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야 장명석! 내가 테이블 닦으라고 했어 안했어!”
“아 지금 하려고 했단 말이에요.”
“너 자꾸 그러면 진짜 잘라버린다.”
“헤헤. 에이 사장님 왜 그러세요.”
하동연의 경고에 장명석이 꼬리를 말며 테이블을 향해 뛰어갔다.
“에휴. 진짜. 야 나 먼저 간다. 마무리 잘 하고.”
“네. 사장님 걱정 마세요.”
그나마 인사성이라도 밝아서 다행이다.
하동연은 혀를 쯧 차며 거리로 나섰다.
카페 운영은 어차피 그에게는 여흥거리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있기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는 빠르게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더 이상 몬스터가 나타나는 일도 없었고, 각성자들은 모든 힘을 잃었다.
몬스터의 사체도 모두 사라져 남은 것은 오로지 폐허가 된 세상뿐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세상은 빠르게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때때로 사람들은 모든 이들이 집단 환각에라도 시달린 것이 아니냐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글쎄. 그 누가 진실을 알 수 있을까.
하지만 하동연은 지금도 때때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던 시스템 메시지를 떠올리곤 했다.
자신을 NPC라 칭하던 그 시스템 메시지.
나는 인간인가 그렇지 않으며 시스템이 만든 NPC인가.
이 세계를 만든 것은 우연의 산물인가 그렇지 않으면 신의 의지인가.
혹은 그 신이 서버인 것은 아닌가.
오랫동안 하동연은 이 질문들에 시달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답을 찾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아마 앞으로도 찾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나는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상이 그렇듯, 그 역시 빠르게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동시에 자신의 삶을 흔들어 놓았던 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마중을 나와 있다.
- 이 세계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 그 답을 내리지 못했다. 어쩌면 가이아에 의해 유지되는 세계. 어쩌면 그가 알지 못하는 신에 의해 유지되는 세계.
가족이 함께 길을 걸었다.
날아가는 곤충이라도 발견한 것일까? 아이들이 차도를 향한다.
하동연이 황급히 뛰어나가 양손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아이들이 그를 올려다보며 활짝 웃는다.
- 이 늦은 나이에 가을이라도 타는 것일까?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을 터트릴 뻔 했다. 어쩌면 양손에 잡은 아이들의 작은 손이 너무나 따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새삼 그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감사했다.
하동연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제 비가 와서인지 하늘이 유난히 맑다.
그래 어쩌면 그는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질문을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 세계는 내 손 안에 꼬물거리는 이 작고 따뜻한 것이다.
“저녁은 뭐 먹을까요?”
아내가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언제나 자신만을 믿어주는 여자다.
이 역시 과분할 정도로 감사한 존재.
- 나는 그때 내 아내의 등 뒤로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주름진 하동연의 눈이 커졌다.
“왜 그러세요?”
“아니. 아니야.”
그는 양옆에서 꼬물거리는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너희들이 좋아하는 치킨 어때?”
아이들이 환호한다.
“너무 자주 먹는 거 아니에요?”
건강을 염려하는 아내의 걱정스러운 표정. 하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버린다.
하동연이 문득 뒤를 돌아본다.
석양이 지는 가을하늘 아래 희미하지만 분명한 보랏빛 잔상이 사그라들고 있다.
하동연은 살짝 미소 지으며 앞을 바라본다.
그들 앞에 놓인 길을.
“자. 집에 가자.”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