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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라불리었다-203화 (203/215)

203

올트리아의 도시는 크고 훌륭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그랑대륙의 그 어떤 곳보다 이 해안가의 작은 도시가 더 아름답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수도시설이 완비된 것은 물론,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슬럼가도 없었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 말하자면 행복한 도시의 전형 같은 모습.

“어서 오십시오. 모험가님.”

“모험가님 안녕하세요.”

활짝 열린 성문으로 걸어 들어가자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처음 보는 외지인에 대한 거부감은 찾아볼 수 없다.

“쟌.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 사람들은 대체 뭐야.”

“타르칸님 이들은…”

그때 그들을 향해 누군가가 다가왔다.

깔끔한 옷을 입은 갈색머리의 소년이었다.

소년의 얼굴은 흘러내린 눈물로 엉망이 된 상태.

“모험가님! 모험가님!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돕다니 무슨.”

“고블린 무리가 제 어머니를 끌고 갔습니다. 제발. 제발 은총을.”

“고블린이?”

이렇게 크고 정비가 잘 된 도시가 고블린 따위에게 고생을 한단 말인가.

의아해 하는 타르칸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생성되었다.

[퀘스트 생성]

[고블린에게 납치된 주민을 구출하라.]

[보상 : 은세공 반지]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닌 퀘스트를 받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왠지 처음 마나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신선한 감각을 느꼈다.

“고블린? 그 녀석들은 어디에 있지?”

“마을 동쪽 출구로 30분 정도 가시면 됩니다. 숲 안에 고블린의 둥지가 있어요!”

그렇게나 가까이?

의아스럽긴 하지만 일단 다녀오기로 했다.

고블린들이야 숫자가 얼마나 있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이아. 쟌. 잠깐 다녀올게. 아마 10분이면 될 거야.”

“타르칸님. 잠시만요.”

“왜 그래 쟌.”

쟌의 시선이 갈색머리의 소년을 향했다.

감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

“타르칸님. 이들은 NPC입니다.”

“하. 그래. 그래. 이쪽 세계의 인간을 뭐라고 부르던 마음대로 해.”

“아니 그것이 아닙니다!”

쟌이 목을 가다듬었다.

“전에 타르칸님이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인간이라고 말씀 드렸었죠?”

“그래. 반쪽짜리라고도 말했지.”

“제가 그 이유를 지금 보여드리겠습니다.”

붉은 기운과 함께 길게 늘어난 쟌의 손톱.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소년의 목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턱. 하지만 그녀의 공격은 소년에게 닿기 전에 타르칸에 의해 제지당하고 말았다.

“너. 뭐하는 짓이야?”

“타르칸님. 잠시면 됩니다. 이들의 정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아이를 죽여서?”

“아이가 아니라면 다른 이를…”

“아니 넌 대체…”

꼬여버린 쟌의 사고방식을 지적하려던 타르칸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우는 소년이 다가왔고, 고블린에게 어머니가 납치당했다고 크게 외쳤고, 심지어는 쟌이 분명 소년을 죽이려고 하는데도.

‘어째서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거지?’

도시는 여전히 활기차고 여전히 행복했다.

마치 그들과 소년이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라도 한 것처럼.

저들은 모습. 저건 꼭.

“피델… 로봇 같잖아.”

“네. 저들이 저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이미 이 소년의 퀘스트 라인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퀘스트 라인?”

“말하자면 이건 연계 퀘스트의 시작이란 거죠. 플레이어가 동시에 너무 많은 퀘스트를 수행하면 스토리에 구멍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디멘션온라인은 동시에 수행 가능한 퀘스트에 제한을 두고 있죠.”

쟌의 말은 너무나 게임의 시스템을 설명하는 듯해서 오히려 괴리감을 불러왔다.

“지금 이 소년을 죽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경비병이 달려오긴 하겠지만. 그건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헤에… 그럼 이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세계에 진정한 인간은 오직 타르칸님 한 분 뿐이라고.”

타르칸은 조용히 침묵했다.

쟌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초감각.

그 감각에 소년의 빠르게 박동하는 심장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그의 감각은 분명히 눈앞의 소년이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소년은 죽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앞의 소년은 죽지만 곧 이 역할을 수행할 다른 녀석이 만들어질 거예요.”

쟌이 날카로운 손톱이 자라난 손을 휘둘렀다.

타르칸이 소년을 죽이는 것을 제지했기 때문인지 그들 옆을 지나가던 한 행상인을 향해서다.

가슴이 뚫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남자.

날카로운 비명이 성내를 울렸다.

사방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그것에는 갈색머리의 소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퀘스트 : 고블린에게 납치된 주민을 구출하라. (실패)]

“웬 놈들이냐!”

성의 경비들이 달려왔다.

처음에는 둘, 그들을 죽이자 넷.

총 30여명의 경비원을 모두 죽이자 더 이상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경비원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위이이잉.

하늘을 나는 조형물이 나타났다.

마치 드론을 연상시키는 생김새.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크고 아래에는 날카로운 고리들이 달려있었다.

“관리자들입니다. 이곳 올트리아 대륙의 어디에서도 저들을 볼 수 있죠.”

“어? 저 녀석들은?”

“가이아 뭔가 기억나?”

“분명 내가 어릴 때 그렸던 캐릭터 낙서야. 고레미. 그런 이름도 붙여줬었는데.”

“…네가 만든 골렘이다. 이거군. 기억은 없지만 말이야.”

드론형 골렘이 시체를 깨끗이 치웠다.

한 낮의 살인 현장에 도망을 쳤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서 오십시오. 모험가님.”

“모험가님 안녕하세요.”

밝은 미소. 경쾌한 목소리. 이국적인 향신료와 음악소리.

다시 행복한 도시가 재현되었다.

“타르칸님. 이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을 본뜬 아둔한 전능자가 만든 유기체 골렘에 불과하죠.”

쟌이 가이아에게 슬쩍 매서운 눈빛을 던졌다.

“에. 그렇게 쳐다봐도 난 모른다고?”

타르칸은 문득 처음으로 갔던 던전을 떠올렸다.

‘뼈의 요람’이라는 이름의 던전.

분명 인간이 아닌 것들의 뼈가 인간의 골격을 만들고 있었지.

어쩌면 그것들은 몬스터 스켈레톤이 아니라. 아직 미완성의 초기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모험가님! 모험가님!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고블린 무리가 제 어머니를 끌고 갔습니다. 제발. 제발 은총을.”

[퀘스트 생성]

[고블린에게 납치된 주민을 구출하라.]

[보상 : 은세공 반지]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눈물 어린 눈동자로 간청하는 소년.

그 소년의 등 뒤로 무장한 경비원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

조용히 퀘스트 취소버튼을 선택하는 타르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잠시 후 그들은 성내의 한 음식점에 자리를 잡았다.

쟌은 올트리아 대륙의 지도를 구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어이. 타르칸 괜찮아?”

“뭐 이런 거야. 이제 익숙하지.”

이미 세상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내다 버린 지 오래다.

놀라기는 해도, 그것에 마음이 빼앗겨 흔들리지는 않는다.

“다 컸네. 다 컸어.”

가이아가 잘 구워진 닭다리를 뜯으며 웃었다.

작은 음식점이었지만 메뉴도 다양하고 맛도 훌륭했다.

뭐 어차피 이것도 기계가 만들어준 것일 테지만.

조금 기다리자 쟌이 돌아왔다.

“종이는 조잡하지만 정확한 지도입니다. 이걸 토대로 움직이면 될 겁니다.”

그 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타르칸이 조용히 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쟌. 묻고 싶은 게 있어.”

“무엇이든지 질문하십시오. 타르칸님.”

“이들이 초기의 인간인가?”

“초기의 NPC라고 해야겠지요.”

쟌은 지나치다고 느껴지리만큼 인간과 NPC를 철저히 구분했다.

이런 면에서는 과거 아메루시카의 쏜과 닮아 있었다.

“이들은 그랑의 대륙이 만들어지기 전. 정확히 말하자면 그랑의 인간이 스스로 자아를 가지기 전의 인간들.”

이들은 스스로 사고하지 못하고 똑같은 모습에 정해진 행동만 반복하고 있다.

“마을 중앙의 비석을 보셨습니까?”

“응. 비밀상점의 비석과 똑같이 생겼더군.”

“이 NPC들은 골렘이지만 유기체이기 때문에 음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모두 그 비석에서 자유롭게 무제한으로 얻을 수 있죠.

부상도 걱정 없고 죽어도 다시 만들어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영생을 누리는 자들.

거기다 늙고 병들 염려도 음식이 없어 굶을 염려도 없다.

“말하자면 이곳은 성경 속 에덴과 같은 곳.”

“이상적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지금의 그랑대륙의 인간들은 그들 스스로 이 땅을 벗어났습니다.”

왠지 이유를 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곳의 NPC들이 몬스터 이상으로 소름끼쳤으니까.

“멀지 않은 곳에 이들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습니다.”

“공장이라고?”

“네 말 그대로 인간형태의 유기체를 만들어내는 공장이죠. 인체공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까요?”

“상상만 해도 역겨운데.”

“실제로 보신다면 상상이상이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타르칸이 의자에 상체를 기대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 찬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들이 자아를 가지게 된 거지?”

“글쎄요. 그 부분은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아둔한 전능자에게 GM의 적합성을 시험받던 시기인지라.”

“그 인체 공장이라는 곳. 한 번 보고 싶네.”

“으 난 싫어 징그럽게.”

가이아가 진절머리를 쳤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는 표정이었으나 입에 문 닭고기를 놓지는 않았다.

“가이아. 방주는 다 수리 된 거지?”

“완벽해!”

“그럼 네 사냥감을 잡으러 가자. 드래곤이라는 GM은 아직 무리니까 그나마 만만한 녀석부터.”

“좋지!”

시원하게 대답하던 가이아는 문득 타르칸을 올려다보았다.

“근데 너 어머니를 찾는 건?”

“어차피 이 넓은 땅에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그리고 아마… 계속 나아가다 보면 결국 만나게 될 거라는 기분이 들어.”

그의 어머니가 그의 길을 예비했다면 그 길의 끝에서 어머니를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우선은 눈앞에 일부터 처리할 거야.”

“그래! 그럼 미스릴 타이거와 피닉스 둘 중에 하나인데… 이곳에서 그나마 가까운 건…”

가이아가 쪼그리고 앉아 정신을 집중했다.

소형화된 방주가 녀석의 머리 위를 선회하고 있다.

가이아의 감지능력을 증폭해 주는 것.

감지능력만 따지자면 가이아는 타르칸 보다 더 정확하고 광범위하다.

거기에 방주의 서포트까지 받으니, 원하는 몬스터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은 간단한 일일 터다.

잠시 후 가이아가 눈을 떴다.

“어라?”

“왜 그래?”

“이상하네. 감지가 잘 되지 않아.”

“뭐?”

“내 감지능력을 방해하는 것이 있어.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네.”

“하…”

타르칸이 테이블에 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 진짜 도움이 안 되네.”

***

“어서 오세요. 정보길드입니다.”

“몬스터 정보를 묻고 싶은데 말이야.”

“네 어떤 몬스터를 찾으시나요?”

“미스릴 타이거와 피닉스. 아 기왕 이렇게 된 거. 드래곤의 위치도 모두 알려줘?”

“저 죄송하지만…”

정보길드.

쟌에 의하면 모든 도시에는 이런 정보길드가 있어 도저히 알 방법이 없는 정보조차도 돈만 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정보길드 조차도 9등급 게이트의 몬스터에 대해서는 예외였던 모양이다.

“그 몬스터들의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언급하신 몬스터들은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존재들. 실존하는지 조차 불명확하다고 해야겠죠. 혹시 전설에 대한 정보를 원하신다면 제공해 드리겠습니다만.”

그랑대륙에는 올트리아가 마룡 베아트리아에 의해 멸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멸망은커녕 이곳 사람들은 드래곤이 환상 속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타르칸님 전설에 대한 정보를 받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퀘스트가 생성될 가능성이 큽니다.”

“일단 그 전설이라는 것만이라도 알려줘.”

“네. 알겠습니다. 모험가님. 우선은 이것. 미스릴 타이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저 아이들의 동화같은 이야기들입니다만. 모험가님이라면 다른 점을 발견하실 수 있으시겠죠.”

동화라는 이야기가 농담이 아닌지 직원은 그림이 잔득 그려진 책 하나를 건네었다.

가격을 지불하는 타르칸을 향해 정보길드의 직원이 제안했다.

“모험가님. 모험가님에게 딱 적합한 임무가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전설과 관련된 임무입니까?”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난폭해진 사슴의 뿔을 구해오는… 모험가님? 모험가님!”

이 도시에 온지 3시간.

벌써 12번 째 퀘스트 제안이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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