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하여간 이 친구들, 멍청해서 일이 쉽다니까~ 풉!”
[크오오오오!]
[인간, 먹는다! 크하하핫!]
[깡통 전차, 부순다.]
정민수는 자신이 부른 보스 몬스터들이 난동을 부리는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현재 D급 악마의 뼈와 가죽으로 만든 위장 슈트를 입고서 이곳까지 잠입한 다음 트레일러들 사이에서 보스 몬스터들을 부르는 포탈을 연 것이었다.
‘블러드 퍼팻. 역시 상위 등급 스킬은 정말 대단하다니까~ 정말 마음에 드는군.’
[블러드 퍼팻(S등급 스킬) Lv.3]
특성
도살왕의 가호를 받은 자만 사용이 가능한 비술. 도살왕의 포인트나 마물, 인간의 피와 살을 이용해 사냥을 위한 미끼인 ‘블러드 퍼팻’을 하나 만들어 낸다. ‘블러드 퍼팻’은 외양뿐만 아니라 스테이터스, 스킬 정보 모두 자신과 일치해 보인다. 그리고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더 많은 기능이 부여된다.
Lv.1 외양 및 정보 일치*
Lv.2 행동 및 일반, 희귀 등급 스킬*
Lv.3 영웅 등급 이상 스킬 및 고급 전투 행동*
Lv.4 블러드 퍼팻이 블러드 퍼팻 1개를 만들어 낼 수 있음. 단, 소모 재료 혹은 포인트는 본체에서 지불해야 함.
‘스킬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 스캐빈저 놈들을 잡아먹었는데 괜찮군. 문제는 결국 내 분신이라 내 능력을 못 뛰어넘는 거지만. 그래도 스킬 레벨 4가 되면 나 혼자 군단이 완성된다. 크크큭.’
자신의 블러드 퍼팻이 블러드 퍼팻을 만들고 또 그 블러드 퍼팻이 블러드 퍼팻을 만드는 무한 증식.
재료나 포인트가 드는 게 문제였지만,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신뢰할 수 있는 병력을 무한정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어쨌든 밝은 미래가 확정된 상황이니 그는 여기서 약한 놈들을 잔뜩 처리해서 경험치와 포인트를 벌 생각이었다.
“으아아아아악! 저, 저것들을 어떻게 해야?”
“빨리 천용 형님 불러! 컥!”
‘음음~ 역시 날로 먹는 게 제일이지. 도살왕 님께 바칠 시체도 건지고~ 돈도 건지고~’
아무튼 지금은 미래 설계보다는 한창 A급, B급, C급 보스 몬스터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고군분투하는 길드의 각성자들을 암살해 나가며 이득을 불리는 게 최선이었다.
‘이제 와서 놈들이 돌아와도 피해 수습으로 시간이 지연될 테니, 이득이나 챙기자.’
놈들이 블러드 퍼팻을 파괴하고 돌아온다고 해도 진형 내부에서 난동 부리는 A급 던전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기엔 매우 힘들 것이다.
심지어 B급, C급 보스 몬스터까지 꺼내 놨으니 S급 헌터와 A급 각성자들이라고 해도 꽤 시간이 걸리는 건 물론 피해는 상당해서 추가적인 추격은 무리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본 이득으로 더 강한 힘을 얻는다는 거지. 흐흐흐.’
물론 정민수로서는 나름 위험한 도박수이긴 했다.
스캐빈저나 마인의 마인드에 맞지 않은 직접적인 돌입. 만약 자신의 수를 눈치채서 빠르게 돌아오거나 아니면 불안감을 가져서 이곳에 A급 각성자 서넛 정도가 남아 있었다면 꼼짝없이 당했겠지만, 그건 이제 만약의 이야기다.
“컥!”
“끄아아아악!”
“흐흐흐, 오~ C급쯤은 급소면 한 방이지. 아이고, 쉽다, 쉬워~ 이게 물 반, 고기 반이구나~”
손쉽게 트레일러 사이와 밑으로 기어 다니면서 쉽게 쉽게 길드의 각성자들을 암살하고 처리하여 시체를 인벤토리에 집어넣는 정민수였다.
오늘 수확들까지 바치고 레벨 업을 한다면 도살왕의 직속 악마들마저 뛰어넘는 사도도 꿈이 아닐 거라고 상상하며 화살통에 떨어진 핏빛 화살을 추가로 보충하면서 잠시 숨을 돌린다.
***
자다가 난데없는 기습으로 인해 벌어진 비상사태에 나는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스태프로서의 임무를 지속하고 있었다.
처음엔 잘 싸우면서 마인들을 타격하러 간다는 길드 사람들의 통신 소리를 들으면서 안도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거대 몬스터 3마리 때문에 일대는 난장판이 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대피! 대피해!”
“몬스터들이 밀고 온다. 계속 쏴!”
“진형이 무너져서 밀고 들어온다. 빨리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막아!”
“으아아악!”
그야말로 생지옥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죽어 가는 광경이 실시간으로 보이고 있었고, 전쟁터는 지옥이 되어 간다.
고위 각성자와 헌터들의 부재로 인해 진형이 붕괴되자, 은탄의 화력에 녹아내리던 E급, D급 악마들이 들어와서 깽판을 치기 시작했다.
“청룡의 발톱! 다들 자리를 지켜! 진형이 무너지면 안 된다!”
“그럼 니들이 저것 좀 어떻게 해 봐!”
‘난리도 아니군.’
물론 남아 있는 각성자 길드원들 덕분에 초반에는 잘 막을 수 있었지만 잘 싸우다 이상하게 하나둘 쓰러져 나가는 광경이 보였고, 피해는 삽시간에 점점 번져 나갔다.
특히 저 거대한 A급 보스 몬스터 용족 도살자가 벌이는 파괴 활동은 충격적이었다.
웬만한 대형 몬스터가 올라타거나 들이받아도 멀쩡하도록 설계된 트레일러들이 장난감처럼 부서지는 걸 보면 보통이 아니었다.
‘그 덕분에 내가 자리 안 지키고 돌아다녀도 이상할 게 없어서 다행이지만…….’
“으아아아아! 어, 어떻게 해? 뭣 좀 해 봐!”
“일단 길드장님들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그러니 다들 힘을… 으악!”
“스태프들은 트레일러 문 잠그고 나오지 마!”
“아니! 저 몬스터에게 부서지는데! 관짝 되라는 거냐?”
전장의 상황은 혼란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이상하게 침착했다.
하긴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는 입장이라서 그렇겠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처지이고, 여차하면 싸울 전력도 갖추고 있으니 여유가 나오는 거겠지.
‘기사들을 소환할까? 아니, 위험부담이 너무 커.’
안 그래도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아군이 아닌 자들을 늘리다가 오히려 공격받을 수 있다.
특히 용인인 크록베인과 심연의 기사인 가울프는 누가 봐도 몬스터나 적으로 오해받기 쉽기 때문에 꺼낼 수 없었고, 섬멸과 아칼론은 전에 한 번 노출이 되었기에 신중해야 했다.
‘으음, 신중하게 가자.’
그나저나 사람이 죽는 건데, 아무리 봐도 그냥 벌레가 죽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불에 타고, 트레일러에 깔리고 부서지고, 악마들에게 먹히는 모습이었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너무 익숙해진 탓이겠지.
아카데미아에 취직해서도 그렇지만, 그 ‘이전’에도 이런 광경은 볼 만큼 본 탓이리라.
‘아무튼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제 어쩐다?’
토벌. 여유 있고 안전할 거라면서 이게 무슨 꼴인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일단 아영이 어머니를 데리고 도망쳐야 하긴 했는데, 그분은 지금 이곳에 없었다.
‘으음, 그러면 이제 어쩐다? 도망칠까?’
띠링!
[명예를 드높일 수 있는 전장에서 싸우지도 않고 도망부터 생각하다니! 기사의 마음가짐이 아니로다! 자신이 할 일을 제대로 생각하라!]
‘…염병.’
기사도 시스템님은 여전히 내가 마음에 안 드시나 보다.
나도 댁 마음에 안 들어. 멋대로 특성 줘 놓고, 기사가 되니 마니 하며 강요하니 말이지.
아무튼 아영이 어머님도 어머님이지만, 그녀의 길드를 온존하려면 결국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 건 맞았다.
‘그러면 일단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볼까?’
도망치는 건 뭣 좀 해 보고 난 뒤에 생각해도 될 문제였다.
그렇게 마음먹은 나는 먼저 해야 할 일을 찾는다.
‘우선은 저놈들을 소환한 녀석부터 찾자.’
난데없이 A급, B급, C급 던전 보스 몬스터가 나타날 리가 없다. 반드시 소환자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 포탈은 잠깐 열렸다가 사라졌으니, 던전의 등장은 절대 아니었다.
‘나’ 때와 다르게 요즘 포탈 감지 장치는 워낙 좋으니, 소환자를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아무튼 마인(魔人)이라면 분명 각성자를 노리겠지?’
나는 미니맵을 열어 둔 채로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이변을 찾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점으로 나타나는 인간들 속에서 그놈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캐빈저나 마인의 마인드를 완전히 읽지 못하니, 또 어느 길드를 노릴지도 예상이 안 된 점도 있다.
‘으음, 청룡인가? 아니야. 거기는 길드의 진형이 너무 두꺼워. 그러면 다른 길드인가? 어렵다.’
진짜배기 마인(魔人)은 역시 수준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지금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들이 이렇게 설치면 좀 신나게 나서도 되련만, 놈은 철저하게 프로 의식을 지키며 침착하게 암살해 나가고 있었다.
이 혼란 속에서 놈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만큼 나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으음, 최악의 경우엔 아영이 어머님만 냅다 납치해서 그냥 도망쳐야 하나? 아니면 나도 스캐빈저처럼 여기서 한몫 잡는 방법도 좋겠…….’
가능한 한 비싼 물자나 협회 물건을 챙겨 도망칠 생각을 하던 중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요점은 상대가 거부감이 들고 싫어할 만한 짓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마인(魔人)이 지금 하는 짓은 뭔가? 이 혼란 속에서 각성자들의 시체를 거두어서 자신의 성좌인 도살왕에게 바치고 예쁨을 받는 거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생각이 번뜩인 나는 부서진 의료용 차량으로 가서 안에 쓰러진 의료 스태프의 옷을 벗겨 내 입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굴과 몸 곳곳에 피를 묻히는 것도 잊지 않고, 포션과 의료품이 든 가방과 무전기를 챙기고 곧바로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무전기에서 나오는 호출 요청을 들으면서 미니맵을 열고 바로바로 움직였다.
***
“제, 젠장! 윽……!”
“보자… 흐흐, 대박! B급 각성자군. 숨이 거의 끊어진 것 같으니 이제 마무리를… 응? 제길!”
“괜찮으십니까?”
한참 사냥에 몰두하던 정민수는 대박을 건졌다고 생각하고 B급 각성자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의료 스태프가 나타나서 그에게 달려와 호흡과 맥박을 확인하고 상처를 치유하려 하고 있었다.
‘젠장, B급 놈인데… 큭!’
정민수는 의료 스태프를 향해 보우건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길까 고민했지만, 놈은 소란스럽게 손을 흔들어서 지원을 요청했고 이미 다른 각성자들이 오고 있었다.
그에 정민수는 아쉬운 듯 혀를 차면서 그 자리를 이탈했다.
아직 사냥감은 많이 있었다.
‘무엇보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
“A급 보스 몬스터!”
“다들 정신 차려라!”
“우선 남은 인원 보고부터!”
그사이 블러드 퍼팻에 낚였던 각성자들이 하나둘 복귀하였고, 길드의 지휘권을 회복하며 보스 몬스터들에게 본격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그것과 동시에 정민수는 아직도 아까운 B급 각성자를 바라보며 혀를 찬다.
‘쳇,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지금 모습을 드러냈다가는 빼도 박도 못하기에 아쉬움을 달랜 그는 다른 사냥감을 노리기 위해 움직였다.
이제 슬슬 막바지인 만큼 굵직한 놈들 한두 놈 더 주워서 돌아갈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찰나, 마침 부상당한 채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각성자 한 놈을 찾아낼 수 있었다.
‘좋아. 딱 먹기 좋은 놈이 있군. 날로 먹는 게 최고지.’
“부상자 분! 포션 받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몬스터랑 싸우다가 다 떨어지는 바람에…….”
“말보단 우선 치료부터!”
‘뭐야? 또 저놈이야? 젠장! 하긴 의료 스태프면 무전이…….’
뿌득……!
그렇게 보우건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 하는 순간, 갑자기 아까 본 의료 스태프가 나타나서 부상자를 몸으로 가리며 그에게 포션을 먹여 준다.
정말 이가 갈리고 열이 받는 상황이었지만, 기습에 성공한들 시체를 챙길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니 적어도 저 망할 의료 스태프에게 한 방 먹여 줄 생각을 하고, 보우건에 장전된 핏빛 화살을 뺀 뒤 일반 화살을 장전해서 겨눈다.
‘고작해야 의료 스태프 주제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날 방해한 건 용서할 수 없지.’
딸깍, 피슝!
각성자도 아닌 스태프 주제에 자신의 일을 두 번이나 방해했다는 점에서 괘씸죄가 추가되었다.
벌레 같은 놈을 처단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긴 그는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한다.
“으아아아아아아!”
‘개자식, 이제 방해꾼은 사라졌… 어!’
비명을 뒤로하고 떠나려는 순간, 등 뒤에서 전신을 찌르는 듯한 살기(殺氣)가 느껴진다.
그것에 놀라 다시 고개를 돌리자, 황금 갑옷을 입은 기사가 어느새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