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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43화 (43/293)

[43화]

‘시간… 시간을 벌어야 해.’

[꼬곡? 아, 썩어도 성좌의 사도라는 건가? 꼬꼬꼭, 이런 걸 쓸 줄이야. 꼬꼭, 과연 이건 힘으로 부술 수 있는 게 아닌 그분들의 ‘절대 법칙’ 같은 거군.]

“…….”

[하지만 상관없지. 꼬꼬꼭, 결국 시전자를 쓰러뜨리면 그만이니 말이야. 꼬고고곡. 그쪽 성좌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이름 정도는 들어 주지. 나는 도살왕 님의 사도, 그분의 전당을 지키는 아크데몬 비스트 중 하나인 레그혼이다. 꼬꼭, 인간 계집, 이름을 대라.]

딱딱!

깃털을 세운 채 부리를 딱딱거리면서 자신을 노려보는 레그혼의 압박. 그래도 다행히 성좌의 힘으로 펼친 이 결계 덕에 시간을 꽤 벌었다고 생각한 신아영은 자세를 잡고 예를 갖추기로 한다.

“성좌 균형왕의 사도 신아영. 그럼…….”

[꼬꼭. 그래, 들었다.]

‘너무 빨라?’

신아영이 이름을 댄 순간, 레그혼은 순식간에 코앞까지 온 다음 가차 없이 깃털이 덮인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말도 안…….’

신아영은 마치 시간이 잘려 나간 듯,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의식이 사라진 채로 땅에 처박힌다.

자신의 무력함조차 느끼지 못하는 신속의 일격. 레그혼은 맥박을 짚어 그녀가 살아 있는지 확인한 뒤 안심한다.

[꼬꼭, 힘 조절엔 자신 없었지만 아무튼 잡았으니 다행이군. 꼬꼬꼬. 이년 하나면 비싸게 쳐주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성좌의 선택을 받은 영혼이며 나름 긍지와 숭고함까지 겸비한 이였다.

단점이라면 자신을 상대하기엔 터무니없이 약하다는 점이었지만, 아무튼 레그혼은 부서지는 심판의 진을 보면서 그녀를 이 목사에게 산 채로 넘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부서지는 결계 너머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닭대가리. 그거 얌전히 내려놓고 꺼져.”

[꼬꼭? 뭐냐, 넌? 황금 갑옷? 참 웃기는 패션이군.]

“깃털로 몸을 덮은 거라고 치면 사실상 알몸으로 다니는 주제에 남의 갑옷엔 왜 태클을 거냐? 나체족 자식아.”

[꼬꼬꼭, 건방지구나, 인간! 네놈은 이 암컷보다 더 점수가 높을 것 같지만, 그 무례한 모습을 보니 반드시 튀겨서 죽여 주마.]

고오오오!

레그혼은 깃털을 부풀리면서 자신 앞에 나타난 황금 갑옷의 기사를 위협했지만, 그는 태연히 레그혼을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황금 갑옷 안에 있는 유성원은 현재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

아영이 어머님이 준 좌표와 내 스킬인 (유니크)정령 기사 ‘실레이온 포레스트 블레이드’의 비전 덕분에 쉽게 숲의 안내를 받아서 올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심판의 진이 아주 확실하게 사건이 터진 곳을 알려 주었다.

다만 도착한 건 좋은데, 오자마자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몬스터가 아영이를 어깨에 메고 있어서 난감했다.

‘아, 이거 참 X 됐네. 애들 불러서 다구리 까야 하나? 또 그럼 기사도가 지랄이겠지? 하지만 목숨이 걸려 있는데 안 부르기도 그렇고… 아니, 부를 시간도 없나?’

대충 나의 본능과 스킬들이 위험 신호를 보내오는데, 부르려고 입을 뻥긋하는 순간 승부가 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기사단의 성소 안에 있는 녀석들도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 안에 승부가 날 수 있어서 얌전히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단 한 발에 승부가 나는 서부극 같은 긴장감이었다.

[꼬꼭, 이름을 대라. 들어는 주지.]

“레이디에게 손대는 짐승에게 댈 이름은 없다. 그저 기사라고만 알아 둬라.”

[꼬꼬꼭, 알았다. 이름 없는 황금 기사… 여!]

그 순간, 저 망할 닭대가리가 아영이를 집어 던졌다.

역시 악마답게 비겁하게 논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엄연히 사탄도 유학 오는 헬조선에서 자란 놈이다.

나는 아영이를 받지 않고 망설임 없이 곧바로 티탄의 말뚝을 잡아서 등 뒤로 휘두른다.

그러자 아주 자연스럽게 그 닭대가리가 거기에 적중당했다.

[쿠꼬오오옥!]

묵직한 타격감과 함께 그 닭대가리 놈은 나무를 수십 개 부수면서 땅을 구른다.

그다음에야 나는 땅에 쓰러진 아영이의 의식과 맥박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기절은 했지만 죽지는 않은 상태로 녀석들의 목적이 인명 살상이 아니라는 것까지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저 식인 몬스터 새끼들이 왜 얘를 살려 놓은 건지 모르겠지만 다행인 일이군.’

[꼬끼오오오오오오옥! 용서 못해! 인가아안! 다들 나와서 이놈을 쳐라!]

아침을 울리는 소리를 내면서 그 닭대가리 놈은 눈을 붉게 빛내면서 나에게 달려온다.

큰일은 이제부터지만 그래도 시간을 좀 번 덕분에 이런저런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우선 기사도의 성소에서 기사들을 호출한 다음 각자 명령을 내린다.

“섬멸은 그녀를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 크록베인, 가울프, 아칼론은 혹시 날 도와줄 수 있나?”

[레이디를 구하고, 악마를 쓰러뜨리는 싸움은 명예 그 자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마스터.]

[…계약자여, 강적은 환영하노라.]

[크록베인은… 닭고기… 좋아한다.]

좋아. 이러면 한결 마음이 편하지!

그렇게 섬멸에게 아영이를 맡기고 남은 셋과 함께 달려오는 닭대가리를 맞이한다.

놈이 달려오는 것에 대비하고 내가 먼저 달려들어서 티탄의 말뚝을 휘두른다.

[꼬꼬꼬꼬!]

“하아아앗!”

투콰아아아앙!

내가 전력으로 휘두른 티탄의 말뚝을 핏빛 마력이 흐르는 깃털을 지닌 날개로 받아 내는 닭대가리 악마와 나는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젠장, 쉽지 않군. 하지만 이 틈을 타서 내 기사들이 네놈을 다구리를!

[레그혼 님! 지금 도와 드리겠습니다! 삐약삐약!]

[꼬꼬꼬! 감히!]

[삐약삐약! 용서 못해!]

하나, 그건 내 상상만으로 끝나게 된다.

이놈을 레그혼이라 부르는, 노랗고 짧은 깃털을 가진 병아리와 벼슬과 뿔이 없는 닭대가리들이 연이어 나타나서 우리를 덮쳤고, 자연스럽게 아칼론, 크록베인, 가울프는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흩어진 것이다.

“젠장! 부하를 부른 거냐? 황금 올리브 치킨! 비겁하다!”

[꼬꼬꼭!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소리 하는구나! 인간!]

“인간이 다굴치는 건 국룰이거든? 후라이드 양념 반반아!”

[내 이름은 레그혼이다! 인간! 끼르르르륵!]

콰아아아아!

한 번의 충돌마다 핏빛 마력이 주변을 휩쓸며 나무를 쓰러뜨리고 땅을 판다.

물론 저놈도 내 공격이 꽤 아픈 건지 눈살을 자꾸 찌푸리면서 고통을 참는 모습이다.

하지만 역시 경험의 차이는 무시 못하는 건지 들어오는 공격을 막는 것에만 급급한 나와 달리, 저쪽은 거의 일방적으로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이 무기 아니었으면 진작 큰일 났겠군.’

지금 손에 든 무기인 티탄의 말뚝이 겁나 단단한 것에 새삼 감사한다.

만약 이게 없었다면 저 마력이 담긴 깃털 속에 있는 주먹에 진작 무기는 부서지고 나는 공격당해서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꼬꼬꼭, 네놈… 뭐 하는 놈이냐? 대체 네놈 뭐냔 말이다! 인간 주제에!]

“왜? 무기빨이라고 말하고 싶니?”

깃털을 빳빳이 세우면서 놈은 핏발 선 눈으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뭔가 화나게 했나? 아니, 나름 성좌의 최고 사도급이면 자존심이 셀 텐데, 인간과 백중세를 유지하는 것조차 기분 나쁜 것이려나?

아무튼 잘은 몰라도 나는 조금이라도 시간이 있을 때 호흡을 고르기로 한다.

‘빡세긴 한데… 그래도 점점 익숙해지는 느낌이야. 무섭긴 하지만…….’

내 특성은 물론 (유니크)만검(萬劍)의 기사 그란델의 무재(武才) 스킬님이 오늘도 열일 하시는 것 같다.

너무 빠르게 적응해 나가고 있어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지만,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가릴 건 없었다.

[꼬꼭! 너는 대체 뭐냐!]

“알 필요 없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수원 왕갈비 치킨아!”

[꼬끼끼이이이잇!]

콰득!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레그혼이라는 놈은 뒤로 물러나면서 부러진 자신의 날개를 움켜잡고 날 바라본다.

갈수록 정밀해지는 티탄의 말뚝의 공격에 결국 놈의 힘이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피와 함께 날갯죽지 부분에 뼈가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인간 놈… 감히! 꼬꼬꼬.]

“좋았어. 이대로 끝장을…….”

[히이히힝! 이거 참 재미있는 풍경이군요. 푸르륵!]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해서 몰아치려는데,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와 함께 투레질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들, 한 놈만 있는 거 아니었지.

S급만 일곱, 그 외에 각자 수하가 있다고 했던가? 젠장!

“제길…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건 나였군. 동료가 있다니…….”

[프르제발스키! 꼬꼬! 보고만 있지 말고 도우라고!]

[히히힝! 우리가 돕고 사는 사이였던가? 푸히힝! 그저 같은 성좌님 아래 있을 뿐,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지 않은가? 인간 하나 못 해치우고 당하고 있는 놈이 같은 사도라는 게 쪽팔릴 지경인데? 푸히힝!]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건지 저 말대가리 놈은 도와줄 생각 없이 나무 위에 앉아서 투기장을 관람하듯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와, 둘을 동시에 상대했으면 정말 큰일 났을 텐데 나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

[꼬꼬꼬! 두고 보자, 말대가리.]

[푸히힝, 이기고서나 말하시길. 닭대가리.]

‘…아, 쟤네들끼리도 동물 명칭으로 다투는구나. 어?’

화르르륵!

순간 신기한 사실을 확인했는데, 갑자기 뜨거운 열기가 몰려온다.

뭐야? 싶어서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레그혼의 새하얀 깃털이 붉고 노랗게 변하면서 닭의 모습에서 뭔가 더 화려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꼬고고고곡, 이걸 보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라, 인간. 본래라면 역경을 뚫고서 ‘도살왕’ 님의 전당에 들어와 도전할 자격을 가진 자에게만 보여 주는 모습! 이 봉황승천(鳳凰昇天)을 본 것을 죽어서도 자랑…….]

“하늘이여! 지고(至高)에 이른 나의 검을 확인하도록 해라. 이 일격은 내가 이 대지에 선 별이라는 것을 증명할지니!”

[……!]

내가 바보도 아니고, 소년 만화처럼 파워 업 변신하는 걸 기다려 줄 이유는 없다.

딱 봐도 아까 닭 같은 모습에서 위험해 보이는 봉황으로 변해 가고 있고, 피어오르는 마력의 양과 기백이 다른데 이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또라이지.

게다가 변신 시간도 너무 느린 탓인지 큰 기술을 써서 공격하기 딱 좋은 상태였다.

[꼬고고곡! 자, 잠깐! 잠깐!]

[푸히히히힝! 푸히히힝! 역시 넌 닭대가리야, 레그혼.]

“패황천검류(覇皇天劍流) 제1장-지성섬(地星閃)!”

변신이 덜 끝나서 당황해하는 닭대가리의 표정과 미친 듯이 웃는 말대가리의 비웃음이 교차한다.

그와 동시에 S급 마인을 쓰러뜨렸던 나의 필살기가 시전되었고, 거대한 검광이 대지를 찢어 가르며 봉황이 마저 되지 못한 레그혼을 덮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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