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황금 기사라. 후후후, 허허허허! 그래! 이번엔 그놈이 나의 시련인가? 후우~ 그렇군. 그래. 그래야겠지. 암! 선지자와 성자의 길을 걷는 이에게 시련이 없으면 말이 안 되는 법. 허허허허! 허허허허허허허!”
‘영감쟁이가 미쳤나, 진짜!’
“본래 모으기로 했던 스캐빈저 놈들을 불러라. 예정보다 극소수이긴 해도 납치를 한 만큼 정부와 길드에서 구출하겠다고 올 게 확실하니 말이다. 우선 그 문제를 처리한 다음 황금 기사 문제에 대해 제대로 논하기로 하지.”
“예, 예!”
미친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이 목사의 모습에 종잡을 수 없는 스캐빈저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물러난다.
하나, 남아 있는 이 목사의 눈에 담긴 분노는 아직 가시지 않았다.
“그러면 잠깐 시간이 남았으니 그사이에 스트레스를 좀 해소해야겠군.”
그는 허리에 차고 있는 벨트에서 가위를 하나 꺼내 들고, 납치해 온 인간들을 가둬 놓은 호텔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후,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가위 하나로 작업(?)하는 게 오래 걸려서인지 비명은 길고 꽤 오래도록 들려왔다.
***
다음 날, 아카데미아 전속 스태프 숙소.
한숨 푹 잔 나는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음, 거의 15시간을 잤나? 또 해가 중천이군.
“아으윽! 왜 아픈 건 이제야 다 몰려오냐? 으윽!”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자 아직도 몸 여기저기가 쑤신 걸 보면 전투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활력 수치가 높으면 재생력도 좋아지고 통증도 경감된다더니. 물론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지만 말이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자 거실 쪽에서 밥하는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아칼론 녀석이 또 밥을 하나? 아무리 봐도 걔는 메이드 로봇 같다는 생각을 하며 거실로 나가 본다.
“아, 일어나셨어요? 아저씨?”
“아… 너냐?”
늘 그렇듯 아칼론이 아침밥을 하는 줄 알았지만 그곳에 있는 건 의외로 아영이였다.
고급스러운 아카데미아 천(天) 클래스 교복 차림에 앞치마라니. 특이한 취향을 가지신 분들이 너무 좋아해서 저런 콘셉트 야동도 돌아다닐 정도이지.
아무튼 잡생각은 여기서 멈추고 왜 여기에 왔는지 물어본다.
“으음, 병원에서 벌써 퇴원했냐? 살아 있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멀쩡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저씨가 구해 주셨어요?”
“그래. 덕분에 S급 몬스터 면상 구경 잘했다. 와, 그 닭대가리 새끼, 진짜 무섭더라. 막 깃털 세우면서 날 노려보는데… 어우~”
“죄송해요. 저 때문에 그런 위험을…….”
“솔직히 S급 있는 줄 알았으면 안 갔을 거다. 몰랐으니까 갔지.”
“에이, 그래도 잘 잡으셨잖아요. 황금 용자 골드런 아저씨.”
결국 얘도 눈치챘군.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하겠지?
S급 몬스터에게 당해서 의식을 잃었는데 그걸 무사히 데려왔고, 심지어 눈뜨고 나니 그 닭대가리가 죽었다고 뉴스에 대서특필됐을 테니 추측 못하는 게 바보였다.
게다가 놀리는 방식이 자기 엄마랑 완전 똑같네.
“잘 잡기는! 진짜 죽을 뻔했거든? 게다가 원래 입원해야 하는 거 지금 정체 밝혀질까 봐. 집에서 요양하는 거 안 보… 컥!”
괜히 혈압 올리니 몸 안에서 고통이 번지듯이 퍼진다.
그래, 나 어제 진짜로 죽기 직전까지 싸우다가 간신히 이긴 놈이다.
이것저것 치료를 하긴 했지만 원래라면 아직도 병실에 있어야…….
“괜찮으세요?”
“안… 괜찮아. 그러니 괜히 혈압… 올리지 마라. 큭! 하아~”
“정말 죄송해요.”
고개를 숙이며 순순히 사과를 하니 더 화낼 수도 없군.
나는 식은땀 나는 고통을 참아 내고 힘겹게 미소 지으면서 분위기를 바꾸고자 했다.
“죄송한 줄 알면 됐어. 아무튼 살았으니까 이런 개소리도 하고 노는 거지. 밥이나 먹자.”
“예! 금방 차릴게요!”
‘소환수 뽑으러 가야 하는데 이게 뭐람~ 뉴스나 보자.’
식탁에 음식이 차려지는 동안, 나는 잠깐 휴대폰으로 인터넷 뉴스 헤드라인들을 확인한다.
역시 뉴스 화제는 매우 다양했다.
이번 전쟁의 피해와 규모의 액수.
도살왕 악마들의 등장과 전투 과정.
생포되어 잡혀간 이들에 대한 구출 요구.
마인(魔人) 이 목사에 대한 분석과 뉴스 대형 길드 담당자들의 발표.
헌터 보험사들의 패닉과 정부의 대처 등등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뭐, 전쟁이니까 당연하지.’
<황금 기사가 S급 몬스터 아크데몬 비스트-레그혼을 쓰러뜨렸다?>
“내가 S급 잡은 건 어떻게 알아낸 거야? 누가 보고했나?”
“그야 전쟁 중이라 조기 경보기도 띄우고 위성 촬영 등등 몬스터들을 파악할 수단을 여러 개 돌렸으니까요. 자, 드세요. 냉장고 안에 재료랑 기본 반찬이 많아서 손이 생각보다 덜 갔어요.”
그렇게 식사를 하며 나는 기사를 자세히 확인한다.
그녀의 말대로 조기 경보기와 위성에 잡힌 내 스킬의 여파와 대치하는 사진이 슬쩍 찍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사람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었기에 아주 크게 확대해도 윤곽만 보일 뿐 자세한 모습은 볼 수 없다는 거였다.
<정부와 협회에서는 비록 인류의 위협이던 S급 몬스터를 처치했지만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협조하지 않는 ‘황금 기사’를 마인(魔人)으로 지정한 것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더불어 지금도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황금 기사’에게 혼자 고독한 싸움을 하지 말고 신속히 모습을 드러내어 함께하자고 권고하며 어떤 길드든 당신을 환영한다고…….>
“쟤네 대체 뭘 믿고 저렇게 강압적으로 말하냐? 나 전부터 궁금했는데…….”
“그야 움직이는 핵미사일이 통제를 받지 않고 마음대로 걸어 다니고 있으면 무섭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 아닐까요? 아저씨야 본인이라 모르지만요.”
아, 저렇게 들으니 뭔가 이해가 된다.
과연 저놈들은 내 심리를 모르니까, S급 헌터급인 미친놈이 길드에도 속하지 않고 혼자 돌아다니면서 뭘 할지 몰라 난감할 것이다.
행여나 내가 좋은 뜻으로 도시에서 싸우든가 하면 대피 방송이나 선언도 못할 거고, 패황천검류 스킬 같은 걸 쓰면 거기에 휩싸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테니 공포에 떠는 것도 당연했다.
“음, 그렇군. 이해했어. 냠냠. 어?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국 간 제대로인데? 밥이 술술 넘어가네.”
“저 엄마보다 요리 잘한다고 했잖아요. 엣헴! 엄마가 맨날 길드에서 일하느라 바빠서 초등학생 때부터 혼자 해 먹었거든요.”
“그것참 대단하네. 그나저나 어쩔 거냐? 방학 과제 조진 거 아냐?”
“아뇨. 역으로 S급 몬스터와 조우하고 교전을 한 몸이라서 그거 감상을 내면 그냥 패스시켜 준대요. 문제는… 하아~ 같이 간 파티원들이 행방불명이에요.”
그러고 보니 방학 과제를 위해서 던전에 갔을 테니 같이 간 파티원이 있겠군.
천(天) 클래스에 파티원 할당제니까 분명 지(地) 클래스와 인(人) 클래스 애들이 파티원이었을 것이다.
내가 갔을 때는 닭대가리에게 잡힌 아영이밖에 없었지만, 심판의 진을 생각하면 아마 그녀가 모두를 도망가게 한 뒤 레그혼을 잡고 있었을 것이다.
“도망친 녀석들은 아마 죽었을 가능성이… 아니지, 이 목사의 목적이 인간 약탈인 만큼 잡혔겠군. 던전에 도망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혼자선 들어갈 마음도 못 먹었을 테니……. 너희 파티 전위가 몇 명이었지?”
“저 혼자요. 과제 빨리 끝내려고 하위 던전 가는 거고, 유능한 애들은 이미 다른 학생들이 쓸어 가서 어찌어찌 후방과 서포터들만 데려갔는데… 아마 끌려갔겠죠?”
“그렇겠지. 인간 목장 운영과 더불어 인간 실험을 하는 아주 악질 같은 놈이니 말이야. 아마~ 큰일 당하겠지.”
이 목사라는 놈이 무슨 짓을 하는지는 알지만 더 이상 상상도 하기 싫다.
그나저나 그런 악독한 짓을 하는 놈임에도 자기 거처에서 실험과 목장 운영만 했기 때문에 다른 마인(魔人)들보다 이름이 덜 알려져 있던 놈이었는데, 이번 사태로 인해서 단숨에 대한민국 최대의 위협으로 급부상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토벌대를 기대하는 것뿐이겠지. 하지만 그 이 목사도 모를 게 아닐 거고. 아! 등급 올랐네? 이 양반 A급 마인이었는데, 오~ SS급 마인(魔人)으로 진급했네. 거창한 이명까지 붙어서 말이야.”
『SS급 인류 사육사 마인(人類私肉士 魔人) 이 목사』
왜 이제야? 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뉴스에서 자세히 설명 중이었다.
그가 남포에 세력을 갖추고 거주하고 있을 때는 아래에 정민수라는 완충 지대도 있었고, 러시아와 중국 방향으로 많이 납치를 나갔기 때문에 한국의 영역에서 부딪칠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정민수가 토벌됨에 따라 영역을 확장하면서 이번에 대형 사고가 터진 것이었고, 그동안 불가능으로 여겼던 S급 몬스터 동원을 해냈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슬쩍~ 토벌대 불가론의 설득력을 강화시키고, 주변국에게도 협조를 요청하려고 하는 거군.”
“예? 왜요? 우리도 S급 헌터 있잖아요.”
“길드에서는 그 S급 헌터를 잃기 싫어하거든~ 까놓고 말해서 지금 서울 길드에 2명, 청룡에 3명 있잖아? 근데 만약 청룡에서 토벌대 구축해서 여럿이 가다가 한 명 죽으면? 단숨에 3대 길드 톱 자리에서 내려오겠지? 그래서 S급 마인(魔人) 한 명 잡는 데 S급 3명을 데리고 가거나 A급 10명씩 데려가잖아.”
S급 헌터는 길드의 힘이자 곧 권력이기 때문에 최고 전력이면서 동시에 절대 잃으면 안 되는 재산이었다.
애초에 쉽게 등장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도 아닌 만큼 모든 길드도 그렇고, 정부와 협회에서도 특별 대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저번 토벌처럼 마음대로 중견 길드를 동원하는 일도 있고, 최대한 안전하게 굴리는 게 상식이 되는 웃기는 상황이 된 것이다.
“뭐, 사실 자기가 혼자서 가겠다고 해도 정부랑 협회, 길드에서 다 말리겠지만~ 아무튼 구출대에게는 큰 기대를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SS급으로 상향 조정했다는 건 까놓고 말해서 구출을 포기할 밑밥을 깐 거니까…….”
“그, 그러면 그 애들은 못 구하는 건가요?”
“못 구하지. 아니, 한국 S급, A급을 전원 동원하면 또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러지는 않겠지. 생명의 가치를 저울질하면 손해이니까. 으음, 그래도 SS급 마인을 그냥 둘 순 없으니 군사 활동 정도는 하려나?”
내가 정부래도 참 고민이 많을 문제군.
가만히 놔두자니 구출 작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고, 구출대를 구축해서 쳐들어가자니 S급 몬스터와 싸워야 하는 위험부담과 원거리 포격 및 미사일 공격을 시도하면 괜히 또 몬스터들이 달려올 것 같은 두려움 등등, 고려할 것부터가 한둘이 아니었다.
“…….”
“나한테 뭘 기대하지 마라. 아까도 말했지만 나 병실에 들어가서 요양해야 할 몸인데 들키면 안 돼서 여기 있는 거거든? 저 안에 약 쌓아 둔 거 봐라. 나도 한 마리한테 죽을 뻔했다고~”
“그러면…….”
“포기하는 수밖에 없지.”
“아… 우으으…….”
그러자 어느새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영이였다.
그래, 천(天) 클래스로 아카데미아 내에서는 절대적인 위상이 있고, 자신감도 넘칠 것이다.
그런 그녀가 현실적인 사정과 자신의 무력함 때문에 파티원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걸 깨닫자 결국 올라오는 슬픔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이걸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 건지. 참~’
아쉽게도 나에게는 상담사 자격 같은 것도 없고, 상냥하게 현실을 부정해 줄 만한 주변머리도 없다.
또 TV나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처럼 기적을 일으키겠다면서 믿고 있어 달라고 할 근거 없는 자신감도 없다.
그나마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라면 소방관과 의사들도 모든 사람을 구하거나 치료하지 못하며, 헌터의 삶도 같다고 말해 주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냉혹한 정론이라 아직 어린 이 아이에게는 가혹한 이야기였다.
“우으으으… 흐끄그그극! 흐아아앙!”
결국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녀가 가슴에 흘러나오는 인생의 슬픔을 먹고 어른이 되어 가는 걸 지켜봐 주는 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