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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쟌. 잠시 나 좀 보지.”
“어? 저 말씀이신가요?”
타르칸은 가이아를 따라 수도에 도착한 쟌을 불렀다.
그녀가 감격한 눈으로 타르칸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나요?”
드디어 쟌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맞다.
그녀의 노력 때문은 아니었지만.
“전에 했던 이야기 다시 해봐. 누구를 찾는다고?”
쟌의 큰 눈동자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떨어진다.
타르칸은 가만히 서서 마녀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식적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네에. 전, 저는 오래 전에 했던 약속을 지키고자…”
횡설수설 두서없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타르칸은 잠자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쟌이 찾고자 하는 이는 가족이 아니라 그녀의 오래된 연인이었다.
어느 정도 쟌이 찾는 이에 대한 윤곽이 잡히자 이번에는 타르칸이 말했다.
“나는 너를 믿지 않는다. 지금도, 아마 앞으로도 평생 마녀를 믿는 일은 없을 거야.”
“……”
쟌은 그저 잠잠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타르칸은 그녀가 지금 이 순간 ‘그러실 테죠.’ 라던가 ‘이해합니다.’ 따위의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 하나만은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까 이건 거래다.”
지구에서 변이자들과 다크엘프들을 처리하는 과정에 타르칸의 마음에는 작은 변화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는 아멕스를 만난 뒤 더 커졌다.
“난 더 이상 과거의 일에 붙잡혀 살지 않을 거야. 과거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난 더 이상 그것이 내 앞길을 막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어.”
잠시 숨을 고른 뒤, 타르칸은 말을 이었다.
“그러기에는 내에게 주어진 일들이 너무나 많다.”
쟌은 그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타르칸 같은 이에게 평범하지 않은 운명이 준비되어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저,
“감사합니다. 이렇게 저와 거래를 해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제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요?”
바로 본론을 물었다.
“나는 GM레이드를 하려고 한다. 베타테스터 출신인지 무슨 의미인지 잘 알겠지?”
“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지금 세상에 GM양치기보다 너희 마탑이 더 필요한 상황이란 건 부정하지 못하겠군. 나를 도와 GM을 죽여라.”
“네. 타르칸님을 따르겠습니다. 기꺼이.”
타르칸은 잠시 생각하더니 툭 던지듯 말했다.
“사실 그까짓 사람 하나 찾아주는 것 어려운 일도 아니지. 혹여나 너처럼 누군가를 찾고 싶어 하는 마녀가 있다면 GM레이드에 동참하라고 전해라.”
“네 알겠습니다. 타르칸님.”
타르칸 앞에 쟌이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
그리고 며칠 뒤,
GM 목자 레이드를 위한 회의가 열렸다.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만한 일이 아닌 만큼 멤버의 구성은 GM목자의 정체를 어느 정도 알고, 그러면서도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있는 자들로 구성되었다.
플레이어인 슡트와 제이가.
제국의 기사 에드가.
파계당한 교단의 신관 쿤타.
마탑의 마녀 쟌.
그리고 타르칸과 가이아.
“신관과 마녀가 함께 포함된 파티라니. 드문 조합이군.”
슐트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남자의 모습이었지만 타르칸은 슐트가 내심 신이 났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제이가가 다가왔다.
요즘 로그인 할 틈도 없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였지만 이번 일을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었다.
잠시 전체적인 작전만을 협의한 뒤 그는 다시 로그아웃해야 한다.
아마 작전 당일 때나 다시 로그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걸로 괜찮겠어? 헌터부 소속의 사람들을 더 동원할 수도 있어.”
“너무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시작도 하기 전에 작전이 새어나갈 수도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응?”
하동연은 헌터부의 장관이자, 전 세계 각성자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그가 선동한다면 분명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각성자들이 동원된다면 결국은 승리할 거야.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말이지.”
“그래. 한국뿐만이 아니야. 지금이라면 일본의 각성자들도 우리를 도우려고 할 거야.”
장기전이 되었을 때, NPC는 무한히 부활하는 플레이어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
플레이어들의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온 지금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 방법으로는 전면전을 피할 수가 없어. 지금 성국에는 자식에게 마나의 세례를 주기 위해 성국의 일원이 된 자들이 대부분이야. 전면전이 시작되면 그들 모두가 성국의 병사로 전장에 나오겠지. 죽이는 것은 교주와 고위 신관들. 그들만으로 충분하다.”
전면전을 GM레이드를 시도해 본 뒤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타르칸의 대답에 하동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구의 각성자들은 모두 바쁜 몸들이잖아.”
지구 역시 넉넉한 상황이 되지 못한다.
플레이어의 도움은 최소한으로 받는 것이 양쪽 세계 모두에게 좋은 방향이다.
“그래. 네 뜻이 그렇다면 존중하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에드가가 짧게 코웃음쳤다.
“그래. 이방인들은 빠져 있어. 우리가 처리하는 모습을 뒤에서 보조나 하면 충분하다.”
에드가는 성국의 왕을 치러가는 이 습격팀에 플레이어가 두 명이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탈영병. 너 이 자식 어디서 저런 녀석들을 데려온 거냐.”
그런 에드가를 쟌이 매섭게 쏘아보았다.
“말조심해라 엉터리 기사. 네놈에게 심긴 마나 홀을 부숴버리기 전에.”
“하! 마녀 따위가 어디서.”
“왕년에 마녀 태우는 재미로 살았었는데 아~ 그립구만.”
에드가와 쿤타는 그런 쟌에게 반발했다.
슐트의 말대로 타르칸 역시 신관과 마녀 그리고 제국의 기사가 한 자리에 모이는 관경을 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심지어 저 셋은 다른 파티원들에 비교하자면 지극히 평범했다.
‘제이가는 랭킹 1위의 플레이어. 나는 시스템의 빈틈을 뚫는 버그, 그리고 내 등에 매달린 녀석은 무려 그 시스템의 인격이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화려한 면면들이다.
‘정말 괜찮을까. 이 조합.’
잠시 어깨를 으쓱거린 타르칸이 테이블을 거세게 내리쳤다.
콰앙.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만 떠들고 회의 시작하죠. 앞으로 구성원에 대한 불만이 있다면 저에게 먼저 이야기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어머 역시 타르칸님. 박력.”
그는 배시시 웃는 쟌을 무시하며 낮게 휘파람을 부는 쿤타를 쳐다보았다.
“쿤타 선생님. 잠시 모두에게 성국의 세력과 조직에 대해 설명해 주시죠.”
“새끼. 제법 하는데?”
쿤타가 거들먹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좋아. 이 몸이 간략하게 설명해주지.”
***
그 뒤로 쿤타는 약 3시간에 걸쳐 교단의 조직과 세력. 변천 과정들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덕분에 모두들 완전히 진이 빠져버린 것은 물론이다.
정말 쓸모없는 이야기냐 하면 또 그것은 아니었다.
“타르칸. 난 처리할 일이 있어 먼저 가볼게.”
“저도요. 공작님이 주신 퀘스트를 처리해야 해서요.”
결국 제이가와 슐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맙다. 추가적인 내용은 내가 정리해서 알려주도록 할게.”
두 사람에게 감사의 눈빛을 전한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목소리가 갈라져있는 쿤타를 향했다.
“간략하게 라고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이것보다 더 간단하게 말해!”
쿤타는 아주 당당했다.
“조금 밖에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참아봐.”
저 소리만 벌써 3번째다.
마치 열정적인 늙은 대학교수님처럼 쿤타가 말을 이어갔다.
“자. 문명의 골짜기를 전제한다 하더라도 성국, 그러니까 교단의 탄생은 굉장히 특이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지.”
“하아…”
타르칸은 책상에 머리를 파묻었다.
성국의 조직도 정도를 제외하면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지루함이 배가 되었다.
그를 향해 쟌이 속닥거렸다.
“타르칸님.”
“음?”
“저만 믿으세요.”
쟌이 그를 향해 윙크했다.
타르칸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고 친해진 거라고 여기는 걸까?
‘아니겠지.’
타르칸은 기분 나쁜 예감에 휩싸이면서도 쟌이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흥! 웃기는 군. 멍청한 자식.”
신나게 칠판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던 쿤타의 손이 움찔거리며 멈추어 섰다.
“……음?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제대로 들었다 헛똑똑이.”
“와~ 시발 진짜 나한테 한 말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 무게를 잡는 꼴이 역겹기 그지없군. 뭐? 문명의 골짜기?”
쿤타의 두 눈동자에서 스파크가 튀는 듯 했다.
아니, 정말 튀고 있는지도 모른다.
확실한건 화난 것은 아니다. 쿤타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휴우.”
타르칸은 마침 잘 되었다는 한숨을 쉬며 쟌과 쿤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자. 성국의 세력에 대해서는 다들 알게 되었으니 일단 밥이나 먹으로 가시죠.”
모두가 활짝 웃으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회의실을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하아 좋아. 그럼 말해보시지. 논리적으로 말이야. 마녀에게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흥! 네 놈들의 생각과는 달리 네 놈들이 만들어진지는 불과 몇 년도 채 되지 않았다. 네 놈들이 말하는 역사라는 건 모두 아둔한 전능자가 설정해둔 배경에 불과하다는 것이지. 이 버러지 같은 것!”
“증거는?”
“내 눈과 내 기억이 바로 그 증거다!”
“하! 그것 참 정말이지 객관적인 증거로구만. 설마 증거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건가?”
미친 학자와 광신도 마녀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타르칸은 그들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문을 닫았다.
***
드디어 작전일이 밝았다.
그들의 작전은 단순명료했다.
성동격서. 선발대가 시선을 끄는 동안 후발대가 핵심을 친다.
선발대는 에드가, 쿤타, 쟌, 가이아
후발대는 타르칸, 슐트, 제이가가 맡기로 했다.
그리고 한국에 소속된 헌터들과 쟌이 불러온 마녀들 역시 선발대와 함께 시선을 교란 시킬 것이다.
“에드가씨와 쿤타선생님은 한 번 죽으면 끝인 것 알죠? 적당히 시선을 끌다 몸을 사리세요.”
“흥! 그러는 너는?”
에드가가 인상을 쓰며 노려보았다.
어째 젠슨을 떠나 쿤타를 따라다니더니 성격도 그쪽을 닮아가는 듯 했다.
“물론 저 역시 조심할 겁니다. 이런 곳에서 귀한 목숨을 버릴 수는 없죠.”
이제 저런 괜한 시비에는 화는커녕 짜증도 나지 않는다.
타르칸은 대충 대답하며 다른 이들을 향해 말했다.
“선발대 팀은 실질적으로 피해를 주기보다는 최대한 이목을 끌어들이는 것에 집중해 주세요.”
가급적이면 신관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피해는 없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피치 못하는 상황이라면 시민들의 피해도 감수합니다.”
선발대에 속한 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쟌과 가이아와는 달리 에드가와 쿤타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랑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이기에 인간을 죽인다는 것에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저 둘을 선발대에 넣은 이유이기도 하지.’
이어 그는 제이가와 쟌을 쳐다보았다.
“플레이어들은 선발대가 성국의 수도 안으로 진입한 이후에 로그인 하는 것으로 전해줘. 타이밍은 정만후씨가 알려줄 거야.”
현 시각 모발캡터체리, 정만후는 이미 성국 수도의 외각에 위장 상태로 숨어 있었다.
그가 로그아웃 하여 신호를 보내는 순간 한국과 일본, 그리고 하동연과 인연이 닿아 있는 전 세계의 수많은 각성자들이 동시에 로그인 할 것이다.
“마녀들은 성 외부에서 지원군이 오지 못하도록 교란하는 것에 집중해줘.”
“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지금 소수의 인원으로 한 나라의 국왕을 치려는 것이다.
교주가 있는 내성을 고립시킨 뒤, 빠르게 치고 빠져야 한다.
“좋아. 그리고 후발대는.”
후발대에 속한 타르칸, 슐트, 제이가.
가장 손발이 잘 맞는 조합이자 여기에 모인 이들 가운데 명실상부한 최강자들.
‘슐트씨는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슐트가 들었다면 마음에 담아두었을 생각은 가슴속에 묻어두었다.
제이가가 호기롭게 가슴을 두드렸다.
진화하는 톱니바퀴에서 얻은 황금색 레전드 등급 갑주가 맑게 울렸다.
“후발대는 간단하지. 성내로 들어가서 GM 흉내를 내는 호법들과 GM 자식을 잡아 죽인다. 그렇지 타르칸?”
“그래 맞아. 어디 한번 난장판을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