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거절합니다.”
“아, 왜?”
“까놓고 말해서 이제 막 일 끝나고 퇴근하고 쉬고, 내일 또다시 아카데미아 기말고사 준비로 바쁜 저입니다. 대련이라면 다른 천(天) 클래스 분에게 신청하십시오. 그럼 이만…….”
그래, 당연하지만 거절하는 게 최고다.
이기든 지든 간에 B급 이상의 각성자와 대련을 하게 되면 몸 성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더구나 시간 낭비다.
게다가 내일도 일해야 하는 근무자의 입장에서도 말도 안 되는 짓거리였기에 당연히 거부할 수밖에 없다.
“아아! 정말 그러지 말고! 한 번만! 한 번만 해 주라! 안 그러면 아저씨 각성자라는 거 다 까발릴 거야!”
“반대로 꼭 저와 대련을 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내 성좌님이 아저씨에게 무성(武星)이 떠 있다고, 강해지고 싶으면 무조건 붙으라는데?”
이러면 들킨 게 순식간에 이해가 된다.
신이나 다름없는 성좌가 까발려 줬으니, 제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무성(武星)이라는 게 왜 떠 있는 거지? 내가 가진 스킬 중엔 그런 게 전혀 없을 텐데…….
‘아니다, 있구나! 망할 스킬!’
(유니크)만검(萬劍)의 기사 그란델의 무재(武才)
일만의 검을 익힌 천재 기사의 재능. 유니크 스킬로 성좌의 기록에 남을 정도의 재능이라면 가히 무성(武星)이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니었다.
젠장! 진짜 인간의 상상을 넘는 존재들이다 보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따라잡을 수가 없네!
“아무튼 득이 없는 싸움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몸 쓰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다치면 손해거든요. 그럼~”
“아아! 가지 마! 그럼 아저씨 각성자라는 거 아카데미아에 불어 버릴 거야? 그 정도 되는 각성자가 스태프 일을 하는 건 무언가 사정이 있어서지?”
“그러면 스태프를 그만두고 떠나면 그만이죠.”
사실은 그러면 곤란했지만, 여기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면 태연해야 했다.
저 도발에 넘어가서 스스로 약점을 드러내 봐야 앞으로 계속 저 아이는 날 가지고 놀려고 들 게 뻔했기 때문이다.
“아~ 씨, 더 강해지고 싶은데…….”
“레벨 업이라면 길드라든가 협회, 아카데미아에서 모두 지원하지 않습니까?”
천(天) 클래스는 고등급 성장치를 지닌 자들이기에 강해지고 싶어 한다면 그들을 위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들의 강함이야말로 국력이며, 길드의 힘이며, 인류의 미래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죽어라 부려 먹으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강해지는 데는 아무 문제없을 것이다.
“레벨은 단순히 스테이터스와 스킬 같은 스펙만 늘어나는 거라고! 내가 원하는 건 실력! 실력이란 말이야! 시시한 몬스터를 양학하는 게 아니라, 진짜 강자와 합을 겨루고 싶은 거라고!”
“그런 거라면 북쪽으로 쭈욱 가시죠. 도살왕의 아크데몬 비스트와 마인(魔人)들이 반겨 줄 겁니다. 실전에서 배우는 것만큼 좋은 교육이 없죠.”
“정말 이러기예요? 스태프 아저씨? 이렇게 사랑스러운 소녀의 부탁도 못 들어줘요?”
앙증맞게 손을 모아서 귀여운 척을 하지만, 그래 봤자 어린아이 재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림도 없지.
아무리 그렇게 해도 여우 짓은 성욕에 휘둘리는 멍청이들에게나 통하는 거란다.
“못 들어줍니다. 수행하고 싶으면 산이나 가세…….”
“심판의 진!”
그렇게 쿨하게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눈앞에 푸른 결계 같은 게 생기면서 입구를 가로막는다.
기어이 저년이 사고를 쳤구나 생각하며 나는 뒤로 돌아서 그녀를 향해 아카데미아 스태프 보호 학칙에 대해 설명한다.
“아카데미아 학생이 스태프에게 공격 및 폭행을 가할 시 최대 헌터 자격 박탈이라는 강한 징계가 내려지는 거 알고 있습니까?”
“아닝! 그런 거 모르는뎅? 그 문제는 길드 변호사님이 알아서 하겠지! B급 각성자가 스캐빈저가 되길 바라진 않을 거잖아. 게다가 스태프 아저씨는 각성자이니까 변명의 여지도 있겠지.”
정말 요즘 애들은 참 영악해서 문제야.
모르는 척해도 알 거 다 안다니까. 소년법 연령은 이래서 낮춰야 하는 거다.
과거에도 15살이면 성인 취급이었다고! 알 거 다 아는 놈들이니까!
“참고로 이 결계는 안에 있는 두 사람 중 하나가 죽거나, 기절을 해야 사라지는 사양이야. 나의 성좌 ‘균형자’님이 내려 주신 은혜이지. 공정하게 일대일로 싸울 수 있는 전장이라고. 스태프 아저씨!”
“하아~ 어쩔 수 없군.”
대련인지 싸움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된 나는 어쩔 수 없이 인벤토리에서 사냥에 썼던 철검을 꺼낸다.
피할 수 없으면 결국 맞서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다가간다.
다만 그 전에 몇 가지 할 일이 있다.
“결국 이렇게 되었으니, 싸우기 전에 몇 가지 당부만 좀 받아 두죠.”
“얼마든지요. 제가 억지로 한 거니까 가능한 건 들어드릴게요.”
“우선 이 싸움에 대해서 비밀. 그리고 제가 각성자라는 것도 비밀로 해 주시고, 어느 쪽이 이기든 원한 가지기 없기. 나중에 막 소송이나 고소 및 피해 보상 등을 요구하지 않기. 대련 중에 일어난 신체 접촉을 가지고 여학생이라는 점을 무기로 차후 나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기, 또…….”
남들이 보면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을 거고, 만화책으로 본다면 밥맛 떨어지는 짓이나 다름없었지만 이게 현실이다.
게다가 상대는 사회적으로나, 권력적으로나 강자인 만큼 날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아! 뭐가 그렇게 복잡해요? 그냥 대련 한판 때리면 되는 거지! 게다가 저 그렇게 안 치졸하거든요?”
“아무튼 이상의 사안을 모두 ‘성좌’의 이름으로 이행하겠다고 맹세한다면 대련에 응하겠습니다. 아니면 무저항 상대를 공격하시든가요. 그래서는 원래 목표로 하시던 실력이 늘지 의문이군요.”
“우우! 알았어요. 나를 돌보시고 길을 이끌어 주시는 성좌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요. 다만 저만 조건 잔뜩 걸린 건 불공평하니까 나도 하나 추가!”
“이미 당사자 동의 안 받고 이런 투기장 만들어서 결투를 건 것 자체가 불공평한 일인데요?”
“내가 이기면 내 파티에 들어와 주세요. 그럼 갑니다!”
쟤는 왜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인가?
아무튼 내키지 않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푸른 투기를 일으키며 잽싸게 달려오는 소녀였고, 난 다급히 전투 자세를 취한다.
하나, 빠르게 다가오던 그녀는 갑자기 내 앞에 생긴 황금색의 반투명한 벽에 처박혔다.
“쿠엑!”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떨어진 개구리처럼 쓰러진 소녀였다.
그냥 보기만 해도 아픈데 당사자는 어떨까?
그래도 각성자답게 강건한 건지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나에게 따진다.
“이, 이거 뭐예요? 마법 쓰기 있어요?”
“아니, 나도 잘 모르겠…….”
[대련이라고는 하나 무(武)를 겨루는 것이라면 당연히 예의를 갖춰야 하는 법. 양측은 명예를 지켜라.]
순간, 황금의 장벽에 글자가 떴다. 딱 읽어 보니까 또 내 특성 스킬이 발동한 것 같았다. 명예니 어쩌니 하는 걸 보니 말이다.
아무튼 그녀도 글을 읽더니 납득하고는 한 발 물러서서 손을 모아 인사부터 한다.
“끄응~ 우리 성좌님도 이게 맞는 거라고 하니 어쩔 수 없네. 성좌 균형자의 사도 ‘저지먼트 피스트’ 신아영, 한 수 부탁합니다.”
“…….”
“뭐 해요? 안 받아 줘요?”
나도 그걸 하라고? 나는 무인도 아니고 일개 스태프인데! 라고 절규하고 싶었지만 이 장단에 맞추지 않으면 상황을 벗어날 수 없기에 결국 맞춰 주기로 한다.
“하아아~ 할 수밖에 없나? 클래스는 ‘기사’, 유성원. 내키지 않지만 하라니 하겠습니다.”
쨍강!
형식적으로나마 예를 갖추고, 의욕 없이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서로 인사와 소개를 교환한 걸로 취급이 됐는지 곧 황금의 장벽은 사라졌다.
그러자 신아영은 다시 푸른 투기를 일으키며 나에게 달려온다.
“으랴아앗!”
“큭!”
터어엉!
검으로 막았는데 묵직한 소리가 울린다.
손을 기로 감싸서 그런 것 같은데, 스테이터스가 있더라도 몸에 충격은 그대로 전해진다.
A급과 B급의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바늘에 찔려서 안 아픈 사람이 없듯이 저 기로 둘러진 주먹은 막아도 아프다.
“심판의 권-일식:천벌!”
‘스킬까지 쓰고 있어!’
“뭐야? 검 안 뽑을 거야? 난 절대 안 봐줄 테니까 각오해!”
‘아무 생각 안 하고 싸울 수 있는 건 애새끼인 너뿐이란다!’
그래, 세상에 공정한 싸움은 없다.
저 애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자신의 강함을 위해 전력투구를 해도 되는 반면 나는 이 싸움의 뒤까지 생각해야만 했다.
죽여서 아예 은밀 살인으로 만들 게 아닌 이상 말이다.
‘딱히 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말이지.’
배워 놓은 무재(武才) 스킬 덕분인지 그녀의 공격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한 수, 두 수 받아 내면 받아 낼수록 빠르게 익숙해져서 가뿐하게 방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곧 틈도 보이기 시작했지만 공세로 나갈 수는 없었다.
‘B급 각성자면 귀중한 인재라서 크게 다칠 경우 협회랑 길드에서 난리가 날 거고, 책임자를 찾겠지? 그렇다면…….’
“아! 뭐야! 왜 막기만 하는 거야?”
“수비 또한 전략의 일부다. 그런 건 뚫고 나서 이야기해라.”
“좋았어! 그러면 큰 거 한 방 간다! 하아아아아!”
콰아아아!
갑자기 끌어 올린 푸른 투기가 그녀의 몸에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아니, 수련실 내구도는 생각도 안 하는 건가? 이거 부서지면 내가 고쳐야 하거든?
위쪽과 전방 후방은 ‘심판의 진’이 지켜 주고 있었지만 바닥 부분은 가열하게 부서지고 갈라져서 타일 아래에 있는 합금판이 찢어지고 있었다.
‘진짜 진심으로 날 작살내려고 하네. 하아~’
“심판의 권-오의:인과응보!”
걱정이 많은 나와 달리 그녀는 걱정 하나 없는 눈빛으로 날 죽일 기세로 오의를 펼치며 달려온다.
하지만 큰 기술일수록 틈이 많은 걸 모르는 건가?
상대를 무력화하거나 틈을 노리지 않고 대놓고 쓰면 대체 누가 맞아 준다는 건지?
‘…아, 바디가 제대로 비었다.’
나는 당연히 피했고, 그 순간 틈이 아주 제대로 보였다.
이걸 무시하면 무시하는 대로 자기를 봐줬다며 얘가 화내겠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나는 가볍게 한 방 먹이고자 살짝 주먹을 질러 복부 쪽으로 내지른다.
하지만 이건 완벽한 내 실수였다.
“커허어아아아아악!”
파아아앙!
북이 찢어지는 것 같은 타격음과 함께 그녀는 땅을 파면서 심판의 진의 벽에 부딪칠 때까지 뒤로 날아간다.
아! 나란 새끼 병신 새끼! 븅신 새끼! 등신 새끼!
작용, 반작용의 법칙도 모르는 병신, 카운터도 모르는 격투게임도 안 해 본 찐따 새끼!
마치 뺑소니 사고를 낸 듯 식은땀이 흐르고 안색이 파래진 상태로 나는 잽싸게 그녀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