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레이드(Raid)
급습을 의미하는 게임 용어다.
타르칸은 소수 정예로 성국을 급습하고 GM을 암살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쿤타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다.
“너 슐트경에게 재미난 소리를 했다더라?”
“경?”
“일단은 귀족이니까. 사람은 출세하고 볼 일이야. 그치?”
쿤타가 키득키득 웃었다.
“너 하늘나루로 갈 때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하지?”
물론 기억하고 있다.
교주를 찾아 면전에서 따지겠다고 했던 말.
그 덕분에 신관 출신인 쿤타의 도움을 받아 하늘나루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네가 일을 너무 거하게 벌려 놓긴 했지만.”
“그건 사정이 있었어요.”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교주가 바로 GM이자 사도라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건 네 사정이고. 약속은 지켜야지?”
쿤타의 양손에서 푸른 번개가 파지직 일어났다.
“그 습격단에 나도 끼워줘. 나도 교주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어.”
“습격단이 아니라… 레이드팀이라고 부를 거예요.”
“그건 알아서 하고.”
타르칸은 잠시 쿤타를 지그시 쳐다보다 곤란하다는 투로 말했다.
“쿤타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꽤 좋아해서 드리는 말입니다. 선생님에겐 너무 위험해요.”
“호오. 많이 건방져졌는데?”
쿤타의 손아귀에 맺힌 번개가 한층 더 기세를 올렸다.
타르칸은 처음 보는 쿤타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내가 만만해 보여? 한판 뜰까?”
“저랑 싸우면 죽어요.”
“죽어? 내가? 아님 네가?”
타르칸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뭐 좋습니다. 몸으로 깨닫게 해드리죠.”
쿤타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건방진 자식. 따라 와라.”
***
쿤타는 그를 성내에 있는 연병장으로 안내했다.
평소 기사단이 훈련하는 장소인 듯 했다.
타르칸은 그곳에서 그를 아는 또 다른 사람을 한 명 만날 수 있었다.
아니 두 명이라고 해야 하나.
“에드가 교관님?”
“역시 네 녀석이었군. 탈영병 자식.”
“대체 어떻게?”
조금 작은 키에 금발.
어디가 가벼워 보이는 특유의 표정까지.
과거 클라프 영지의 훈련소에 있던 견습기사 에드가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몸은 대체 뭐죠?”
에드가의 표정에 잠시 놀라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게 느닷없이 무슨 말이냐. 탈영병.”
“모른 척 하실 생각인가요?”
타르칸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쿤타가 두 사람을 제지했다.
“자자. 진정들 하시고. 어이 타르칸. 너는 내가 먼저 불러온 거야. 그걸 잊으면 곤란하다고.”
“쿤타님. 어째서 저 녀석을 부른 겁니까? 저 녀석은 탈영병입니다. 이곳은 기사를 위한 장소 이구요! 슐트라는 이계인과 연이 닿았다고 해서 저 녀석의 죄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무죄가 되었다고?”
“그런 허술한 법 따위.”
에드가가 부드득 이를 갈며 타르칸을 노려보았다.
“뭐 일단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자면 나는 지금부터 타르칸이랑 한바탕 붙을 생각이야. 저 녀석 나를 너무 무시하더라고. 본때를 보여줄 참이랄까.”
쿤타의 대답에 에드가의 눈동자가 살짝 커지더니 위험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 참 재밌겠군요. 혹시 저에게도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기사단장님이 낄만한 자리가 아닌데?”
“흥미가 있어서요. 그리고 애초에 저를 판에 끼우려고 여기 데려온 거 아니십니까?”
“아니 에드가 자네!”
쿤타가 충격 받은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는가 싶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나를 너무 잘 아는구만! 어때 타르칸?”
타르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한 번에 덤벼요.”
순간 타르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다 동시에 헛웃음을 흘렸다.
“크하하 어이 타르칸. 네가 꽤 강해진 건 알지만 나라고 놀고만 있진 않았어.”
“정말이지 황당하기 짝이 없는 놈이군, 훈련병 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잖아.”
두 사람은 타르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과거보다 조금 더 강해졌겠거니 그렇게 여기는 것이다.
‘무기를 쓸 필요도 없어.’
타르칸은 갑옷만을 전개한 채로 연병장 중앙에 섰다.
그는 자신처럼 맨 손으로 걸어오는 에드가를 향해 경고했다.
“무기를 사용하시죠.”
“흥! 오히려 탈영병 네 놈이 무기를 써야할 거다.”
아직도 그의 기억 한 편에는 흡혈토끼 한 마리에 벌벌 떨던 타르칸의 모습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에게 갚아줘야 할 것이 있었지.”
파악.
타르칸이 날려 보낸 검은 가시가 에드가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리고는 급선회.
툭.
검은 가시에 의해 잘린 앞머리가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빠른 발과 반사신경이 자랑인 그가 미처 반응하지도 못한 속도.
꿀꺽.
에드가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무기를 드시죠?”
“후회 할 것이다.”
에드가는 낮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검과 방패를 들어올렸다.
짙은 회색을 가진 검과 방패는 마치 나무뿌리 혹은 혈관 같은 것이 표면 가득 퍼져 있었다.
“역시. 리빙웨폰을 가지고 있었군요.”
“그래.”
“…… 그거 혹시 젠슨 교관님인가요?”
에드가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화아악.
단지 무기를 빼든 것만으로 에드가의 기세는 급변했다.
리빙웨폰은 사용자에게 자신의 힘을 나눠준다.
이미 마나 핵을 가지고 있는 자가 리빙웨폰까지 사용하자 그 위력은 어마무시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야.’
그는 에드가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무엇인지 알아낼 생각이었다.
파지지직
타르칸이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가 서있던 자리에 내려친 낙뢰가 연병장 바닥을 까맣게 그을렸다.
“나를 잊으면 곤란하지.”
여유롭게 웃는 쿤타의 전신에서 스파크를 튀어 올랐다.
‘본래대로라면 상당히 고전… 했겠지만.’
타르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나의 본질로 정수에너지를 채우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좌우로 넓게 사출했다.
에드가는 방어를 쿤타는 회피를 선택했다.
그는 에드가를 향해 추가적으로 검은 가시들을 발사하는 것과 동시에 쿤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광폭화.’
어차피 오래 끌 생각은 없다.
그의 전신이 붉게 물들었다.
능력치의 증폭으로 더욱 빨라진 타르칸은 순식간에 쿤타의 코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검은 건틀렛을 낀 손으로 쿤타를 후려치려는 찰라, 타르칸은 등 뒤에서 자신을 노리는 검을 느낄 수 있었다.
몸을 비틀어 피하자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에드가가 보였다.
‘빠르다!’
에드가가 가진 가속능력은 그의 예상을 뛰어 넘었다.
검격 이후에 곧바로 이어지는 방패치기.
타르칸은 일단 몸을 굴려 빠져나왔다.
파지지직.
그가 움직이는 곳을 따라 쿤타가 사용하는 전기가 작렬했다.
마치 자신이 어디로 도망칠지 모두 알고 있는 듯 적절한 위치에 떨어져 내리는 낙뢰는 상당히 까다로웠다.
‘솔직히 인정해야겠다.’
에드가와 쿤타 둘 모두 예상보다 뛰어난 강자다.
‘하지만 결국 그 정도지.’
에드가가 빨라 봤자 알-미라지보다 빠르지는 않고
쿤타가 전황을 읽는 눈이 있다고 해봤자 후마르의 천부적인 싸움 감각에는 미치지 못한다.
‘여전히 무기를 쓸 필요도 없어.’
좌측에서 에드가가 치고 들어온다.
여전히 놀랍도록 빠르지만 그만큼 너무 직선적이다.
미리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면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은 전혀 위협적이지 못하다.
타르칸은 에드가가 충분히 가까워 졌을 때 그의 얼굴에 발차기를 먹여주었다.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춘 카운터 어택.
무기를 들지 않은 타르칸의 발차기에 에드가는 초라하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빠른 속도만큼의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크헉!”
에드가의 비호를 받지 못하는 쿤타를 제압하는 것은 더욱 간단했다.
복부를 강하게 후려치자 쿤타는 허리를 접고 연신 헛구역질 했다.
“야! 너! 크윽… 야 이 새끼가 적당히를 몰라! 으웩.”
“그러니까 각오하라고 말 했었잖아요.”
타르칸이 어색하게 웃으며 갑옷을 해체했다.
그때,
“크아아아악!!!”
바닥에 쓰려졌던 에드가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패배한 것에 화풀이라도 하는가 싶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에드가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분명 몬스터의 그것이었다.
“크. 크아아악!!”
“젠장할. 왜 하필 지금.”
“쿤타 선생님 에드가 교관이 왜 저러는 건가요.”
쿤타가 배를 부여잡은 채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설명은 있다가 해 줄 테니 당장 저 녀석부터 진정시켜. 죽이지는 말고.”
“진정시키라고 말하셔도…”
“으으윽.”
에드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전신에 돋아난 검은 뿔들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인간이라 보기는 힘들었다.
“어쩔 수 없군.”
타르칸은 살아있는 뼈를 전개시키는 것과 동시에 언월도를 꺼내 한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쾅!
에드가의 이마위에 돋아난 뿔을 붙잡고 그대로 땅에 찍었다.
연병장의 바닥이 갈라질 정도의 위력.
하지만 에드가는 여전히 몸부림치고 있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연병장이 완전히 뒤집어지고,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놀란 기사들이 뛰쳐나왔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야! 죽이지 말랬잖아!”
“음?”
쿤타의 외침소리에 그제야 그는 에드가의 머리를 지면에 처박는 짓을 멈추었다.
머리채를 거머쥔 손을 들어보니 축 늘어진 에드가가 딸려 올라왔다.
“죽지는… 않았네요. 아직까진.”
***
“후…”
다시 타르칸의 여관 방.
쿤타와 에드가가 마치 후배들의 동아리방을 찾은 졸업한 선배처럼 방을 점거하고 있었다.
“쓰읍 후-”
에드가 역시 어느새 흡연자가 되어 있었다.
타르칸은 방안을 가득 채우는 연기에 질색하며 황급히 창문을 열었다.
‘에드가 교관님. 못된 것만 배웠어!’
“그래서 뭔가요. 그 모습은.”
쿤타가 대답했다.
“마녀의 작품이지.”
“마녀요?”
“그래. 이미 이식된 마나의 홀을 이용하는 두 가지 기술. 하나가 리빙웨폰이라면 다른 하나가 바로 동기화.”
쿤타가 간략하게 설명했다.
동기화. 이식된 몬스터의 핵을 자신의 육체와 동화 시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인간의 몬스터화. 그 정점.
“마녀들은 자신들의 숙원을 이루고야 만 것이지. 그녀들이 원하는 형태는 아니었겠지만.”
쿤타가 비릿하게 웃으며 담배연기를 뱉어내었다.
“몬스터가 된다는 건.”
“그래. 강한 힘을 얻게 되지만 높은 확률로 이성을 잃게 되지.”
“그건 너무 위험한 것 아닌가요?”
“걱정마라. 탈영병.”
에드가가 그 답지 않은 나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동기화를 선택한 기사의 갑옷 아래에는 언제든 심장을 터트릴 수 있도록 폭약이 설치되어 있으니까. 동료를 해칠 일은 없다.”
“폭약이요?
“그러고 보면 그 슐트라는 이방인이 괜찮은 물건 하나는 만들어 놨군.”
“마녀 역시 말이지.”
이성을 잃으면, 죽는다. 그 뿐이야.
에드가의 말에 쿤타가 연기를 빨아들이며 낄낄 웃었다.
“그렇게 따지면 너 오늘 한 번 죽은 거 아니야?”
“그런 셈이군요. 쿤타님.”
에드가가 복잡한 표정이 되어 있는 타르칸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빌어먹을 탈영병 자식. 더럽게 강해졌잖아.”
***
며칠 뒤.
가이아가 쟌과 함께 제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자.”
좌르르르륵.
가이아가 여관 바닥에 정수의 원형을 쏟아 부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모았어?”
“잊었어? 시스템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을수록 드랍률이 높아져. 이 모양 이 꼴이긴 하지만 어쨌건 난 서버의 인격이었어. 너보다는 훨씬 확률이 높지.”
총 7개의 정수의 원형.
새삼 가이아의 능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꼭 모바일 게임 오토 돌려놓은 기분인데?’
타르칸은 동시에 이상한 점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어째서 나는 하나도 얻지 못했지?’
지구에서 그 많은 다크엞프를 죽였건만 전리품상자는 얻었을 지언정 정수의 원형은 전혀 얻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퀘스트를 생성한 상태였는데도.
‘다른 놈은 몰라도 다크엘프의 여왕은 줄만 했는데.’
그러고 보면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지구에서는 정수의 원형을 얻은 적이 없었다.
“흠…”
“그래서. 왜 부른 거야? 저쪽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일은 다 끝냈고?”
“응 덕분에. 고맙다 가이아.”
타르칸이 감사를 표하며 정수의 원형들을 모두 ‘종결자의 심장’에 흡수 시켰다.
추가로 얻을 수 있는 능력은 뭔가 다 애매한 것들이라 등록시키지 않았다.
[종결자의 심장] (시크릿)
- 공격력 : 레벨 x 0.55
- 등록된 능력 : (3/10)
(바리스크) 대지속성 데미지 30
(바위비늘전갈) 낮은 확률로 방어구 부식
(글루트 슬라임) 악식
- 내구도 자가 수리
= 모든 것을 무로 귀결 시키는 자의 심장.
현재 그의 레벨은 178.
다크엘프들과 일본 숲의 몬스터를 꾸준히 사냥한 덕분이다.
레벨업과 추가 정수의 영향으로 무기의 공격력은 98, 상당히 준수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거기에 등록된 능력을 통한 속성 대미지에 방어구 부식 효과까지.
슐트의 레전드 등급 무기에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을 정도다.
‘심지어 이것조차 성장이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는 거지.’
그는 끝을 모르게 강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