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네. 무슨 일이죠? 아영이 어머님?”
(급히 할 이야기가 있어요. 길드로 올 수 있나요? 이야기가 좀 깁니다.)
“아, 예. 그럼 바로 가야죠.”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지만 아무튼 이렇게 직접 전화를 하실 정도면 보통 사안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기사들을 돌려보내고 급히 위험 지역을 돌파, 서울로 돌아간 다음 곧장 길드로 향한다.
대체 무슨 일이지?
“예. 왔습니다, 길드장님! 무슨 일입니까?”
“생각보다 빨리 왔군요. 방금 전 협회에서 3대 길드와 토벌대 참여 길드를 모두 소집한 회의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냐면…….”
가자마자 그녀는 협회와 길드가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에 대해서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충격적이었다.
뭐? 마인(魔人) 지정? 그러니까 자기들끼리 찾으려고 치고받다가 결국 못 찾으니까 이런 개지랄을 한다는 건가?
“참~ 어이가 없네요. S급 마인한테 X발려서 다 뒤질 뻔한 걸 구해 주니 역으로 마인 취급이라니. 정말 대단하셔라.”
“놀라워할 일이 아니에요. 아무튼 앞으로 조심하시고, 그 웃기는 황금 갑옷은 정말 위험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것 말고는 당신의 정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매우 좋은 정보에 감사하며 나는 길드를 나온다.
길드와 협회라는 것들이 무서운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 정도면 거의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RTS 게임에 나오는 자원으로 보는 수준이다.
‘아무튼 조심해야겠군.’
일주일 뒤부터는 마인(魔人) 신세인가? 아무튼 던전 한 번을 대신하기엔 충분히 좋은 정보였다.
난데없이 마인(魔人)으로 지정된 뉴스를 봤다면 더 어이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미 늦은 시간이라 오늘은 더 던전을 가지도 못하기 때문에 곧바로 숙소로 돌아온다.
“어라? 오늘은 꽤 빨리 왔네요? 던전 두 번은 돈다면서요?”
“한 번만 돌게 된 사정이 있어. 아무튼 밥 먹었냐?”
돌아오니 아영이가 마치 제집인 양 우리 집 소파에 앉은 채로 맞이해 준다.
이 녀석을 여기에 두게 된 배경은 간단했다.
던전에 있을 땐 연락도 안 되고, 문자로 연락을 받으면 그때 여자의 준비(?)를 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녀석은 자꾸만 내 숙소 문 앞에 있었고, 다른 전속 스태프들이 보기에 안 좋았기에 녀석에게 열쇠를 준 것이다.
‘얘는 얘 나름대로 가까워지려고 수를 쓴 것 같지만, 이길 수가 없네.’
“네, 먹고 왔어요. 천(天) 클래스 식당은 방학 중에도 계속 운영하거든요. 방학 과제 때문에 대부분 남으니까요.”
“그 던전 클리어하는 거 말이군.”
“근데 그게 갑자기 룰이 바뀌어서 지금 난리예요. ‘화합’ 덕후 학원장님이 길드가 아니라 교내 학생끼리 던전을 가라고 하네요. 던전까지 가는 길을 보호하기 위한 호위만 허락한대요. 길드에서 항의가 들어왔지만 새로운 시도라면서 닥치고 하라네요. S급 헌터라지만 너무한 거 아니에요?”
“학생에게는 피곤하지만… 뭐, 스태프에게는 천사 같은 분이지.”
그래. 이번 시험도 그렇고, 학원장님은 어떻게 해서든 각성자 간의 격차와 신분제처럼 나뉜 상황을 조금이라도 허물려고 노력하시는 분이었다.
그 뜻은 좋았지만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서 아무도 따라 주지 않는 이상주의자였기에 학생들은 싫어했다.
하지만 스태프에 대한 대우와 보호에 대해서도 크게 힘쓰셨기에 나에게는 천사 같은 학원장님이었다.
“더 심한 건 뭔지 아세요? 이번 방학 과제에 한해서 파티에 쿼터 제한까지 걸렸어요. 무조건 천 1명, 지 2명, 인 3명으로 파티를 구성하래요. 물론 다들 난리 났죠. 버스 태워 줘야 하냐고! 막 길드에서 난리가 났는데… 황금 기사 사건 때문에 집중 못해서 유야무야 넘어갔어요.”
“그거… 참 안됐군.”
그 황금 기사라는 놈이 나라는 걸 생각하면, 나 때문에 시험이 갑자기 어려워진 셈이군.
너무나 강제적인 조치에 나조차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잠깐, 아무리 그래도 천(天) 클래스가 인(人) 클래스의 3배는 안 될 텐데? 비율은 어떻게 맞출 거지? 그리고 던전 난이도는?
“그래서 던전은 B급에서 2단계 아래인 D급 이상으로 고정인데, 높은 등급일수록 점수가 높대요.”
“너도 참 고생이겠군.”
“파티를 어떻게 짜야 할지 벌써 머리가 아파요. 끄으응~ 게다가 지(地) 클래스와 인(人) 클래스 애들은 각자 집으로 내려간 애들도 많거든요. 지금 다들 전화하고 난리인데…….”
그야 그렇겠지.
현역 헌터와 견줄 수 있는 천(天) 클래스와 다르게 C~D급인 지(地)와 E~F급인 인(人) 클래스는 학생으로 취급이 돼서 방학 과제는 이론 수업이나 체험 학습 같은 게 전부다.
그런데 난데없이 천(天) 클래스에게 이런 과제를 주면 난리가 나겠지.
“거참, 학원장님도 이리저리 무리하는군.”
“미치겠다니까요. 기말고사만 해도 화합이니 뭐니 하려다가 천지인 클래스 다 사이만 나빠졌는데 말이죠.”
“그래서 더 무리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애초에 학원장님부터가 각성자 간의 계급으로 이득 보는 양반인데. 다른 사람이 저렇게 했으면 진작 갈려 나갔을 텐데, S급 각성자니까 저리 뻗대도 버티는 거면서…….”
“그건 그렇긴 하지.”
나도 학원장이 대한민국에 10명밖에 없는 S급 헌터가 아니었다면 진작 잘리고도 남았을 거라는 말엔 동감했다.
더불어 천(天) 클래스 학생들도 학원장이 S급 헌터라서 또 울며 겨자 먹기로 이 불합리한 시험을 치러야 하고 말이다.
“아무튼 전 이제 큰일 났어요. 아침 수련하고 나오니 이미 학교나 서울 쪽에 남은 애들은 3대 길드가 다 쓸어 갔어요. 히잉.”
“뭐, 시험 점수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니~ 힘내라. 아니면 차라리 포기하고 그냥 개인 수행에 몰두하는 것도 괜찮지 않아?”
“그렇게 나대서 S급 각성자에게 밉보이면 어떻게 해요? 학원장 그 아줌마, 서울 길드 에이스이기도 하단 말이에요. 못하는 건 문제 없는데 노력 안 하는 놈은 가만 안둔다고! 게다가 저는 같은 무투가 계열 클래스라서 특히나 눈에 들어 버렸어요. 하아~”
그것참 안쓰럽군.
하긴 나도 저 심정을 공감하는 게, 지나가면서 플레이트 메일이나 중갑을 입은 사람을 보면 움찔움찔하고 관심을 가지곤 했다.
이게 공감대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각성자계를 이끌어 갈 천(天) 클래스의 인재인 것도 모자라서 학원장과 같은 계열이니 관심을 사는 건 당연하리라.
“그러면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어쩔 수 없죠. 그냥 대충 남은 애들 데리고 가서 눈치 안 받을 만큼 D급 던전 여러 개 하고 끝낼 거예요. C급부터는 장난 아니니까요. 아니면 같이 가서 C급 던전 경험도 쌓을 겸 트라이할래요?”
“아니, 됐어. 40레벨도 안 됐는데 무슨…….”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 이제 스테이터스 A급 아니에요? 성장치도 최상급으로 보이는데? 지금 C급 같이 가실래요? 스태프로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싫어.”
가뜩이나 마인(魔人) 지정까지 받게 될 운명인데, 내가 왜 너랑 던전에 가서 힘을 드러내겠냐?
협력자로서의 관계는 좋았지만, 파티원이니 뭐니 하는 건 사양이었다.
애초에 내 노선 자체가 헌터 생활을 최대한 하지 않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쳇, 그럴 줄 알았어요. 그렇지만 참 아깝긴 하네요. 오히려 아저씨 같은 사람이 헌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는 것도 거의 없으면서 뭘 믿고?”
“전에도 말한 것 같지만… 보통 각성자 되고 막 성좌 선택받고 그래서 힘을 얻으면 누구든 자신감이 넘치고 오만한 감정이 생기게 마련이에요. 저도 그랬고요. 엄마한테 호되게 교육받아서 이 정도인데……. 아저씨는 그런 게 전혀 없잖아요.”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냥 나는 겁 많고, 더 이상 노력이니 뭐니 하는 걸 귀찮아하는 적당한 놈일 뿐이다.
난데없이 해 버린 각성 때문에 세상에 휘둘리기 싫어서 발버둥 치는… 대단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비겁한 어른이다.
하지만 난 그 말을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다.
아무리 썩어 빠졌다곤 하지만 자신감과 희망으로 가득한 아이의 눈빛을 꺾는 건 쓰레기 같은 짓이니 말이다.
“아무튼 그럼 전 이만 갈게요. 가능하면 그냥 내일 빨리 던전 멤버 모아서 일 처리하고 단련이나 더 해야겠어요. 점수는 뭐~ 한번 눈치 받고 말죠. 그럼 갈게요.”
“어, 수고해라.”
그렇게 그녀를 보낸 뒤, 나는 한숨을 쉬며 기왕 이렇게 된 거 내일 낼 던전 보고서를 미리 처리하자고 생각하며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
개성, 스캐빈저 도시. 특급호텔 옥상 파티장.
“하하하하.”
“깔깔깔.”
정민수가 사라진 뒤, 주인이 없는 이 호텔 옥상 야외 파티장에서는 스캐빈저들의 도시라고는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잘 차려입은 음악대가 만드는 아름다운 연주 속에 파티장의 손님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음식을 즐기러 돌아다녔다.
그리고 주최자 또한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며 대접을 계속한다.
“오늘 메인 요리는 러시아에서 특별히 공수한 C급 암컷으로 18세가 안 된 탄력 있고 부드러운 육체의 풍미와 촉촉함을 더욱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72시간 수비드로 조리한 다음 모든 신체 부위를 조금씩 떼어 내 피와 내장으로 제조한 소스로 마무리 지은 한 접시 요리입니다.”
주최자인 핏빛 신관복을 입은 노년의 남성은 다른 이가 끌고 오는 카트에서 요리를 들어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제조법에 대해 차분히 설명해 준다.
호텔의 셰프로는 어울리지 않는 외양의 그는 자신의 손님들이 음식을 즐기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요리의 풍미를 즐겼다.
[헥헥! 헥헥! 이게 이 목사의 신작인가! 컹컹! 벌써부터 군침이 도는군!]
[꼬꼬꼭! 어쩜 보기에도 아름다워. 꼬고꼬! 우린 왜 이렇게 만들 생각을 못했을까?]
[음머어, 그렇지만 나는 양이 적어서 조금 그래. 저번처럼 박력 있게 바비큐로 해 주지.]
[메에에! 메에에! 그럼 너는 밖에 가서 다른 녀석들처럼 시체나 퍼먹든지? 많이 먹는 게 아니라 맛. 있. 게 먹. 는. 다. 를 알려 준 이 목사에게 감사해라.]
하나, 그 요리를 즐기는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소, 돼지, 말, 양, 닭의 머리를 가진 짐승 인간. 하나 그 짐승은 인간의 모습이면서도 뿔과 날개가 달리고, 덩치가 기괴하게 크거나 눈빛에서 보이는 악(惡)성은 정상적인 생물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짐승 인간의 형상을 한 악마들. ‘이 목사’라는 남자가 대접하고 있는 이 악마들이야말로 어설픈 인간 사도와 다른 존재들, 성좌 도살왕의 진짜 부하들이며 그의 전당을 수호하는 아크데몬 비스트들이었다.
[음머어, 음머어~ 그렇지만 역시 너무 맛있어. 음머어~]
[꼬꼬꼭, 천천히 먹으며 음미해라. 고기의 질도 질이지만 영혼의 맛도 고통, 비탄, 절망으로 잘 숙성되었어. 어떻게 했나?]
“재료는 특별히 자기 어미의 고기를 먹였습니다. 눈앞에서 팔다리를 잘라 조리해서 먹였죠. 그렇게 한 덕분에 메인 요리의 영혼은 더욱 맛있게 숙성된 것입니다.”
[꼬꼬고꼭! 정말 천재적이야. 이 목사! 꼬꼬꼬!]
닭의 모습을 한 악마가 신나서 접시를 비우며 이 목사를 칭찬한다.
반면 음악 연주자들과 파티장에서 일하는 다른 스캐빈저, 마인(魔人)들은 새파래진 안색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그들도 인류를 배신한 자들이지만 저기 악마와 어울리는 ‘이 목사’만큼 미친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꼬꼬꼬곡,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저번에 먹은 그 튀긴 게 더 마음에 들더군. 그걸 주문할 수 있나? 꼬꼭!]
“물론이죠. 오늘 만찬을 위해 고기는 충분히 보관하고 있기에 주문만 하면 바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프라이드 휴먼 한 마리, 그럼 순살로 하실 건가요? 뼈 있는 걸로 할까요? 양념은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꼬꼬꼬, 양념 없이 순살로 해 줘. 꼬꼬꼬. 아! 소금이랑 내장도 튀기는 거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나다. 프라이드 휴먼 한 마리, 순살, 지방이 많은 그 돼지 체형의 수컷 남자 놈으로 만들어라. 레그혼(Leghorn) 님에게 갖다 드리면 된다.”
이 목사는 주문을 받자마자 무전기로 주방에 연락을 하였다.
그러자 잠시 후, 찢어질 듯한 남자의 비명 소리가 음악이 연주되는 옥상에 울려 퍼졌다.
그것을 들은 레그혼이라는 악마는 만족한 듯 껄껄 웃었고, 이 목사 또한 고객이 만족한 모습에 즐거운 듯 성자(聖者)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부르는 다른 악마에게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