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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44화 (44/293)

[44화]

“휴우…….”

나는 한숨을 쉬면서 내 필살기에 쓸린 흔적을 바라보았다.

해치웠나? 같은 상투적인 소리를 하면 분명 죽었던 놈도 다시 살아날 것이기에 입조심하는 걸 잊지 않고, 그리고 방심하지도 않는다.

하나, 바로 미니맵을 열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정도로 쉽게 죽을 놈은 아니었는지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쳇! 해치웠나?”

[꼬르르르르륵! 죽는 줄 알았다. 썩을 인가아안! 알아채고서 놀리는 거냐아!]

“산 거 알았으니까 클리셰대로 해 준 거지. 안 그래? 싸이버거 양반.”

[네놈을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화르르륵!

땅속에서 불꽃을 태우면서 튀어나오는 레그혼이었다.

내 필살기의 여파가 있는 듯 상반신 반쪽이 날아갔지만, 그래도 화려한 변신을 끝내서인지 황금색과 적색이 반반 들어간 아름다운 깃털에 더 거대해진 뿔과 육체, 화염처럼 타오르는 눈빛을 보니 저절로 두려움이 느껴진다.

“그래, 멋있어서 다행이네. 봉식이네 두 마리 치킨이라고 했나?”

[호르르르! 더 이상 나에 대한 모멸을 참을 수 없다! 인간! 봉황승천의 힘을 보여 주마!]

‘사실은 내가 무서워서 그런 건데… 쳇!’

그래, 눈앞에서 괴물을 만났으니 그냥 정신이 현실 도피하려는 것뿐이다.

제기랄, 역시 아까보다 빠르잖아? 아까 전엔 그래도 어떻게든 따라갈 만했는데, 지금 봉황승천이라는 걸 해낸 놈은 훨씬 빨라서 눈으로 앞을 보는 사이 이미 그 거대한 몸으로 내 앞에 몸을 숙이고 있었다.

“젠…….”

[끼루루욱!]

콰앙!

내 머리를 향하는 발차기를 아슬아슬하게 내 손과 티탄의 말뚝을 끼워서 막아 낼 수 있었지만, 머리가 흔들리고 몸이 하늘로 붕 떠 버린다.

그 충격에 정신이 들지 않았는데, 놈은 어느새 하늘까지 따라와서 이번엔 발톱이 난 뒤꿈치로 날 찔러 내려온다.

[죽어라, 인간.]

“커억!”

투우웅!

그대로 충격과 함께 낙하, 동시에 배를 찔려서 그런지 배와 등에 한꺼번에 격통이 몰려온다.

피가 역류하면서 호흡도 곤란했고 고통에 의식을 차리기 힘들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낯선 고통이 찾아오니 몸을 가누기 힘들었지만 최대한 일어나려고 애썼다.

‘이대로 있으면 죽을 텐… 컥!’

[감히! 먹거리인! 인간! 주제에! 나에게! 이런! 굴욕을! 안기! 다니!]

쾅! 쾅! 쾅! 쾅!

이 자비 없는 닭대가리 녀석은 내가 일어나는 걸 용납 못한다는 듯 가차 없이 짓밟는다.

그런데 아까 전 두 방과 다르게 이번에도 아픈 것 같았지만 몸이 짓이겨 나가거나 부서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 승기를 잡은 이놈은 지금 날 죽을 때까지 가지고 놀려고 이러는 것이었다.

아마 그냥 죽이기엔 화가 안 풀리는 거겠지.

“크헉! 쿨럭! 커헉!”

[푸히힝! 결국 이 정도인가? 닭대가리~ 제압했으면 데려가자고~]

[닥쳐! 감히 내게 이런 굴욕을 안기다니, 씹어 먹어도 모자라! 자, 어떻게 고문해서 죽여 줄까? 꼬꼬꼭! 꼬꼬꼬곡!]

그리고 넝마가 되어서 축 처진 나를 들어 올리더니 이젠 아예 조롱하면서 부리를 내 눈앞에 가져온다.

고통으로 희미한 의식 속에서 봉황승천했다지만 역시 조류의 정면 인상은 더럽게 못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아까 전 놈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켜 둔 상태창이 아직도 반짝반짝하면서 빛나고 있었고, 내가 입에서 뿜어낸 피가 눈앞을 가려 주어서 좀 나았지만 말이다.

‘이건?’

[꼬꼬꼬곡! 그래, 눈알부터 파먹은 다음! 산 채로 팔다리를 쪼아서 먹는 거야! 꼬꼬꼬꼭! 먼저 이 쓸모없는 깡통 대가리를 치우고…….]

깡!

놈은 내 투구를 부리로 뜯어서 손쉽게 벗겨 낸다.

역시 S급 몬스터의 힘답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저 더러운 닭대가리의 인상이 확실히 보였다.

그리고 피에 가려진 내 상태창도 같이 보이며 서서히 부리가 눈앞에 가까워진다.

[꼬꼬고고곡! 아주 아프게 쪼아 주… 큭!]

“…누구… 퉤! 마음대로 눈알을 쪼아 먹겠다는 거냐?”

콰득!

그리고 나는 젖 먹던 힘을 짜내서 놈의 부리를 움켜잡아 부숴 버린다.

참고로 새의 부리에는 혈관과 신경이 있다.

그래, 다른 생물로 치면 이빨과 입술을 합쳐 놓은 거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그것을 부수니 엄청난 격통이 오는 건 사실이었다.

[꾸에에에에엑!]

“크헉! 후우… 후우… 꿀꺽꿀꺽. 기사들이여! 덕분에 살았다!”

엄청난 격통에 놈이 나를 놓은 사이, 나는 잽싸게 뒤로 굴러서 인벤토리 안에서 가장 비싼 포션을 꺼내 마시고 체력을 회복하는 동시에 지금도 한창 싸우고 있는 내 기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다 죽어 가던 내가 놈의 부리를 부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레벨 업 덕분이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Lv.39가 되었습니다.]

이 레벨 업으로 인해 얻은 작은 활력과 힘 덕분에 마지막 저항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 주변에서 몬스터와 싸워 주고 있는 내 기사들 덕분!

“정말 너희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흠하하하, 다행이군.]

[우리… 도움 돼서… 기쁘다. 크르륵!]

[방심은 이릅니다, 마스터.]

그래. 절체절명의 순간, 주변의 몬스터들과 싸우던 내 기사들 덕분에 레벨 업을 하게 되어서 반격할 힘을 받은 것이었다.

직접 전투에는 도움을 못 받았지만, 그래도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이렇게 시간을 번 것만 해도 대단했다.

[꾸르르그그르륵! 닌간! 닌가아안! 두겨… 두겨 버릴 거야! 닌가아아아안! 꾸르르르르르르륵!]

지금 빠르게 달려오는 놈은 이번엔 아까 전과 같은 날카로움은 없었다.

그저 눈이 뒤집어진 채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는 중이었다.

‘아마 사랑니를 마취 없이 뺀다면 저런 느낌일까?’

저 정도면 놈이 살아오면서 생전 처음 겪는 최대의 고통이거나 아니면 부리 자체가 놈의 약점일 것이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고, 아까 전 챙긴 티탄의 말뚝을 놈이 달려오는 타이밍에 맞춰 그대로 수직으로 휘둘러 머리에 맞힌다.

[꾸… 그르르륵… 꾸륵꾸륵.]

결국 놈은 머리가 깨진 채로 뇌수와 피를 뿜으며 땅에 쓰러졌고, 봉황승천마저 풀려 다시 새하얀 털을 한 닭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생명력이 어찌나 질긴지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잠깐 피거품을 물었지만, 이내 숨소리와 심장 소리가 멈춰 버렸다.

“이… 겼나? 후우… 하지만!”

나는 상태창에서 놈을 처치한 대가이니 보상이니 하는 메시지들이 올라오는 걸 무시한 채 곧바로 다음 적이 될 자를 바라보았다.

그래, 적은 이 닭대가리 하나뿐이 아니었다.

저 말대가리 악마, 그러니까 이름이… 프르 머시기스키, 아무튼 말 새끼! 놈이다.

[푸히히힝, 훌륭하군. 닭대가리이긴 해도 봉황승천을 이룬 레그혼을 기어이 이겨 낼 줄이야. 푸르륵!]

“너도 싸울 거냐?”

[푸히힝! 그쪽에서 생각이 있다면 싸워 줄 수도 있지만,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사실 그 말이 맞아. 더 싸우고 싶진 않아. 이 닭대가리는 말이 안 통했던 거고~”

그래, 포션을 마셨다곤 해도 내부는 엉망이고 출혈도 심한 상태.

명백히 중상인 상태로 멀쩡한 아크데몬 비스트를 연이어 상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야기가 통한다면 다행인데 말이지.

[푸르륵! 그럼 안심해라. 우린 딱히 동료 의식은 없다. 아, 맞아. 본분을 잊고 멋대로 싸워서 뒈진 놈인데… 흥! 여흥을 즐기러 왔다가 죽다니, 멍청함도 정도껏이어야지.]

“좋아. 그럼 그걸 믿고 돌아가도록 하지. 아, 물론 챙길 건 챙겨야지. 목숨 걸고 싸웠는데…….”

죽은 레그혼의 시체가 있던 자리엔 이제 마정석과 아이템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나는 잽싸게 그걸 인벤토리에 넣고, 다른 기사들을 불러 퇴각 진형을 갖추고 사라지기로 했다.

물론 아직도 레그혼의 부하들로 보이는 병아리 수인과 닭 수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우리를 쫓아오지 못했다.

[푸히힝! 쩝쩝, 푸히히힝! 쩝쩝. 안심하고 가라. 주인을 잃은 닭대가리들은 내가 모두 먹어 치울 거니까. 푸르르륵! 히히히히힝! 얘들아, 만찬의 시간이다.]

[히이히히히히힝!]

[히히히히힝!]

프르 머시기 말스키가 말대가리 수인들을 불러서 그들과 함께 주인을 잃은 병아리 수인과 닭 수인들을 가차 없이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놈들이 쫓아오지 않는 건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그 광경은 정말로 기분 나쁘고 무서운 것이어서 기분이 또 나빠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수고하셨습니다. 훌륭한 전투이자 멋진 후퇴 판단이었습니다. 마스터.]

[주인… 훌륭한 기사다… 내가 부축하겠다… 쉬어라.]

[도시 근처에 가면 깨워 주겠다. 잠시라도 눈을 붙여라. 계약자.]

기사들의 위로와 칭찬을 들으며 나는 잠시 크록베인의 등에 몸을 맡겼다.

아드레날린과 포션의 효과가 끝난 건지 상처가 난 자리에서 또다시 피가 배어 나오면서 고통이 몰려온다.

그리고 이미 여기저기 부러져 부어올라 있는 모습은 엉망진창이었다.

그 고통들 속에서 나는 의식도 잃지 못한 채 시달리며 오늘 여기 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조올라 아프네. 그리고 다음부터는… 의료 용품에… 진통제 꼭 챙기자. 으으으으, 그리고… 두 번 다시 S급 몬스터랑은 싸우지 말아야지.’

진짜로 한 끗 차이의 승부여서 더더욱 피가 마르는 싸움이었다.

그래, 만약 내가 레벨 업을 못해서 그 부리를 부서뜨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그놈 밥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보상이고 레벨 업이고, 그런 긴장감과 이런 고통은 두 번 다시 맛보기 싫었다.

‘돌아가면 그냥… 그냥 편하게 D급, C급 잡으면서 올라가자. 하아… 씁!’

S급 몬스터의 위험도와 무서움, 고통이라고 하는 가혹한 대가와 경험을 치른 나는 그렇게 맹세하며 고통을 견디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도시 근처에 가면 일단 포션부터 한 병을 더 마시고, 바로 병원에 입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각성자들과 악마들이 한창 대규모로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나 하나쯤 더 입원해도 아무도 모를 터였다.

***

유성원이 S급 몬스터 아크데몬 비스트-레그혼을 쓰러뜨렸어도 서울 전선은 여전히 혼란의 상태였다.

끝없이 몰려오는 악마들과 S급 몬스터들의 힘. 인간들은 현대 화기와 무기를 사용함은 물론 헌터들까지 마법과 스킬로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크르르릉! 컹컹! 인간! 인간들을 잡아라! 컹컹! 어이! 너! 너랑 너는 좌측, 너는 우측! 빨리 지원해라! 컹!]

‘좌측 둘, 우측 하나.’

맞은편 언덕 위에서 악마들과 몬스터들을 지휘하는 개의 머리를 한 아크데몬 비스트-토사독의 명령에 따라 개 머리를 한 수인들과 악마들이 그녀가 지키는 영역으로 계속해서 몰려오고 있었다.

특출한 A급과 B급을 투입했지만 이미 신소미의 머릿속에는 모두 들려왔다.

‘적들이 심판의 혼진(混陳)에 대해 모르니 다행이군요.’

심판의 혼진. 언뜻 보면 풍경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지만 이 진의 안에 있으면 그 어떤 정보든 그녀가 원하는 것은 모두 들을 수 있는 특화 마법이었다.

단점으로는 영역 내에서만 발동하며 진을 한번 펼치면 옮길 수 없기에 특정 상황에서밖에 쓰지 못했다.

“이 전선은 절대 무너져선 안 됩니다. 좌측에 B급 둘. 하나는 진돗개, 하나는 치와와. 우측엔 A급으로 위장한 셰퍼드 머리! 서쪽에 땅굴을 파고 들어오는 악마 무리! 바로바로 전하세요!”

“예! 길드장님!”

하나, 그녀는 이렇게 진형을 지키면서 싸우는 전장에서는 그야말로 천연 레이더이자 도청 장치였다.

보통 수단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악마와 몬스터들의 존재와 위협을 감지해서 아군에게 알려 주어 희생을 줄일 수 있고, 빠르게 대응이 가능했다.

추가로 경지는 높지 않지만 서포트 마법과 각종 방해 마법으로 적들의 발을 묶고 아군의 공격을 수월하게 만드는 건 덤이었다.

‘휴우~ 과연 그가 아영이를 구했으려나요.’

지휘하면서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유성원이 자신의 딸을 구했을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하지만 상념은 금방 떨쳐야 했고, 그녀는 다시 집중해서 지금 이곳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했다.

[크르르릉! 이 무능한 것들, 사냥 하나 제대로 못해서야……. 음? 뭐야? 어, 어. 뭐야? 그 닭대가리가 죽었다고? 그래서 지금 그 말대가리 새끼가 혼자 다 처먹고 있다고? 이런 젠장!]

‘말대가리? 닭대가리?’

[으르르릉! 그러면 이딴 맛밖에 없는 인간을 사냥할 때가 아니잖아! 전군 철수! 전군 철수한다! 젠장, 가장 맛있는 걸 다 빼앗길 수 없지! 당장 철수해서 머리를 잃은 닭대가리 부하 놈들로 사냥감 변경한다! 멍! 컹컹! 아우우우우!]

하울링까지 하며 의사소통을 한 아크데몬 비스트-토사독의 부하들은 그렇게 하나둘 전진하는 것을 멈추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전선들에서도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이미 S급 헌터와 싸우는 중인 아크데몬 비스트들도 무언가 소식을 듣더니 모두 물러난다.

“대체… 뭐지?”

“쟤네 왜 물러가?”

“뭐가 목적이었던 거야?”

“물러나면 좋은 것이긴 한데……. 아무튼 전투가 끝난 거지? 와아아!”

인간들은 한참 싸우던 악마들과 몬스터들이 물러난 것에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결국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가 끝났다는 것에 함성을 지르며 살아남은 것 자체를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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