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190화 (190/215)

190

“세계의 지평선을 걷는 자여.”

쟌은 작은 소녀를 데리고 왔다.

소녀는 자신을 서풍의 마녀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그건 나를 말하는 거야?”

서풍의 마녀는 오늘 레이드를 위해 급하게 이곳에 도착했다.

그녀 역시 지구에 찾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슐트와 비슷한 부류로 보였다.

말하자면 자기만의 컨셉에 충실한 타입이랄까.

“그렇다네.”

“명칭이야 아무래도 좋아. 바로 시작하자.”

그들은 아멕스가 제작한 기구에 몸을 실었다.

행글라이더와 유사한 형태에,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도록 하단부에 나무판으로 보강시킨 형태였다.

천이나 프레임 모두 이곳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다.

“이거 정말 안전한 것 맞지?”

“오늘 날씨도 맑고 바람도 잔잔하니 아마 괜찮을 거예요.”

에드가는 천과 나무로 만든 행글라이더가 못 미더웠다.

쿤타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뭐 죽기 밖에 더 하겠어?”

“그게 문제입니다. 이런 조잡한 물건에 죽는다면 그건 기사의 수치니까요.”

“하핫 그건 그렇네.”

자신의 칼날독수리를 이용하는 제이가를 제외하곤 모두 행글라이더를 이용한다.

그리고 그것을 움직이는 동력이 바로 오늘 도착한 서풍의 마녀다,

“자 출발하자.”

타르칸의 신호와 함께,

“태초의 바람이여. 가장 높은 곳에 거하는 이여. 세상의 뒤덮은 위엄이여. 지금 나에게 깃들어 당신의 역사를 나타내소서. 이 자리에 임재하시여 당신의 강대함을 증거하소서.”

서풍의 마녀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질렸다는 듯 바라보던 쟌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에휴. 너 그 버릇은 그대로네.”

쟌의 반응을 보면 주문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지만…

하지만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미약한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그것은 어느새 산들바람으로 그리고 또 어느새 거센 광풍으로 변해 몰아쳤다.

“모두들 꽉 잡아요!”

***

풍계마법 전문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서풍의 마녀는 능숙하게 바람을 컨트롤 했다.

선발대인 쿤타, 에드가, 쟌, 가이아가 먼저 진입했다.

그동안 남은 이들은 마치 독수리처럼 허공 위를 선회했다.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이것 좀 재밌는데?”

확실히 쿤타와 에드가 보다는 슐트와 제이가 쪽이 더 여유가 있었다.

경험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곳에서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몸이라는 사실이 더 크게 작용했다.

타르칸의 눈동자가 선발대가 넘어 들어간 성체 외벽을 바라보았다.

‘잘 부탁합니다.’

***

“으아아악!”

“요란 떨지 마라. 버러지 같은 녀석!”

난데없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괴인들.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그들에게 쏠리고 있었다.

벌써부터 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그들을 향해 달라오는 것이 그 증거였다.

“효과하나는 확실하구만.”

“뛰어!”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제 병사들을 따돌리면서 건물을 부수고 불을 질러 더 주의를 끄는 일만 남았다.

“뭐야. 저 녀석들.”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어?”

“이것 참 요상한 기구구만. 일종의 연인가?”

사람들은 도망 친 세 명의 괴인과 그들이 타고 온 기구에 완전히 정신이 팔렸다.

그래서 작은 펭귄 한 마리가 슬그머니 일어서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흐아. 역시 이 몸이야.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하는 수밖에 없지.”

성문을 향해 총총총 걸어간 가이아는.

“으억.”

“큭.”

성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병사 두 명을 손쉽게 제압했다.

그녀가 성문의 빗장을 열어젖히자 당황한 병사들이 달려왔다.

“저 짐승은 또 뭐야!”

“늦었어요. 아저씨들.”

가이아의 작은 손이 성문을 건드리자.

콰아앙.

엄청난 수압의 물이 폭발하며 성문이 활짝 열렸다.

“어서와. 네가 그 체리캡터인가 뭔가 하는 그 사람인가?”

“네.”

“나도 시간을 오래 끌지는 못하니까 빨리 시작해.”

“알겠습니다.”

정만후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머리통만 한 크기의 보라색 알.

[이동형 부활포인트]

선택한 지역에 부활포인트가 설치되는 캐쉬 아이템.

일정 숫자 이상의 NPC가 거주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그리고 이곳 성국의 수도는, 당연하게도 그 조건을 채우고도 남았다.

[부활 포인트가 설정됩니다. 유지시간은 한 시간입니다.]

보라색 알이 바닥에 녹아 내렸다.

“됐습니다.”

“벌써? 엄청 빨리 끝나네.”

그녀는 거센 물줄기 쏘아 성국의 병사를 밀어내는 중이었다.

가이아가 인간형에서 다시 펭귄 형태로 모습을 변화 시켰다.

“그럼 난 도망간다?”

“네.”

정만후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로그아웃했다.

그리고 잠시 뒤,

[워프에 성공하였습니다.]

[워프에 성공하였습니다.]

[워프에 성공하였습니다.]

…..

…..

[워프에 성공하였습니다.]

엄청난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성국의 성 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 이마에 선명하게 박혀 있는 계정코드.

“어째서 이방인들이!”

성국의 병사들이 기함했다.

“침, 침략이다! 이방인들이 침략했다!!”

***

“시작된 모양이네.”

성 내에서 피어오르는 불길과 요란스러운 움직임.

멀리서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자. 우리도 보내 줘.”

“알겠습니다. 세계의 지평선이여.”

서풍의 마녀가 일으킨 바람이 그들이 탄 행글라이더를 부드럽게 밀었다.

그들은 맑고 시원한 바람을 가르고 날아갔다.

제이가의 말처럼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죽지마라 타르칸.”

“너나 조심해. 그리고 이건 이미 이긴 싸움이야.”

GM목자가 가진 강력한 버프만 조심하면 문제될 것은 없다.

‘GM 대행자. 8호법이라고 했었나?’

그랑에서 활동이 가능한 스네이크, 피테쿠스, 하운드 그리고 목자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 사도를 흉내 내는 놈들.

‘쥐는 이미 죽였으니 이제 남은 건 일곱.’

오늘 그 녀석들을 모두 죽이고 성국을 해체시킨다.

“와아아아아!”

“모두 쫒아내!”

성국의 수도는 이미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플레이어들과 그들을 막기 위해 병사들과 고위신관들이 총동원 되었다.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그들 앞에, 인간과의 전투 경험이 부족한 병사들은 허수아비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병사들의 추적에서 자유로워진 레이드팀 선발대들은 마음껏 파괴를 일삼고 있었다.

“꺄아아악!”

번개가 내려치고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불과 먼지가 피어오르는 그곳.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무릎을 꿇고 신께 기도를 올렸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보면 우리가 완전 악당 같네요.”

행글라이더의 손잡이를 잡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는 슐트의 얼굴이 씁쓸하다.

“악당같은 것이 아니라. 악당이 맞습니다.”

타르칸이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분명 오늘 죄 없는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것이다.

출발 전부터 이미 각오하고 있던 일이다.

“오늘은 저희가 악역을 맡았으니, 철저히 악당이 됩시다.”

콰드드득.

타르칸의 전신이 육중한 검은 갑옷으로 뒤덮였다.

행글라이더 역시 무게가 무거워 진 탓에 조금씩 지면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가지.”

제이가가 짧게 말하곤 소환수를 칼날독수리에서 리빙아머로 변경시켰다.

거대한 기사의 모습으로 지면으로 자유 낙하하는 제이가.

전신에 녹색의 귀화를 뿜어내는 것이 마치 지옥에서 떨어져 내린 유성같다.

목표는 성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신전.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제이가는 신전의 벽을 뚫고 들어갔다.

“무식하긴.”

“저희도 가죠.”

뒤를 이어 타르칸과 슐트 역시 행글라이더의 손잡이를 놓고 바닥으로 수직낙하했다.

타닥.

둘은 마치 고양잇과 동물처럼 사푼히 내려섰다.

신전을 지키는 수호자들이 그들 앞을 막아섰다.

기골이 장대한 미남이 소리쳤다.

“이 패역한 무리들아! 악마의 졸개들아! 감히 어디에 그 더러운 발을 들이느냐!”

“GM 대행자냐?”

“나는 신의 대행자다!”

“흐음. 그래. 그렇다고 치자.”

타르칸의 눈이 상대를 살폈다.

신이 지상에 강림 한 듯 신비한 외모와 위엄에 찬 목소리.

경건함이라는 단어가 인간으로 만들어진다면 바로 눈앞의 모습이 되리라.

‘후마르, 알-미라지, 김무열을 따라하는 건 아니고… 소나 닭 중에 하나인가?’

쾅!

남자가 땅을 거세게 박차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동시에 남자의 등 뒤에서 펼쳐지는 한 쌍의 아름다운 날개.

신관과 신도들이 일제히 입을 쩍 벌리며 찬사를 터트렸다.

“오오오 천사이시다.”

“어찌 저리도 아름답다는 말인가.”

“신의 영광이여.”

거대한 날개를 펼친 남자가 타르칸을 오시했다.

“신의 진노를 받아라!”

타르칸의 등 뒤에 검은 가시들이 나타났다.

“여러분. 저 악마의 창을 보십시오!”

“흉측해라…”

“어찌 저리 불경한 모습인가.”

“천사님. 어서 저 악마들을 물리쳐 주십시오!”

진노로 가득 찬 남자를 바라보며 타르칸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날개… 그렇군. 넌 닭인 거네. 소나 말이 아니었어.”

“뭣?!”

“닭이 난다는 건 좀 웃기긴 하지만.”

푸욱.

작은 손짓과 함께 날아간 검은 가시가 남자를 날개와 함께 꿰뚫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면으로 추락한 천사의 모습에 신도들은 경악했다.

“천사님!!!!”

타르칸은 그들의 촌극을 무시했다.

“슐트씨. GM목자는 버프를 주는 서포터입니다. 분명 어딘가 꽁꽁 숨어 있을 테니 슐트씨는 교주를 찾는 것에 집중해주세요.”

이 신전에 무슨 장치라도 해둔 것이지 그의 감각이 정확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GM은 그 나름대로 대비를 한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슐트가 신전의 그림자 사이로 사라졌다.

“이 악마!!!”

“저주받아라!”

피를 흘리는 천사 앞에서 오열하는 신도들이 타르칸을 향해 울부짖었다.

타르칸은 고개를 들었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신전은 그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기에는 지나친 규모다.

“아 그렇지. 이 사람들에게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었지? 몬스터에서 인간이 되었다가 이제는 또 신이 된 건가. 여러모로 대단하네. 정말.”

피식 짧게 웃으며 타르칸은 신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를 향해 전투신관들이 달려오고 있다.

그들 주위로 일렁이는 빛은 분명 GM목자의 버프를 받았다는 증거다.

“그럼 신을 사냥하자.”

“코티엘!!!”

“이 악마자식 네가 감히 코티엘을.”

방금 전에 죽은 이름이 코티엘인 모양이다.

타르칸은 어차피 이미 죽인 자의 이름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눈앞의 이제 곧 죽을 자들의 이름 역시도.

콰앙!

“크와아아아악!”

제이가의 소환수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에메랄드빛의 비늘로 덮인 그것은 더 이상 포레스트웜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괴수였다.

“저건 또 뭐야!”

“신전이…!”

포레스트웜에 시선이 팔린 틈을 타 타르칸이 그들을 기습했다.

검은 가시의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는 신관이었던 핏물만이 남아있었다.

“너희들도 사도 대행자인가?”

살아남은 것은 오직 세 사람 뿐.

그들의 얼굴은 경악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눈에 익었다.

성체를 흡수할 때 봤던 사슬을 소환하던 여자와 불을 다루던 여자였다.

“돼지와 용인가.”

“그렇…”

“아무렴 어때.”

타르칸은 더 이상 이들이 누구를 대행하는 이들인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베고, 찢고 죽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추가로 디멘션코인을 주지 않는 것을 보니 타르칸보다는 레벨이 낮았다.

그럼에도 벌써 두 번째 레벨업.

경험치를 많이 주는 녀석들이다.

“시스템도 너희들이 죽기를 바라는 것 같네.”

타르칸은 세 사도대행자의 시체 위에서 차갑게 말했다.

바닥에 쓰러진 그들의 시체는 아직도 뜨거운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벌써 네 명 째.

제이가 쪽에서 몇 명을 처리해 주었다면 이미 사도 대행자의 전원이 사망한 것일 수도 있다.

한 국가의 최고 전력치고는 너무나 허망한 결과.

‘이들이 약한 걸까? 내가 너무 강해진 걸까?’

버프를 받은 사도대행자들은 다크엘프의 여왕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6등급에서 7등급 게이트의 몬스터 사이.

“혼자 왔어도 될 뻔 했네.”

그는 어느새 인간의 기준으로 따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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