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괘… 괜찮냐? 저기, 의식은 있어?”
“으으으… 쿨럭! 쿨럭! 퉤!”
다행이다. 일단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라도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부서진 파편과 합금판 속에 힘겹게 일어난 그녀는 피가 섞인 침과 돌들을 뱉어 낸 다음 날 노려보았다.
‘아, X 됐다. 이거 그냥 기술 끝나고 나서 반격할걸. 어쩌지? 대가리 박고 지금이라도 사죄할까? 하지만 그러면 진짜 노예 직행인데?’
“아저씨, 손맛 장난 아니네요. 휴우~ 그렇지. 이거지, 이거야. 이 고통, 이 후끈함, 이 짜릿함. 이게 대련이지. 퉷!”
난데없이 팔짱을 낀 그녀는 뭔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다.
아니, 쟤, 미친 거 아냐?
입으로는 피를 흘리면서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는 게 엄청 무서웠다.
뭔가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가진 건가 의심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며 바라보는데, 그녀는 힘겹게 올라오며 말한다.
“아~ 제가 졌네요. 졌어요. 완패예요.”
“아… 예. 그렇습니까? 저기, 몸은?”
“음, 여기저기 많이 아프고 숨 쉬기가 조금 힘들지만! 괜찮아요.”
그건 안 괜찮은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그녀가 패배 선언을 해서인지 심판의 진이 해제되었다.
뭐야? 이거 그냥 패배 선언만 하면 해제되는 거였어?
“아, 저거 그냥 해제가 아니라 서로 역량을 다해서 싸워 보고 난 다음이라 그래요. 아무튼 우리 성좌님 판단이 정확했네. 이런 데에 보석이 숨어 있을 줄이야! 푸하핫!”
“뭐, 아무튼 제가 이긴 거니 약속을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 또 여기 처리를 부탁하죠. 그럼 이만.”
성좌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했으니 후환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망할 대련도 끝났으니, 이제 돌아가서 쉬고 내일 아침 출근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 아영이라는 아가씨는 계속해서 날 쫓아왔다.
“저기, 왜 따라오는 거죠?”
“따라가면 안 되나요? 아, 그리고 말 편하게 하세요. 스태프 아조씨!”
“서로 할 일 끝난 거 아닌가?”
“예. 하지만 지나간 일은 잊고 이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거죠.”
당돌한 그녀의 말에 나는 두통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방금 분명 약속한 걸로 아는데? 아니, 왜 다시 귀찮게 구는 거지? 돌아 버리겠네.
새로운 일? 그게 무슨 일인데요? 나는 이제 댁이랑 일 없어요.
“하아~ 그냥 가라. 무슨 기대와 환상을 품는지 몰라도 난 헌터 일에 관련되기 싫어.”
“왜 싫은 건데요?”
아아아아악! 비명 지르고 싶다.
진짜 애들은 이래서 싫어! 일일이 다 설명해 줘야 하고, 남의 사정을 이해할 생각을 안 하니 대화 진행 자체가 너무 느리다.
척하면 척, 이해하고 알아먹으면 좋겠는데,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걸까?
“나는 말이야. 그냥 이대로 스태프로서 일이나 하면서 적당히 살고 싶다. 알았어?”
“음? 그거 엄청 낭비 아니에요? 그 정도 힘이면 3대 길드 취직도 어렵지 않을 텐데…….”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스태프들 전용 숙소 건물에 다 와 가는데, 이 녀석은 끝까지 따라오고 있었다.
“근데 너 왜 따라와?”
“역시 아쉬워서요.”
“뭐가 아쉬워. 그나저나 숙직하는 경비 양반은 어디 간 거야? 젠장!”
본래라면 숙직하는 경비가 외부인을 막아 주고, 또 이상한 짓을 하는 학생을 막아야 했지만 오늘따라 자리에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결국 이 아영이라는 꼬마 아가씨는 계속 날 따라오며 쫑알대었다.
“음, 아저씨라면 황금 덩어리가 땅에 굴러다니는데 그냥 놔둘 거예요?”
“놔둘 거야. 그런 거 주워 봤자 귀찮아지거든. 바람 피할 수 있고 먹고사는 데 지장 없으면 안 노려.”
“나는 안 놔둬요. 이런 황금 덩어리! 히히힛!”
그러면서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달려드는 꼬맹이였다.
그렇지, 아무리 꼬맹이라도 확실히 B급 각성자를 뛰어넘는 각성자를 가만히 둘 리가 없지.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차라리 그냥 사고로 위장해서라도 목숨 걸고 싸우자고 할 걸 그랬나?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
“제 전속 스태프가 되어 주세요. 급료도 2배 더 올려 드리고, 각종 대우는 아카데미아보다 잘해 드릴게요. 그리고 아저씨가 각성자인 거 감출 수 있게 할 수 있는 거 다 해 드릴게요. 업무는 스태프 일도 살짝 겸해서 저와 대련만 해 주세요.”
“으음…….”
어라? 막상 들어 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헌터 계약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스태프로서 소속만 옮겨 놓으면 내 의사를 존중해 주겠다는 의미였다.
어차피 떼어 놓을 수 없다면 이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급료 2배와 각종 대우도 마음을 살짝 움직이긴 했지만!
“으음, 좋아. 그러도록 하지. 다만 나 또한 수련과 레벨 업을 계속해야 하니 그건 이해해 줬으면 한다.”
“아, 물론 그럴게요. 아저씨가 강해지면 나도 더 강해질 수 있으니까요. 다만 전속 스태프이니까 가끔 다른 일은 드릴 기니 그것만 해 주시면 오케이예요.”
“당장 내일 계약을 하도록 하지.”
악수를 나누고 연락처를 주고받은 다음 나와 아영이는 헤어졌다.
그리고 난 홀로 숙소로 돌아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하며 드러누웠다.
깔끔하게 일 하나를 처리하자마자 망할 성좌 놈의 인도에 의해서 또 일이 흐트러진다.
‘후우~ 아주 해 보자는 거군.’
스태프로 일하게 두지 않겠다는 악의까지 느껴지는 운명의 흐름이다.
결국 저항하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레벨 업을 해서 성장해야 한다.
당장 계약을 마치면 15레벨 이후의 레벨 업을 위한 E급 던전에 가자고 생각하며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
다음 날, 시설 유지부.
“이야기는 이미 들었네. 허허, 갑자기 그녀의 수련에 휘말릴 줄이야.”
“예.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내가 출근했을 때는 이미 아영이 쪽에서 아카데미아 스태프들에게 사정을 알려 둔 것 같았다.
흐름은 대충 그녀가 혼자 수련을 하다가 오의를 썼는데 내가 휘말려서 다친 것으로 해 둔 것 같았다.
수련관 내부에는 CCTV가 없는 덕분에 부서진 흔적을 제외하면 순전히 나와 그녀의 증언만으로 사정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기에 내가 잘 맞춰 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 신아영 양이 피해 보상 중 하나로 자네를 전속 스태프로 들이고 싶다고 하던데, 알고 있나?”
“예. 들었습니다.”
“그렇겠지. 고의는 아니라고 하나 학생이 아카데미아 스태프에게 피해를 입힌 거니 말이야.”
외부에서도 일단 민간인에 대한 각성자의 공격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것을 교육하기 위해 아카데미아의 교칙에도 스태프에 대한 폭력은 크게 금지되어 있었다.
다만 이번 일의 경우 고의가 아닌 데다, 보험을 비롯한 사후 처리의 철저함, 거기에 상해를 입힌 스태프를 자신의 전속으로 고용해 주는 은혜까지 베풀었기에 아카데미아 측이나 협회에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이런 바쁜 시기에 일에 능숙한 친구가 나가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가서도 잘하게나. 퇴직 절차는 이쪽에서 처리하겠네.”
“예, 부장님.”
뭔가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작별 인사였지만 이해 못할 건 아니었다.
한창 바쁜 시기에 팀장급 하나가 사라지면 일의 진행 속도가 1할 떨어지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어쩌겠는가? B급 각성자가 전속 스태프로 쓰겠다고 지명했고 대우가 2배인데, 잡아 둘 방안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으음~ 짐 옮길 건 적어서 좋군. 보자… 이미 숙소는 구해 줬다니 다행이군.”
그렇게 퇴직 절차를 맡긴 뒤, 일반 스태프용 숙소를 나온 나는 천(天) 클래스 숙소에 부속으로 붙어 있는 전속 스태프용 숙소로 향한다.
“휴우~ 설마 내가 여기 오게 될 줄이야.”
결국 아카데미아 내부를 돌고 도는 것이긴 하지만, 일반 스태프 숙소와 다르게 천(天) 클래스 스태프의 숙소는 호텔급인 천(天) 클래스의 숙소 옆에 딱 붙어 있었다.
드높은 건물 입구에 있는 스태프들에게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와서 전속 스태프 숙소에 도달한 나였다.
“와, 역시 대단하군.”
단칸 원룸에서 방이 3개로 늘어나고, 작업실로 쓸 수 있는 방과 창고까지 딸려 있었다.
하긴 전속 스태프로 삼을 정도면 특별한 능력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하니 이 정도는 기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학생이 아무리 길게 있어 봤자 한계가 있을 텐데……. 하긴 그분들의 이사에 관해서는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서민들은 몇 년마다 전세 보증금 올라갈까 무서워하는데 말이지.’
스스로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걱정이라고 여기며 방 안에 짐을 풀었다.
짐이라고 해 봤자 개인 옷가지들과 휴대폰, 야식으로 먹는 인스턴트식품과 맥주 몇 캔 정도밖에 없었기에 정리는 순식간에 끝난다.
“자, 그러면 이제…….”
“어라? 벌써 정리 끝났어요? 엄청 빠르시다.”
환기를 위해서 문을 열어 둔 탓인지 정리가 끝나자마자 아영이가 어느새 안에 들어와 있었다.
전의 체육복과 다르게 오늘은 천(天) 클래스의 하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어제 막 들이대던 것과 달리 얌전해서 꽤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
“혼자 사는 남자 짐은 별거 없으니까~ 그보다 계약서는?”
“당연히 들고 왔죠!”
난 그녀가 건네는 계약서를 받아서 꼼꼼하게 체크한다.
일단 전속 스태프이긴 해도 내 업무는 오직 그녀와의 대련뿐이니 많은 내용이 담길 필요가 없었다.
대련은 주 1회, 그 외에는 각성자로서 역량을 기르는 걸로 끝.
그녀의 역량을 키우는 데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부대조건이 있는 게 살짝 걸리지만, 그래도 이 계약은 언제든 거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흠, 문제가 있어 보이는 곳은 없군.”
“다른 각성자라면 모를까, 황금 덩어리한테 수작을 부리겠어요?”
“하긴 그렇지.”
지금 사회는 계약서만으로 100퍼센트의 구속을 가질 수 없는 시대다.
각성자의 힘과 능력, 그리고 성좌. 보장할 수 있는 것이라면 오직 이것뿐이다.
이 허울 좋은 계약서도 언제든 스캐빈저가 되어서 살 수 있다면 그냥 휴지 쪼가리로 던져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걸로 됐고. 나는 곧바로 던전에 가고 싶은데 그건 준비되었겠지?”
“예. 물론이죠. 전속 스태프 훈련 신청 가능하게 해 놨어요.”
그러나 저쪽도 날 이용할 구석이 있으면 나 또한 있는 법인지라 원하는 것을 교환할 수 있는 걸로 족했다.
곧바로 난 새로이 길드 어플을 설치하고 전속 스태프로 등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 전속 스태프 훈련 신청 메뉴를 활성하여 E급 던전에 갈 수 있는 걸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