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171화 (171/215)

171

영상을 보낸 사람은 실종자의 어머니였다.

야외에 설치된 CCTV라 화질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사물을 식별할 정도는 되었다.

영상을 보낸 변이자의 가족은 영상의 중반부부터 수상한 사람들이 나타난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몇 번을 돌려보아도 딱히 수상해 보이는 인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굳이 이상한 점을 찾는다면 화면에 노이즈가 끼면서 CCTV가 먹통이 되면서 영상이 끝난다는 것 정도였다.

“단순한 착각이었을까요?”

“아마 아들을 찾고 싶다는 마음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보낸 것 같네요.”

헌터들 중에는 가장 유명한 하동연이었으니, 어떻게든 해주겠거니 하는 믿음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동연은 약간의 미안한 마음과 함께 반복재생 중인 영상을 끄려 했다.

그때 타르칸이 하동연을 제지했다.

그는 흐릿한 영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타르칸? 왜 그래.”

“혹시 휴대폰 말고 좀 더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해. 뭔가 찾은 거야?”

하동연은 컴퓨터로 영상을 틀었다.

“이 부분을 확대해 줘.”

작은 영상을 억지로 늘린 탓에 화질은 오히려 조금 떨어졌다.

“대체 뭐가 있다는….”

순간 하동연의 눈 끝이 파르르 떨렸다.

화면의 가장자리, 그것도 카메라에서 멀리 있는 곳이라 잘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 트레이닝복 차림의 작은 체구의 여성이 있었다.

“이 여자 설마.”

얼굴이 흐릿하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풍기는 체형과 풍기는 느낌이 익숙하다.

그들이 던전 진화하는 톱니바퀴를 클리어하고 나왔을 때 보았던 사람. 사도 중 한 사람과 매우 흡사해 보였다.

“사도가 변이자들을 모으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 변이자를 이용할 만한 녀석들이 사도들 외에는 없겠지.”

디멘션소프트를 운영했던 것은 다름 아닌 사도들이다.

당연히 다중계정 유저의 목록과 그들의 주소와 연락처 역시 확보하고 있을 것이다.

하동연이 부드득 이를 갈았다.

“더러운 새끼들.”

“나는 예정대로 변이자를 찾아 잠복하겠어. 혹시라도 사도들과 싸움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항상 연락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해.”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변이자를 찾는 동시에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를 사도들을 신경 써야만 한다.

“사도들이 둘 이상이라면 제이가나 나 역시 위험할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해.”

“그래.”

***

다음 날.

타르칸은 변이자를 수색하며 서울의 이곳저곳을 누볐다.

변이자의 기운은 티가 날 정도로 세상의 기운과 이질적이었기에 먼 거리에서도 어느 정도 위치 파악은 가능했다.

몬스터의 출현으로 지금의 서울은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상태였다.

때문에 그 사이에 숨어 있는 발현단계의 변이자 역시 적지 않았다.

당장 오늘 아침에만 변이자로 보이는 자를 세 명이나 포착해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느낌이 더러울수록 곧 다음 단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겠지?”

그는 셋 중 가장 불길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자가 있는 여의도를 향해 이동했다.

변이자는 여의도의 대형병원에 입실 중이었다.

‘이 사람이군.’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1인실은 누군가가 가져온 것인지 알 수 있도록 이름이 적힌 병문안 선물들로 가득했다.

보통의 플레이어들에 비해서는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는 멍하게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늙은이… 방치되고 있네.’

남자는 고급스러운 병실에 있었지만, 그 누구도 없이 홀로 조금씩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딘가 길버트의 마지막과 닮아 있는 최후였다.

타르칸은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여전히 끔찍하고 역겨운 존재감. 하지만 어느새 조금은 익숙해졌다.

그는 잠행을 발동시킨 상태로 누워있는 변이자를 내려다보았다.

‘언제 2단계로 진행되는지 알 수가 없으니 원.’

그때였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천장을 바라보던 남자의 눈동자가 천천히 스르륵 내려오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익.

동시에 남자의 몸에 덕지덕지 센서를 붙이고 있던 의료기기들이 동시에 날카로운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뭔가 온다.’

타르칸은 잠행상태로 병실의 한쪽 구석으로 이동했다.

곧 병실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히힛. 회수 회수~”

타르칸은 숨을 죽였다.

검은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는 작은 체구의 소녀.

분명 미라지라 불린 사도였다.

“이번엔 아저씨네~”

타르칸은 후마르의 말을 통해 그녀의 본체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소리 없는 멸망의 알-미라지.’

초감각과 은신. 그리고 마나동결 능력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다.

즉, 천부적인 암살자.

“킁킁. 흐음. 이 녀석들의 악취는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아.”

알-미라지는 그녀의 작은 코를 부여잡았다.

장난기 어린 시선이 병실의 한 구석을 향했다.

“그렇지 않아? 거기 오빠?”

그녀는 정확히 잠행상태의 타르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미라지. 역시 초감각을 가졌다 이건가?”

“역시라고 말해도. 그렇게 어설프게 숨은 것을 눈치 못 채기가 더 힘들지 않아?”

“혼자인가?”

“그렇다면?"

타르칸은 하동연과 슐트에게 짧은 문자를 전송했다.

- 사도.

이미 그의 위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문자를 확인하는 즉시 이곳으로 달려올 것이다.

“변이자들을 어디로 그리고 왜 데려가는지 말해줘야겠어.”

콰드드득.

그가 살아있는 뼈를 전개시켰다.

“싫은데? 난 나보다 약한 사람의 말은 듣지 않걸랑.”

그에 대항하듯 알-미라지 역시 그녀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끝이 둥글게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두 자루의 단검이었다.

“저기 오빠. 이제 후마르와 셈은 끝난거지? 지금 여기서 죽여도 상관없는 거지?”

“가능하다면.”

그녀의 눈매가 활처럼 휘었다.

그 순간, 소란에 뒤늦게 병실로 뛰어온 간호사가 타르칸과 알-미라지의 모습을 발견하곤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헌터끼리 싸움이 붙었어요. 어떡해.”

“빨리 헌터협회에 연락하세요!”

사도라는 존재를 알 리가 없는 사람들은 알-미라지 역시 헌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꽤나 싸우는 걸 좋아하는 모양인데. 자리를 옮기는 게 어때?”

“내가 왜?”

“다른 사람들을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너도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잖아?”

“난 상관없는데?”

스윽.

알-미라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모습뿐만이 아니다. 그림자, 냄새, 존재감, 숨 쉴 때 생겨나는 미약한 공기의 흐름, 마나의 자취.

모든 것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커헉!”

그 순간, 타르칸은 옆구리로 느껴지는 강한 통증에 숨을 삼켰다.

어느새 끝이 둥근 단도가 허리에 닿아있었다.

갑옷의 끝부분이 일그러질 정도로 강한 일격.

“헤에. 튼튼한 오빠네.”

알-미라지가 뒤로 점프하며 그녀의 입술을 핥았다.

동시에 다시 한 번 그녀의 모습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부수는 재미가 있겠는데?”

퍼억, 퍼억.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쉴 틈 없이 내리꽂히는 그녀의 공격이 어김없이 그의 빈틈을 파고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는 타르칸은 그녀의 공격을 막아내기만도 급급했다.

‘빠르다. 속도만으로 보면 후마르를 아득히 뛰어넘어.’

타르칸의 능력은 게임으로 치자면 탱커와 암살자와 디버퍼 그리고 사수의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셈이다.

알-미라지는 그중 그의 암살 능력의 완벽한 상위 호환이었다.

‘전투 중 은신을 발동 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사기야.’

게다가 알-미라지의 은신은 그가 아담에게서 얻은 감각으로도 파악이 불가능했다.

흡수한 정수의 능력은 자신을 기준으로 약화되거나 강화되기 때문에 그는 아직 아담이 가지고 있던 능력에는 미치지 못한 상태였다.

은신능력과 감지능력. 양쪽 모두 밀리는 상황.

‘그렇다면…’

타르칸이 검은 가시를 마치 갑옷처럼 자신의 주위에 두르며 동시에 수십 개의 작은 검은 가시들을 소환했다.

검은 가시들이 마치 장맛비처럼 병실을 헤집어 놓았다.

“소용없어.”

그녀 앞에 무언가 희뿌연 장막이 나타났다.

알-미라지의 마력동결 능력이었다.

마력동결은 좁은 범위의 마나의 흐름을 막아 인위적으로 구성된 마나의 배열을 흩트려놓는다.

저 능력 덕분에 알-미라지는 대부분의 마법에 면역을 가지고 있었다.

마력동결 장막을 지난 검은 가시는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통제가 불가능했다.

검은 가시들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고 일부 검은 가시들은 그녀의 단검 앞에 손쉽게 튕겨져 나갔다.

“꺄하하하!”

알-미라지의 광기어린 웃음이 병실 안에 울려 퍼졌다.

다시 일방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챙. 챙. 챙.

그가 둘러놓은 검은 가시의 방벽이 조금씩 하지만 착실하게 깎여나갔다.

타르칸은 마나의 본질로 정수에너지를 채우고 있었지만 그 마저도 서서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상성이 좋지 않아.’

전투 능력만을 따지고 본다면 알-미라지는 후마르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정수추출의 패시브 효과로 거의 무한정의 정수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었던 후마르와 알-미라지는 달랐다.

그녀는 단 한 번의 유효타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지속시간이 짧고 디메리트가 분명한 광폭화를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자살행위였다.

고작 이렇게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후마르 그 자식. 내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다 말한 모양이군. 뭐, 애초에 적이었으니 당연한 일인건가?’

검은 가시의 방벽 안에서 타르칸은 침착하게 상황을 살폈다.

‘어떻게든 정수추출을 발동시켜야 해. 그럼 정수에너지도 공급받고 저 재빠른 발도 느려질 거야.’

검은 가시의 방벽 안에서 타르칸은 침착하게 상황을 살폈다.

“꺄하핫!”

히스테릭한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을 때, 그는 남은 정수에너지를 그러모아 정수사출을 가능한 넓게 발동시켰다.

우웅.

진동음과 함께 병실의 기기들이 터져나갔다.

정수추출의 패시브 효과는 발동하지 않았다.

알-미라지가 그 짧은 순간에 몸을 빼낸 것이다.

‘더럽게 빠르구만.’

쯧 하고 혀를 찬 타르칸이 병실 창문으로 뛰어내리며 검은 가시를 쏘아냈다.

검은 가시를 붙잡은 그는 병원의 옥상으로 날아 올라갔다.

에드고에서 가이아에게 아이디어를 얻은 그는 며칠간의 연습 끝에 제한적이지만 비행능력을 얻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황급히 어디가나 했더니. 도망간 곳이 고작 여기였어?”

“사람이 없는 곳이 필요했거든.”

어느새 병원의 옥상으로 따라온 알-미라지가 키득키득 웃었다.

“상관없는 사람들을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다 뭐 그런 거야? 착하네. 멍청하지만 말이야. 아까 그 방에서 싸우는 것이 조금이라도 이길 확률이 있었을 텐데.”

“내 능력을 이렇게까지 잘 알고 있는 건 역시 후마르가 알려준 거냐?”

“글쎄 어떨까? 계약이 끝났으니 이게 당연한 수순 아니겠어.”

“그렇지.”

그가 후마르를 통해 다른 사도들의 정보를 알아내었듯, 후마르도 타르칸과 다니는 동안 그에 대한 정보를 모았던 것이다.

타르칸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마무리 지어볼까? 오빠 이제 마나도 거의 다 떨어지지 않았어?”

알-미라지는 그의 마나 용량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후마르는 단순한 성격이지만 전투센스 만큼은 천부적인 만큼 타르칸이 싸우는 모습만 보고도 그의 마나총량과 사용량을 알아냈던 것이다.

역시 9단계 게이트의 몬스터다운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허점을 노릴 찬스가 생겼어.’

그는 자신의 왼쪽 팔목에 장착된 가시 박힌 방패를 슬며시 쓰다듬었다.

“마나의 본질. 검은 가시.”

“소용없다니깐!”

타르칸은 자신의 모든 마나를 태워 다수의 강화된 검은 가시를 소환했다.

알-미라지는 여유 있게 웃으며 다시 마나동결 장막을 만들어내었다.

또 다시 그녀 앞에서 통제를 잃는 검은 가시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녀의 발을 잠시 묶어두는 용도에 불과했다.

타르칸은 마력동결 장막, 그 너머에 서 있는 알-미라지를 향해 그의 방패를 치켜들었다.

“이거나 쳐 먹어라.”

[여명의 수호자](레전드)

- 방어력 : (체력+민첩) * 0.4

- 모든속성 저항 : 20%

- 자가 수리

- 액티브 스킬 : 여명의 눈동자 (방어력 비례 데미지, 재사용 대기시간 72시간)

콰앙.

그의 방패가 폭발했다.

동시에 방패에 박혀 있던 수많은 가시들이 마치 클레이모어를 터트린 것처럼 정면으로 폭사되었다.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하얀 가시들이 퍼져나가는 모습은 일출의 햇살을 연상 시켰다.

‘이래서 이름이 여명의 수호자인 거군.’

병원은 옥상은 미사일에 직격탄을 맞은 듯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만약 실내에서 사용했다면 사람이 죽는 것을 떠나 건물 자체가 무너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정수추출의 패시브 효과가 발동합니다.]

정수에너지가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타르칸은 온 몸이 걸레짝이 되어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알-미라지를 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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