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일주일 뒤, 백야 길드.
고대하던 탈것도 얻은 만큼 일주일 동안 마음 편하게 요양을 마친 나는 곧바로 돈을 얻기 위해서 백야 길드로 왔다.
레그혼에게서 얻은 봉황의 소재를 마정석으로 바꾼 것을 팔기 위해 길드장인 아영이 어머님부터 뵙기로 한 것이다.
내 입장은 일단 따님의 트레이너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소미 길드장님의 비밀스러운 임무를 받는 요원이기도 했다.
“몸은 좀 어떠신가요?”
“멀쩡하죠. 아무튼 이것 좀 처리해 주세요. D급, E급 마정석들 처분하려고 하는데… 괜찮겠죠?”
“예. 다만 요새 공급이 많아서 가격이 많이 떨어진 상태인데, 괜찮겠어요?”
“상관없어요. 내가 뭐 주식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에 대가리 굴리는 타입이 아니거든요.”
개인적으로 금융 관련 업무를 하는 분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나 같은 경우 주변의 부추김과 호기심으로 천만 원가량 이리저리 투자니 주식이니 했다가 날려 본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손도 대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시세가 어떻든 간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팔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D급, E급 마정석이 각각 몇 개죠?”
“D급 1,000개, E급 2,200개요.”
“…네?”
“D급 1,000개, E급 2,200개요.”
내 말을 못 알아들으신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알려 드렸다.
도살왕 상점에서 2만 포인트를 제외한 28,600포인트가량을 모조리 E급과 D급 마정석으로 바꿔서인지 양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 구석에 수북이 쌓인 마정석을 본 신소미 길드장님의 표정에 경악이 담긴다.
“이, 이걸… 다… 어디서 구한 거죠?”
“뭐, 물물 교환했어요.”
“그렇다고 해도 이 양은 정상이 아니에요. 당신도 D급 던전 돌아보셨으면 알지 않나요?”
“그래도 나름 규모가 되는 길드면 팀을 여러 개 꾸리니까 문제없지 않나요?”
“…이걸 보세요.”
그녀가 나에게 준 것은 길드 한 달 자금 운영표였다.
과연 백 마디의 말보다 하나의 증거가 확실하다는 거군.
그러니까 백야 길드에서 저번 한 달간 협회에 판매한 마정석의 숫자가 고작 D급이 230개?
“정민수 토벌이라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저희 길드가 평균 한 달간 던전 클리어로 모으는 D급 마정석은 200~300개 정도예요. 토벌 이후 3분의 1이나 인원이 줄었다가 지금 다시 고용은 했지만 제대로 된 팀 시동은 못 걸고 있죠.”
“어라? 제 생각보다 던전을 많이 안 가네요.”
자금 운영표에는 각 팀별 던전 클리어 횟수 및 소모품, 치료비, 보험 계산 등등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보자 내가 길드의 현실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닫게 되었고,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알게 된다.
‘하긴 D급 헌터가 D급 던전 가는 건 마치 내가 S급 상대하는 느낌이겠지.’
그렇게 대입해 보면 이 기묘하게 적은 던전 클리어 횟수가 이해가 되었다.
나만 해도 S급과 싸워서 이겼어도 한 번 다쳐서 일주일간 쉬었다.
그러니까 보통 헌터들은 그런 싸움과 위험을 늘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수급량과 거래량 모두 납득이 갔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현실을 너무나 몰랐네요.”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입니다.”
내 지식이 얼마나 곁다리였고, 한계가 명확한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난 그녀에게 허리를 깊게 숙여 사죄하며 바닥에 멋대로 쏟아 놓은 마정석들을 일부 거두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거 결국 어떻게 팔아야 하는 거야?
“일단 저희 길드에서 허용 가능한 양만큼 구매는 하겠습니다만, 남은 물건은 다른 루트를 이용하십시오. 길드 재정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비축분 판매를 한다는 명목으로 최대한 매매할 수 있는 양은 D급 300개, E급 500개까지는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감사합니다.”
여기서 이렇게 소화해 주긴 했지만 그래도 D급 마정석 700개와 E급 마정석 1,700개가 아직도 남아 있다.
심지어 SS급 마정석 1개와 S급 마정석 2개는 또 어떻게 처분하지?
“300개와 500개는 합쳐서 얼마나 나오죠?”
“보자. 지금 시세랑 해서 계산을 하면… 30억 정도네요. 문제는 세금인데…….”
“그럼 10억만 가져가죠. 백야 이름으로 팔면 거기서 붙는 세금 외에도 총 매출 수치가 올라서 세금이 더 잡히잖아요.”
나는 어차피 살아가는 데 지장만 없으면 될 정도라 돈 욕심은 없다.
물론 있으면 더 좋지만, 그렇다고 내가 돈을 챙기고자 백야 길드가 세금으로 고통받게 되면 이는 언어도단이고 말도 안 되는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 메리트는 줘야 내 비밀을 지켜 줄 가치가 생긴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길드에 대한 건 몰라도 세금에 대한 건 확실히 알죠. 하아~ 하지만 다음부터는 별도의 판매책을 찾아야겠네요.”
“사실 직접 헌터가 되고, 정식 등급을 받는 게 가장 정확하긴 합니다만…….”
“그건 싫어요.”
당치도 않은 제안에 나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마지막에 강조까지 붙여서.
아마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내 이 지론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남은 건 온건파 스캐빈저의 길이겠네요.”
내 의사를 눈치챈 건지 더 이상 헌터 일에 대한 이야기로 파고들어가지 않고 다른 쪽으로 돌아간다.
음, 역시 이분이랑 이야기하면 스트레스가 없다니까~ 다른 길드장이나 좀 정상인 척하는 인간이었으면 아주 그냥 설교든 뭐든 수작질을 할 텐데 말이다.
‘온건파 스캐빈저라? 음~ 남이 보기엔 그렇게 분류되는 건가? 하긴 그렇게 보면 맞는 말인 것 같긴 하네.’
온건파 스캐빈저. 이쪽은 그러니까 각성자인데 헌터가 못 되거나, 될 수 없거나, 되었다가 문제가 생겨서 마인(魔人)에게 협력하지 않는 자들이다.
정부, 협회, 길드 어디든 따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인이나 성좌에게 문명이 넘어가는 건 싫어서 각성자인 걸 숨기고 일반인인 척하며 살거나 인간 쪽의 첩자가 되어 주는 이들이었다.
“그렇게 보면 이미 그 길에 들어선 것 같네요.”
“스캐빈저 세계에 아직 가지 않아서 문제지만요. 참고로 그들은 마정석을 화폐로 쓰니 잘 기억하세요. 그럼 돈은 제가 오늘 저녁 현금으로 갖다 드리도록 하죠.”
“아, 아! 예! 계좌에 들어오면 문제가 생기겠죠. 그러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상당히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그래도 추가적인 수확이 있었다.
‘그냥 적당히 숨어서 산다.’에서 ‘온건파 스캐빈저’라는 길을 발견한 것과 아직 헌터의 현실에 대해 파악 못한 것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생각할 일이 정말 많군.
“아, 그리고 하나 더! 당분간 던전에 갈 때, 가짜 파티원 넣는 거 하지 마시고 던전 기록을 남기셔야 합니다. 협회, 길드 모두 지금 마인(魔人)으로 지정된 황금 기사를 찾으려고 발악하고 있으니까요.”
“아! 예. 조언 감사합니다! 아이고~”
또 하나 더 머리 아픈 문제가 추가되었다.
가짜 파티를 만드는 게 당분간 안 된다니. 이러면 던전에 혼자 갈 수가 없다.
젠장! 45레벨까지 열심히 달려야 하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
길드를 나오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아~ 그럼 결국 파티를 구해야 하는 건가?”
백야 길드 내에서 파티원을 구하는 방법도 있지만, 정체를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속에서 행동할 경우 여차하면 묻어 버리면 되는 다른 파티와는 달리 그들에게 들키면 처리하기가 곤란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럴 순 없겠지. 또 아직 나에 대한 의혹이 완전 풀린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서 추적해 오면 괜히 피해를 줄 것 같으니…….’
그러니 가능한 한 길드에서 멀어지는 게 최선이었다. 공팟을 가는 게 나을 것이다.
그다음은 어딜 가느냐? 인데, 현재 북쪽 전선은 복구 작업과 경계, 구출대 편성 문제 때문에 협회 차원에서 대책이 나오기 전까지 당분간 던전 공략이 금지된 상황이다.
‘그럼 남은 데가? 신강남 쪽에 있는 산거정(山巨正)의 영역인가?’
무릇 기업과 길드, 국가, 식당 등등 단체나 조직들 중에는 거대한 곳이 있으면 작은 곳도 있는 법이다.
이는 성좌도 마찬가지다.
악(惡) 성향 성좌에도 도살왕과 영원한 분노처럼 국가, 세계 단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있다면, 한 동네나 지역만 혼란시킬 정도의 작은 존재도 있는 법이다.
‘으음, 그 외 D급 던전을 가려면 다른 지역을 가야 하니 어쩔 수 없네.’
서울은 이래 봬도 도살왕의 직접적인 위협만 빼면 주변에 있는 위험한 던전 및 몬스터 서식처는 수십 년간의 노력 끝에 거의 다 쓸려 있는 상태였다.
그나마 성좌인 ‘산거정’이라서 서울 신강남 아래에서 잘 버티고 있는 것일 정도다.
그곳을 빼면 사실상 타 지역으로 나가야 하니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신강남인가? 하아~ 태어나서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데……. 갈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
그렇게 나는 저 멀리 거대한 신강남 특수 요새(Special Fortress of Neo-Gangnam)를 바라본다.
서울 길드의 본거지인 동시에 대한민국 상위 0.5퍼센트 안에 들어가는 큰손과 정치인, 귀부인 등등이 거주하는 곳으로, 예전에 그랜드마스터 사태로 대한민국 전역의 안전이 흔들렸을 때 서울 부유층, 그리고 시장과 손잡은 헌터들이 서울 길드를 만들면서 같이 세운 것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서울 길드의 요새이자 본부라는 핑계로 만들었지만 결국…….’
그래, 결국 대한민국이 망해도 자기들만이라도 살겠다는 의지를 담은 안전 영역 구축이었다.
밖에서는 그래서 서울 길드를 ‘신강남 길드’라고 욕하고, 신강남 특수 요새는 특권층의 요새라고 비꼬았다. 또한 ‘이게 민주주의 국가냐?’라는 국민들의 항의가 많았지만 그들은 그냥 강행해 버렸다.
사실 국가와 사회가 자신들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았다는 불신에서 시작한 일이라 당시의 정부와 협회도 뭐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아무튼 서울 길드는 정말 유례없이 폭발적으로 세력을 키웠지.’
당시의 서울시장과 신강남 부유층들이 정부에 반감을 가진 헌터들을 모아서 ‘서울만 지킬 자치 수비대를 만들자!’라고 외치며 시작된 서울 길드.
서울 시장과 서울 시민들의 지지 덕분에 순식간에 3대 길드 안에 들어갔다.
특정 성좌의 조력이나 지원 없이!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달성한 것이다.
‘대단하긴 한데… 여러 문제가 있지.’
가장 큰 문제는 서울과 신강남의 안전을 제외한 다른 건 일절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것.
자신들의 세력 구축에 자본과 정치적 영향력을 아끼지 않았고, 특정 성좌를 섬기는 것도 아니라서 우수한 헌터 인재 수급에 가장 열을 올리는 길드였다.
이게 왜 문제냐고?
‘서울만 생각하는 길드이면서 다른 지역에서 일할 고위 헌터들을 다 빨아들이니 문제지.’
물론 메리트가 어마어마한 탓도 있긴 했다.
일단 서울 길드 입단에 합격하기만 하면 신강남 요새 안에 거주지를 만들 자격이 주어지며, 서울과 신강남 방어 외엔 레벨 업을 하기 위한 던전 사냥만 하면 돼서 일도 쉽다.
당연하지만 메인 성좌가 없는 만큼 3대 길드 중 가장 큰 급여와 복지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러니 누구나 가고 싶은 길드가 된 거지. 그 증거로 서울 길드에 A급 헌터가 가장 많았지?’
S급은 손쉽게 얻지 못하고 성좌의 가호가 여럿 있어야 되기에 2명뿐이었지만, A급과 B급 헌터의 숫자는 서울 길드가 가장 많았다.
더욱 치명적인 문제는 이런 과정들 때문에 서울 길드에 있는 놈들은 대부분 특권 의식에 물들어서 제정신이 아닌 놈들 천지라는 점이었다.
“어이, 택시. 거기 뭐야? 각성자 같은데? 스테이터스 카드 줘 봐. 으음~ E급 헌터? 그런 놈이 여긴 웬일이야?”
“산거정 쪽 던전 돌려고 왔습니다. 그 헌터 관리소로 가야해서~”
“너 같은 놈들을 일일이 통과시키면 안에서 사시는 분들의 도로가 막히고 혼란스러워지거든? 그러니 도시 외곽으로 쭉~ 돌아서 가.”
‘와, 나도 인터넷이랑 소문만 들었지만 이건 참…….’
현실은 늘 상상 이상이라더니,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택시 손님으로 있는 내 신원을 멋대로 체크하는 것도 대박이었는데, 신강남 사는 분들이 불편할까 봐 돌아서 가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결국 택시비를 더 내고서 돌아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