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같은 시각, 서울 북쪽 경계.
던전 영역과 도심을 가르는 경계 지역. 현재 군대와 함께 협회의 명을 받은 길드의 각성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방어진을 구축하고 있었다.
군인들이고 각성자들이고 모두들 각자 무장을 한 채로 숲을 넘어서 다가오는 재앙의 존재들을 바라본다.
“젠장! 오늘이 무슨 세상의 종말인가? 왜 저래?”
“발포 허가 났습니다!”
“효과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S급 몬스터 아크데몬 비스트-이베리코 등장했습니다.”
[꾸울! 꿀꿀꿀! 알아서 모여 주니 고생을 덜었군. 꿀꿀꿀.]
그리고 그런 이들을 보며 S급 아크데몬 비스트 중 하나인 이베리코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 목사의 상품에 더없이 끌린 그는 자신의 직속 부하들인 보어 데몬 비스트들과 내려오면서 합류한 수많은 악마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사냥의 시간이다. 꿀! 사지를 자르고 눈을 파 버려도 상관없으니 되도록 생포해라. 꿀. 강한 놈은 내가 상대하겠다. 꿀! 죽음을 두려워 마라! 꿀! 도살왕 님께서 우릴 굽어살피신다. 꿀!]
[키에에엑!]
[꾸우우우울!]
[고기! 고기이이이이!]
이베리코의 외침에 하급 악마들부터 시작해서 같이 있던 A급, B급 보어 데몬 비스트들이 파도처럼 무리를 이루어 인간들을 향해 돌진한다.
동시에 전선을 지키는 군대들은 곧바로 사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포격과 공중 지원까지 받으면서 악마들이 화망에 휩싸였지만, 그것에 피해를 받는 것은 고작 하급 악마들뿐이었다.
[꾸울, 성가시꿀! 매운 족발 맛을 보여 주맛! 꿀!]
“으아아악! 떨어진다!”
“미, 미친! 돼, 돼지 족발이라고?”
공중 지원을 본 이베리코의 손짓으로 인해 하늘에 거대한 돼지 족발의 허상이 나타나 폭격과 미사일 지원을 하던 전투기들을 하나둘 떨어뜨린다.
수백억이 넘는 군용 장비와 파일럿이 순식간에 그 가치를 잃어버리고 땅에 떨어져 폭발해 버렸다.
“와, 정말 웃기지도 않네.”
“그럴 때가 아니야. 온다!”
[꾸우우울! 이베리코 님의 명령이다. 주, 죽이진 말고! 생포하라!]
[생포! 생포!]
[살려만 둬라!]
군인들의 사격의 화망과 포격을 뚫고 코앞까지 다가온 놈들은 드디어 교전을 시작, 여기서부터는 대기하고 있던 길드의 헌터들이 본격적으로 나설 차례였다.
각기 다른 무장을 한 헌터들이 A급, B급 보어 데몬 비스트들을 향해 달려갔고, 곧 목숨을 걸고 치열한 싸움을 시작한다.
“이놈들이 드디어 우릴 멸망시키려고 작정했구나! 젠장!”
“받아라! 썬더 스톰!”
[꿀후후후꿀, 신선한 암컷이다. 꿀! 잡는다! 잡는다!]
[저항 못하게 팔다리는 잘라도 된다고 하셨다. 꿀!]
[살려만 두라고 하셨다. 꿀!]
전쟁터의 풍경은 어느 시대든, 그 무엇을 상대하든 삶과 죽음이 오가며 피와 살이 흐르게 되면 비참해진다.
막강한 아크데몬 비스트-이베리코의 지휘 아래, 몬스터들은 일반 군인들은 그냥 쳐 죽이고 생포 가능한 헌터들을 사로잡아서 납치해 간다.
그리고 이베리코는 마력을 회복하기 위해 포션을 마시며 부하들이 잡아 온 인간들을 느긋하게 감정한다.
[꾸울! 젊고 신선한 암컷. 꿀꿀. 이 목사가 좋아할 거다. 1등급 찍어 놔라. 꿀, 다음은… 늙은 수컷인가? 꿀, 헌터이니 제물로 쓰기 좋지만 결국 3등급이다. 꿀. 다음 늙은 암컷은 2등급, 꿀. 젊은 수컷도 2등급이다, 꿀. 이것만 지키고 달군 인장으로 찍는 거 잊지 마라.]
[알겠습니꿀, 이베리코 님.]
[1톤짜리 슈퍼 휴먼은 내 것이나 다름없다. 꿀후후훗!]
이베리코는 군침을 삼키며 아까 전 보았던 상품인 살을 찌운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1톤짜리 슈퍼 휴먼은 과연 얼마나 포만감이 들지,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그는 계속해서 생포해 오는 인간들을 보며 즐거운 미소를 지은 채 꿀꿀하고 울었다.
[멍! 뒤처지지 마라! 가장 많은 사냥감을 잡아야 한다! 멍멍! 죽이지 말라는 걸 잊지 마라!]
[넵! 멍멍!]
[생존자가 많을수록 점수가 높다! 크르릉!]
그리고 그에 경쟁하듯 다른 아크데몬 비스트들도 열심히 인간 사냥에 참여하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인간들은 언젠가 몬스터들이 이런 공세를 할 걸 알고 열심히 대비해 왔지만, 너무 예상외였다.
하나 그런 상황 속에도 희망은 존재했다.
“오오! 청룡 길드다! 고천수 길드장님이다! 곁에 고천용, 채지영. S급 헌터들 총집결이야!”
“역시 믿을 건 청룡이지!”
군인과 여러 길드의 각성자들에게 환호를 받으면서 진격하는 청룡 길드의 트레일러.
3대 길드의 정점,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 3명의 S급 헌터를 보유한 길드 청룡.
최근 S급 마인 토벌에 실패했다곤 하지만 결국 ‘정민수’는 죽었기에 그 흠은 크지 않아서 여전히 그 위상은 높았다.
“형님, 서울 길드는 어떻게 하고 있답니까?”
“어떻게 하긴. 평소에 잘난 척하면서 우린 서울만 지킨다더니 피똥 싸고 있지. 후훗. 박순원 길드장의 똥 씹은 얼굴이 볼만하더군. 후훗.”
평소에 토벌령을 내려도 ‘서울’만 지키겠다고 선언하는 서울 길드에게 다른 길드와 협회는 당장 난리가 난 방어선을 맡겼고 이미 전투에 들어가 있었다.
반대로 청룡 길드는 3명의 S급 헌터와 공격대를 맡기로 하고서 준비한다는 핑계로 다소 늦게 차를 타고 전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솔직히 그 새끼, 띠껍기는 했죠.”
“아무튼 기왕 이렇게 된 거, 놈이 정신 좀 차리도록 더 느긋하게 할 생각일세.”
“그래도 될까요? 그러다가 방어선 너머로 들어와서 서울이랑 정부가 망하기라도 하면?”
“이미 적의 목적은 알았으니 걱정할 거 없다. 놈들의 목적은 붕괴가 아니라 그저 인간을 약탈하는 것이더군. 이 목사 놈이 부추긴 이유가 ‘개성’의 인간 목장에 가축을 채우기 위함이라, 약 일주일 정도 그런다고 하니 잘 버티면 된다.”
그러면 일반 군인과 시민의 피해는? 안타깝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들이었다.
이미 성좌와 각성자의 시대가 되면서부터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치는 다르게 매겨졌다.
또한 길드는 인류의 영웅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자신의 성좌와 그 세력을 위해서 싸우는 면이 더 강한 만큼 손해를 무릅쓰고 희생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튼 밉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노력하는 척하고, 가능한 한 피해를 줄이면서 S급 몬스터의 처리에 집중하지. 레벨 업도 중요한 일이니.”
“길드장님이 빨리 한국 최초 SS급 헌터가 되셔야 하는데 말이죠. 흐흐, 박순원 그놈이 SS급 먼저 달면 그거도 골치 아프니까요. 슬슬 다 온 것 같습니다.”
바깥에서 짐승의 목소리와 인간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면서 트레일러를 뚫고 들려왔지만, 그들은 여유를 잃지 않고 느긋하게 트레일러가 주차될 때까지 기다린다.
이 와중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어 나가거나 몬스터들에게 잡혀 가고 있었지만 청룡 길드가 알 바는 아니었다.
행여나 어떤 기자나 사람들이 청룡 길드의 이런 태도를 지적한다고 해도 그들을 어쩔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또 오히려 기자가 있는 방송사나 신문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정도로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바로 3대 길드의 힘이었다.
***
같은 시각.
서울 북쪽, 던전 숲 지역.
그리고 한참 서울이 난리가 난 이 시각, 한적한 숲에 포탈이 열리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왔다.
바로 신아영을 비롯한 파티원들로, 그들은 D급 던전을 힘들게 클리어하고 던전에서 나온 것이었다.
전원 피와 땀, 피로에 전 모습으로 힘겹게 숨을 돌린다.
“고생 많으셨어요, 리더.”
“어찌어찌 잡았네요.”
“와, D급은 역시 빡세네. 몬스터 숫자부터가 다르네.”
“예. 다들 수고… 어라?”
신아영을 빼고 모두 D급 미만의 각성자들이다 보니 그녀가 신경 쓰고 힘써야 할 부분이 많아서 생각보다 힘든 던전 공략이었다.
그런데 나오고 보니 어딘가 이상했다.
자신들을 다시 태우고 돌아가야 할 차량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 차 어디 갔죠?”
“리더님, 연락 좀 해 보세요.”
“아~ 걸어가려면 되게 먼데…….”
“다들 정신 차리세요. 지금 여기 트레일러가 없는 건! 이 근방에 뭔가 보통 일이 아닌 게 일어났다는 거예요! 무장 다시 하고, 포션이랑 드시고! 주변 경계!”
길드 후계자로서의 교육을 받은 천(天) 클래스의 그녀는 차량이 없어질 경우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고, 곧바로 대비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곧장 자신들의 모습을 수풀과 나무로 감추어 안전부터 확보한 다음 길드에 연락을 넣기 위해서 휴대폰을 들었다.
“제발… 제발 연결이…….”
(아영이니? 던전 클리어하고 나왔니?)
“응! 엄마! 맞아. 지금 클리어하고 나왔는데 차량이…….”
(지금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빨리 거기서 대피하렴! 아니면 차라리 던전이라도 좋아! 얼른 약한 던전을 찾아서 들어가렴. 들어가기 전에 좌표랑 문자 한 통 주고!)
“…어. 어! 알았어! 엄마! 문자 줄게!”
신아영은 평소 쿨하고 침착한 자신의 엄마가 이 정도로 다급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곤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뒤 전화를 끊는다.
그다음 바로 어플을 켜서 주변에 있는 던전을 검색해 그곳을 향할 준비를 하며 같이 온 아카데미아 학생들에게 설명을 했다.
“네? 또 던전에 가야 한다고요?”
“무슨 일인데요?”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A급 헌터인 우리 엄마가 빨리 대피하라는 걸 보면 보통 사태가 아니에요. 그러니 빨리 움직여요! 근처에 가장 만만한 던전이……!”
[꼬꼬꼬… 꼬꼬꼭.]
한참 어플에 신경을 쓰는 와중에 그녀의 귀로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몬스터들이 돌아다니고, 스캐빈저들이 오가는 이 숲에 있을 리 없는 닭의 존재에 의아했지만, 그것은 분명 닭의 울음소리였다.
“…아…….”
[꼬꼬꼭, 멍청한 형제들은 날 닭대가리라 놀리지만…….]
그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올려다보니, 키 3미터의 거대한 닭 머리에 뿔이 달린 수인이 팔짱을 낀 채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포식자가 먹잇감을 보는 듯한 오만한 시선. 거기에 닭이라는 외형에 맞지 않는 위압감과 기운. 신아영은 저것이 엄마가 이야기하던 위협이라는 걸 보자마자 깨닫는다.
[굳이 열 올릴 거 없이… 꼬꼬꼭. 상품과 똑같은 재료를 준비하고 만들어 달라고 하면 그만인 것을……. 꼬꼬꼭.]
‘위험해. 저, 저건! 아, 아크데몬 비스트!’
그래, 틀림없다.
저건 분명 아카데미아 교육 과정에서 배운 도살왕의 직속 악마, 아크데몬 비스트.
하나하나가 S급 던전 보스급인 최강의 몬스터였다.
‘도망… 쳐야 할 텐데?’
여기서 상책이라고 하면 자신을 따라 들어온 아카데미아 학생들을 미끼로 삼고 자신 혼자서 하급 던전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물론 따라 들어올 가능성도 있지만, 차라리 이게 더 살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런 쓰레기 짓은 결코 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각오를 다지고 주먹을 쥔다.
[꼬꼭? 원숭이도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서 도망칠 줄 아는데, 굳이 싸우겠다? 역시 인간은… 꼬꼬꼭. 멍청해.]
“뒤도 보지 말고 도망가요. 알았죠? 저 닭대가리는 내가 맡을 테니까!”
[꼬끼키키키키킥! 웃기는 소리도 적당히…….]
“후우우! 심판의 진!”
그렇게 그녀는 다른 이들이 도망칠 수 있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아크데몬 비스트를 잡아 두려 심판의 진을 사용한다.
그녀 또한 죽고 싶지 않았지만, 이것이 조금이라도 강자이며 성좌에게 힘을 받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망설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