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정말로 요즘 전위 파티원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니까요! 포션도 지원해 드리고 치유랑 버프도 열심히 넣어 드리는데, 다들 더 좋은 대우를 바라고 다른 데로 가 버리고! 아니면 이미 영입되거나! 연락도 안 되고!”
“뭐, 어쩔 수 없지. 다들 좋은 대우 받으려고 레벨 업을 하는 거니까 말이야. 아~ 우리도 C급 던전 가고 싶다. D급이랑은 벌이가 다르다던데~”
진도희와 방준식은 분위기 메이커인 척하면서 다른 파티원들과 떠들썩하게 대화를 하며 의심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또 다른 한 명 최석필은 말수가 적은 캐릭터인 척하면서 뒤를 잡고서 나와 배영훈을 감시 중이었다.
‘정말 소름 돋는 놈들이다.’
“응? 뭔가 문제 있으세요? 아니면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혹은 던전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아뇨. 좀 긴장해서 그렇습니다.”
그래, 저 천연덕스럽게 걱정해 주고 웃는 모습 뒤에 뱀이나 거미 같은 본심이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소름 돋고 긴장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에 대해 견적을 잡는 것을 사전에 눈치채지 않았다면 난 아무것도 모른 채 같이 하하호호 하면서 어울렸을 것이다.
‘살짝 불안하긴 하지만 이게 정상이지.’
지금의 난 원래 입던 황금 갑옷 대신 투박한 바디 슈트에 보호구가 달린 협회 세트 방어구를 입고, 전에 헤파이스토스 공방에서 산 검과 방패를 찬 상태였다.
든든하던 무장에서 단숨에 빈약해지니 살짝 떨리긴 했지만, 그래도 내부의 배신자들만 대비하면 되니 문제없었다.
단 하나의 문제만 빼고 말이다.
“아~ 저도 40레벨 스킬 좋은 거 받아서 서울 길드 들어가고 싶어요. 거기 복지가 장난이 아니라던데~”
“그래 봐야 경비견이야. 서울 길드 새끼들의~”
“그래도 멋있잖아요. 저 신강남 요새 안은 완전 천국이라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하게 대화를 나누는 저 배영훈이라는 녀석이 걸리적거린다.
같이 사냥당하는 입장이었지만 이쪽은 정체를 감추고 역으로 놈들을 노리는 쪽이었고, 저놈은 그냥 거기에 휘말리게 된 것이었다.
사실상 아무 관련 없는 녀석이었기에 가능하면 피해를 보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허튼짓을 하면 눈치 빠른 이 스캐빈저들이 도망칠 가능성이 있었다.
‘어쩔 도리가 없군.’
그렇다고 먼저 당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싸우는 것도 찜찜했고, 어디다 버리고 갈 수도 없었다.
아니면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먼저 기습해서 발이 빠른 두 놈을 먼저 처치하자니!
망할 기사도! 그놈의 기사도! 쓸모없는 기사도가 문제다.
‘결론은 이 녀석도 구해 주면서 황금 기사라는 걸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거군.’
저놈만 없었어도 여차하면 황금 갑옷을 입어 버리면 일이 쉬운데…….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스킬에 있는 ‘전설’의 기사님들과 다르게 철저히 범인(凡人)이니까, 작은 변수에도 민감하고 우려가 생긴다.
“다들 던전이 가까워지니 말수가 너무 적어지는군요. 너무 긴장해서 몸이 굳으면 안 되는데 말이죠. 영훈아, 기합 넣어라!”
“네에에! 아자! 아자! 아자!”
“먹고살기 위해서라지만 던전에 가는 느낌은 영 익숙해지지가 않네요. 후우~ 아무래도 목숨이 걸린 곳이다 보니…….”
그리고 나는 레그혼의 그 살벌한 투기를 떠올리면서 의도적으로 긴장을 유지한다.
아니, 굳이 그런 상상 하지 않아도 긴장되는 거려나?
젠장! 이성은 진정하라고 하고 있지만 역시 이런 일을 몸으로 겪은 적이 없어서 그런지 떨렸다.
‘젠장! 냄새 맡은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이상 기후를 눈치챈 듯 태연하게 파티원인 척 연기하던 스캐빈저 셋도 어느새 살짝 표정이 바뀌어 있었다.
으음, 연기력을 좀 더 길러야 하나? 계획은 좋았지만 실행하는 자의 역량이 받쳐 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자, 목표로 하던 ‘D급:야수의 소굴’ 던전에 다 왔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들어가서 공략하도록 하죠. 긴장하신 것 같은데, 바지에 지리지 않으려면 오줌 싸실 분은 미리 싸십시오. 아! 도희야! 너도 말이지!”
“저, 저질!”
‘…그래도 던전 안에서 처리하려고 하는 건지 다행히 먼저 움직이진 않는군.’
아마 내가 의심을 품거나 냄새를 맡은 느낌을 받아서 우려하긴 했지만, 내가 역으로 자신들을 노린다는 것까지는 연결하지 못한 것 같았다.
E+급이라고 했으니 아마 사냥감이 괜히 반항하거나 도망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내가 경계한다는 걸 눈치채지 않은 척 하는 것일 터였다.
“자, 그럼 들어가자마자 앞 라인 유지 잘 부탁합니다. 안에 들어가면 산거정 성좌의 부하들인 짐승 몬스터들이 바로 달려들 테니까요.”
“예.”
“가즈아아아!”
이 위험천만한 파티는 그렇게 던전 안으로 모두 입던하는 데까지는 성공한다.
내부는 낯선 동굴로 어둡지만 내부가 매우 넓은 공동이었다.
야수의 소굴이라는 이름답게 짐승들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동굴 속에 울리면서 점점 가까워져 간다.
‘침입자들을 알아낸 모양이군.’
“자! 다들 긴장하시고! 이제 시작입니다! 방패를 드신 성원 씨가 왼쪽을 맡아 주시고, 영훈 씨가 오른쪽 한 발 뒤에서 자리 잡는 걸로 유지합니다.”
‘의외로 멀쩡하게 파티플하네?’
“거기 성원 씨가 잘 버티셔야 합니다. 힘들면 교대시켜 드릴 테니! 일단 최대한 버팁시다!”
탕! 콰직! 깨갱!
룬 라이플에서 푸른 불꽃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내 앞으로 달려오던 거대한 늑대의 머리 부분이 터지면서 그대로 꼬꾸라진다.
그리고 그 뒤로 한 무리의 야만인들이 멀리서 활을 쏘고, 주술사가 마법을 날리며 우리에게 달려든다.
‘인간형 몬스터까지 있는 거냐?’
“주술사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전열만 사수하십시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중요합니다! 도희야! 마법 저항 걸어 드려!”
“예! 절 믿으세요.”
저 진도희라는 여자애가 마법을 시전하자 확실히 버프까지 깔끔하게 들어온다.
진짜 소름 돋게 무서운 놈들이다.
‘혹시 내가 잘못 판단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깔끔하고 멀쩡한 던전 진행이었다.
“다들 조심해! 이거 함정 표식이야! 물러서!”
“아으으! 아프네요.”
“지금 치유해 드릴게요. 유성원 씨는 괜찮으세요?”
“예. 협회 세트 덕분에 괜찮습니다. 전 포션 정도면 되니 마력을 아끼세요.”
던전에 들어온 시점부터는 이제 놈들이 도망갈 걱정이 없기에 크게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경계를 할 수 있게 되고 놈들과 거리를 둔다.
사실 내 연기력도 이미 한계에 도달했기에 그냥 칼을 겨누고 싸우고 싶었지만, 기사도 때문에 개소리 한 사발 늘어놔야 하니 그냥 기다렸다가 정당방위를 노리기로 한다.
“생각보다 다들 호흡이 잘 맞네요. 마치 처음부터 5명이서 합을 맞춘 것 같아요.”
‘한 명 빼고 D급 던전 오버 스펙이니 당연하지.’
일주일 드러누워 있는 동안 그냥 쉰 게 아니다.
이미 수십 년간 몬스터와 싸워 온 세계인 만큼 X튜브라든가, 여기저기 자료는 넘쳐흘렀다.
보안 규정이 느슨한 길드나 헌터 팀은 이런 식으로 부업하면서 길드 홍보도 하고 자신들의 길드가 공략을 제대로 홍보한다는 자료가 되기 위해서 적극적이었다.
‘D급끼리 돌았다면 이런 여유가 있을 수 없지.’
특히 배영훈을 제외한 셋은 스캐빈저인 만큼 파티원을 죽이거나 제압한 다음 자신들끼리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어야 해서 D급 평균을 넘어선 전력, 못해도 D+급 혹은 C급의 전투력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배영훈은 딱 D급 헌터라고 하면 이 파티는 확실히 오버 스펙이었다.
“쿠헉!”
“휴우~ 생각보다 빠르게 왔네요.”
“다들 너무 잘하셔서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단 한 번도 큰 부상이나 지체, 헤매는 경우 하나 없이 우리는 보스 방 앞까지 도달하게 된다.
일을 저지른다면 아마 지금 타이밍이겠지.
“자자, 보스 방 앞이니 일단 한숨 돌립시다. 휴우~ 다들 쉬지도 않고 돌았으니 수분도 보충하고 말이죠.”
“다들 정말 잘하시네요. 혹시 다음에도 파티 될까요?”
“지금 그걸 이야기하는 건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닐까? 식사도 하죠.”
먼저 자리를 깔고 앉으면서 그들은 태연하게 포션과 물을 마시거나 각자 가지고 온 식량을 먹기 시작한다.
오래 있을 게 아니라는 걸 미리 알았는지 도시락을 꺼내는 놈도 있었다.
나와 배영훈만이 이런 던전 안에서 혹시라도 오래 있을 걸 예상해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전투식량을 꺼내어 먹었다.
그러면서도 내 긴장의 날은 계속 날카로워진다.
“우와, 그거 협회에서 파는 전투식량이잖아? 가성비는 좋지만 맛없다고 소문이 난 건데 용케도 먹는구먼! 자자, 반찬 좀 줄게.”
“이거 생강차인데, 식사 다 하고 드시면 좋을 거예요.”
“아뇨. 저는 필요 없는데…….”
드디어 작업을 하는 건가? 경계하면서 필요 없다고 했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기에 나는 그들의 성의를 거부하려고 해도 밀어낼 수 없었다.
그냥 먼저 선수를 칠까? 고민했지만 최석필이 어느새 슬쩍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왜 그러나? 혹시 입맛에 맞지 않다면 다른 걸 줄 수도 있는데…….”
‘…드디어 왔군.’
아마 나에게 주는 음식과 음료엔 독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달려드는 건 눈앞에서 먹으라고 강요하는 걸 테고, 만약 지금 반응하면 바로 내 목숨을 노릴 것이다.
이쯤 되니 그들도 살기(殺氣)를 완전히 감추지 못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눈으로 방패의 위치를 확인한다.
‘하아~ 그 망할 기사도 대사를 하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지.’
쪽팔림, 그리고 남은 저 배영훈이라는 녀석에게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지금이야말로 싸울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고 먼저 선수 치기로 결단을 내린 순간.
“크억!”
“어?”
최석필의 양팔과 다리에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잔상 하나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 나는 즉시 방패를 집은 다음 뒤로 빠르게 빠져나간다.
그리고 검을 뽑는 사이, 눈앞에서는 진도희와 파티장 행세를 하던 방준식의 팔다리까지 잘려 나가며 곧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려온다.
“꺄아아아악!”
“뭐, 뭐야? 석필이 이 멍청아! 뭐 하고 있던 거야?”
“아, 아니!”
‘뭐야? 설마 쟤도 헌터가 아니었어?’
비명 소리 안에서 자세를 잡은 나는 이 일을 저지른 범인을 바라보며 또 한 번 경악한다.
참 나, 5인 파티 안에 단 한 명도 던전 돌 생각을 하는 놈이 없을 줄이야.
기가 찰 노릇이다.
단숨에 스캐빈저 셋의 팔다리를 절단시킨 배영훈은 미늘창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면서 날 바라본다.
“이것들이 다른 데 정신 팔린 덕분에 오늘은 일이 아주 편하게 되는군.”
“아아악!”
“허튼짓할 생각 말고, 입 다물고 있어라, 썅년아. 순진한 척하는 연기가 구역질 나서 토 나올 뻔했다.”
이거 완전 다른 사람이잖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과 창의 예기. 날 마치 벌레나 오물 같은 것으로 보는 듯한 오만한 시선은 방금 전까지와 동일 인물이라곤 전혀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팔다리가 잘린 채 고통스러워하는 스캐빈저들을 보며 웃는 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