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신강남 헌터 관리소.
결국 택시비 13,000원을 더 주고 돌아서 신강남 헌터 관리소에 도착한 나였다.
돈에 구애받을 입장은 이제 아니긴 했지만 뭔가 짜증이 나려고 한다.
아무튼 도착하니 보통 관리소 방문 때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역시 위쪽이 막혀서 그렇겠지? 다만 대형 길드는 얼마 안 보이네?’
아마 대형 길드들은 SS급 마인, 인간 사육사 이 목사에게 잡혀간 국민들을 구출할 팀을 만드는 문제로 바빠서 대부분 대기 상태일 것이다.
아무튼 나는 평소보다 많은 파티 구인란을 보면서 갈 파티를 찾기 시작한다.
예전엔 막 인력 시장인 양 서로 외치면서 파티를 구했지만, 지금은 어플리케이션과 접수처가 있어서 그런 소음 없이 조용히 파티를 구할 수 있었다.
‘하아~ 결국 다른 사람들이랑 던전 가게 생겼군. 어떤 파티를 가야 할까?’
일단 이게 내 헌터로서의 공식 스테이터스였다.
[Lv.43 유성원]
E급:전속 스태프
[스테이터스]
Str:37(E+급) Dex:35(E+급) Vit:39(E+급) Mag:20(E급)
내 진짜 능력치에 비하면 눈곱만 한 능력 수치였지만 아무튼 E급이었고, 아주 조금만 더 레벨 업을 하면 D급 헌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D급 던전을 간다는 설정이었다.
‘으음, 딱 D급 던전 갈 핑계만 만들었는데… 이걸로 파티 가입이 되려나?’
<파티 모집 D급 던전-산거정의 거점 공략하실 D+급 헌터 힐러 모십니다.>
<파티 모집 D급 던전-약탈의 동굴 던전 가실 D+급 헌터 탱커 모셔요. 비율 높여 드려요.>
<파티 모집 D급 던전-짐승 마적 떼의 소굴 처리하러 가실 D+급 헌터 전원 모십니다(E급 헌터 사절, 신청하지 마시오).>
…….
…….
…….
열심히 파티창을 바라보지만 역시나 E급 헌터를 D급 던전에 데려가 줄 정상적인 파티원은 없는 듯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메리트가 없지.
으음, 그러면 어떻게든 메리트를 만들어서 파티에 낄 수 있게 조정해야만 했다.
일단은 백야 길드라는 중견 길드 소속이고, D급 던전 클리어 이력도 있으니 E급 스탯을 살짝 보정만 해서 D급이라는 것만 알려 주면 어떻게 비벼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 아예 파티의 질이 떨어지는 곳으로 갈까? 누가 보아도 호구 잡거나 사람 잡으려고 하는 놈들이 만든 파티로 말이야.’
지금 올라오고 나와 있는 파티들이 100퍼센트 모두 몬스터를 잡기 위한 것은 아니다.
요즘 시대에도 흔한 헌터 관련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나오듯 멀쩡한 인간을 잡아서 노예로 팔거나 그 인간이 가진 소지품을 노리는 놈들이 존재하곤 했다.
‘음~ 그러니까 내가 그런 놈들이랑 같이 던전을 가서 치워 주면 되겠군.’
설사 던전을 향해 가는 길에 놈들이 덤벼도 처리하고 난 다음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오면 그만이고, 그냥 던전을 편하게 다녀와도 손해는 없다.
그런 생각이 번뜩 든 나는 곧장 그런 놈들이 노릴 수 있게 준비를 하기로 한다.
***
파티를 구하기 위해 혼란스러운 헌터 관리소 안에서 남자 둘, 여자 하나로 이루어진 팀이 날카로운 눈으로 헌터들을 살피면서 사냥감을 물색하고 있었다.
이들은 스캐빈저 그룹으로 3인 파티로 위장해서 한두 명을 더 받아서 던전 내에서 처리하거나 납치하는 걸로 먹고사는 자들이었다.
“도희 누님, 저놈은 어떻습니까? 근래에 못 보던 놈인데요.”
“어디 볼까?”
유성원을 슬쩍 보면서 견적을 재는 여성. 그녀는 작은 스캐빈저 그룹을 이끄는 리더로 이름은 진도희였다.
그녀는 양 옆구리가 탁 트인 과감한 흑백의 신관복에 십자가 장식이 된 지팡이를 들고 있는, 판타지 게임에 흔히 나오는 비숍이나 프리스트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친숙하면서도 성직자라는 좋은 인상을 주는 복장, 거기에 긴 검은 머리칼을 깔끔하게 잘라 청순미를 강조한 외양을 무기로 사냥감을 꼬드겨 자신들의 파티에 합류시킨 다음 소지품을 털거나 가차 없이 노예로 팔아 버린다.
“흐음~ 일단 이 근방에서는 못 보던 녀석이네. 정보 확인은?”
“되지 않습니다. 아마 아이템이나 스킬로 정보 공개를 막는 것 같습니다.”
“음, 그냥 초보는 아니라는 거군. 그럼 조사는?”
“여러 번 둘러보면서 슬쩍 놈의 휴대폰을 봤는데, 아마 D급 던전을 가려는 것 같지만 고민이 많은 걸로 봐서는 스테이터스 등급은 E+ 및 D급 하위 헌터라고 추정됩니다.”
오늘따라 방문자가 많은 덕분에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서 슬쩍 보기가 더욱 편했다.
단련된 만큼 눈썰미도 좋고 스킬 자체로 시야 강화나 독수리의 눈을 보유했기에 공개된 유성원의 정보를 얻기 쉬웠다.
“딱 적절하긴 한데, 나이가 좀 있어서 경계심이 있을 수 있어. 이럴 때는 다른 쪽에서 한 명 더 건져 오면 좋겠는데…….”
“그렇죠. 제삼자가 둘이 있으면 서로 의심도 좀 덜 수 있으니 말이죠.”
3명에다 한 명을 다른 이들로 뭉치면 각각 들어온 이들이 다른 사람을 보고 이 파티가 믿을 만한가 보다, 하는 착각을 불러오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5인 파티에서 3명이 2명을 부르면 거의 절반에 가깝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잘못될 경우 저항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너희가 하나 더 찾고, 저 사람은 내가 작업할게. 그리고 E+~D급인 거 확실하지?”
“물론입니다, 누님. 절대 저희 상대가 안 됩니다. 흐흐.”
이들은 D급 헌터로 공식 집계되어 있었지만 사실은 갱신을 하지 않았을 뿐 다들 진급 심사만 받으면 C급 헌터로 인정될 능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굳이 헌터 등급을 낮춘 이유는 역시 대상이 경계심을 품지 않게 만들어 사냥을 편하게 하려는 거였다.
“역시 누님! 머리가 좋으십니다.”
“우리가 이 일을 어디 한두 번 하니?”
그녀가 이런 식으로 나락에 빠뜨린 인간의 숫자를 합치면 아마 천 명도 넘을 것이다.
수법을 아는 사람도 거부하기 힘든 것이 인간의 본능을 직격하고, 선입견을 이용해서 의심을 피하기에 그녀가 직접 무기를 휘두르거나 칼로 찌르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음~ 우선 옷부터 갈아입어야겠네.’
상대는 적어도 서른은 넘은 남성으로 헌터 경력이 얼마가 되었든 간에 지금의 노출이 좀 있는 복장은 역으로 경계심을 키울 가능성이 높았다.
성욕 넘치는 10대 후반, 20대 초중반이라면 대충 ‘성좌님이 입혔어용!’ 하고 애교 떨면서 곤란하다는 듯한 연기를 펼치기만 해도 대충 넘어가겠지만, 30대부터는 의심을 품을 확률이 컸다.
‘흠~ 옷은 가지고 있던 견습 신관복으로 갈아입고, 지팡이는 협회 세트로 해야겠네. 화장도 다시 해야 하고. 귀찮지만 디테일이 중요하니까~’
그래, 사냥은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스캐빈저 생활을 한 지 근 5년. 작은 디테일이 결과를 바꾸는 경우도 많이 보았기에 그녀는 화장을 싹 지우고 새로 하는 수고까지 한 끝에 아까 전과는 인상이 확 달라진다.
수수하고 생활감 묻어나는 견습 신관복에 어색한 운동화, 옅은 화장, 거기에 연륜이 묻어나오던 연기를 바꾸니 근래 각성을 해서 세상 물정 모를 것 같은 소녀 신관 같은 인상이 된다.
‘걸음걸이 하나까지 조심해서~’
당차게 걷던 걸음걸이를 사뿐사뿐, 어깨도 좁히고 지팡이를 양손으로 잡고 주변의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면서 천천히 유성원에게 다가간다.
정말로 그녀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젠 누가 봐도 신입 헌터 소녀였다.
“저기…….”
“음? 무슨 일이시죠?”
“혹시 어느 던전 파티 구하세요? 저희도 지금 파티 구하는 중인데… 인원이 모자라서요.”
수줍게 말을 거는 진도희의 모습에 유성원은 잠깐 그녀를 바라보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바로 대답한다.
“아, D급 던전 파티 구하고 있었습니다.”
“진짜요? 저희도 마침 D급 던전을 가려고 했거든요. 아, 저희 지금 3명인데 2명 정도 같이 가려고 하는데, 혹시 클래스가?”
“아, 기사 클래스입니다.”
“저희가 마침 딱 전위를 구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모자라지만 신관이라 버프랑 치유를 할 수 있고, 같이 다니는 분들이 저격 사수와 추적자인데… 혹시 같이 가실래요? 전위가 혼자라 부담이시면 한 명 더 구하면 되는데, 사실 이미 동료들이 구하고 있어요.”
“아, 그거 잘됐네요.”
한번 말문을 트기 시작하니 일사천리였다.
애초에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짜 맞추는 건 일도 아니었다.
거기다 신뢰를 주기 위해 스테이터스 및 헌터 자격증을 보여 주면서 확인까지 마친 다음 자신의 일행에게 데려간다.
“저분들이 제 동료예요. 생긴 건 산적 같지만 그래도 마음씨 좋은 아저씨들이에요.”
“산적이라니. 도희 양, 말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
“휴우~ 이제야 던전 가겠네. 사람이 많아도 역시 가기 힘든 사람은 늘 가기 힘들어. 빨리 레벨 업 더 해서 스테이터스를 올리든가 해야지. 하핫.”
그리고 보기에 따라 험악할 수 있는 인상을 가진 그녀의 동료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음으로써 친근함을 강조하여 한 번 더 의심을 무너뜨린다.
또한 거기엔 유성원 말고도 한 명 더 따로 데려온 헌터까지 있으니 더더욱 의심은 풀어진다.
“자, 그럼 정식으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제가 리더인 방준식입니다. 레벨은 44, 클래스는 저격 사수, 헌터 등급은 D+급입니다. 무장은 캘틱사(社)의 (희귀)룬 라이플이고, 마정석 탄환을 통해 싸웁니다.”
“오오… 라이플 멋있네요.”
“예. 소음이 좀 큰 게 단점이지만, 그래도 웬만한 중형 몬스터도 한 방에 녹다운시킬 수 있어서 쓰고 있습니다. 하핫.”
정말 세세한 디테일까지 신경 쓴 스캐빈저 그룹이었다.
보통 소리 때문에 석궁과 활을 즐겨 쓰는 스캐빈저들의 무기와 완전히 다른 라이플을 주 무장으로 소개하면서 의심의 여지를 없애 버린 것이었다.
“여기 도희 양은 성좌님의 선택을 받은 신관이고, 이 친구는 오래전부터 같이 일하던 친구로 최석필인데 클래스는 추적자로 레벨은 저랑 같지만 좀 과묵한 친구입니다. 이제 두 분 소개를 좀 부탁드립니다. 따로 확인했으니 정식으로 인사해야겠지요.”
“저는 배영훈이라고 합니다. D급 헌터이고, 레벨 38, 클래스는 솔저이고! 주 무장은 이 도끼창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유성원 말고 새로이 들어온 파티원, 아니 사냥감은 이제 막 10대를 벗어난 듯한 풋풋한 청년이었다.
기합을 잔뜩 넣은 채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밝은 모습에 진도희와 그녀의 일행은 웃음이 나오는 걸 필사적으로 참는다.
“유성원. 레벨은 43에 E+급 헌터이고 클래스는 기사입니다. 무장은 창과 방패인데… 제가 이런 파티에 껴도 될지 너무 송구스럽습니다만…….”
“아, 아뇨! 민폐는요. 탱커를 비롯한 전위가 얼마나 구하기 힘든데요. 안 그래요?”
“아~ 봉춘이 녀석 생각이 또 나네요.”
“자자, 그럼 다들 신원도 확실해서 문제없어 보이니 던전부터 선택합시다. 다 같이 가는 거니까 말이죠. 하핫.”
방준식의 주선 아래에 던전이 선택이 되고, 다들 각자 무장과 준비를 마치고서 던전으로 향했다.
하지만 웃기게도 5명 중 넷은 던전에 가는 것과 몬스터를 잡는 데 크게 관심이 없는 이들이었다.
오늘도 적절한 사냥감을 거의 잡아서 신이 난 스캐빈저 셋,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사냥하려는 것을 이미 눈치챈 유성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