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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라불리었다-170화 (170/215)

170

“슐트씨? 네 지금 로그인하려구요. 헬기 협조 부탁드려요. 아니요. 별로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미리 준비만 해두시면 제가 다시 로그아웃해서 연락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통화를 끝낸 타르칸은 인적이 없는 다리 밑에서 로그인했다.

[디멘션온라인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보랏빛으로 물들었던 시야가 점차 회복되었다.

그가 눈을 뜬 곳은 역시 로그아웃을 했던 호렌평야 위였다.

“스나단으로.”

타르칸은 이동용 수정을 이용하여 곧바로 스나단으로 이동했다.

“차앗. 차앗. 찻!”

마을은 꽤나 소란스러웠다.

한눈에 봐도 어린 소년 소녀들이 생소한 형태의 무기를 들고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중 한 소녀가 숲에서 걸어 나오는 타르칸을 발견했다.

“어? 저 오빠는.”

어린 소년과 소녀들 그리고 그들을 교육하던 어른들이 각자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새끼 짐승 같은 눈동자였다.

“형.”

체구가 작은 한 소년이 그를 향해 달려왔다.

리단이었다.

리단은 처음 보는 대검을 들고 있었다.

성인이 들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크기였지만 리단은 그리 어렵지 않게 그것을 다루고 있었다.

아마도 일종의 경량화마법이 적용되어 있는 것 같았다.

회색의 검 날 위에는 나무뿌리 같기도 혈관 같기도 한 것이 희미하게 얽혀 있었다.

“혹시 그게….”

“네. 할아버지에요.”

리단은 저 거대한 대검에 할아버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어 타르칸은 그저 그렇구나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리타는?”

“아마 집에 있을 거에요. 마녀님도 함께요.”

그는 다시 한 번 리단을 살폈다.

너무도 작고 어린 이 소년은 슬픔도 분노도 없이 그저 잠잠했다.

할아버지의 마음을 우습게 여기지 말아 달라. 리단은 그렇게 말했었다.

어쩌면 리단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의 할아버지의 이런 최후를 예감해 왔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

이래서 이 마을에 다시 오고 싶지 않았던 거다.

타르칸은 용무가 끝나는 즉시 바로 이곳을 떠나리라 다시 한 번 다짐하며 길버트의 집으로 향했다.

“타르칸님. 오셨습니까?”

길버트의 집 앞에는 쟌이 마중 나와 있었다.

쟌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피로에 쩔어 있었다.

아마도 잠에 빠져 있다가 타르칸이 오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 부리나케 일어난 듯 했다.

“마녀들은 잠을 자야하는 모양이군.”

“플레이어들보다는 좀 더 현실성이 높은 육체니까요.”

쟌이 베시시 웃었다.

“어째서 이 몸을 찾으셨나요?”

타르칸은 대답하지 않고 느닷없이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저… 죄송하지만 지금 뭐 하시는?”

“98, 99, 100. 됐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퀘스트 보상이 인벤토리로 이동합니다.]

그는 인벤토리를 열어 지구에서 잡았던 변이자의 신체조직을 바닥에 꺼내놓았다.

“이건 인간의….”

변이자의 심장을 살피던 쟌이 눈을 부릅떴다.

“타, 타르칸님. 대체 뭔가요 이 불길한 것은.”

“그걸 물어보려고 가져온 거야.”

그는 쟌에게 변이자에 대해 짧게 설명해주었다.

쟌 역시 베타테스터였던 덕분에 타르칸이 말하는 계정이나 리셋 같은 개념을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하지만 다양한 캐릭터를 플레이 했다는 사실이 어째서 인간을 이런 괴물로 만드는지는 알 수 없어.”

“인간이 이것으로 변했다니.”

“가능하다면 변이자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법을 알고 싶다. 그리고 변이를 막는 방법 역시도.”

쟌의 커다란 눈이 그를 향했다.

“혹시 이건 부탁일까요?”

“…그래.”

그의 짧은 대답에 쟌은 짐짓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을 몬스터로 만드는 건 너희들이 전문가니까.”

어째서인지 조금 의기양양해진 쟌이 대답했다.

“타르칸님. 하지만 틀렸어요. 이건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몬스터도 아니죠.”

“그렇다면 뭐지?”

그는 변이자를 죽였을 때 경험치가 오르지 않던 것을 떠올렸다.

인간을 죽여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그다.

시스템은 변이자를 인간으로도 몬스터로도 인식하지 않는다는 방증이었다.

“짐작이 가는 것은 있지만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는 마탑에 이것을 보내봐야 할 것 같아요.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 알았다.”

용건을 끝낸 타르칸은 지체 없이 돌아섰다.

“그 펭귄 아가씨는 사냥을 나갔어요.”

가이아는 아둔한 전능자들과의 유일한 연결점이다.

그가 하려는 일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타르칸이 관심을 보이자 신이 난 쟌이 재잘거렸다.

“못 보던 사이에 많이 강해졌더군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는 금방 지쳐 버리니까요.”

“가이아를 건드리면 죽을 수도 없는 상태로 만들어 심해 속에 가둬버리겠어.”

“제가 설마 그럴 리가요. 저는 단지 제가 그 아둔한 전능자의 일을 돕는 것이 어떨까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 아가씨는 다름 아닌 타르칸님을 위해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건 가이아에게 물어볼 일이지.”

타르칸이 차갑게 대답했다.

“네. 타르칸님이 지시하신 대로 이 마을의 늙은이 들을 모두 무기로 만든 다음 저는 곧 바로 그 아가씨와 행동을 함께하겠습니다. 타르칸님을 위하여.”

타르칸은 저것이 모두 그가 지구에 가 있는 동안에도 그의 행적을 놓이지 않기 위한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가증스럽긴.”

그때 작은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오빠?”

그들의 말소리에 리타가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리타는 두 눈은 사정없이 부어있었다.

“오빠.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이제 할아버지를 더 이상 볼 수 없데.”

리단과는 달리 리타는 꾸밈없이 슬퍼하고 있었다.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던 타르칸은 그저 훌쩍거리는 리타의 작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리타. 그건 뭐야?”

“할아버지가 선물 줬어.”

리타의 손에는 그녀의 팔뚝만한 크기의 물건이 안겨있었다.

그랑에는 생소한 것이었지만 지구의 지식이 있는 타르칸은 어렵지 않게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총?”

“그 늙은이가 생각보다 강한 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쟌이 다가왔다.

“덕분에 하나의 핵으로 두 개의 무기를 만들 수 있었죠.”

“…그래서 총을."

슐트와 쏜 그리고 아멕스가 지구의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낸 총은 그랑의 현실과 맞물려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이런 시골의 사람들조차도 아직 손에 익지는 않았지만 신기한 새로운 무기로 총을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네. 쉽고 유용하니까요.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총과 총알의 양산도 저희 자매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답니다.”

리타가 꼭 안고 있는 것은 리볼버 형태였지만 총알이 들어갈 곳에 둥근 붉은색의 보석이 6개 박혀 있었다.

“저희가 가장 추천하는 종류의 리빙웨폰입니다. 핵의 마력을 정제해서 발사하는 방식이니 따로 총알을 준비할 필요도 없죠.”

그녀의 자부심 넘치는 대답에 타르칸은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쟌은 슬쩍 그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보태었다.

“혹여나 해서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이것은 그 길버트라는 늙은이의 요청이었습니다.”

“끝까지 자기 멋 대로였네. 그 사람.”

타르칸은 눈물로 퉁퉁 부은 리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아이에게 어설픈 위로를 건네는 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스스로를 향해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뿐이야.”

***

로그아웃을 하여 다시 지구로 돌아온 타르칸은 하동연의 집까지 돌아오기 위해 꽤나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우선 호렌평야에 가야하고, 거기서 로그아웃 한 뒤에 헬기를 기다렸다 헬기를 타고 헌터협회 건물까지 가야하지. 거기에서 너희 집까지 와야하는 건 덤이고 말이야.”

“그래서 이렇게 늦은 거였구나. 차라리 이동형 부활 포인트를 설치하는 건 어때? 남은 캐쉬템이 좀 남아있는데.”

“무리야 그건 시스템이 마을로 인정하는 곳에만 설치가 가능한 거잖아. 그랑에 한국에 해당되는 곳은 돌과 바다 밖에 없다고.”

그리고 그 일대는 지금 성국의 영토가 된 상태다.

성국, 그리고 GM목자의 눈에 띄지 않으려면 최대한 빨리 로그아웃을 해야 한다.

“아직은 사도들과 부딪칠 때가 아니야. 우리가 가진 패가 압도적으로 적으니까.”

슐트와 하동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의 성과는? 청와대에 가서 뭘 좀 찾았어?”

“확실한 건 아니지만요.”

슐트가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변이자의 도주를 돕는 자가 있는 것 같아요.”

“설마요.”

“그것 외에는 어떻게 대통령이 청와대를 빠져나갈 수 있었는지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요.”

“그리고 대통령뿐만이 아니야. 나는 오늘 실종된 다른 변이자의 가족들을 만나고 왔어. 변이자가 사라지는 날 처음 보는 사람이 집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많아.”

“변이자를 빼돌리는 자들이라… 대체 어째서….”

생각보다 일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변이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무엇일까?”

“간단하게 생각해보자면 돈이겠지. 변이자의 대다수는 부유한 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실종자의 가족들 중 그 누구도 돈을 요구받은 적은 없었어.”

“그렇다면 변이자 자체가 목적이라는 소리인데….”

타르칸이 테이블 위에 턱을 괴었다.

“집 주변을 배회한다는 사람 말이야. 그냥 착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실종자 가족 중 한 사람이 집에 설치된 CCTV 자료를 보내주기로 약속했어. 곧 메일로 영상을 보내 줄 거야.”

이 문제는 일단 영상을 확인해 본 뒤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타르칸. 넌 어때? 좀 알아낸 거라도 있어?”

“나는 오늘 변이자 하나를 사냥했어.”

두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사냥?”

“죽였다구요?”

어째서 두 사람이 놀라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타르칸의 초감각은 그에게 시각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때문에 변이자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아직은 변이자를 병에 걸린 불쌍한 사람 정도로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타르칸은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설사 변이자가 인간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1단계 발현 단계의 변이자였다. 놈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었어.”

“그 말은?”

“그래.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른다는 뜻은 1단계에서 2단계로 진행되기 전에 변이자들이 어디론가 이동했다는 뜻이지.”

“자의 혹은 타의로 말이죠.”

“맞아요.”

그는 슐트의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2단계 변이에 임박한 변이자들이 스스로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이라 추측했다.

“변이가 임박한 자를 추적하면 변이자들이 모인 장소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슐트씨와 제이가의 말을 듣고 보니 스스로 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이동한 것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군요.”

본격적으로 변이자를 수색한 지 이제 일일 차.

하지만 벌써 꽤 많은 진전이 있었다.

“나는 내일부터 적당한 목표물을 찾아 잠복할 생각이야. 변이자가 스스로 이동하던가 누군가가 변이자를 데리러 올 때까지 말이야.”

“저는 협회에 변이자에 대해 보고된 자료들이 있는지 샅샅이 뒤져볼게요.”

“그렇다면 나는 실종자의 가족들을 좀 더 만나보겠어.”

함께 사선을 넘나들었기 때문일까.

그들은 꽤나 손발이 잘 맞아 떨어졌다.

“저 슐트씨. 좀 다른 것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총기 생산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총이요?”

의아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잠시 슐트는 자신의 주도하게 그랑대륙의 양산화에 성공한 총기류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그랑대륙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만으로 완벽하게 총을 재현해 내는데 성공했다.

그랑의 대장장이들의 기술이 큰 도움이 되었다. 마나를 활용하여 손과 근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재련과 세공을 해내었기 때문이다.

“좀 의외였던 건 그렇게 완성된 기술을 제국은 다른 나라들에게도 아낌없이 공개했다는 거였어요.”

“알만하네요.”

그랑대륙은 인간들끼리 싸우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곳이다.

때문에 전쟁이 없는 그랑대륙의 국경은 지구와는 그 개념이 조금 달랐다.

산맥이나 큰 강을 중심으로 나라가 나뉘기는 하지만 그것은 문화와 언어의 차이 때문에 생긴 일종의 느슨한 경계선인 것이다.

“그런걸 보면 오히려 그랑대륙이 더 평화로운 것 같기도 하구요.”

“하하하. 설마요.”

위이이잉.

그때 하동연의 휴대폰이 울렸다.

실종자의 가족으로부터 집 입구에 설치된 CCTV 영상이 전송된 것이다.

“자 어떤 놈인지 면상 한 번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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