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211화 (211/215)

211

타르칸은 곧바로 로그아웃했다.

스네이크를 죽이기 위해서다.

그 녀석은 지구에 틀어박힌 채 그랑대륙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고 있다.

일단 만나기만 하면 녀석의 목을 따버리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용건이 있으니 만나자고 할까?”

지난 번, 자신의 직원을 보내 만남을 청했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제이가 녀석을 만나야겠군.”

하동연은 대한민국의 장관으로 있을 때보다 더 바쁜 모습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쉴 세 없이 걸려오는 전화들과 쌓여있는 서류들.

단순히 얼굴마담만 해주면 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다.

“타르칸? 잠깐만, 잠깐만.”

자신의 통역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던 하동연, 타르칸을 발견하고는 대화를 급히 마무리 지었다.

“그럼 그렇게 처리해줘. 자세한 사항은 내가 추후로 전달하겠다고 전해주고.”

“네 알겠습니다. 의장님.”

전 세계 각성자들의 통제하며, 동시에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협회 WGO (World Guardians Organization).

몬스터가 출몰하는 이 세상에 WGO는 사실상 세계 권력의 중심에 있는 단체였다.

그런 초월적인 기관의 초대 회장이 바로 하동연. 그다.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미리 말 좀 해주지 그랬어.”

아직 권력의 맛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그의 천성 때문일까?

너털웃음을 짓는 하동연은 소탈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이야, 못 알아보겠는데?”

반면 그의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은 크게 바뀌어져 있었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동네 피시방이나 전전할 것 같은 모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와 일류 디자이너의 맞춤복을 입은 하동연은 마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일류 정치인 같은 모습이었다.

“옷이 좋긴 좋지?”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도 어색한지 하동연은 작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타르칸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세 달 지난 거 알고 있지?”

그의 말에 하동연의 얼굴이 굳었다.

“복수는 이미 포기 했나봐?”

“타르칸 들어봐.”

“아니 괜찮아.”

물론 하동연에게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르칸은 알아야할 이유도 관심도 없다.

“스네이크는 지금 어디에 있지? 이 정도는 말해 줄 수 있겠지?”

하동연은 주저하며 말을 꺼내었다.

“그 녀석은 갑자기 잠적해 버렸어. 백방으로 찾아보고 있지만… 행방이 묘연해.”

“하…”

“WGO가 안정되는 즉시 녀석을 칠 생각이었는데… 스네이크가 먼저 선수 쳤어.”

WGO가 안정되는 즉시라니. 매 순간 순간 새로운 몬스터게이트가 생성되는 이때에 몬스터 처리를 위한 조직이 대체 언제 안정화 되겠는가.

도저히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다.

“한심한 새끼.”

“……미안하다.”

“나 혼자 찾아봐야겠군.”

“잠시만 타르칸!”

타르칸의 서늘한 눈길이 하동연을 향했다.

“미안하지만 넌 더 이상 낄 자격이 없어.”

그는 이미 과할 정도로 하동연의 사정을 봐주었다.

스네이크와 함께 만든 이 단체는 실제로 효과적으로 기능할 테지만, 그것은 타르칸에게는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그래도 네 덕분에 혼자서 발록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해 질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 네가 처음에 했던 약속은 그걸로 된 셈 치자.”

짧은 인사와 함께 타르칸이 돌아섰다.

***

스네이크의 행방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의 소유의 저택과 회사를 모두 뒤져봤지만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마치 증발한 것처럼, 그는 세상에서 사라져 있었다.

“다음 세대를 위해 떠난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스네이크의 비서는 그렇게 말했다.

“다음 세대라…”

“후손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버리신 것이죠. 저희들은 그 분의 의지를 이어받아 스네이크님의 모든 자산과 인력을 총동원하여 WGO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비서가 깔끔한 안경을 바로 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만 들으면 마치 인류를 위해 봉사하다 삶을 마감한 성자에 대한 언급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교활한 새끼.”

타르칸은 스네이크의 속셈을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음 세대? 자신의 세대겠지.”

타르칸이 스네이크의 저택에서 발걸음을 땠다.

녀석이 숨어있는 곳을 추측하기 위해 자신이 스네이크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정리했다.

그의 어머니의 쪽지에는 스네이크의 정체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아둔한 전능자가 처음으로 되살려낸 9등급의 몬스터는 두 마리의 뱀.

그중 먼저 만들어진 것이 바로 오로치, 스스로 스네이크라고 부르는 자였다.

그는 본래 아둔한 전능자가 떠난 땅을 관리하고 다스리기 위해 지음 받은 자.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둔한 전능자는 그가 아닌 그의 동생을 선택했다.

아둔한 전능자의 권능이 그의 동생에게 서렸고, 스네이크는 단순한 9등급의 몬스터이자 동생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아둔한 전능자의 첫 번째 선택지였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때문에 스네이크는 생각한 것이다.

자신의 동생 마룡 베아트리아를 죽이면, 그 힘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실제로도 매우 가능성이 높은 가정이었다.

아둔한 전능자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나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지만, 그들의 안배는 어찌되었든 유지되어야만 하니까.

대행자가 죽으면 그 다음 순위가 다음 대행자가 될 것은 자명해 보였다.

남은 문제는 대체 그 마룡을 어떻게 죽일 것인가.

전능의 대행자가 된 그의 동생은 감히 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존재가 되었다.

심지어 자신이 힘을 잃지 않은 본체 상태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

오로치는 구덩이 속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결국 그는 한 가지 사악한 영감을 떠올렸다.

그래. 아둔한 전능자의 대행인이라 할지라도 능히 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있지 않았던가.

바로 타나토스.

아둔한 전능자의 최종 병기이자. 최악의 살육 기계.

“바로 나지.”

세계의 종결자. 모든 것을 무로 환원시키는 자.

하지만 동시에 타나토스는 이미 그의 임무를 모두 ‘완수한 자’다.

세상의 모든 몬스터를 박멸하는 것과 동시에 타나토스는 완전히 기능을 정지했다.

모든 존재의 능력을 봉인시키는 그의 피와 살이 몬스터에게 더 이상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 역시 그때부터였다.

“타나토스를 살려내기 위해. 나의 어머니를 이용했다… 아니 이용이 아니라 서로 협력했다고 해야 하나?”

스네이크는 동생을 죽이고 자신이 전능의 대행자가 되기 위해.

그리고 가엔은 그녀의 삶을 파멸시킨 아둔한 전능자의 계획에 먹칠을 하기 위해.

스네이크와 그의 어머니 가엔은, 기능이 정지한 타나토스의 핵을 발굴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엔은 그 핵을 자신의 태내로 성공적으로 품어내었던 것이고.

“정말이지 역겨운 발상이야.”

타르칸에게는 소름끼치도록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그 모든 계획의 진행을 아둔한 전능자가 모를 리 없다는 것.

단순히 계획에 그치지 않고 타르칸이라는 결실을 맺었다는 것은 아둔한 전능자들이 그들의 모략을 눈 감아 주었다는 소리.

“아니 눈 감아 준 정도가 아니지.”

그가 얻은 클래스, 그가 얻은 정수의 원형, 그가 얻은 스킬, 그가 얻은 아이템들.

모두다 마룡. GM베아트리아를 죽이기 위해 안배된 것들.

“아마도 서버, S가이아의 허용. 아니 S가이아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존재라고 보는 것이 더 옳겠지.”

하지만 어째서?

자신이 만든 창조물을 자신의 다른 창조물로 죽이려고 하는 서버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순간이었다.

“신화속의 가이아는 자신의 아들 우라노스의 남근을 자르기 위해 티탄을 낳았고, 그 대업을 이룬 티탄 크로노스를 죽이기 위해 또 제우스를 낳았죠.”

누군가가 그를 향해 걸어왔다.

진즉 그를 인지하고 있던 타르칸은 당황하지 않고 그에게 시선을 던졌다.

익숙한 목소리와 더불어 놀랍도록 발달한 근육을 가진 건장한 남성.

“알파.”

“아둔한 전능자들이 신을 흉내내는 것인지. 아니면 그 정도로 강해지면 저절로 그런 속성을 가지게 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이죠.”

인간의 입장이라.

타르칸이 고소를 머금었다.

“그럼 넌 어때? 그래도 9단계 등급의 몬스터. 세계의 최강자에서 인간의 육체를 가진 너라면 그 차이를 이해할 것 같은데?”

“하하핫. 강하다고 해봐야. 아둔한 전능자들에 비하면 그저 반딧불 같은 것인데요 뭐.”

시원한 웃음을 터트리던 알파의 표정이 돌연 진중해졌다.

본론을 꺼내려는 것이다.

“말씀은 들었습니다…. 사실… 인가요?”

“그래. 내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잖아?”

피닉스.

12사도 중 유(酉)에 해당하는 자가 올트리아에 살아있었다는 것.

알파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축(丑), 진(辰), 오(午), 닭-유(酉).

이 4명의 사도들은 금지된 술법의 영향으로 두 세계의 틈 속에 갇혔다고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 사실을 알려준 며칠이 지나서야 나를 찾아왔다는 건, 이미 나름대로 확인이 끝났다는 소리 아니야?”

알파는 말이 없다,

아무런 표정 없이 먼 곳을 바라보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추측하기 어려웠다.

한참 뒤, 그의 입술을 비집고 한탄 같은 말이 내뱉어졌다.

“미르님이… 마룡 베아트리아… 그리고 저희들은 모두 미르님에게 속고 있었다.”

알파의 머릿속에서는 이때까지 이해되지 않았던 미르의 기이한 모습들이 하나씩 퍼즐을 맞춰가고 있었다.

“육체를 잃은 다른 3명의 사도가 유달리 말이 없었던 건 그런 이유였나…? 실체가 없다는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였어!”

타르칸은 어설픈 위로를 건네기 보다는 바로 본론을 말했다.

“나는 네가 미르라고 부르는 녀석을 죽일 거야. 정수의 원형을 끄집어내어 양쪽 세계를 정상으로 되돌릴 생각이거든.”

S가이아가 P(Personality)가이아. 즉, 자신의 인격을 분리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내던진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서버를 막기 위해서는 다시 가이아가 서버와 하나 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사실 이것은 완벽한 계획은 아니다.

P가이아가 서버와 하나가 된 뒤, 완전히 말을 바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둔한 전능자들은 자신의 약속에 스스로 매이는 존재들이며 가이아는 타르칸과 이미 굳게 맹세를 한 상태.

지금은 그 약속을 믿는 수밖에 없다.

‘서버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그 정도로 힘든 일이니까.’

- 신은 모든 것을 창조하며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 우리는 신 안에서 숨 쉬며 신의 품 안에서 태어나고 죽는다.

교단에서 배포한 경전의 첫 구절.

타르칸은 이제야 서버의 의지에 반기를 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르를 죽이기 전에 먼저 스네이크를 죽여야 해.”

“스네이크 그 배신자.”

일그러지려던 알파의 얼굴 표정이 이내 맥없이 풀렸다.

그가 믿고 따르던 미르에게 속았던 지난날이 떠올랐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머릿속이 멍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군요.”

“괜찮아. 생각 하지 마. 그냥 꽁꽁 숨어 있는 스네이크를 찾을 방법을 알려 줘.”

“스네이크가 작정하고 숨었다면 찾기가 매우 힘들 겁니다. 흔적을 지우고 잠적하는 재주는 녀석의 맹독 다음 가는 장기이니 말이죠.”

“그래. 며칠간 가능한 모든 곳을 뒤졌지만 작은 단서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어.”

“후우…”

그 답지 않게 깊은 한숨을 푹푹 내쉬던 알파는 이내 결심한 듯 말을 꺼내었다.

“단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합니다. 사도 중에는 먼 곳에서도 심지어 다른 차원에서도 사도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거든요.”

“그게 누구지!?”

“…미르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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