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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라불리었다-197화 (19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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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는 있었다.

하동연이 오지랖 넓고 책임감 강하다는 것은.

그래서 자신의 세력을 만들겠다고 할 때도 흔쾌히 동의 한 것이었고.

그래서 대통령이 장관직을 제안했을 때 수락해라고 조언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래서야.

“너 이래서는 평생 스네이크에게 복수 못해.”

“… 시스템을 완비해 놓은 다음 바로 스네이크를 칠거야.”

“하오. 답답한 새끼.”

하지만 이런 고지식한 놈이기 때문에 타르칸이 제이가를 믿는 것이기도 했다.

적어도 하동연은 입으로만 정의를 떠드는 가식적인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네이크는 네 몫이었으니까… 네 판단을 존중할게.”

“타르칸.”

“GM레이드에 도움을 받았던 건 이걸로 퉁친다?”

“도움이랄 것도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이해해주면 고맙겠다.”

하아

한숨과 함께 타르칸이 갑옷을 해제했다.

여전히 굳은 표정.

하지만 이미 결정을 내린 뒤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야. 너무 오래는 못 기다려. 세 달. 세 달 뒤까지 스네이크가 살아있으면 내가 죽일 거야.”

“…고맙다.”

“으아 미쳐 돌아가는구만. 정말이지.”

타르칸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너 한국으로는 어떻게 돌아가게?”

“수송기가 오고 있어.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는데 시간이 걸리나봐.”

“여기는 쓸데없이 절차가 복잡하다니깐.”

“먼저 한국으로 가 있을래?”

잠시 고민하던 타르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일단 삼합회를 좀 정리할 생각이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삼합회의 잔당들을 모두 처리하려면 바쁘게 돌아다녀야 할 것이다.

“일주일 정도로 예상하긴 하는데 좀 더 걸릴 수도 있고.”

“그런 거라면 중국정부에 정식으로 요청을 넣을 수도 있어.”

“괜찮아. 지금 바로 찾아갈 생각이니까.”

“찾다니. 누굴? 설마… 중국 주석을 말하는 거야?”

타르칸이 씨익 웃으며 달려나갔다.

“일주일 뒤에 보자.”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타르칸은 도중에 멈추어 섰다.

“윽.”

느닷없이 참을 수 없는 두통이 찾아왔던 것.

발록이 마지막으로 시전한 정신공격의 여파다.

“휴 장난 아니군.”

새삼스레 실감이 난다.

발록.

등장만으로 대륙의 모든 왕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 그 괴물중의 괴물을 혼자서 죽였다.

역사에 남을만한 대업이자, 역사에 남더라도 후대에는 과장으로 치부할 사건.

“기록에 남지는 않을 테지만.”

쟌에 의하면 그랑의 역사는 만들어진 것.

온전하게 이어져 내려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구에서 타르칸은 일반인들에게는 베일에 싸인 존재.

발록 역시 대외적으로는 한국 각성자들의 지원을 받은 중국 정부가 처리한 것으로 발표될 것이다.

타르칸이 원하는 바이기도 했다.

“차라리 그게 편해.”

영양가도 없이 유명세를 누리고 싶지는 않았다.

기록에 남아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것에도 관심 없다.

***

쾅!

타르칸이 다시 떨어져 내렸을 때, 전핑 주석은 여전히 지하벙커에 있었다.

이미 진린과 경호원들이 죽은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하하하. 감사하오. 모든 인민들을 대표하여 내가…”

“개소리할 시간 없어.”

차가운 말에 전핑 수석이 급히 입을 닫았다.

“삼합회를 쓸어버릴 생각이야. 협조해 줘야겠어.”

제 아무리 타르칸이라 할지라도 중국을 넘어 전 세계 곳곳에 숨어있는 삼합회의 뿌리를 하나하나 찾아내기는 힘들다.

가능은 하겠지만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저 그것이.”

“아.”

곤란한 표정으로 좌우를 살피는 전핑 수석.

타르칸은 지금 이 지하벙커 안에도 삼합회 소속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가볍게 움직이는 손.

날카로운 바람이 벙커안을 휩쓸었고, 무장 경비들이 모두 쓰러졌다.

“이제 됐어?”

쓰러진 경비원 중에는 삼합회 소속이 아닌 자 역시 있었겠지만 타르칸과 전핑 수석 둘 다 그 사실에 신경 쓰지 않았다.

전핑 수석의 두툼한 볼이 푸들거린다.

아마 기쁨의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전력으로 협력하겠습니다!”

***

“젠장. 젠장. 젠장.”

짧은 머리의 뱀눈을 가진 사내가 연신 다리를 떤다.

초조함으로 물어뜯고 있는 손톱에서는 이미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젠장. 젠장!!”

처음 어르신, 진린이 당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는 그냥 웃어넘겼다.

그 따위 헛소문은 10년 전부터 있어왔으니까.

하지만 하나씩 삼합회 소속의 단체가 빠르게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남자는 그것이 단순한 헛소문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콰앙!

굉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질 듯 흔들거렸다.

어느새 눈앞에 소문의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저승사자의 갑옷을 입는 그는 기계처럼 조직원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원한이 있어서 이러는 거요!”

이미 확정된 죽음 앞에 더 이상 무엇이 겁나겠는가.

뱀 눈의 남자가 거세게 항의 했다.

“천벌을 받을 거요!”

“원한? 천벌?”

어이가 없어진 타르칸이 피식 웃었다.

이곳은 인신매매와 장기적출을 담당하던 곳이다.

그런데 원한과 천벌을 입에 담다니.

“자기애도 이정도면 수준급이네.”

“커헉.”

피를 내뿜으며 쓰러지는 뱀눈의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원한이라면 있고말고.”

전핑을 만난 지 일주일 후.

타르칸은 약속대로 삼합회의 수뇌부를 괴멸시켰다.

아직 삼합회의 잔당이 남아 있지만 이미 구심점을 잃은 오합지졸.

전핑 수석의 저돌적인 공격으로 하나 둘 제거되고 있는 상황.

간혹 무장 수준이 높은 곳은 오늘처럼 타르칸이 지원을 나가면 해결된다.

“해외에 지부들만 하나씩 줄여나가면 끝이군.”

삼합회는 지구에서 사라졌다.

“내 손으로 샤오린 누나의 복수를 해냈어.”

그리 기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허무한 것도 아니고.

“음… 그냥 밀려있던 숙제를 마친 그런 기분이랄까.”

어쨌거나 개운한 느낌이다.

타르칸은 그 느낌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기지개를 켰다.

“저, 저기.”

“응?”

공안 소속의 각성자가 우물쭈물 다가왔다.

아직 처리 못한 녀석이 남아있는 것일까?

“저 싸인 좀….”

그를 향해 내밀어진 종이와 펜.

타르칸은 얼굴이 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

“죄송하지만 별로 내키지 않네요.”

아무리 시시한 적이었다지만 이곳은 전장.

한가하게 싸인이라니.

저 사람도 제정신은 아니다.

“휴우.”

‘삼합회도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물 필요는 없겠지.’

타르칸은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로그인을 할까?

그는 우로보로스를 사냥한 뒤 바로 올트리아로 갈 생각이었다.

미지의 땅 올트리아.

기록도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플레이어들도 아직 갈 수 없는 땅.

워프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다.

“한 번 올트리아로 가면 한동안은 돌아오지 못할지도.”

그전에 처리할 수 있는 문제들은 가능한 처리해 두고 싶었다.

“일단 쟌의 부탁을 확인해 보자.”

과거의 연인을 찾아달라는 부탁.

기록이 완전히 말소되어 있었기에 한국의 수사기관에 의뢰를 맡긴 상태였다.

“숙제가 많네, 많아.”

전핑 수석에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니 수석은 그의 전용기를 내어주었다.

언제든지 국빈대우를 해주겠다는 수석의 말에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것이라고 화답해 주었다.

“국빈은 뭔 국빈이야. 또 뭘 부려먹으려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곧바로 쟌의 연인 공호영의 수색을 담당한 형사를 찾았다.

“말씀하신 건은…”

형사가 말꼬리를 흐린다.

처음 사건을 의뢰할 때 큰소리치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

“과거 거주지를 찾아냈지만 그곳 역시 깨끗하게 치워진 상태였습니다. 결국 이것 밖에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형사가 건넨 것은 대학교 졸업앨범속의 단체사진.

모든 기관들이 수사에 전폭적으로 지원했을 텐데도 건진 것이 이 사진 한 장이다.

“공호영이라는 남자와 함께 찍었다고 주장합니다만. 사실관계는 불명확합니다.”

그마저도 정확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형사의 자신없는 말투와는 별개로 사진을 보는 타르칸은 꽤 놀란 상태였다.

“이 녀석이 공호영이라구요?”

“네. 그렇습니다만…”

그의 눈썹 끝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

[로그인에 성공하셨습니다.]

[디멘션 온라인의 세계를 즐겨주십시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접속 메시지.

“오이. 오이. 타르칸!”

접속한 그를 발견한 가이아가 뛰어왔다.

타르칸이 지구에서 일을 처리하는 동안 가이아는 슐트의 저택에서 호위호식하고 있었다.

“너. 살이 좀 찌지 않았냐?”

사실 조금이 아니다.

“이제는 펭귄이 아니라 살찐 돼지잖아.”

“뭐야!”

인간형으로 변해 달려드는 가이아.

하지만 뒤쪽으로 살짝 뛰어 공격을 피해주었다.

“으으. 얄미워.”

다시 펭귄형태로 돌아온 가이아가 빵을 베어 물었다.

“발록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정말인가 보네.”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흥. 발록을 잡고 조금 고생했다고 말하는 인간은 너 뿐일걸?”

“그런데 너. 그냥 슐트씨 집에서 놀고먹었냐? 몸이 왜 그래? 그동안 정수나 좀 모아놓지.”

가이아가 다시 한 번 발끈했다.

“방주 수리에 집중하느라 그랬다! 왜! 나도 조만간 방주가 완전히 수리 된다고. 무시 하지 마”

“무시한건 아니지. 뭐 일단 알겠어.”

발록을 사냥한 뒤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지구에서는 정수의 원형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정수의 원형은 오직 그랑에서 몬스터를 사냥했을 때만 얻을 수 있었다.

“지구보다 그랑이 아둔한 전능자. 시스템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때문인 것 같긴 하지만.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

발록에게서 얻은 전리품 상자.

타르칸은 그곳에서 어깨 갑옷을 얻었다.

역시나 그가 얻기로 예정되어 있는, 완수한 자의 갑옷 세트 중 어깨 부분이었다.

[완수한 자의 견갑](시크릿)

- 방어력 : 체력 스텟 * 0.3

- 마법 저항 : 40%

- 엑티브 스킬 : 룬 방벽

룬 방벽은 어떤 공격이든 한 번의 데미지를 무효화 시키는 스킬.

재사용 대기시간은 6시간이다.

다른 수치는 조금 아쉽지만 매우 유용한 액티브 스킬이 붙어있다.

어깨갑옷 역시나 다른 방어구들만큼 사기적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상체와 하체 방어구.

둘 뿐이다.

“방주가 곧 수리된다니 다행이네. 내일 올트리아로 출발하자.”

“뭐? 벌써? 하지만 에스트가 내일 팬케이크를 만들어준다고…”

에스트는 슐트 저택에서 가이아를 시중드는 하녀였다.

“지금 그깟 팬케이크가 문제냐? 드래곤. 본래 GM을 만나야 한다며?”

“으윽. 그렇긴 하지. 후우. 알았어.”

가이아가 털레털레 걸어갔다.

“쟌과 서풍의 마녀에게 내가 왔다고 전해 줘. 마탑에 연락을 넣으면 될 거야.”

“그래. 그래.”

타르칸은 제국의 수도를 자유롭게 활보했다.

검은 갑옷의 악마는 공식적으로 이미 죽은 인물.

성국에 침입하여 교주를 죽인 검은 기사는 온 대륙의 공분을 사고 있지만 타르칸의 얼굴을 아는 자는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모두들 바쁘구만. 수도는.”

이 분주함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좋으련만.

후우우웅.

별안간 광풍이 불어닥쳤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키가 작은 한 소녀가 폴짝 뛰어내렸다.

‘부른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계속 타르칸을 기다려 온 듯 했다.

“세계의 지평선을 걷는 자여.”

“서풍의 마녀.”

“나의 자매. 날카로운 손톱의 쟌은 지금 오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

타르칸이 인벤토리를 열어 라면박스를 꺼내었다.

500년 만에 보는 익숙한 포장지.

그 안에는 그녀의 부모님이 쓴 편지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다.

“그건.”

아직 내용물을 확인하기도 전인데도 서풍의 마녀의 눈가는 이미 촉촉해져 있었다.

“은정이라고… 부르시더군.”

애써 울음을 참으려 노력하는 것 같지만.

“흐흑. 크흑.”

그건 힘든 일이겠지.

작은 마녀가 어깨를 들썩였다.

“자 받으시죠.”

타르칸이 서풍의 마녀의 작은 손에 상자를 건네주었다.

작은 소녀가 서럽게 우는 모습은 어딘가 동정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타르칸은 어설픈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감사. 감사합니다.”

“이제 서로가 약속을 모두 지켰습니다.”

“네에. 감사합니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상자와 함께 다시 날아갔다.

“후우.”

사람을 실험도구로 여기는 마녀에게도 인간의 마음이 조금은 남아있는 것일까?

타르칸은 문득 떠오른 의문을 가슴속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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