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대책이라……. 사실상 없지?’
아카데미아 스태프는 그리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니었다.
고로 경호 요청 같은 건 돈이 없는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길드의 인맥이 있어도 아카데미아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칠 힘 같은 것도 없어서 뭔가 도움을 받거나 할 위치도 아니었다.
‘진짜 망할 각성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래, 따지고 보면 이게 다 각성한 탓이었다.
각성를 하고 스킬과 전설급 장비만 얻지 않았다면 나는 그냥 오늘도 아카데미아에서 평범하게 일하고 있을 건데, 그것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 짓거리를 해 버려서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다.
‘어째 누군가가 꾸민 농간대로 착착 각성자의 길을 가는 것 같지만……. 아무튼 불평할 시간도 아까워.’
농간인 것 같아도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가만히 앉아 있는 채로 불안해하면서 그놈의 기분에 내 운명을 맡기는 것도 싫고, 그 망할 놈에게 내가 지금 착용 중인 이 전설 아이템까지 바치게 되는 신세가 되긴 더더욱 싫다.
***
아카데미아 지(地) 클래스, 고등반 교실.
“젠장! 드디어 찾았다, 이 망할 스태프 새끼. 감히 내 일을 방해하고 무사하길 빌어?”
그리고 그 시각, 여기저기 연락을 넣은 끝에 장윤성은 어제 자신의 일을 방해한 아카데미아 스태프에 대한 정보를 획득한다.
9년 차 아카데미아 직원이자 시설 유지부 산하 팀장 중 한 명이라는 것까지 알아낸 그는 드디어 분노를 터뜨릴 상대를 찾게 되어서 기뻐함과 동시에 분노하고 있었다.
“진정해, 윤성아. 아카데미 과정 중에 아카데미아 스태프를 죽이면 문제가 커져. 화풀이밖에 메리트가 없는데 그래도 할 거야? 어차피 쥐뿔도 없는 인생 패배자인데?”
“맞아. 쓰레기한테 화풀이해 봐야 몸만 더러워진다고~ 처리 못할 건 아니지만, 한다고 해서 이득은 없고 손해가 너무 많아.”
“그러니까 그냥 신경 꺼 버리고, 기말고사 대비나 하면서 다른 사냥감 찾죠. 대장.”
그의 파벌 학생들이 애써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스태프를 처리하는 일의 디메리트에 대해 조언한다.
그런 하찮은 존재를 없앤다고 해서 상황은 나아지지 않으며, 오히려 괜히 아카데미아의 눈에 띄면 곤란하다는 주장이었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스태프의 인권에 대해서는 일절 생각 안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게 당연한 시대였다.
“너희는 그 망할 놈이 망친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몰라서 그래. 빌어 처먹을……. 은혜 그년을 반드시 데려와야 했는데!”
하나, 장윤성은 그렇게 달래는 학생들의 말에도 분노를 꺼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대충 갖고 놀다 버릴 계집에 대한 것이었다면 그냥 ‘똥 밟았네.’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어제 노리던 그 계집은 연금술 스킬 특성을 가진 년으로, 길드의 후계자로서 확실히 입지를 굳히기 위해 꼭 잡아야 했던 것이었다.
‘가뜩이나 스테이터스랑 스킬도 밀리는 판국이라 지(地) 클래스인 것도 짜증 나는데…….’
장윤성은 C급 각성자로, 대부분 중견 이상 길드의 후계자나 대형 길드 입단 확정자들이 있는 천(天) 클래스에 가지 못하고 지(地) 클래스에 배정받았다.
천(天)과 지(地) 클래스의 차이는 말 그대로 천지 차이였다.
천(天) 클래스에 모이는 각성자들은 대한민국의 안보와 수호를 책임지는 최중요 인재들이다.
인맥을 비롯해 여러 체면과 권위가 걸린 문제라 반드시 천(天) 클래스로 졸업을 해야만 ‘아발론’ 길드장 자리를 물려받을 자격이 생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젠장! 어떻게든 천(天) 클래스를 들어가려고 했는데! 스테이터스 성장치도 더 이상 못 올리고! 온갖 수단을 다 썼는데도……! 제기랄!’
아카데미아에 들어온 뒤, 장윤성은 어떻게 해서든 새로운 스킬과 능력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레벨 업을 하고 그의 길드를 돌보는 성좌에게 호감을 쌓으려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남은 방법은 길드 내에서 공헌도를 올려서 입지를 쌓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특수한 스킬이나 능력을 가진 이들을 길드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노력했고, 운 좋게 남들보다 먼저 연금술 특성을 가진 계집을 발견해서 노렸는데 실패한 것이었다.
“후계자가 되지 못하면 분명 최전선에서 죽을 때까지 구를 거라고! 제길!”
그의 꿈은 길드장이 되어서 인원 관리만 하다가 안전한 던전만 누비면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것이었다.
그러지 못하면 도살왕의 악마들과 싸워야 한다.
“뭐, 왕조도 그렇고 후계가 이루어지면 권력을 강화해야 하니, 다른 양반들을 제거하는 거야 당연한 수순이겠죠. 하지만 그러니 더더욱 그 스태프 새끼에게 할애할 시간이 없어요.”
“아니, 반대로 난 더더욱 그 새끼를 처참하게 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족쳐 놓지 않으면 나중에 또 다른 스태프 놈들 때문에 산통 다 꼬일 수 있어. 앞으로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 본보기를 보여야 해.”
일벌백계를 주장하는 장윤성의 말은 설득력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더 이상 말렸다가는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 수 있다고 생각한 그의 추종자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더 이상 무리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조지실 겁니까?”
“이런 거 전문인 놈들이 있어.”
“스캐빈저를 쓰실 겁니까?”
스캐빈저와 마인(魔人)은 둘 다 인류에 적대적이고 범죄와 악행을 벌이는 집단이지만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마인(魔人)은 인류에 적대하는 성좌에 충성을 바치기 때문에 타협이나 비밀 거래 같은 게 불가능한 반면, 스캐빈저는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여차할 경우엔 인류와 거래가 가능한 점으로 구분한다.
“뭘 새삼~ 중견 이상의 길드라면 더러운 짓을 위해서 스캐빈저와 알고 지내는 거 알잖아?”
과거에든 현재에든 권력과 지위를 가진 자들은 도전해 오는 자들로부터 자신들을 효율적으로 지키기 위해 ‘가장 빠르고 신속한 방법’을 준비해 두곤 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이 스캐빈저와의 거래일 뿐이었다.
협회와 정부의 손이 닿지 않으며 인류에 적대적인 범죄 각성자 집단인 이들은 길드와 이런 암암리의 거래를 통해서 상부상조하고 있었다.
“그럼 걱정 없겠군요.”
“고작 아카데미아 스태프이면 비싼 돈 치를 필요 없고, 뒤탈도 없이 처리해 줄 거야. 흐흐흐, 처리가 되면 너희가 소문만 살짝 내면 돼. 알았지?”
스캐빈저에게 의뢰하기로 한 시점에서 이미 유성원의 목숨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기분이 좀 풀렸는지 장윤성은 기말고사를 준비하기로 한다.
***
나는 곧바로 우리 시설 유지부 부장님에게 가서 ‘아발론 길드’의 후계자인 장윤성이 날 노릴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며칠 숨어 있기 위해서 연차를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건 거절이었다.
“안 돼. 기말고사 기간이 코앞인데 연차? 사람 손이 하나라도 소중한 기간에? 그것도 5일이나? 정신머리가 있나?”
예상은 했지만 부장님, 냉철하게 거부하는군. 어제 반차를 쓰고 난 다음에 말해서 더더욱 문제였나?
역으로 생각해 보면 9년간 개같이 일했는데 고작 5일 연차 가지고 정신머리 없다는 소리를 듣는 건 기분 나쁜 일이었지만, 원래 대한민국이 이런 곳인 걸 잘 알았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 아카데미아의 교육 슬로건이 ‘화합’인데, 그런 일로 보복을 한다면 처벌도 심각할 거야. 그러니 걱정 말고 가서 일이나 하게. 여기서 하루 이틀 일한 것도 아니고,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러나?”
알 만하니까 더 그러는 겁니다.
물론 본심을 입 밖에 낸다고 해서 이득 보는 건 전혀 없기에 나는 대강 알겠다고 대답하고 그 자리를 나온다.
그럼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뭐긴 뭐야. 탈주지.’
내가 ‘아발론 길드’의 도련님에게 노려진다는 것을 부장님에게 알렸으므로 이제 내가 사라지면 100퍼센트 그쪽부터 의심할 것이다.
뭐, 그 양반도 나름 알리바이를 만들겠지만, 그래도 자신을 방해한 자를 처리했다는 의심은 피하지 못할 터였다.
그리고 우리 부장님은 9년이나 일한 직원을 잃었다는 뼈아픈 후회와 함께 인생의 오점을 가지게 되겠지.
‘나중에 스캐빈저에게서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고 하면 그만이지.’
물론 돌아와서 재취직이 되느냐? 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자.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다음을 걱정하는 것만큼 바보짓도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잠깐 아카데미아를 떠날 준비를 시작하기로 한다.
‘수업 자료, 전투 자료, 무기 사용술, 스캐빈저 대응법. 가져갈 수 있는 만큼 모조리 가져가야지.’
이번엔 (유니크)만검(萬劍)의 기사 그란델의 무재(武才)가 배가 부를 정도로 든든하게 자료를 챙기도록 한다.
자료를 미리 다운로드해 놓고 일을 마치고 난 뒤, 거기에 레벨 업도 할 수 있도록 아카데미아 내부에 자리 잡은 쇼핑몰로 가서 무기도 구입하려고 한다.
‘방어구는 있으니 망정이지.’
“오~ 유 팀장님, 호신용 무구 보러 오셨어요?”
“벌써 소문 다 났냐?”
“에이, 비각성자가 그런 표정으로 여기 올 이유라면 뻔하죠. 이래저래 자신 있어 하시더만, 결국은 덜미 잡혔나요?”
대강 알고 지내던 무구 직영점 직원까지 알 정도면 내가 사라져도 확실히 그놈들 탓을 할 게 뻔했다.
아무튼 각성했다는 것을 들키지 않도록 일반 각성자용 각종 보호구와 물약, 포션과 함께 호신용으로 검 한 자루까지 구입한다.
“제대로 못 쓸 칼보다는 가스총 같은 게 더 나을걸요?”
“아카데미아 스태프가 얼마나 받는다고 그런 거 다 사냐? 네가 사 줄 거냐?”
“…….”
돈 문제를 이야기하니 금방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렇게 구입을 끝낸 나는 퇴근하자마자 숙소에서 짐을 싼 뒤, 곧바로 아카데미아를 나섰다.
바로 엊그제만 해도 아무 걱정 없이 TV 앞에 앉아서 리모컨을 돌렸는데! 지금은 저녁밥도 거르고 레벨 업을 위해 몬스터를 잡으러 가야 한다니!
***
“하아~”
택시를 타고 도시 외곽으로 나온 나는 곧바로 위험 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 던전들이 있는 산간으로 올라갔다.
내가 지금 향하는 곳은 최하급인 F급 던전이다.
F급 던전.
최약체 던전으로 일반인도 무장만 잘하면 클리어할 수 있는 던전 아닌 던전이었다.
오죽하면 사냥용 레크리에이션 사업까지 할 정도이니 말 다 했지.
“후우~ 이젠 어쩔 수 없지. 으으…….”
[던전 퀘스트 ‘브루탈 하운드 토벌’ 0/30]
보상:???
안에 들어가자 날 향해 으르렁거리는 개들과 함께 던전 퀘스트가 날 맞이해 준다.
교육 자료가 아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제부터 진짜 목숨을 걸어야 하는 헌터 일이었다.
크르릉!
상대는 브루탈 하운드. 도베르만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근육량 자체가 달랐으며 붉게 빛나는 눈에는 살의가 가득한 게 결코 정상적인 동물이라고 할 수 없는 몬스터였다.
컹컹!
“후우~ 좋든 싫든 하는 수밖에!”
철컥! 철컥!
나는 달려드는 브루탈 하운드를 향해서 가져온 검을 휘둘렀다.
순간 시야가 가려지면서 전신이 무언가로 뒤덮인다.
곧 시야는 돌아왔고, 방금 베어 낸 브루탈 하운드의 피와 내장이 황금 갑옷에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 맞다. 이거 자동 착용이었지!’
금빛 수호신수(守護神獸)의 갑옷.
한번 입어 두면 평상시에는 아공간에 있다가 전투 시 자동으로 착용이 되는 전설급 아이템.
내가 별도의 옵션 변경을 하지 않아서 사양이 유지되고 있었다.
‘나중에 내가 말할 때만 입고 벗을 수 있게 설정을 바꿔 놔야겠다.’
그렇게 아이템과 준비 덕에 나는 첫 던전을 순탄하게 진행해 나갔다.
야생동물 레벨들이라서 처리하는 데 어떻게든 순탄하게 흘렀을 것이지만, 무재(武才) 스킬이 효과를 발휘한 덕분인지 브루탈 하운드들의 시체가 늘어나고, 검을 휘두를 때마다 내 자세와 움직임이 계단을 오르듯 달라져 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