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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지구에서는 싸고 여유롭게 해외여행을 즐기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아직 처리하지 못한 비행형 몬스터들이 지금 이 시각에도 공중을 누비고 있기 때문이었다.
개척시대의 탐험가들처럼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타르칸이 지금 준비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여객기가 아니라 군용 수송기인 것도 그러한 까닭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타르칸님이시죠?”
수수한 인상의 남자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일본어 통역을 위해 파견된 헌터였다.
40대 중후반쯤 되었을까.
남자는 각성자 치고는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정만후라고 합니다. 그리고 헌터명은…”
순간 타르칸은 눈앞의 남자를 어디에선가 본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분명 김헌수를 만나기 위해 헌터협회를 찾았을 때 잠깐 스쳐지나갔던 남자다.
“모발캡터체리?”
“아. 아시는 군요.”
“워낙 인상이 깊어서요.”
타르칸이 무의식중으로 남자의 머리 쪽으로 시선을 보내었다.
정만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타르칸은 황급히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정만후는 익숙하다는 듯 씁쓸하게 웃었다.
“어쩌다가 이름을 그렇게…”
“아이디를 만들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었으니까요.”
각성자가 되어 그 아이디로 헌터 일을 하게 될지 몰랐다와 자신의 모발이 아이디를 따라 갈지 몰랐다는 중의적인 표현이리라.
사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이름이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는 아이디를 가지고 있었다.
슐트나 제이가의 경우가 오히려 드문 케이스였던 것이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는 헌터명보다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으로 하죠.”
“네. 감사합니다.”
말했다시피 모발캡터체리, 정만후는 일본 통역 겸 전투지원으로 타르칸과 동행하게 되었다. 그는 과거 일본을 오가며 무역 업무를 했었기 때문에 수준급의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직업은 레어 등급 사수계열 클래스인 사냥꾼으로 레벨도 이제 막 100을 넘긴 상태였다.
‘다크엘프와 싸우러 가는데 사수계열 클래스라… 전투방면으로는 큰 도움은 안 되겠네. 좋은 활이라도 드랍 되면 줘야겠다.’
정만후 역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듯 했다.
“저는 어디까지나 전투 지원이니까요. 거치적거리지만 않도록 하겠습니다.”
“거치적거리다니요. 대화를 도와주시는 것만 해도 큰 도움이죠.”
다행히도 정만후는 모발이 조금 부족할 뿐, 상황판단이 모자란 사람은 아니었다.
대화의 물꼬가 트이자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관님에게 표면적인 이유 이외에 더 중요한 비밀임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장관… 네 맞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설명 드리려고 했습니다.”
명목상 그들은 일본정부가 요청한 몬스터 토벌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에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해당 건은 이미 한 달도 넘은 요청이었고, 추가 지원요청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이미 처리가 완료되었거나 마무리 단계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다크엘프들이 일본 정부에 개입하고 있다는 첩보를 받았습니다.”
“다크엘프요?”
“네 6단계 게이트의 몬스터죠.”
정만후가 입을 쩍 벌렸다.
“아, 아니. 타르칸씨. 잠깐만요. 지금 6단계 게이트라고 하셨습니까?”
파르르 떨리는 정만후의 눈가가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6단계 몬스터를 상대하러 가는데 저희 둘만 가는 건가요?”
보통은 6단계 게이트가 나타나면 주변의 모든 민간인을 대피시키고 군대로 경계선을 만든 뒤, 수많은 각성자들이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타르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그동안 하동연과 슐트와 함께 활동해서 잠시 잊고 있었다.
하동연과 슐트는 모든 각성자를 통틀어 최상위권의 강자들. 다른 헌터들과는 몬스터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었다.
“미리 말씀드릴걸 그랬습니다. 저 혼자서 7단계 게이트의 몬스터까지는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습니다. 설령 함정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다크엘프 정도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으니 걱정 마십시오.”
애초에 초감각을 지니고 있는 그가 함정에 빠질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만후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나 보다.
“아니 무슨.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당신이 제이가님도 아니고. 아니! 설사 제이가님이라고 할지라도 혼자서는 불가능한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제이가 정도면 충분할 텐데요.”
하동연이 과대평가 받는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오히려 과소평가를 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따져봤을 때 타르칸은 제이가보다 강하다.
“정만후씨. 당신은 믿기 힘드시겠지만 저와 제이가 그리고 슐트씨. 이렇게 세 명은 함께 드레이크까지 사냥했었습니다.”
그것도 심지어 던전에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만약 지금 사냥한다면 훨씬 쉽고 무리 없이 사냥이 가능할 것이다.
“네에? 그게 무슨. 세 명이서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이 탑승할 비행기가 준비되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정만후는 수송기를 향해 걸어가는 타르칸의 등을 경악과 의심이 어린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
수송기의 작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일본열도의 모습은 참혹했다.
마치 거대한 쓰나미나 지진이 들이닥친 듯 도시는 엉망으로 파괴되어 있었다.
몬스터플러드의 여파였다.
“이곳이 다른 곳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괜찮은 편이라니.”
“북한을 비롯한 몇 개국은 몬스터플러드 때 그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정만후가 얼굴을 창문 가까이에 바짝 대었다.
“아. 어디였나 했더니… 저기는 좀 운이 좋지 않았던 곳입니다.”
“운이요?”
“네. 높은 단계는 아니었지만 몬스터플러드 당시 동시에 수십 개의 게이트가 열려 버렸거든요. 결국 다 처리하긴 했지만 피해가 작지 않았습니다.”
“그랬군요.”
“다른 도시들은 저곳보다는 사정이 괜찮을 겁니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일본 역시 인구수 대비 각성자 숫자가 많은 곳이니까요.”
정만후의 말대로 그들의 목적지였던 일본의 수도 도쿄는 꽤나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들을 마중 나온 것은 깔끔한 정장차림의 젊은 남자였다.
“어서 오십시오. 헌터님들.”
남자는 꽤나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수송기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는 정만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아니 이게 뭐야. 혼자? 한 명이 나온 거라고?”
그들은 한국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파견한 헌터들이다.
그것도 일본측의 요구에 의해서 말이다.
하지만 공항에 마중을 나온 것은 단지 젊은 남자 한 명뿐. 심지어 차도 없이 택시를 타고 왔다.
“이건 명백한 결례 아닌가요? 아니면 고의적으로 모욕을 주려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워낙 시기가 시기인지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는 것 아닙니까!”
타르칸은 언성이 높아지는 정만후를 제지시켰다.
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지금은 이런 일로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송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한국어를 잘 하시네요.”
“어머니가 한국인이십니다.”
“저희들에 대해서는 이미 아실 테고. 그쪽은?”
“네 미나토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좋습니다. 미나토씨.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이동하도록 하죠.”
미나토가 말꼬리를 흐렸다.
“네 하지만 저 그것이…”
“뭡니까?”
“요청했었던 건은 이미 다른 팀에서 처리하고 있어서 말입니다. 저어…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다른 일을…”
“아니 이봐 당신!”
결국 정만후가 폭발했다.
“우리가 무슨 용역업체 직원인줄 알아! 처리가 되었으면 진작 말했으면 되잖아!”
“하아. 그것이 중간에 착오가 있었다고 해야 하나요… 하아…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타르칸 역시 상당히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저 미나토의 행동들이 모두 계산된 연기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하지만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들어나 보죠.”
“타르칸씨!”
“정말 감사합니다! 역시 대한민국의 헌터님들은 아량이 넓으시군요. 자자.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정만후가 원망스런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애초에 저희는 따로 목적이 있어 온 거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한 나라의 대표로 도움을 주기 위해 온 사람에게 갑자기 다른 일을 해달라니요. 이런 경우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부탁할 건지는 대충 알 것 같지만요.”
“네?”
“아마 저희가 도와주기로 했던 야산의 몬스터들은 아직 처리가 안 되었을 겁니다. 다만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겼다는 거겠죠.”
***
“혹시 이런 몬스터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역시.
내심 틀리길 바랐던 그의 예상이 적중했다.
“아니 저… 저 괴물은 대체 뭡니까?”
정만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변이자라고 하는 존재들입니다. 놀랍게도 평범한 각성자였던 자들이죠.”
미나토는 그들에게 변이자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었다.
“타르칸님은 알고 계실 것 같은데. 맞나요?”
“잘 알고 있죠.”
미나토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변이자는 여러 계정을 플레이 했던 이력이 있는 각성자다.
일본 역시도 한국만큼이나 많은 변이자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변이자로 인한 피해는 한국보다 일본이 더 컸다.
“저희 첩보에 따르자면 한국과 일본의 변이자 숫자는 비슷합니다. 다만, 한국의 변이자들은 문제를 일으키기 전 조용히 처리되고 있죠.”
“그래서요?”
“바로 당신이 있기 때문 아닙니까?”
“……저요?”
“무명 출신으로 랭킹 1위의 제이가의 팀에 속해 있는 자. 당신이 탁월한 수색능력을 가지고 계신 것은 이미 파악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가진 압도적인 첩보력 덕분이죠.”
‘첩보력은 무슨.’
이 남자는 오해를 하고 있다.
타르칸은 모든 변이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닐 시간도 이유도 없었다.
한국에 변이자로 인한 문제가 적은 것은 전적으로 사도들 때문이었다.
폭력성을 띄기 전에 모두 실종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뿐이다.
‘하지만 사도 녀석들이 한국의 변이자만을 노릴 리가 없는데?’
타르칸은 혹시나 싶어 질문했다.
“발견된 변이자들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나요?”
“아직 치료법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격리조치하고 있습니다.”
“그럼 혹시 누가 침입해서 변이자들을 탈취해간 적은 없었나요?”
“아, 아니 그걸 어떻게!!”
타르칸은 속으로 쓴 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영악한 것들.
사도들은 멀리 있는 나라의 인간들이 변이자들을 한 곳에 모아두기를 기다렸다가 한 번에 쓸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 첩보를 통해 알았습니다.”
타르칸은 꿍해진 표정을 완전히 숨기지 못한 미나토를 향해 말했다.
“그래서. 본론을 말해보시죠. 뭘 어쩌자는 겁니까?”
“타르칸님이 한국에서 그렇게 하셨듯이 이곳 사람들 사이에 숨어있는 변이자들을 찾아 주십시오.”
“싫다면요?”
“네?”
“저는 별로 내키지 않네요.”
“하지만 조금 전에는.”
“제가 들어나 본다고 했지 언제 돕겠다고 했습니까? 필요하시다면 정식으로 한국정부에 요청하시죠.”
당황한 미나토가 빠르게 말을 뱉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이 일만 수락해주신다면 섭섭지 않은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미 수색의 최고 전문가들을 초빙해놓은 상태입니다. 타르칸님은 그저 조금의 팁만 주시면 됩니다. 직접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네.”
“전문가요?”
타르칸이 다시 관심을 보이자 미나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 아마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타르칸은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다크엘프인가 보군.’
그렇다면 거절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일본에온 이유는 다크엘프에 대해 조사하러 온 것이다.
“흐음… 그렇다면 조금만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타르칸씨!”
“정만후씨. 일단은 제가 하자는 대로 따라와 주세요. 전투지원. 맞으시죠?”
무언가를 말하려던 정만후의 입은 이내 분하다는 듯 꾹 다물어졌다.
반면 미나토는 함지박하게 벌어진 입을 황급히 추슬러야만 했다.
“네. 현명한 판단 감사합니다.”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그런 겸손한 말씀을. 그럼 일단 숙소로 안내하겠습니다. 오늘은 짐을 푸시-”
“아니요. 지금 바로 가죠.”
타르칸이 미나토의 말을 잘랐다.
“여유부릴 시간 없습니다. 이미 전문가들이 투입되었다고 했죠? 그들에게 안내해 주시죠. 지금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