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3일 뒤.
E급 던전 ‘살을 먹는 개들의 우리’.
캐애애앵!
[보스-마견(魔犬)의 우두머리 ‘벨로크’를 처치하였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했지만 이곳엔 명예가 없노라.]
[Lv.30이 되었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선택-스킬 포인트 +1 or 기사 소환 or 무구 증정.]
“음, 드디어 30레벨이 되었군. 후우~ 드디어 추가 소환이다!”
[‘기사 소환’을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을 도울 기사를 소환합니다.]
네 번째 기사 소환! 한 명 더 오게 되면 드디어 나의 파티라고 할 만한 것이 완성된다.
아칼론, 섬멸, 크록베인에 이은 네 번째 기사!
누가 나올지 기대하며 바라보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심연의 기사-가울프]
[흠하하하하, 오랜만에 맛보는 물질계의 공기군. 으음, 그대가 나의 계약자인가?]
뭔가 엄청 멋있는 녀석이 나타났다.
키는 나보다 크고 육중한 느낌의 외모에 칠흑의 검은 갑옷과 다 해진 망토, 거기에 검과 방패를 든 인간형 기사였다.
그런 포스 있는 모습에 낮고 중후한 목소리까지, 남자의 로망이 결집된 그런 모습이었다.
무게감 있게 나타난 그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검을 내려놓으며 예를 갖춘다.
[으음~ 인상이 마음에 든다. 계약자여, 그대를 따르지.]
“바로?”
[나 가울프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가?]
“그런 건 아닌데, 혹시나 원하는 게 있는가 싶어서 그렇지.”
[내가 물질계에 나온 사실 자체가 계약 조건이다. 심연 속은 너무 심심하거든.]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 놈이었지만, 그래도 강해 보이는 외양인지라 딱히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어쨌든 이로써 나까지 포함 5명의 포진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역시 내가 바라던 기능적인 면이나 보조적인 면을 가진 기사는 하나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드디어 한 파티인 5명이 모였군.”
“드디어 기사단의 형태가 갖춰졌군요, 단장님!”
[…주인… 배고프다.]
[이 친구들은 어디서 계약한 거지? 참 신기하구나. 아주 재미있군. 계약자여, 이 친구는 순수 쇳덩이 같은데?]
[가울프 경에게 아군 인식 코드 부여 완료.]
하지만 다섯 전부 다 검을 들고 근접전을 하는 ‘기사’ 클래스 계열.
그래도 한 명쯤은 마법이나 치유 능력을 겸하거나 다른 능력을 가진 ‘기사’가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그 왜 마법 기사나 성기사 같은 거 있잖아. 왜 그런 애들은 안 오냐? 하나쯤은 올 수 있을 텐데……. 후우~’
아무튼 한탄해도 변하는 건 없으니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모두를 성소에 집어넣고 홀로 아카데미아로 복귀한 나는 던전 보고서와 드롭한 소재, 그리고 마정석을 제출하고 30레벨이 되었음을 알린다.
그러자 아영이는 살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며 말한다.
“30레벨이라……. D급 던전 가야겠네요?”
“그래. 그러니 적당히 서류 부탁한다.”
“으음, 근데 D급은 훈련 메뉴로는 무리니까 가짜 파티를 서류로 만들어 드릴게요. 3인 파티로 하면 되겠죠?”
가짜 파티.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인원을 채워서 파티인 것처럼 속이고 던전에 신청을 넣을 수 있게 하는 조치였다.
일단 나를 올리고 남은 2명은 허위 정보다.
물론 완전 허위가 아닌 게, 길드에서 쉬거나 혹은 사정이 있어서 던전을 돌지 못하는 인원들의 인적 데이터를 쓰고 수수료를 내기 때문에 사실은 상부상조였다.
쉽게 말하면 자격증을 대여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수수료는?”
“정보 빌려 주는 사람 거 각각 던전 수입의 5퍼센트씩, 그러니까 10퍼센트요.”
인적 사항만 빌려 주는 거치곤 상당히 비쌌지만, 나야 크게 돈에 신경 안 쓰니 상관없었다.
그렇게 가짜로 만든 파티 데이터를 받고서 신청할 준비를 마친 나는 D급 던전 리스트를 물색한다.
“으음~ 간만에 밑으로 내려가 볼까? 계속 악마만 잡았더니 왠지 지겨운 느낌이군.”
“서울 떠나서요?”
“가능하면 다양한 몬스터와의 전투 경험을 갖고 싶은데… 잘 찾아봐야겠군.”
“아, 맞다. 저 다음 대련은 참여 못해요.”
“음? 그게 내 업무 전부인데, 갑자기 참여 못한다니?”
“길드에 동원 명령이 떨어졌거든요. S급 마인(魔人) 토벌전에 참여하라는데, 그거 준비하는 거 도와야 해요. 여기는 한가해서 그렇지, 지금 길드 본사는 난리 났어요.”
또 어떤 마인(魔人)이 정신줄 놓고 설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보통 사태가 아닌 것 같군.
그런데 S급? 또 난데없이 고등급 마인이군.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성자들 사이에서도 B급 이상이 귀한데, 스캐빈저와 마인에서도 B급 이상은 매우 귀하다.
아카데미아에서 귀하게 키워도 사상자가 나는 판국인데, 그야말로 생판 야생에서 서로를 죽이는 데 거리낌 없는 스캐빈저의 세계는 어떨까? 더욱 희귀할 수밖에 없다.
“S급 마인이라~ 어디서 건너온 놈이지? 가능성으로 치면 영원한 분노 성좌가 보낸 거려나?”
“무슨 소리예요? 얼마 전 뉴스에 나온 그 마인(魔人)이라구요. 고성준을 죽인 그 마인.”
“…그건 A급 아니었나?”
“그 A급이 알고 보니까 S급이었대요. 도살왕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B급으로 추정되었던 마인이 S급인지~”
이건 참 예상 밖의 일이군.
내가 끌어들여서 고성준을 처리하게 한 그 스캐빈저가 S급 마인이 되었을 줄이야.
B급 각성자를 바쳐서 S급이라니. 그놈, 오지게 재수가 좋은가 보군.
아니면 이미 A급에 준하는 실력과 능력을 가졌을 수도 있다.
‘여하튼 별로 좋은 일은 아니군.’
“아무튼 더 세력이 커지기 전에 청룡 길드가 주가 되어서 5개 길드에서 A급 각성자 5명을 동원하기로 했는데, 우리 어머니가 그중 한 명이 됐어요. 그 외의 병력도 동반해야 하는데…….”
“그렇군.”
“그거 때문에 아마 한 2주간은 대련 못할 것 같아요. 그러니 던전 쭉쭉 돌아서 레벨 업 해 주세요. 으음…….”
아영이는 뭔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나는 일단은 물러나기로 한다.
이대로 있어 봐야 안 좋은 일이 찾아올 것 같은 예감밖에 들지 않았다.
‘마인 토벌전은 위험할 텐데…….’
마인이 무서운 점은 인간과 같은 지혜를 겸비하고, 집단을 이루어서 싸우는 건 물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총기류, 폭발물 사용은 기본이며 다른 스캐빈저나 마인을 끌어모아서 덫은 물론 각종 암기와 비열한 수단은 다 쓰는 악독한 족속들인데 이게 또 리턴은 적다.
몬스터는 소재, 마정석이라도 있지만 마인은 경험치를 제외하면 돌아오는 리턴이라고 해 봐야 그놈들 소지품이나 본거지에 있는 물건들뿐이라 던전으로 치면 불량 매물인 것이다.
‘그런데 잡긴 잡아야 하니 동원을 한 것이긴 한데…….’
뭔가 씁쓸하다.
마치 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불편했지만 모른 척하기로 한다.
일단 내가 S급 스테이터스를 가지고 있지만 마인과 맞서기엔 시기상조였다.
전투 경험, 상대의 정보 등등 아무것도 아는 게 없지 않은가?
‘아니, 내가 왜 싸운다는 생각을 하는 거야? 어차피 A급 10명에 S급 1명이면 충분히 토벌할 텐데…….’
그래, 언제나 있었던 위기이며 금방 해결될 하나의 사건일 뿐이었다.
든든한 구성으로 가는 거라 걱정할 필요는 하나도 없었지만, 마음이 착잡했다.
그러니까 내가 뿌린 씨앗 때문에 이 길드… 아니, 아영이나 그 어머님이 위기에 빠졌다는 거지?
“혹시나 잘못되면 안전하게 던전을 돌 수 있는 뒷배가 없어지니… 어쩔 수 없군. 그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어.”
여차하면 위기 상황에서 한두 사람 정도는 구해야 도리에 맞겠지.
내 처지에 도리 따지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내 이익과 직결된 만큼 나설 일로는 충분했다.
그렇게 결정한 나는 아영이에게 문자 한 통을 보낸다.
「유성원:마인 토벌전 언제 가지?」
「우주최강아영이:4일 뒤에 소집이에요.」
「유성원:스태프 자리 하나 있냐?」
「우주최강아영이:물론이죠! 마인과의 전투는 다들 가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위험 수당이 잔뜩 붙어요.」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군.
B급 이상 각성자가 몰래 합류해 있으면 든든할 테니…….
어쨌든 이렇게 되면 합류는 걱정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유성원:좋아. 그럼 합류하긴 할 건데…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S급은 고사하고 마인 자체를 처음 보는 거니까~ 무리 안 할 거야. 일 터지면 잽싸게 너희 엄마만 데리고 도망칠 거야.」
「우주최강아영이:저는요?」
「유성원:너는 나보다 빠를 거고, 여차하면 ‘심판의 진’으로 그냥 한 놈 묶어 두고 짱박히면 되잖아.」
「우주최강아영이:아저씨, 혹시 천재예요? 는 농담이고, 애초에 그렇게 못 쓰기도 하고, 사실 저는 가고 싶어도 못 가요. 길드 후계자고 미성년자라 이리저리 걸리거든요.」
하긴 잘못돼서 일가족이 모두 몰살당하면 그것도 문제였고, 고위 각성자들을 모두 날려 먹으면 길드의 입장도 난처해질 테니 납득이 간다.
그러면 아영이 어머님만 신경 쓰면 되기에 역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최강아영이:그럼 바로 스태프 등록해 드릴까요?」
「유성원:아니, 그러는 사이에도 레벨 업 해야 하니까 인원이 부족해서 막바지 긴급 합류된 스태프라는 형태로 해 줘. 이틀 전쯤에 말이야. 나는 그동안 할 수 있는 준비를 하지.」
가능한 한 D급 던전을 빡세게 돌아서 레벨과 스킬을 추가 개방을 해서 대비하든가?
아니면 좋은 무기를 하나 얻어 두는 것도 좋은 생각일 것이다.
곧바로 짜 맞추기로 만들어진 가짜 파티 인적 사항들을 이용해 휴대폰 어플을 연 다음 D급 던전 파티를 만들고 바로 던전으로 향한다.
***
대한민국 개성, 스캐빈저의 도시.
구 휴전선 북쪽에 있던 이 도시는 이미 반쯤 폐허가 된 상태였다.
과거 북한 정부가 지배하고 있을 때는 그래도 특별시까지 갔었지만, 몬스터 사태를 비롯한 각종 사태로 인해서 반쯤 폐허가 되어 있다가 지금은 스캐빈저와 마인이 거주하는 도시가 되었다.
“운수 더럽게 없네. 이게 다 카드 섞다가 시체 봐서 그런 거라니까!”
“여기서 노예 시체 하루 이틀 보냐? 새꺄, 패나 돌려.”
물론 제대로 된 정부 기관이 사회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기에 정상적인 풍경은 아니었다.
길에는 반쯤 나신이 된 채로 죽은 인간의 시체가 있음에도 스캐빈저들은 아무렇지 않게 패를 돌리며 맥주를 들이켠다.
“사장님, 여기 맥주 한 병 더!”
“마정석 내고 마셔, 인마! 선불인 거 까먹었냐?”
사회로서 제대로 된 기능이 없기에 화폐로 통하는 것은 오직 마정석뿐이다.
스캐빈저들과 마인에게는 나름 낙원 같은 도시로 힘만 있다면 무한에 가까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만큼 이 도시의 약탈자나 무법자인 스캐빈저들이 직접 일을 할 리 없었다.
그렇기에 도시 유지에 필요한 노동은 모두 노예들을 납치하거나 몬스터를 길들여서 충족,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일반 각성자인 척하며 사회 속에 숨어 있는 스캐빈저들이 구입해 오는 물자들로 굴러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도시에서 소문이 들려오던데……. S급 된 민수 대장 조지려고 토벌대 결성한 거 말이야. 보통은 이쪽이 공격하지 않으면 손해라고 생각해서 안 오지 않나?”
“보나 마나 청룡 그 새끼들이지. 투쟁의 성좌니 뭐니 땜에 강제로 떠밀린 거일걸?”
“그래서 민수 대장은 어쩐다는데? 도망친대? 당분간 숨는대?”
“숨을 리 없지. 상대는 세계 어디로 도망가든 쫓아오는 그 독종 청룡 길드잖아.”
보통 다른 길드면 그냥 얌전히 잠복하고 있으면 제풀에 지쳐 포기하지만, 청룡 길드는 다르다.
그놈들은 일단 엮이게 되면 끝장을 보기 위해서 북극, 남극까지 쫓아왔던 이력이 있는 놈들이다.
미친 짓을 저지르면 당연히 비용이나 손해가 막심하지만 성공할 경우 성좌 청룡이 그만한 보상을 해 주기에 청룡 길드 놈들도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니, 마인(魔人)과 스캐빈저 측에서도 진저리 치는 상대였다.
“그래서 어쩐대?”
“글쎄~ 아직도 생각 중이라는데?”
그렇게 말하며 도시 위에 있는 옛 개성 특급 호텔을 바라본다.
과거 김씨 왕조 일가와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만든 그곳은 현재 S급 마인이 된 정민수의 아지트가 되어 있었다.
그 또한 이미 청룡 길드가 자신을 노린다는 걸 알고 있기에 현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 중인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