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키에에에엑…….
“이거 완전 자체 하드 모드 아냐?”
대오를 짜고 무기를 앞으로 겨누면서 오는 그들의 움직임은 악마임에도 자못 훈련받은 군대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 이 녀석들도 엄연히 성좌의 수하들. 지능이 낮다고 해서 얕볼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훌륭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적과 마주할 시엔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싸워 명예를 드높이십시오.]
[보상:현존하는 기사도 페널티 모두 삭제]
그리고 눈치 없이 나오는 보상 메시지를 지나, 나는 살점 약탈자들을 향해 뛰어든다.
녀석들은 키가 1미터 20센티미터가량밖에 되지 않는 작은 악마들이라서 그렇게 어려운 적수들은 아니었다.
앞에 있는 녀석들은 내 철검에 피를 뿜으며 정확히 목이 날아갔고, 뒤에 있는 놈들이 날린 칼날은 내 황금 갑옷을 뚫지 못했다.
‘이 정도면 거의 잡초 제거인데? 아니, 오히려 몰아서 처리하니 편한가?’
키에에엑!
전투력 차이가 압도적인 데다, 또한 집 내부 중에 가장 넓은 곳에서 싸우니 스스로 처리할 때보다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0여 분 동안 거실에서 전투를 벌이자 주변엔 살점 약탈자의 시신으로 가득했고, 어느새 나 혼자만 남았다.
‘휴우~ 이 정도인가?’
휙!
전투가 끝나고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혹시 죽은 척하는 놈이 없나 주의하며 확인 사살까지 마쳤다.
그다음 시스템창의 미니맵을 열고 내부를 확인.
이제 남은 건 이 던전의 보스인 ‘살을 저미는 자’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자. 보스의 위치는 지하실인가?’
갑옷 덕분에 어두운 곳에 대한 대비가 필요 없었기에 나는 함정에 주의하며 지하실로 향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살짝 열고 내부를 바라보자 거기엔 떡두꺼비 같은 거대한 체형을 가진 악마 한 마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우우우우! 쿠하하하!
칠척! 퍽! 퍽!
대체 어디서 고기를 구해 온 건지 모르겠지만 놈은 도마 위에 놓인 고기를 열심히 다지고 살을 발라내면서 좋아하고 있었다.
놈은 내 존재를 모르는 만큼 단번에 기습해서 목 뒤를 따 버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일격에 끝내 버릴 생각으로 조용히 검을 뽑아서 달려들려고 하는데, 또 망할 상태창이 눈앞에 뜬다.
[그런 비겁한 행위는 당장 멈추십시오. 명예롭게! 그리고 기사답게!]
‘…이 특성 왜 SSS급일까? 하아~’
아무튼 저놈만 잡으면 이제 보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참아 내기로 한다.
한숨을 쉰 나는 문을 열고 똑바로 들어가 보스 몬스터인 놈을 불렀다.
문을 열고 들어갔음에도 놈은 여전히 고기를 저미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악마야! 너의 최후가 여기에 도달했다.”
“쿠르르르… 새로운 고기군!”
“고기가 되는 건 아마 너겠지!”
놈은 날 발견하자마자 거대한 도축 칼을 들고 달려 나왔고, 나는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놈은 호쾌하게 도축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나는 검으로 맞설 생각을 하지 않고 곧바로 몸을 돌려서 놈의 사각지대로 빠져나갔다.
저런 미련한 몸은 딱 봐도 움직임이 둔할 거라 생각했기에 시야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먼저 다리부터!’
“크르르락! 이, 이노옴!”
“그러게 평소에 몸매 관리를 잘했어야지!”
다리 한쪽의 힘줄을 끊은 다음부터는 이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적을 내 마음대로 손질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혹시 따로 마법이나 다른 수단을 쓸지 몰라서 경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E급 던전 보스라고 해서 방심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크르르륵! 크아아아아악!”
“휴~ 드디어 끝이군.”
전투는 깔끔하게 끝났다.
딱히 부하 몬스터들이 나타난 것도 아니라서 다리의 힘줄이 끊긴 거구의 악마는 마치 도살장에 나온 돼지인 양 일방적으로 칼을 맞다가 쓰러져 버렸다.
땅에 쓰러지자마자 놈은 순식간에 재가 되며 사라졌고, 잿더미 가운데에서는 마정석 하나만이 빛나고 있었다.
“자, 잡았나?”
[E급 던전-‘살점 약탈자의 집’ 토벌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 받기’를 누르시면 출구가 열립니다.]
[보상 받기]
마정석을 주우면서 눈앞에 뜬 상태창을 확인한다.
그리고 ‘보상 받기’를 누르자, 기사도 페널티가 제거된 만큼 처음 보상을 받을 때와 같은 보상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인류를 위협하는 사악(邪惡)한 몬스터들을 쓰러뜨린 것을 축하하며 보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선택하라!]
[스킬 포인트 +1 or 기사 소환 or 무구 선택]
‘보자. 이번에도 역시 스킬 포인트려나?’
[튜토리얼 2. 동료를 모집하세요.]
당신과 함께하며 싸워 줄 기사를 모집하십시오. 혼자보다는 역시 집단이 강하며 또한 다른 기사의 모습을 통해 기사도를 익히도록 하십시오.
보상:기사 한 명에 추가로 한 명 더 소환됩니다.
“…아, 또 뭔데?”
아무래도 나 혼자 있으니 말을 안 듣는 것 같아서 그런지, 이 망할 기사도 시스템은 내 옆에서 땍땍거릴 기사를 소환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거기에 미끼 상품까지 아주 제대로 건 상태.
원 플러스 원, 한 번에 2개의 던전을 돈 효과라니 거부하기가 힘들었다.
“하긴 오늘처럼 돌면 앞으로 고전할 일이 많겠지?”
그 망할 ‘기사도’ 운운하면서 당차게 나서야 하니 혼자 싸우면 필시 위기가 찾아온다.
결국 이놈들 말대로 해야 하는 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아무튼 소환하기로 하였다.
[‘기사 소환’을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을 도울 기사를 소환합니다.]
[추가 보상으로 한 명 더 소환합니다.]
‘같은 거 2명이 나오려나? 아무튼 이상한 녀석만 아니면 좋겠군.’
나는 눈앞에 마법진 2개가 뜨는 것을 보면서 기대하기로 마음먹었다.
막강한 녀석보다는 성격적으로 문제없는 이들이 나오길 바라며 마법진 위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기사의 형상을 바라보았다.
[KMG(Knight Metal Golem)-002 ‘아칼론’]
[마스터 디바이스 확인, 마스터 등록 완료. 지금부터 경호에 들어갑니다.]
먼저 나온 쪽은 인간의 육성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중후한 기계음을 내었다.
본래 인간이라면 살이 드러나야 할 투구 부분의 틈에 전선과 철판이 보이는 걸로 봐서는 인간도, 생명체도 아닌 ‘기사’가 나타난 것이었다.
메시지창에 뜬 ‘나이트 메탈 골렘’이라는 이름을 보며, 대체 ‘위대한 기사의 길’이란 무엇인지 또 한 번 갈등을 느끼는 나였다.
‘반면 이쪽은…….’
[성천 기사단의 기사-‘섬멸’]
“빛의 인도로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이어서 반대쪽에 나타난 것은 빛을 뿜어내는 것 같은 순백의 갑옷을 입은 여기사였다.
은발에 순백의 갑옷은 마치 빛의 덩어리처럼 보여 신성하게 느껴졌다.
반면 무기질적인 느낌이 더욱 짙어서 인간의 형상이었지만 인간 같지가 않았다.
“저기, 그러니까… 일단 소환에 응해 주었으니 내 소환수나 부하 같은 거라고 봐도 될까?”
[긍정합니다. 마스터, 무엇이든 명령을 내려 주시길 바랍니다.]
“그쪽은?”
“타락과 어두운 길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따르겠습니다.”
보자… 골렘 기사 쪽은 무조건 예스맨이고, 이 하얀 천사 같은 기사님은 나쁜 일을 싫어하는 타입이군.
하나, 아직 파악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던전을 나가기 전에 이 ‘기사 소환’에 대한 정의와 내 편인 이 둘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 확실히 알고 가야 한다.
“일단은… 그러니까 너희들, 먹고 자는 건 어떻게 하냐?”
[식사는 필요로 하지 않음. 단, 심각한 손상이나 고장이 있을 시 자동 수리에 사용할 마력이 필요. 보관 및 대기할 장소는 주인이 정하는 것.]
“마력을 지원받아서 싸울 수 있지만 식사로 어느 정도 대체 가능합니다. 대기하거나 머물 장소는 여기 아칼론 경과 마찬가지로 단장님을 따르기 때문에 별도로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즉, 졸지에 딸린 식구가 둘이나 됐다는 말이군.
하아~ 보통 소환수 같은 건 필요 없을 땐 사라졌다가 필요하면 나타나는 그런 편리한 거 아니었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당장 이 둘이 머물 곳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지만, 내 원룸에서 지낼 수는 없었다.
열려 있는 포탈 문을 보면서 짱구를 열심히 굴렸고, 간신히 찾아낸 답은 하나였다.
“아카데미아밖에 없겠군.”
저쪽 새하얀 기사인 섬멸 양은 그렇다 쳐도, 키가 2미터가량 되는 이 육중한 고철 기사는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남은 방법으로 떠올린 아이디어는 아카데미아. 일단 내 소환수라고 해 놓은 다음 네이처 스피릿 길드의 창고에든 어디에든 보관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다른 던전을 돌아서 스킬 보상을 얻어서 알아볼까?’
예전에 스킬 리스트를 죽 보았을 때, 용 혹은 정령과 계약하고 보관해서 같이 다닐 수 있게 해 주는 스킬이 있던 것이 간신히 떠올랐다.
비록 시간이 늦었지만 던전 하나를 더 돌아서 이 둘의 거주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간 다음 내일은 좀 쉬었다가 일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가자마자 휴대폰으로 던전에 대해 탐색하고자 마음먹었다.
***
“크흐흐흐, 모습이 보인다.”
“자, 슬슬 일을 시작하자고. 분명 혼자 들어가서 클리어했더라도 상처를 입었을 테니까…….”
“좋아, 그럼… 어라?”
“…….”
출구를 통해 던전을 나온 순간, 낯선 인간 셋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각성자 무장을 하고 있지만 눈빛과 행색부터가 우호적으로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스캐빈저나 마인(魔人)일 가능성이 높았다.
“너희는 누구지? 남이 들어간 던전 입구에서 나오길 기다린다는 건 별로 좋은 목적은 아닐 것 같은데?”
“그, 그게… 하하, 그저 지나가던 길이라 오해가 있었는데……. 히익! 저, 저기, 그 뒤에 계신 그분들 좀 진정시켜 주면 안 될까요? 황금 기사님?”
[‘자, 슬슬 일을 시작하자고. 분명 혼자 들어가서 클리어했더라도 상처를 입었을 테니까…….’ 음성 재출력 완료. 명백한 적의가 있음을 재확인합니다, 마스터.]
자동 녹음 기능도 있는 건지 아칼론은 당황해하는 스캐빈저 녀석이 아까 전 지껄였던 말을 그대로 전해 주면서 나에게 주의를 준다.
참 좋은 기능이네 싶은 순간, 이미 섬멸 쪽은 검을 뽑은 채 살의를 뿜어내고 있었다.
“히이이익! 저, 정말 죄송합니다. 그, 그게!”
“야이 멍청아! 추적을 제대로 했어야지!”
“젠장! 한 놈만 다니는 놈을 찾았다고 했더만! 이, 이 미친놈이 잠자는 사자를 건드렸네!”
놈들이 다투는 것으로 보아 일단 나를 노린 게 확실했다.
확실히 웬 낯선 놈이 혼자서 E급 던전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다면 스캐빈저들이 노리고 싶어 할 만한 먹잇감이었다.
‘아, 다른 걸 생각하느라 놓친 부분이 있다 싶었더니 그거일 줄이야. 뭐, 이미 해결되긴 했지만~’
E급부터는 제대로 된 던전이기에 파티를 구성한다는 걸 깜빡했고, 또한 일반 파티원들 사이에 스캐빈저들이 섞여서 다닌다는 걸 간과했다.
아카데미아에서 안전한 생활을 한 탓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내 목숨을 노리려 한 놈들이기에 가만 놔둘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