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다음 날.
인천 앞바다, 청룡 길드 기지 인공 섬.
대한민국 3대 길드라는 이름이 허언이 아닌 듯, 청룡 길드는 인천 앞바다의 거대한 인공섬을 통째로 길드로 사용하고 있었다.
여의도 넓이의 약 1.7배. 사실상 청룡 길드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이 대형 섬에는 각종 업무를 위한 건물은 물론 출동용 수송기 및 거주 지역까지 존재했다.
S급 헌터만 셋을 보유하고 있는 청룡 길드는 오늘도 수많은 스태프들과 헌터들이 팀과 파티 단위로 원정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뭐야? 성준이가 행방불명?”
그리고 이런 거대한 청룡 길드를 이끄는 길드장이며, S급 헌터인 고천수는 갑자기 날아온 아들의 행방불명 소식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을 전하러 온 비서는 순간 위압감에 눌렸지만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 나간다.
“예. 오늘 갑자기 아카데미아나 길드 사무실에 나오지 않아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연락도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냥 예전처럼 놀러 가거나 다른 임무를 하러 간 건 아니고?”
“놀러 가면 간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잖습니까? 또 비밀 임무를 한다고 해도 길드에 정기적으로 연락하기 마련인데……. 어제 나가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걱정스러운 말투로 마무리를 짓는 비서의 말에 고천수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사고를 잘 치는 아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투쟁심을 인정받아 성좌 청룡의 선택을 받은 몸이다.
물론 자질이 좀 부족해서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청룡 님이 부여한 시련을 어느 정도 돌파했기에 무사히 아카데미아 천(天) 클래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에 졸업하고 난 뒤 직접 헌터 일을 이어받을 수 있게 가르치려고 했는데 실종이라니!
“연락은 해 봤나? 휴대폰 위치 추적은? 그리고… 조사는?”
“이미 어느 정도 진행해서 왔습니다. 연락은 당연히 되지 않고, 휴대폰 위치 추적은 마지막으로 신호가 잡히던 곳이 북쪽 E급 던전들이 분포하는 곳이었습니다. 도련님의 무위, 그리고 혼자 가지 않은 점, 또한 신호 기록이 북쪽으로 가다가 끊긴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도살왕의 마인(魔人)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마인(魔人), 거기에 북쪽이면 100퍼센트 도살왕 계열이겠군. 사람 잡아먹는 그놈들에게 당한 건가~ 후우…….”
고천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어뜨린다.
보통 부모라면 일말이라도 살아 있을 희망을 가지게 마련이지만, 이미 초대형 길드의 장이 된 몸으로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한다.
부정하려고 해도 이미 자신의 아들은 마인(魔人)의 손에 죽고, 성좌 도살왕에게 축복받기 위한 제물이 되었을 것이다.
“괜한 희망은 가지지 않겠네. 하나, 어떻게 된 일인지와 어떤 놈이 했는지만큼은 철저히 조사해 주게. 원수는 갚아야 하니 말일세. 우리 길드의 모토가 뭔지 잘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청룡 님이 내리신 사명. 투쟁, 그리고 승리. 반드시 원인을 밝히고 적에 대해 알아내겠습니다.”
냉철하면서도 분노에 떠는 눈빛으로 그는 비서에게 지시했고, 비서는 고개를 숙인 뒤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
아카데미아, 백야 길드 사무실.
“예이~ 여기 던전 보고서. 어제도 E급 무사 클리어, 여기 E급 마정석이랑 마견의 이빨이라고 소재 나왔다.”
“오~ 마견의 이빨! 그거 잘 안 나오는 건데! 완전 운 좋으셨네요! 그런데 아저씨, 어제 혹시 청룡 길드랑 무슨 일 있었어요?”
“음? 무슨 일?”
“어제 만났던 고성준이 오늘 갑자기 행방불명이라고 하는데요?”
아, 그놈 역시 행방불명이군.
하지만 여기서 아는 척해 봤자 좋을 게 없기 때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전혀 모르겠는데?”
“그런가요?”
“내가 뭘 알겠어? 아무튼 오늘도 던전 갈 거고, 대련은 내일이면 되겠지?”
“예! 그럼 수고하시고, 몸조심하세요.”
그렇게 아무 의혹도 남기지 않은 채 나는 사무실을 나왔다.
일단 길드에서의 절차는 모두 끝났다. 이제 아카데미아를 슬쩍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또다시 던전에 가기 전에 좀 더 자세히 청룡 길드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니 분명 소문이 퍼질 텐데……. 아, 들린다.’
“야, 그거 들었어? 천(天) 클래스의 성준이 실종이라는데?”
“실종? 걔 청룡 길드장 아들에 B급 스테이터스를 가진 괴물이잖아. 그런 애가 어떻게 실종당해? 그냥 어디 놀러 간 거 아냐?”
“아니래. 청룡 길드 안에서 지금 막 난리야. 그냥 놀러 갔으면 그렇게 웅성거리지 않았을 텐데…….”
“아무튼 난리 나겠네. 가뜩이나 투쟁의 성좌라 불리는 청룡 길드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음, 이렇게 되면 조사 과정에서 분명 나에게 혐의가 올 게 뻔했다.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분명 길드에서 계획을 세우고 날 쫓아왔을 테니, 나에게도 무언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괜히 던전 가지 말고, 오늘은 이 근처에서 시간을 때울까?’
평상시처럼 움직이는 것도 좋았지만, 상대가 올 줄 알면 미리 좋은 위치에서 만나는 게 좋다.
던전을 가는 길이나 도시 밖에서 만나면 강압적인 수단을 쓸지도 모르기 때문에 안전한 곳이 최고였다.
그 안전성이 보장되는 것과 동시에 내가 가서 어색하지 않을 장소가 하나 있다.
‘어디긴 어디야. 협회 본사지.’
헌터 협회. 그래, 각성자와 헌터들의 통제 및 관리 등등 업무를 보는 곳이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장소이며 각성자라면 누구든 일이 있어서 들르는 곳이기에 언제, 어느 때 와도 이상하지가 않았다.
‘철검 수리 맡기고 장비 사러 왔다고 하면 문제없겠지.’
계속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는 철검이지만, 그래도 한 번쯤 수리할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다.
제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계속 도구로 사용했으니 정비는 필요했다.
이런 용무도 보면서 느긋하게 협회에서 기다리다 보면 이제 유능하신 청룡 길드의 각성자분들이 나를 찾아올 것이다.
‘물론 여기도 가능하지만 그래도 학생 전용이니까… 라고 둘러대면 그만이지.’
그렇게 난 곧바로 아카데미아를 나와서 협회로 향한다.
애초에 협회에서 만든 아카데미아였기에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아카데미아 입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협회 건물이 있었다.
‘보자. 여긴가? 음, 맞네. 저 첨단 대장간을 보니 정비 맡기는 곳이…….’
마정석을 이용한 화로를 비롯해 초합금 모루.
흩날리는 쇳가루와 먼지를 계속 청소하는 드론들이 돌아다니는 첨단 대장간을 보며 감탄한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 건지, 안에서 일하는 장인분은 어디서나 볼 법한 구릿빛 피부에 수염이 가득한 아저씨였다.
“음? 손님이십니까?”
“검 수리 좀 맡기러 왔습니다.”
그리고 난 접수를 하는 종업원에게 검 수리를 접수한 뒤 휴대폰을 열어 던전 분포도를 보며 차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현재 레벨은 19.
30레벨까지 E급 던전을 돌아서 레벨 업을 해도 되지만, D급을 돌면 더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이미 스테이터스로는 D급은 진작 때려 부술 레벨이지만, 문제는 눈에 안 띄고 던전을 돌아야 한다는 점인데…….’
좀 더 강한 몬스터가 나타난다는 걸 빼고는 던전 난이도는 E급과 유사한 곳이라서 클리어에 대한 걱정은 없었지만, 문제는 어떻게 신고하고 가느냐? 였다.
현재 나는 파티도 없이 혼자서 사냥하는 자로 협회에 알려져 있는데,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가 갑자기 D급까지 쑥쑥 잡으러 다닌다면 어색할 게 분명했다.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랑 마음이 다르다더니……. 나도 어쩔 수 없네. 역시 동료가 있는 덕분일까?’
혼자 던전에 갔을 때와 다르게 아칼론과 섬멸이 함께하니 심적 부담감도 덜했고, 던전 클리어도 손쉬웠던 만큼 자신감이 붙은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혼자 먹을 경험치가 3등분이 되는 단점이 있지만, 이 구성이면 이제 상위 던전을 목표로 해도 될 만한 전력이라서 더 높은 등급의 던전으로 가면 금방 해결된다.
‘으음~ 고민되네. 하지만 상위 던전을 몰래 돌려면 역시 불법 토벌뿐인데……. 아직 그럴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은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헌터 등급을 올리면 귀찮은 일이 생긴다.
뭔가 대단한 인간 하나 탄생했다고 소문이 나면 어디든 나타나서 빨대 꽂으려는 놈들이 세상천지에 널려 있었다. 조용하고 적당히 사는 게 최고다.
“수리 완료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검의 수리를 마친 나는 볼일을 끝냈으니 이제 뭘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한다.
그리고 청룡 길드의 수사망이 다가올 때까지 시간을 죽여야 하니, 다른 짓은 하지 말고 그냥 적당히 협회 시설을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새로 나온 헌터를 위한 금융, 보험 상품 설명이라든가, 세계 성좌 패권 구도 설명이라든가 하는 정보를 갱신하면서 말이다.
‘청룡 길드 담당자의 능력이 별로인가? 이르면 오늘 아침에 올 줄 알았는데, 대기업 길드라서 인선이 느렸던 걸까?’
“저기, 혹시 유성원 씨 되십니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갑자기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푸른 용의 엠블럼을 단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딱 봐도 청룡 길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나는 미리 준비해 둔 대로 깜짝 놀라며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아, 아닛! 세상에, 처, 청룡 길드분들 아니십니까? 투쟁의 성좌, 청룡 님의 선택을 받아 대한민국을 지키는 분들이 어, 어째서 저 같은 밑바닥 헌터에게 말씀을 걸어 주셨는지요? 아, 저 팬인데 혹시 사진이랑 사인 가능할까요?”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멍청이로 보이려면 이 정도 연기는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 나였다.
똑똑해 보이면 보이는 대로 경계받는 게 이 바닥이다.
“…크흠! 사진과 사인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시간 가능하겠는지요?”
“물론이죠. 청룡 길드분들인데! 당연히 도움을 드려야죠.”
바보와 멍청이는 얕보이지만, 그만큼 경계심과 의심을 떨어뜨리는 데 좋은 것도 없다.
결국 사람은 에너지와 리소스를 적게 쓰고 싶어 하고, 바보와 멍청이에게 그것을 덜 쓰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아무튼 내 적극적인 어프로치에 당황한 건지 몰라도 맨 앞에 있던 담당자는 난감해하다가 명함을 꺼내어 주면서 나에게 본인 소개를 했다.
“저는 청룡 길드 11팀의 정찰과 수색 담당, 레인저 클래스의 남국진입니다.”
“아, 예.”
“혹시 고성준이라는 이름에 대해선?”
“아카데미아 천(天) 클래스의 학생 말씀이신가요? 청룡 길드의 후기지수라는 것 정도랑~ 저희 길드의 B급 각성자인 신아영 양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9년간 아카데미아에서 일한 스태프라는 경력 아래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정보다.
남국진이라는 남자는 뭔가 생각하는 듯 신중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고 말을 건넨다.
“그럼 혹시 신아영 양과의 관계는?”
“절 좋은 대우로 전속 스태프로 고용해 주신 분입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훌륭한 분이시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E급 던전을 돌며 훈련할 계획입니다.”
“흐음… 그것뿐입니까?”
그는 내 진심을 흔들어 보려는 듯 질문했지만, 나는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왜냐면 정말로 난 그 아가씨에 대해서 추호도 이상한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14살 차이라는 물리적 시간도 무시할 수 없고, 실제로 아카데미아 이야기를 빼면 하나도 통할 곳이 없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스킬 때문에 그저 그 아가씨가 착각하고 있을 뿐이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만 가도록 하죠.”
“아! 저기, 사인이랑 사진이라도~”
“하하, 알겠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청룡 길드 특별 기념품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11팀장인 저보다는 S급, A급 스타분들의 굿즈가 더 좋은 보상이 되겠죠.”
“그러면 S급 청룡극검 채지영 님의 것으로 부탁드립니다. 하하핫.”
청룡 길드의 아이돌 같은 존재를 언급하면서 완벽히 바보 연기를 마치자 더 이상의 질문은 이어지지 않았고, 남국진은 내 원룸 주소만 받고 그대로 가 버렸다.
아마 나에게서 뭔가 혐의점이나 정보를 얻고 싶었겠지만, 더 이상 해 봤자 얻을 것도 없고 내 알리바이는 완벽하기에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난 승리의 미소를 은은하게 지은 채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E급 던전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