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오오오… 이거! 죽이는데?”
손을 울리는 이 묵직함.
이때까지 무기의 무게를 크게 못 느끼던 것에 비하면 이 묵직함은 나에게 처음으로 무기를 들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해 주었다.
낯선 무기였지만 살짝 양손으로 들었다가 한 손으로 휘둘러 보면서 천천히 친해지기 시작한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하핫! 그놈은 이제 손님 겁니다. 하하핫!”
“으음…….”
“일단 다른 옵션은 없고, 오직 통짜 ‘신의 강철’로 만들어진 것이라 단단하고, 무겁고, 마법도 안 먹히고, 인챈트도 안 되어 있고 마법 면역입니다. 애초에 본래 티탄을 가두는 데 쓰던 물건이니까요. 하하하핫!”
즉, 무(無) 옵션이라는 거군.
단단하고, 무겁고, 마법도 안 먹히지 않는다.
단순하고 알기 쉬운 옵션이다.
“하지만 이거 전설급이라 가격이…….”
“그냥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영웅님이 원하시면 비밀로 해 드리죠. 모양만 같은 물건을 저 안에 넣어 두면 아무도 모를 겁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아니, 진짜로 무기의 주인을 찾았다고 그냥 주는 거라고?
아무리 무(無) 옵션이라고는 하지만 이거 분명 재질이 신의 강철이니 뭐니 하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하지만 이거 ‘신의 강철’로 된 거라 그거 가격만 해도 수십억은 될 텐데…….”
“에이, 너무 적습니다. 그 정도 양이면 아마 수천억은 할걸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의 강철’을 제련할 수 있는 자는 헤파이스토스 님밖에 없습니다. 다른 친구가 할 수 있으면 그걸 내버려 뒀겠습니까?”
“아, 아아…….”
“물론 그분의 말씀으로는 초신성의 폭발이나 태양 같은 초고열 행성에 집어넣고 녹이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스케일에서부터 이미 필멸자들로서는 다룰 수 없는 물건이죠. 다룰 수 있으면 진작 다른 무구로 만들어졌을 겁니다.”
귀중한 금속이지만 인류의 능력으로는 다룰 수 없는 거라 역으로 쓸모없어진 건가?
게다가 무겁기도 무거워서 SS등급의 근력이 아니면 다룰 수 없는 데다 심지어 다른 옵션도 없으니 누구도 손대지 못 할 무식한 녀석이다.
“아무튼 감사히 쓰겠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부디 비밀로…….”
“예, 물론입니다. 영웅에게는 각각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요. 헤파이스토스 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죠.”
성좌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면 충분히 신용해도 될 것이다.
게다가 다른 길드도 아니고 올림푸스면 글로벌 초대형 길드라서 신용도 올라간다.
아무튼 그 이후 대강 살 만한 걸로 아영이가 주문한 검과 창들을 챙겨서 결제한 다음 숍을 나온다.
“어디 갔었어요? 어? 무기는 사셨네? 근데 방어구는 안 사요?”
“사이즈 맞는 게 없어서 VIP룸 들어가서 신체 사이즈 재고 이미 주문해 놨어. 오면 전화로 연락 준대. 아무튼 이것들은 모두 인벤토리에 넣고…….”
“아! 그러면 문제없겠네요.”
그리고 이곳 점장과 티탄의 말뚝을 가지고 미팅한 것을 자연스럽게 갑옷을 맞춘다는 핑계로 숨겼다.
협회 세트로 버틴다는 핑계가 안 먹히니 댄 거짓말이었지만, 이상한 부분이 없었기에 문제없이 숍을 나왔다.
이제 고작 가게 한 곳을 들렀다가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긴 시간을 보낸 느낌이었다.
‘…이제 또 뭘 할지 두렵군.’
“아~ 아깝다. 나도 무구 선택 받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다아~ 아저씨도 해 보지 그랬어요? 가능성 있어 보였는데…….”
‘왠지 미안해서 할 말이 없군.’
사실상 무(無) 옵션인 티탄의 말뚝이지만 일단 전설급은 전설급이니 선택받은 거라 할 수 있어서 미안한 나였다.
아무튼 말하지 않는 게 최선일 것이다.
“다음엔 어디 갈까요?”
“일단 밥이나 먹는 게 어떨까? 김밥헤븐은 어떠니?”
“거기가 어디예요?”
아니, 김밥헤븐을 모른다고? 그 전설의 분식집이자 웬만한 건 다 주문할 수 있는 식당을?
정말 의외의 부분에서 얘가 아가씨 같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B급 각성자, 천(天) 클래스, 중견 길드의 자제인 만큼 아마 서민 생활과는 좀 거리가 있겠지.
“그럼 딴 데 갈까?”
“아뇨. 아저씨가 말하니까 가고 싶어졌어요. 가요! 가요!”
“어, 어, 그래. 하지만 입에 안 맞아도 뭐라고 하지 마라. 뭐, 안 맞는 게 없긴 하겠지만…….”
맛 자체는 무난할 것이기에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휴대폰을 열어서 근처에 있는 김밥헤븐을 검색하고 그곳으로 아영이를 데려간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숍에서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학교 내에서부터 나를 쫓던 녀석이 다시 우리를 쫓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저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대체 저건 누구고 뭔 생각일까? 인생 정말 피곤하게 만드네. 은근 어설프기까지 해서 더 신경 쓰여. 게다가… 한 놈이 아니네?’
그렇지만 지금 움직이는 건 좋지 않기에 일단 모른 척하며 김밥헤븐에 들어와 곧바로 주문부터 하기 시작한다.
***
‘이제야 어디 들어갔네.’
유성원을 추적하는 소녀, 청룡 길드 소속이자 아카데미아 학생인 이지영은 둘이 김밥헤븐에 들어간 것을 보고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근처 카페에 들어간다.
그녀는 길드의 명으로 백야 길드에 대한 조사를 하던 중 전속 스태프였다가 보충 스태프로 토벌대에 참여했던 유성원을 쫓기 시작한 거였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데…….”
현재 청룡 길드는 후계자의 사망에 이어서 토벌 실패라는 연이은 안 좋은 소식에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특히 정민수 토벌 실패에 S급 이상의 각성자가 나타난 점, 토벌에 참여한 길드 안에 숨은 S급이 있을 가능성이 제시되자 더더욱 찾기 위해서 난리였다.
“게다가 소문은 이미 다 퍼져 버렸네. 후우~”
<협회 뉴스-토벌에 참여한 길드 모두 수수께끼의 ‘황금 기사’ 보유에 대해서 부정 중.>
청룡 길드로서는 망신살 뻗친 이야기였지만, 문제는 다른 길드와 함께한 토벌이라는 점 때문에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다는 거였다.
또한 드론을 비롯한 블랙박스는 다른 길드도 운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언론사에 바로 전해지면서 청룡 길드의 토벌 실패 소식까지 퍼지는 중이었다.
‘X튜브에서도 지금 죄다 그 황금 기사에 대한 내용만 다루고 있지.’
<황금 기사는 누구일까?>
<토벌에 참여한 다섯 곳 중 기사 관련 클래스를 가진 곳은?>
<길드 드론에 찍힌 ‘황금 기사’의 스킬 위력은?>
<협회 측은 숨어 있는 S급 각성자에게 정체를 밝히고 나와 인류에 공헌할 것을 호소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튼 지금 서울은 물론 주변 지역의 각성자계는 모두 후끈 달아오른 상태.
토벌에 참여한 다른 길드의 각성자들은 이미 이보다 더한 감시와 시선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혹시 이 자리에도 자기 말고 다른 이가 감시를 같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와아! 뭐예요? 여기? 왜 이렇게 맛있어요? 존맛탱! 아영이 인생 절반 손해 봤어!”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하고 먹으렴.”
“네에에! 아주머니, 여기 쫄면, 떡볶이, 튀김 1인분씩 더 주세요!”
“돼지냐?”
“꾸울꿀꿀꿀! 부히익! 부히이이익!”
“으악! 알았으니 얌전히 먹어!”
되지도 않는 만담을 하면서 떠드는 꼴에 인상을 찌푸린 그녀는 유성원 쪽을 계속 주시하며 마법으로 탐지를 시도한다.
그동안 이동하느라 쓰지 못했고, 무기 숍에선 마법을 함부로 사용하면 문제가 생기기에 할 수 없었지만 지금 이곳은 일반 가게라서 사용이 가능했다.
[대상 탐지 결과]
[유성원]
스테이터스
Str:■■■■ Dex:■■■■ Vit:■■■■ Mag:■■■■
[스킬]
■■■■■■■■■■■■■■■
확인 불가
[Log:현재 대상에게 강력한 수호가 걸려 있거나 방어 스킬 혹은 아티팩트를 사용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일개 스태프인데… 뭐지?”
보통 스태프가 각성자가 아니라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강력한 마법 방어 대책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그는 신아영의 전속 스태프이며, 트레이너로 신고된 자였다. 그런 이가 마법에 대한 대책을 저렇게까지 해 둘 이유가 없었다.
‘보통 저 정도로 할 리가 없는데… 설마?’
누가 봐도 이상한 조짐에 그녀는 바로 촉이 오기 시작한다.
어떻게 해서든 황금 기사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혈안이 된 지금 이런 작은 조짐도 무시할 게 아니었기에 그녀는 유성원의 중요도를 올리고 계속 쫓기로 한다.
‘알려서 증원받는 것도 좋지만, 내가 먼저 움직이면… 저기랑 저쪽에 있는 사람들도 움직일 거야.’
그녀가 눈치 보는 이유. 지금 저들을 따라붙은 게 자신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알게 모르게 동업자(?) 혹은 같은 아카데미아 학생들로 보이는 인간들이 아까부터 계속 거슬리는 중이었다.
‘일단 이대로 가자. 다른 단서도 찾아야 하니까…….’
“후우~ 배부르다. 그럼 이제 뭐 할까요? 아, 맞다. 아카데미아에서 사용하는 시뮬레이터 프로그램을 응용한 VR 게임방 있는데 거긴 어때요? 아니면 던전 탈출 카페도 괜찮고요.”
“탈출 카페는 좀 재미있겠군. D급부터는 수수께끼가 있는 던전도 있다고 했으니 단련도 되겠어.”
“아니, 헌터 일도 제대로 안 하시는 분이 던전 공략은 엄청 신경 쓰네요.”
“레벨 업은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스태프라도 말이야.”
대화를 나누면서 데이트 같은 분위기를 즐기던 둘은 그대로 던전 탈출 카페부터 시작해서 여기저기 놀러 다닌다.
마치 추적자의 존재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듯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미친 듯이 돌아다니던 두 사람은 한참 어두워진 다음에야 아카데미아 입구에 도착했다.
“후아아아~ 엄청 놀았네요. 이렇게 각 잡고 논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누구랑 놀러 다닌 게… 으음… 생전 처음인 것 같군. 회식 같은 거 빼면 말이지.”
“아저씨, 직장 친구도 없었어요?”
“직장 동료랑 어떻게 모든 걸 터놓고 나누나?”
“그러면 설마? 앗… 아아아아…….”
유성원, 올해 서른둘.
어릴 때 그랜드마스터 사태로 부모를 잃고 천애고아가 되어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 시설에 있었고, 취직하고서도 마음을 터놓는 친구 하나 없는 인생.
그것을 눈치챈 신아영은 경악하면서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동정하는 눈으로 보지 마라. 너도 천(天) 클래스라 친구 없잖아!”
“그래도 30년 넘게 없는 아저씨보단 낫거든요?”
“너도 금방이다.”
“하아~”
가슴속에 떠오르는 말들은 많았지만 이지영은 한숨으로 대체한다.
아마 그녀의 심정은 지금 유성원을 쫓는 다른 이들과 같으리라.
그렇게 한참 잡담을 나누던 둘은 서로 숙소가 다르기에 드디어 갈라졌다.
그리고 유성원은 홀로 아카데미아의 스태프용 숙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한다.
‘뭐지? 이 늦은 시간에 어딜 가는 거지?’
이지영은 의문을 품으면서도 계속해서 그를 쫓았다.
물론 다른 추적자들도 같이 쫓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