는 건지 참~ 신기하군.
‘아무튼 싸가지는 없지만 본받을 건 많네.’
일단 연기도 연기이고, 기습을 하고 난 뒤 완벽한 제압을 위해 캐스터의 혀를 자르고, 팔다리가 잘렸음에도 무언가 할지 모르기에 셋을 하나로 묶어 두는 방법.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훌륭한 시범이라 촬영해서 보관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뭔가~ 석연치 않은데…….’
저 배영훈이라는 놈이 싸가지 없는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것만 빼면 모든 게 깔끔하게 굴러갔지만, 뭔가 어색함이 남아 있었다.
뭐지? 딱히 내가 손해 본 부분은 전혀 없는데도 무언가 찝찝했다.
‘뭐가 이렇게 찜찜하지? 이상하네.’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눈앞의 스캐빈저들이 다른 짓을 못하게 감시하는 게 먼저였기에 거기에 집중한다.
그렇게 약 30분 뒤, 뭔가가 죽어 나가는 비명 소리가 들려오면서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상태창 메시지가 뜬다.
[보스 몬스터가 쓰러졌습니다. 포탈이 열립니다.]
‘오, 파티 플레이는 처음이라 몰랐는데… 이렇게 나오는군. 그리고 보스와의 전투에 참여를 안 해서 보상은 없는 건가? 당연하다면 당연……!’
각성자 시스템의 엄격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이 그 순간 번뜩였다.
그래, 철저하게 정직한 각성자 시스템. 경험치를 얻으면 레벨이 오르고, 몬스터를 잡고 던전을 클리어하면 보상을 얻는다.
‘저 스캐빈저들, 분명 인당 현상금 10억짜리 거물이라고 했지?’
그래, 그런 거물급 악당들을 잡는 데 나도 엄연히 기여를 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내가 비록 비겁한 수단을 사용했을지언정 스캐빈저를 잡았을 때도 보상을 주니 마니 했던 이 망할 SSS급 기사도 특성이 지금은 왜 아무 반응이 없을까?
‘지금 딱 봐도 저놈들은 완전히 무력화된 상태인데…….’
행여나 내가 잘못된 일을 했더라도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그 SSS급 기사도 특성이다.
그런데 아무 말이 없다는 건 아직 뭔가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데…….
‘설마 죽이지 않아서 재판정에서 땅땅땅 찍혀야 끝나나?’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아까 전 저 녀석이 말한 바에 따르면 1천 명을 살인하거나 노예로 보냈다는 게 거의 확정적인 놈들이라 재판에 넘겨져도 다른 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게다가 D급 헌터들이나 노리는 급이면 딱히 법조계나 상위 길드에 인맥이 있을 것 같지 않고…….’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단 하나다.
저 싸가지 없는 놈이 이것들을 가지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그 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내 SSS급 특성이 납득할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거 괜한 걸 알아낸 기분인데? 으음…….’
그렇다고 눈치 없이 지적을 해서 저놈이랑 싸우는 건 싫고, 반대로 아예 신경을 꺼 버리면 나중에 어떤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았다.
또한 그게 아니더라도 저놈이 누구고 대체 뭘 하는지는 알고 싶었다.
‘그러면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군.’
나는 지금도 팔다리를 버둥거리면서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스캐빈저 3인방을 바라본다.
무슨 목적인지는 몰라도 저놈들을 살려서 데리고 가야만 그 목적을 이룬다는 것이니 답은 매우 간단했다.
“아으어어! 으어어!”
“아어여여!”
“셋 다 혀가 잘려서 다행이긴 하네.”
“얌전히 좀 죽어라! 이 야만인 새끼들아!”
철컹! 철컹!
보스 방 쪽에서 싸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심스레 검을 뽑았다.
“으어어으러러!”
“아으아!”
“…….”
무력한 상대를 죽이는 것은 본래 죄책감이 들기 마련이지만, 이것들은 천 명 이상의 사람을 죽이거나 노예로 팔아먹은 악독한 놈들이기에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뽑은 검으로 그대로 무력한 세 남녀의 목을 하나씩 베어 냈다.
[그대는 인간의 도리를 벗어난 악인(惡人)들을 훌륭히 처형하였다. 기사도의 귀감이나 명예가 부족한 것이 아쉬운 일이로다. 하나 정의를 바로 세운 건 분명하니 보상을 내리겠노라.]
[보상-장비 랜덤 상자]
‘아… 직접 안 잡아서 보상 너프된 건가? 상관없지. 중요한 건…….’
[보스 몬스터가 죽었습니다. 곧 출구가 열립니다.]
그래, 이쪽이다.
이제 곧 보스를 잡은 배영훈이 자신의 수확물을 회수하기 위해서 이쪽으로 올 것이다.
산 채로 잡아 둔 사냥감이 죽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군.
“패턴 진짜… 마법으로 짝 맞추기라니, 무슨 예능 프로그램도 아니고. 생각 이상으로 시간이 걸렸네. 응? 뭐야? 뭐야아아아아!”
“아, 그게… 갑자기 이놈들이 이상한 짓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처리했습니다.”
“뭐? 뭐어? 손발 다 자르고, 혀까지 잘라 놨는데 이상한 짓? 그게 뭔데?”
“그건 저도 잘……. 하지만 막 머리 위에 마법진이 나오고 그래서…….”
역시 예상대로 오자마자 엄청 화를 내기 시작한다.
사실 현상금은 모가지만 있어도 충분히 받는 건데 저렇게 열을 낸다?
만화책에 나오는 슈퍼 히어로 같은 정의감과 사법 체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진 고결한 영혼이라거나?
아니면 다른 놈들을 찾아내기 위한 단서로 써야 하는 수사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이놈들을 가지고 ‘무언가’ 다른 나쁜 짓을 한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답안은 3개이지만… 사실 하나지?’
“이 새끼가 나랑 지금 장난하냐?”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쳐다보는 시선.
그 안에 담긴 분노와 증오는 결코 좋은 목적으로 하던 일이 틀어져서 비통해하는 거라고는 전혀 볼 수 없었다.
물론 일말의 가능성으로 죽은 3인방 스캐빈저와 연결된 거대한 악과 싸워야 하는데 신문을 해야 할 놈을 죽인 거라면 미안한 일이지만…….
‘그런 거였으면 진작 기사도 특성이 임무 완료 도장 찍어 주고 보상을 줬겠지. 아……!’
“아, X나 짜증 나네.”
퍼억!
녀석의 주먹이 날아오는 게 보였지만 피하지 않고 맞아서 땅에 굴렀다.
반격하려면 할 수 있었지만, 일단 놈이 원하는 대로 떠들게 해서 정보를 얻는 게 목적이었다.
“젠장! 그래그래! ‘바깥’ 버러지 놈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어차피 그냥 스캐빈저에게 뒤졌다고 신고하면 그만인 것을! 대장님이 ‘선량한 버러지’가 밑바닥을 깔아 줘야 편하게 살 수 있다고 한 게 생각나는 바람에 일 다 망쳤네.”
‘…바깥? 아……!’
“이렇게 된 이상 저놈을 대신 가져가는 수밖에 없겠군.”
내 판단과 동시에 놈의 도끼 창날이 빛나면서 나에게 휘둘러진다.
이 정도면 이제 나도 더 이상 이빨을 감출 필요가 없기에 그 공격을 피한 다음 티탄의 말뚝을 살 때 같이 산 검을 꺼내 놈에게 겨누었다.
“어라? 이걸 피해? 그냥 버러지는 아니었나 보군.”
“이제야 생각났다. 서울 길드 안에는 오직 신강남 수호만을 목적으로 한 헌터 부대가 있다는 소문. 오직 서울 신강남 3구 출신만 들어갈 수 있고, 신강남 요새와 그 주변 수호만을 위해서 싸우는 부대.”
“한낱 버러지 놈이 그걸 어떻게?”
“보자… 물장사하는 곳에서 듣던 거랑 비슷한 이름이라고 했는데? 아마… 신강남 에이스라고 했던가?”
카앙!
이름을 말하자마자 마치 금기에 손을 댄 것처럼 놈은 미늘창을 내게 휘둘렀고, 나는 그것을 막아 낸다.
눈빛에 가득 찬 분노는 이제 날 죽이겠다는 살기로 변해 있었다.
신강남 에이스라는 호칭이 그렇게 불쾌하면 그딴 식으로 짓지를 말았어야지!
“그 주둥아리, 반드시 찢어 버리겠다.”
“화류계 대표 용어랑 헷갈리는 이름을 붙인 건 너희들 조상님인데 왜 나한테 지X이냐? 왜? 그 안에 진짜 화류계 종사자라도 계신 거냐? 아니면 느금마가 혹시…….”
“크아아아!”
이거 지뢰를 밟은 느낌인데? 하지만 오히려 좋다.
냉철한 전사보다는 분노에 미친 짐승이 상대하기 편하다는 건 저번 레그혼과 싸울 때도 이미 배웠던 상식이다.
일단 공격이 단순해지고 방어나 회피에 대한 생각이 늦어서 내가 제압하기가 엄청 쉽다.
‘레그혼과 싸우고 난 뒤라 그런가 훨씬 쉽네.’
“커억! 으아아악!”
틈을 노려서 파고들어 무릎을 복부에 꽂아 넣고, 밀어낸 다음 검을 수직으로 휘둘러 창을 잡은 오른팔을 베어 낸다.
고통을 겪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놈은 피가 흐르는 팔을 부여잡으면서 분함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본다.
물론 나도 놈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그리 좋은 감정이 들지 않은 게, 나 역시 신강남 놈들과는 안 좋은 인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크으으윽! 젠장할! 내가 저런 버러지에게!”
분한 듯 피가 흐르는 곳을 붙잡고 뭔가 스킬을 쓰는 동시에 포션까지 뿌리는데, 아무래도 대화가 통할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놈이니 어차피 질문이나 심문, 고문 같은 건 취미도 아닐뿐더러 해 봤자 소용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이봐… 신강남 게이바 에이스?”
“이 버러지 자식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딴 망발을!”
“죽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