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백야 길드 B급 각성자 신아영 님의 전속 스태프 유성원 씨가 신청하신 E급 던전 훈련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오~ 역시 빠르군. 그나저나 얘네 길드 이름 백야(白夜)였군. 아무튼 신청 완료.’
전속 스태프 훈련.
B급 이상의 고위 각성자 및 헌터들에겐 그들의 기량과 능력을 유지시키고 각종 도움을 줄 스태프들의 능력도 매우 중요했다.
그런 만큼 그들도 자신들의 능력을 유지하거나 무기와 장비 테스트를 비롯한 각종 테스트를 위해서 하급 던전을 실험장, 훈련장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아무나 신청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 길드나 신청이 가능한 것이 아닌 게 가능한 걸 보면 역시 중견 이상의 규모와 실력을 자랑하는 곳임엔 틀림없었다.
사실 백야라는 길드의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 것이라서 뭐라 더 할 말이 없긴 했다.
“그럼 난 곧바로 던전에 가야 해서 이만.”
“예! 그러세요. 그럼 대련 일자는 휴대폰으로 조율해요. 짠! 톡방 초대했어요.”
[사나이의 길(2)]
[우주최강아영이:초대했어요.]
[유성원:…….]
단톡방 이름도 그렇고, 저 ID는 대체 뭘까?
요즘 애들 센스는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소름이 돋았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하고, 나는 곧바로 E급 던전을 토벌하기 위해 나섰다.
‘준비물은 인벤토리에 다 있으니 편리하군.’
괜히 물류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스테이터스라는 제한이 있지만, 그래도 이 편리성은 일반인들은 절대 못 느끼는 것이다.
단점이라면 죽으면 그야말로 보물 고블린처럼 안에 있는 물건들을 다 쏟아 낸다는 거지만, 그래도 편리한 건 어쩔 수 없다.
“보자… 여긴가?”
그렇게 아카데미아를 떠나서 북쪽, 목표가 되는 E급 던전으로 향한다.
E급이라지만 야생 동물 레벨의 F급과 다른 진짜 몬스터다운 몬스터들이 있는 던전들이었다.
기준점이 되는 몬스터는 역시 고블린. E급의 대표 주자였지만 한국엔 그리 많지 않았다.
“다른 몬스터들이 오려고 해도 저 위에랑 저 바다에 계신 성좌님들이 너무 세서 말이지.”
당연하지만 지금 말하는 건 인류에 적대적인 분들 이야기다.
한국에 큰 위협이 되는 성좌는 북한 지역과 요동, 하북 위쪽에 자리 잡은 ‘도살왕’과 동해와 태평양에 자리 잡고 있는 ‘영원한 분노’ 이 두 분이다.
도살왕의 세력은 그 이름에서부터 쉽게 알 수 있듯이 인간을 잡아먹는 악마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무서운 세력이며, 영원한 분노는 무차별 파괴를 즐기는 악마의 군세를 이끈다.
“뭐, 그 정도까지 상대할 건 아니니…….”
물론 내가 그들을 상대할 건 아니니까. 아무튼 결론은 한국엔 다른 것보다도 악마형 몬스터들의 던전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러면 책임 소재는 달라지니까 그런 거겠지.’
“여기면 되나?”
“예. 감사합니다.”
나는 택시를 타고서 던전이 있는 근처까지 간 다음 직접 걸어서 던전에 가기로 했다.
던전으로 향하는 길. 다량의 차량과 사람들의 움직임이 눈에 보인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 이들 중에 오늘 죽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크게 한몫 잡아서 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 야간 던전 공략 겁나 싫어.”
“어쩔 수 없잖아. 우리 할당량 안 채우면 큰일 나니까~”
아카데미아 안에서만 일하던 내가 몰랐던 낯선 풍경이다.
그리고 난 신경을 곤두세운 채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으며 발걸음을 계속했다.
‘마음 같아선 황금 갑옷을 입고 날아가듯 뛰어다니고 싶지만…….’
그런 바보짓을 할 만큼 멍청한 내가 아니었다.
목적지에 점점 다가가면 갈수록 주변의 사람들도 사라져 어느새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던전에 가까워질수록 피 냄새와 고기 썩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가는 길에도 몬스터가 있을 수 있지만, 미니맵에 다 보이니…….’
(유니크)KMG TECH Master Device. 이 스킬의 확장된 상태창 덕분에 던전까지 가는 길의 적들의 위치가 훤했다.
하지만 더 신기한 점은 빨간 점으로 이루어져 있는 적들이 알아서 도망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 이 녀석들은 본능적으로 내 능력치를 아는 건가? 가는 길에 귀찮은 게 없으니 나야 좋지만…….’
그렇게 피 냄새와 고기 썩는 냄새가 즐비한 폐허와 숲을 지나서 내가 돌아야 할 던전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E급:살점 약탈자의 집’이라는 상태창이 뜨면서 클리어 조건과 보상에 대해 나오고 곧바로 풍경이 바뀐다.
[던전 퀘스트 ‘살을 저미는 자’ 토벌 0/1]
[보상:???]
‘한 마리인 걸로 봐서는 보스를 처리하라 같은데……. 으으.’
던전 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숲 한가운데 작은 집 한 채가 있는 풍경이었는데, 곳곳에 인간의 뼈들로 된 탑이 있고 던전 바깥에서보다 더욱 진한 썩은 냄새가 몰려왔다.
키헤헤헤헤!
키히히히!
‘윽, F급과 다르게 이건 진짜 적응 안 되는군.’
창문 너머로 살점 약탈자 악마들이 한창 만찬을 벌이는 것이 보인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를 씹어 먹는 악마의 모습을 보자, 이런 것에 전혀 내성이 없는 나는 몸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불쾌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공포 영화나 고어 게임을 해서 멘탈을 단련해야 하나? 아니면 정신력 강화 스킬이라도 찍어야 할 것 같군.’
수치와 재능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으며 나는 황금 갑옷을 착용한 다음 검을 뽑아 든 채 눈앞의 문을 열고 돌입한다.
돌입과 동시에 선수 필승이라고, 식사를 하는 살점 약탈자들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빠른 속도로 달려가 놈들의 목을 베어 넘긴다.
키아아악!
키엑!
‘좋았어. 먼저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키에에엑!
식사 중 변을 겪은 놈들의 목을 깔끔하게 날리고, 도망치려는 놈들은 무리해서 쫓지 않는다.
여기는 던전, 놈들의 홈그라운드다.
경계하지 않고 쫓았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으니, 나는 일단 목을 벤 놈들의 심장을 한 번 더 찔러서 확인 사살을 하고 집 내부를 확인한다.
‘안에 들어오니 더 최악이군.’
집은 평범한 현대식 가정집이었지만 이미 인간의 자취는 전혀 없었다.
피와 살점들로 더럽혀지고, 악마들이 포식하고 즐긴 흔적만 가득한 그로테스크한 이 광경에 나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될 지경이었다.
아무튼 나는 경계를 최대한 올리면서 혹시나 있을 법한 함정에 주의하며 천천히 내부를 정리해 나간다.
키에에에엑!
끼이이익!
‘후우~ 뻔히 보이니 다행이지.’
내 살점을 노리고 기습하기 위해 숨은 놈들이 있었지만 이미 내 손바닥 위였다.
기습하려는 놈들의 뒤를 노리고 역으로 칼을 꽂은 다음 목을 떨어뜨리자 편한 기분이 들었다.
던전 공략은 그렇게 순조로운 가운데 다른 문제가 날 덮쳤다.
[기사도를 존중하십시오. 위대한 기사의 길을 가려는 자여! 사악한 악마를 토벌하는 것은 좋으나! 그대의 이름을 드높이고 명예를 쟁취해야 합니다. 깃발을 흔들고, 당신의 이름을 떨치십시오.]
“아니, 나더러 뒤지라고 하고 싶은 건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죽느냐 사느냐가 걸려 있는데! 기사도는 무슨!”
[오직 명예가 전부, 오직 기사도가 전부입니다. 이 이상 기사도를 더럽히면 기사도 튜토리얼을 진행하겠습니다.]
자기 멋대로 각성시켜 놓고 난리네.
애초에 기사도가 뭔데? 그런 건 높으신 분들이 대량 학살이나 전쟁을 미화하려고 만들어 낸 거잖아.
명예부터가 이상한 거지. 죽으면 아무것도 없는데, 시체에다가 메달 달아 주고 그걸 명예랍시고 지껄이는…….
[기사도 튜토리얼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니, 왜 남의 생각을 읽고 그러세요?”
[튜토리얼 1. 우선 기사로서 자신의 소개를 해 봅시다.]
전장에서 깃발을 흔들어 이름을 대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아군에게 희망을, 적에겐 공포와 두려움을 주고 기사도를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멋지고 신나게 이 전장에서 적들에게 큰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해 봅시다.
보상:지금까지의 기사도 페널티 전부 삭제
“지금 여기서? 미쳤냐?”
집 안 같았지만 엄연히 던전 한가운데인데 여기서 자기소개를?
정신 나갔나? 압도적인 스테이터스, 미니맵으로 조심스럽고 안전하게 죽이면 되는 걸 이 무슨 미친 짓을 해야 한단 말인가?
심지어 자기소개라니, 대학교 O.T냐?
“…라고는 하지만 페널티 삭제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군.”
고작 자기소개로 스킬, 장비, 기사 소환이라 보상을 못 받는 페널티를 지울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싸게 먹히는 일이었다.
게다가 관객도 없이 혼자 지껄이는 거면 쪽팔림도 없고, 여긴 E급 던전이기에 상관없을 것이다.
“…다만 뭐라고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예문을 드리겠습니다.]
[들어라! 인류를 위협하는 사악한 악마들아! 나는 XX의 기사 XXX다. 기사도와 서약의 이름으로 너희를 처단하겠다!]
요즘 어린애들 보는 만화 대사도 저렇게 안 유치하겠다.
나 혼자 던전에 있음에 다시금 안도하며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이 망할 기사도 튜토리얼이 하라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우~ 심호흡 한 번 하고, 내뱉을 대사를 한 번 더 생각하고 검을 땅에 꽂으며 외친다.
“들어라! 이 던전에 사는 인류를 위협하는 악마들아! 나는 황금의 기사, 인류를 수호하는 자. 오늘 너희가 맞이할 것은 신의 천벌이라 생각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참회하라!”
아, 저질렀다. 저질렀습니다.
나이 서른 넘게 처먹고 중2병에 물든 것도 아니고, 정말로 누가 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봤으면 평생 놀림거리로 전락했을 것이다.
‘…이거 진짜 누구에게 보였으면 침대에서 이불킥 각이야.’
특히 우려되는 건 그 아영이랑 만날 일이 있는 만큼, 만약 그녀에게 들킨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키이이익!
키이익! 키이이익!
그렇게 내가 자괴감에 몸서리치는 사이, 아니나 다를까?
아주 대놓고 쳐들어왔음을 알리는 멍청이를 잡기 위해 살점 약탈자들이 집 안 곳곳에서 뛰쳐나와서 나에게 달려온다.
“그래, 목격자는 이놈들이었지?”
설사 인간의 말을 못하더라도 나의 그 쪽팔린 망발을 들은 이상 그냥 살려 둘 순 없기에 나는 검을 들고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