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187화 (18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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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크님의 전언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는 플레이어였다.

덩치가 좋은 흑인 캐릭터에 몹시 선해 보이는 눈매를 지니고 있었다.

느껴지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꽤 고레벨의 유저로 보였다.

“당신은?”

“스네이크님의 직원입니다.”

직원이라.

스네이크는 검은 모래를 팔아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었다.

직원을 두려고 했다면 수천 명도 넘게 고용할 수 있을 테지.

“하지만 각성자라면 돈이 부족하지는 않을 텐데 어째서 그런 녀석 밑에 있는 거지? 혹시 아직 각성하지 못했다던가?”

“아니요. 돈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은 저의 은인이십니다.”

“은인? 그 녀석에게 붙을 만한 단어는 아닌데?”

남자는 조금의 표정변화도 없이 말을 이었다.

“스네이크님께서 타르칸님과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게 나를 보고 싶었으면 직접 오면 되잖아?”

그가 지구의 일본에서 벌인 일.

그것을 토대로 현재 타르칸의 위치를 알아낸 것이 틀림없다.

“직접 만나게 되면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타르칸님 손에 죽을 거라고…”

“잘 알고 있군.”

“그럼 말을 전하겠습니다.”

“아니.”

어느새 치켜든 타르칸의 언월도가 남자의 가슴을 갈라놓았다.

“스네이크에게 전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직접 오라고.”

피를 흘리는 남자의 시체는 곧 빛으로 화해 사라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타르칸은 호렌평야의 포인트를 통해 곧장 스나단으로 이동했다.

마을의 초입에 들어서자 예의 회색로브를 입은 쟌이 마중 나와 있었다.

“가이아는?”

“저 그게 몬스터 사냥을 하다 그만…”

쟌이 말끝을 흐렸다.

사냥 중에 죽은 모양이다.

“부활은?”

“3일 전에 사망했습니다.”

4일이나 이곳에서 지체할 시간은 없다.

“가이아 리젠되면 같이 제국의 수도로 와.”

“제가 모시겠습니다.”

“가이아랑 같이 와. 가이아는 부활 포인트를 통한 이동이 불가능하니까. 그리고 혹여나…”

타르칸의 서늘한 눈빛이 쟌을 향했다.

“혹여나 네가 죽인 것이거나 중간에 방해 공작을 벌인 것이라면 각오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리빙웨폰을 만들기 위해 마을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당치도 않습니다.”

“그래 그럼 됐고.”

그 말을 끝으로 타르칸은 몸을 돌려 부활포인트로 향했다.

도저히 리단이나 리타를 만날 기분이 아니었다.

이동용 수정을 꺼내든 그는 아스너 제국 수도에서 가장 가까운 포인트로 이동했다.

“GM목자가 더 헛짓거리 하지 못하도록 만들겠어.”

***

제국의 수도로 향하는 대로 위.

“타르칸씨! 여깁니다.”

“슐트씨…죠?”

너무 지구의 슐트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었나 보다.

타르칸은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난 험악한 인상의 슐트가 어색했다.

슐트는 따뜻하게 미소 짓는 대신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동하시죠.”

“네.”

“모든 절차를 밟아 놨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슐트가 작은 인장이 찍힌 종이를 내밀었다.

제국의 시민임을 인증하는 증서였다.

“여기. 받으시죠.”

슐트가 굵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털이 잔뜩 난 근육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구에서의 선이 가늘고 여린 이미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타르칸이 정수를 흡수할 때마다 인격이 변화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컨셉. 슐트는 상남자 해적이라는 캐릭터를 롤 플레잉하는 것이다.

‘진짜 적응 안 되네…’

“아. 그렇군요. 타르칸씨를 만나고자 요청한 자가 있습니다.”

“저를요?”

“네. 분명 타르칸씨도 알고 있는 사람일 겁니다.”

“흠.”

요즘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 오히려 누구일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분명 한바탕 떠보자는 것이겠죠. 후훗.”

슐트가 차갑게 냉소했다.

어째서 예전에는 그렇게 멋지게 보였던 미소가 지금은 너무나.

‘너무 어색해요. 슐트씨. 제발 그만 해 줘!’

왠지 손발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타르칸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제가 말씀 드린 건은 어떻게 되었나요?”

“아? 그 성국 말씀이군요.”

바다에 설치되어 있던 시설물은 이미 타르칸이 파괴했다.

하지만 정황상 성국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비단 핵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어떤 짓을 벌일지 알 수 없어요. 먼저 선수 쳐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렇기는 한데 말이죠.”

슐트가 난색을 표하며 그의 거친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 나라 귀족들이 핵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고대에 봉인되었던 비밀무기 정도로 설명을 하긴 했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몬스터가 아닌 인간에게 쓸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겠죠.”

“정확합니다. 성국이 돌연 마나의 세례를 멈춘 것에는 분노하고 있지만 거기까지입니다. 그 이상 어떤 행동을 하려들지 않아요.”

타르칸 역시 내심 생각하고 있던 문제였다.

성국이 머지않아 전쟁을 시작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지만 다른 나라의 군주에게 그 사실을 이해시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몬스터가 아닌 인간끼리의 전쟁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어 하더군요.”

슐트는 곁눈질로 슥 타르칸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대다수의 귀족들은 ‘성국이 마나의 세례를 멈춘 것에도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 만 합니다.”

타르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소수 정예가 필요한 것이죠.”

“소수 정예요?”

이어지는 타르칸의 말에 슐트는 그가 지켜 온 상남자 컨셉이 무너질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네. 저는 GM을 레이드 할 생각입니다.”

“네에?!”

***

슐트는 귀족들을 만나 처리할 문제가 있다며 성으로 들어갔다.

귀족들에게 자신을 소개시켜주겠다는 제안을 타르칸은 정중히 거절했다.

귀족과 어울릴 이유도 없을뿐더러 그는 태생적으로 귀족이라는 종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권력이 필요할 때는 슐트씨를 통하면 그만이니까.”

타르칸은 자유롭게 수도의 거리를 거닐었다.

과거 복잡한 시장 통이던 곳은 완전히 탈바꿈해있었다.

시장이 있던 골목 전체가 거대한 공방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총과 총알을 대량 생산하는 곳이었다.

물론 그 공업단지의 최고관리자가 아멕스인 것은 당연했다.

“타르칸!”

“아멕스씨.”

엄청난 거구의 사내가 그를 발견하곤 반갑게 소리쳤다.

시작의 섬에 납치되었던 트렌의 아들이자 한때는 술에 빠져 살던 알콜 중독자.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아멕스는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제 술은 완전히 끊으신 모양이군요.”

“그럼. 사실 마시고 싶어도 마실 시간도 없어. 크큭.”

커다란 눈동자에는 힘이 깃들어 있었고 입가에 만연한 미소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웬일이야. 슐트님을 소개시켜준 이후로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더니.”

“이래저래 많은 일이 있었어요.”

“하하하. 그래. 그랬을 테지. 자자. 이쪽으로.”

서로의 안부를 나누며 그들은 분주한 공방거리를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작은 목례로 아멕스에게 예의를 표하고 있었다.

“저건?”

“아아… 이건 ‘증기 모터’라는 것이다. 끓는 물의 힘을 이용한 것이지. 어때 놀랍지?”

와 증기 모터라니 정말 대단해!

놀라는 척을 해주니 아멕스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혹시 이것도 슐트씨가 전해 준 기술인가요?”

“하하하 이런 들켰나?”

거리에는 근현대적인 도구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지금 그랑대륙의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구의 현대사 박물관 속을 걷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어? 3실버!”

누군가가 그를 향해 외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과거 타르칸을 아멕스에게 데려다준 그 못생긴 여자애다.

과거처럼 꾀죄죄한 모습이었지만 얼굴을 덮은 것은 길거리의 오물이 아닌 땀과 기름이었다.

그녀는 반가운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었다.

“레아도 거의 시작부터 함께 도와주고 있지. 저래 뵈도 손이 아주 섬세하거든.”

“네. 손재주 좋은 거야 제가 잘 알고 있죠.”

타르칸이 피식 웃었다.

활기가 넘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했지만 확실히 거리가 뭔가 정돈되고 체계적인 느낌이었다.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내가 잘한 건 없어. 그저 너와 슐트씨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잘 타게 된 거지.”

아멕스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우리에게 마나의 세례는 없어졌지만. 우리는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되었어. 기계와 마법의 혼합. 나는 이것에 우리들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믿는다.”

“… 리빙웨폰 말인가요?”

타르칸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한 템포 가라앉았다.

아멕스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것도 한 종류가 될 수 있겠지. 아직은 무리지만 말이야. 그래 마탑에서 몬스터의 핵을 곧바로 이식해 사용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라고 하더라. 그것만 성공한다면 인류는 과거 이상의 영광을 누릴 수도 있겠지.”

아멕스의 눈이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 반짝거렸다.

마치 모험을 꿈꾸는 소년 같은 눈동자.

과거 술에 취해 동공에 초점이 풀려있던 모습은 도저히 연상되지 않았다.

“아! 이런. 또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버렸군. 미안하다.”

“아니에요. 보기 좋네요.”

“하하하. 이런 쑥스럽구만.”

아멕스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인사를 건네었다.

“나는 처리할 일이 있어 가봐야 할 것 같아.”

“바쁘시네요.”

“어쩔 수 없지. 내가 할 일이니까.”

아멕스의 시원한 미소가 타르칸을 배웅했다.

“아무 때나 놀러와. 너라면 언제나 환영이니까 말이야.”

“네. 수고하세요. 아멕스.”

아멕스의 뒷모습이 힘찬 걸음걸이와 함께 공방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타르칸은 잠시 동안 활기에 가득한 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가 할 일. 그래. 그렇지.”

***

여관방으로 돌아온 타르칸은 푹신한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슐트가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했지만 타르칸은 여관에 머물 것을 고집했다.

창문 너머로 분주한 거리의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랜만이네.”

타르칸은 자신의 감각을 하나 둘 둔하게 만들었다.

느껴지는 세상의 폭이 점차 줄어들었다.

일반인의 수준을 넘어 나중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까지.

“조용하니 좋구만.”

이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누운 것이 대체 얼마만일까?

그동안 너무 규모가 크고 많은 일들에 휩쓸려 버렸다.

그는 자신의 심장소리를 자장가 삼아 복잡한 생각들을 비워내었다.

“옛날에는 항상 이렇게 잠들었었지.”

과거 마녀로 지목된 어머니가 화형당해 죽고 난 뒤부터 그는 줄곧 혼자 잠을 잤다.

‘어머니, 마녀, 이브, 아담, 아둔한 전능자, 사도들, 디멘션온라인, 각성자들, 지구…’

“후우.”

문득 시작의 섬에서 나온 뒤, 미노타우르스 고기를 먹었을 때 가이아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너에게 예비된 길을 위한 초석이니.]

[달이 차면 기울 듯, 너에게 맞는 모습으로 변화할지니.]

[때가 차면 알게 되리라.]

내면의 열정과 포식자의 다이어리 스킬이 자신의 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 가이아가 했던 말이다.

“정확히는 P가이아가 아닌, S 서버의 목소리였겠지만.”

지나고 나니 모두 맞는 말이었다.

정수를 흡수해감에 따라 포식자의 다이어리는 그에게 맞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사실 그 뿐만이 아니다.

시크릿 등급의 직업 ‘정수 약탈자’를 얻은 것 역시.

그 뒤로 아담과 성체를 흡수하고 지구로 간 것 역시.

그 과정에서 그를 위한 시크릿 등급의 아이템들을 얻은 것 역시.

“이제는 확실히 알겠어.”

처음 ‘검은 무의 정수’를 흡수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를 위해 길을 준비하는 자가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 자는 아마도 서버. S가이아겠지?”

하지만 어째서 일까.

마녀의 아들. 아니 마녀의 실험체인 자신에게 서버라는 이름의 신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일까.

“나는 대체 누굴까?”

순간 그는 용수철이 튕겨나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군가가 자신의 방문 앞으로 걸어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전개된 살아있는 뼈가 그의 전신을 감쌌다.

갑옷에 언월도까지 완전무장 상태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야~~ 너 과거에 다녀오더니 저쪽사람 다 됐네?”

“쿤타 선생님?”

그의 방에 들어온 것은 바로 쿤타였다.

더러운 가운은 이미 버렸는지 깔끔한 로브 차림이었다.

쿤타가 입을 비죽 내밀며 타르칸을 흉내 내었다.

“이줴는 확쉴휘 알아쒀~”

“내, 내가 언제 그렇게!”

“냐뉸 댸췌 뉴귤꺄아~?”

“….”

“이야 소름 돋는다. 소름 돋아. 어? 잠깐만… 그거 분명히 내가 고대문헌에서 봤던 질병이었는데… 그렇지! 중이병이라고 명명된 질병! 맞지? 와~ 그거 설마 전염성이 있는 건 아니지? 제발 있다고 말해! 연구해버리기 전에!”

“……”

쿤타는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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