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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칸님 잘 들으세요. 이 곳 올트리아는 아둔한 전능자의 유산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는, 그런 공간입니다.”
“그래 그런 것 같네.”
타르칸이 도시 성벽 너머를 배회하는 비행형 골렘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것들은 NPC가 죽거나 몬스터가 나타날 때마다 어김없이 날아왔다.
작은 크기도 아닌데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거지?
비행형 골렘의 역할은 명확했다.
아둔한 전능자가 만든 틀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그 틀에는 적절한 몬스터 관리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비행형 골렘은 몬스터게이트가 나타나는 족족 파괴시키고 있었으며 일정 지역에 몬스터가 범람할 때면 몬스터를 사냥해 개체수를 줄이기도 했다.
‘저 고블린들은 어디에서 가져오는 거지?’
마을 주변에 약한 몬스터가 떨어졌을 때는 어딘가에서 몬스터를 싣고 날아오기도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몬스터를 사육하는 장소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말 그대로 이 올트리아 대륙은, 미국과 남미 대륙 크기의 이 거대한 땅덩어리는 하나의 사육장과 다름없었다.
물론 사육되고 있는 것은 몬스터와 그리고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그랑대륙의 언어를 구사하는 NPC.
“때문에 기존의 능력들, 특히 가이아와 타르칸님의 인지능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아둔한 전능자의 잔재가 보기에 그건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원하는 것을 찾으려면 녀석들이 만들어 놓은 룰을 따라 움직여라?”
“정확합니다. 저희가 9등급게이트의 몬스터를 만나기 위해서는 해당하는 퀘스트를 수행해야 하는 이유이죠.”
“말 그대로 게임 같네.”
후우.
타르칸이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뭐부터 하면 되지? 다른 사람들은 이 세계가 게임이라고 하지만 정작 이 세계의 사람인 나는 단 한 번도 게임을 플레이해 본 적이 없거든.”
“시작은 정보 수집입니다. 주민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어보며 퀘스트가 생성되기를 기다려야 하죠.”
쟌이 정보길드에서 얻어온 책을 뒤적거렸다.
전설의 몬스터 미스릴 타이거에 대한 전설이 기록되어 있었다.
“동화를 그대로 사용했네요. 이 내용 자체보다는 책에 반응을 보이는 NPC를 찾는 것이 빠를 것 같습니다.”
전래동화 햇님 달님을 각색한 내용.
다른 것이 있다면 남매를 뒤쫓는 것은 일반적인 호랑이가 아니라 미스릴 타이거였으며 남매는 살기 위해 하늘을 나는 빛나는 구체에 몸을 맡긴다는 이야기.
그런데 삽화 속 빛나는 구체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다.
“가이아. 이 거 혹시.”
“응. 방주네.”
그럼 이 이야기는 미스릴 타이거로 대변되는 몬스터들을 피해 방주를 타고 도망친다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내 생각도 쟌과 같아. 이 내용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어. 본래라면 내용의 빛나는 구체를 찾아야 하지만. 이건 이미 내 머리 위에 떠 있으니까.”
“방주를 본래 크기로 만들어서 도시 위에 띄우는 건 어때? 누군가는 반응을 보이지 않겠어?”
“반응을 보일까? 여기 NPC들을 생각하면 그냥 날이 조금 어두워졌다고 생각하고 말 것 같은데. 그리고 방주를 띄우면 비행형 골렘이 공격할지도 몰라. 어떻게 수리한 건데 다시 망가트릴 순 없지.”
“후. 그럼 발품을 파는 수밖엔 없겠군.”
“그렇다면 우선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쟌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어째서지?”
“정보길드원이 말했잖아요. 어린아이들이나 보는 동화라고. 이건 게임이에요 타르칸님. 그런 작은 대화 속에 힌트를 숨겨 놓는 건 매우 흔한 일이죠.”
게임의 생리를 알지 못하는 타르칸과 가이아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쟌의 호언장담대로 확실히 그녀는 이곳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게임의 베타테스터로 신청했을 정도이니 게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높다고 봐야겠지.
‘그럼 하동연을 데려왔으면 일이 훨씬 빨리 풀렸으려나.’
“좋아. 그럼 도시 안의 어린아이들을 찾아 이 이야기를 아는지 물어보자.”
***
“혹시 이 이야기 알고 있니?”
“아니요. 잘 모르는데.”
“그래.”
타르칸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이번에도 꽝이군.
타르칸은 도시 안의 어린아이들을 찾는 한 편 틈틈이 자신의 능력을 점검하고 있었다.
감각이 크게 둔화된 것이 마음에 걸려서다.
확인 결과 다른 능력들은 동일하게 사용이 가능했다.
단 하나, 로그아웃만 제외하고.
[현재 로그아웃 금지 구역으로 설정된 곳입니다. 자리를 이동하신 다음 시도해 주십시오.]
‘설마 올트리아 대륙 전체가 로그아웃 불가인 건가.’
“귀찮게 됐군.”
그때 가이아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찾았어. 여기야 여기!”
유독 어린아이에게 인기가 많은 가이아인지라 녀석은 굳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어린 NPC들이 알아서 다가왔다.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 빨리 미스릴 타이거의 이야기를 아는 아이를 찾은 것이다.
“정말 이 이야기 알아?”
“웅. 할아버지가 이야기 해줬어.”
“그래? 형 누나들이 이 이야기를 좀 더 알고 싶어서 그러는데 혹시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응!”
[퀘스트 생성]
[전설의 후일담 : 이야기꾼의 손자를 따라가 이야기를 들어라.]
[보상 : 전설의 뒷이야기.]
***
“피비. 오늘은 일찍 왔구나. 재밌게 놀았어?”
“응. 할아버지. 이 형이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했어!”
노인이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들었다.
침침한 눈으로 한참을 빤히 쳐다보던 그는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오 이런! 자네들은 모험가가 아닌가! 이런 귀한 손님들이라니.”
자자 이리로 앉게나.
노인이 그들을 테이블로 안내했다.
내부는 작고 아담한 했다.
장식이라고는 없는 집이었지만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상자가 집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곳으로 뚜벅뚜벅 다가간 쟌이 벌컥 그 상자를 열어젖혔다.
“쟌! 너 지금 뭐하는 거야!”
“하하하. 괜찮습니다. 모험가님. 얼마든지 가져가십시오.”
집 주인의 눈앞에서 도둑질을 하는 모험가와 그것을 웃으며 지켜보는 집주인.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가이아가 타르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게임이란 건 원래 이런 거야?”
“글쎄. 그런가보지 뭐.”
“이건 그냥 개망나니 짓이잖아.”
“그러려니 해 그냥.”
상자를 뒤적거리던 쟌은 물건 몇 개를 집어 인벤토리에 집어넣고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테이블로 돌아왔다.
“쓸 만한 게 없네요.”
“너 인벤토리에 뭐 넣었잖아.”
“돈 조금과 잡화 정도입니다. 버리는 것보다는 좋잖아요?”
“집주인이 괜찮다는데 내가 뭐라 하겠냐마는.”
타르칸은 작게 고개를 저으며 노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미스릴 타이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허허허. 모험가님의 관심을 받으니 기쁘군요.”
노인이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책에 쓰여진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내용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노인이 지금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판에 박힌 듯 똑 같았다.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은 노인이 이야기를 마쳤을 때였다.
“그렇게 미스릴 타이거는 끝이 없는 어두운 무저갱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두 남매를 태운 빛의 구체는 하늘로 날아가 지금까지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고 합니다.”
“네. 그렇군요.”
[퀘스트 완료.]
[전설의 후일담 : 이야기꾼의 손자를 따라가 이야기를 들어라.]
[보상 : 전설의 뒷이야기.]
“보통 이야기는 이곳에서 끝이 납니다만 사실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게 뭐죠?”
“끝이 없는 무저갱에 빠진 미스릴 호랑이가 살아남아 무저갱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지요.”
“혹시 그 무저갱의 위치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허허허. 그저 옛날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런 곳이 있을 리가요.”
쪼르륵.
노인이 나무잔에 차를 따라 그들에게 권했다.
잠시 차를 음미하던 노인은 마침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무를 캐는 찰스 영감이 젊었을 때 무저갱에 다녀왔다는 허풍을 늘어놓긴 했었지요. 뭐 워낙 가벼운 양반이라 새겨들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노인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셋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혹시 그 찰스라는 분은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성의 북쪽 끝의 허름한 나무집에 가면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차도 감사드리고요.”
“하하. 모험가님들 같은 분들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요.”
[퀘스트 생성.]
[허풍쟁이 나무꾼 : 무저갱을 본 적이 있다는 나무꾼을 만나 대화.]
[보상 : 무저갱에 대한 단서.]
***
나무꾼 찰스를 만나고, 그가 소개한 빵집주인 마들렌을 만나고, 마들렌이 내어준 약초를 찾아오는 미션을 마친 뒤, 성의 경비대장을 만나 고블린 30마리를 잡고 돌아왔다.
“흠! 정말 대단한 모험가들이군. 이토록 빨리 고블린 녀석들을 토벌할 줄이야!”
수염을 멋지게 기른 경비대장이 감탄하며 그들을 치하했다.
“혹시 오크 사냥에는 관심 없나? 고블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보상을 약속하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해봐야 회복포션을 몇 개 더 주는 정도일 것이다.
“후우. 됐고. 빨리 무저갱인가 뭔가에 대해서나 이야기 해 줘요.”
퀘스트 자체는 어려울 것이 없었지만 문제는 극한의 뺑뺑이를 돌아야하는 퀘스트 동선.
‘아니 그냥 후딱후딱 알려주면 안 되냐고!’
“무저갱 말인가? 흠… 그런 곳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 그러고 보니 북쪽 성문 근처의 나무꾼 찰스 씨가 무저갱에 대해 이야기 했던 것이 기억나는 군. 물론 취할 때로 취한 상태였지만 말이야.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경비대장을 뒤로하고 다시 찰스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털레털레 따라오는 가이아는 벌써 바닥에 퍼지기 일보직전이다.
“야. 쟌. 게임은 재미를 위해 하는 거라며. 지구의 인간들은 정말 이런 짓을 재미있어 해?”
“아 이건 다 현실감을 더하고 동시에 게임에 몰입을 하기 위해…”
“이게 무슨 현실감이야! 이게 현실이었음 진즉에 살인났어!”
타르칸도 말은 안했지만 내심 가이아의 말에 동의했다.
왜 이런 불필요한 행동이 요구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몬스터는 자동으로 관리되고, 음식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세계에서.
“오! 위대한 모험가가 돌아오셨군.”
그들을 발견한 나무꾼 찰스가 이죽거렸다.
언제나 모험가를 반기는 다른 NPC와는 달리 찰스는 모험가들에게 비협조적이었다.
애초에 그런 설정의 NPC.
쟌의 설명에 따르면 NPC에게 다양한 성격을 주어 생동감을 더하기 위해서란다.
생동감은 얼어 죽을.
“돌고 돌니 결국 당신에게로 오게 되네요. 말씀하신 일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이제 무저갱에 대해 말해 주시죠.”
“흥! 이야기를 들으려면 이야기 삿을 내야지?”
“여기. 이거면 되겠지?”
그를 향해 갈색의 술병을 던졌다.
나무꾼 찰스가 벌꿀주에 끔뻑 죽는다는 것은 빵집주인 마들렌이 알려준 정보였다.
벌꿀주를 받아든 찰스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하핫. 그래도 기본은 되어있는 모험가들이군. 좋아! 들어와. 얼마든지 이야기 해 주지.”
오두막으로 들어가니 찰스는 벌써부터 벌꿀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크흐. 이 맛에 살지.”
“무저갱의 위치에 대해 말해주면 그깟 술은 한 짝이라도 사주지.”
“하하핫. 이런 이런 통이 크시구만.”
끌끌 웃으며 그가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어디보자. 그래. 내가 27살 때였으니 세월이 벌써 50년도 넘게 지났군. 그때는 나도 꽤 쓸 만했지. 뭐 거기 모험가 양반만큼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고 나쁘지는.”
횡설수설하는 찰스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적어도 요지만은 확실히 전달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퀘스트 완료.]
[허풍쟁이 나무꾼 : 무저갱을 본 적이 있다는 나무꾼을 만나 대화.]
[보상 : 무저갱에 대한 단서.]
“그래! 무지개! 그건 무지개였어! 자네들. 무지개가 시작되는 곳을 본적이 있나? 나는 봤어! 이 두 눈으로! 무지개가 시작되는 곳. 그곳이 바로 무저갱의 입구라네!”
“무지개는 빛의 굴절…”
중얼 거리던 타르칸은 입을 닫았다.
여긴 애초에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그 무지개가 시작되는 곳을 어떻게 찾을 수 있죠?”
찰스가 벌꿀주를 들이키며 외쳤다.
“파랑새를 찾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