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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지금 뭐라고?”
의아해 하는 길버트 아래에서 가이아가 날개를 파닥였다.
“벌써 부활 쿨타임이 다 찼어?”
“이미 이쪽으로 오고 있어.”
“헤에 벌써?”
일주일마다 한 번씩 쟌을 죽이는 것은 이제는 일종의 주간행사가 되어버렸다.
벌써 3번째 죽었지만 쟌은 부활할 때마다 어김없이 타르칸을 찾아오고 있었다.
쟌은 일체의 저항도 하지 않았기에 죽이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어째 갈수록 더 따라오는 속도가 더 빨라지냐.”
“빨리 죽이고 갈길 가자.”
“자, 잠깐만 마녀라고? 정말 그 마녀 말인가?”
이상할 정도로 말을 더듬던 길버트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하늘을 향해 돌아갔다.
기사단의 수색꾼 출신다운 날카로운 감각이었다.
“타르칸님.”
하늘에서 쟌이 마치 낙엽처럼 나풀나풀 내려왔다.
타르칸은 주저 없이 언월도를 꺼내들었다.
“타르칸님 들어주십시오!”
“시끄러워.”
“유적! 제가 유적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황금색 언월도가 쟌의 목 바로 위에서 멈추었고 그제야 쟌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일단 들어나 보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쟌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길버트가 황급히 쟌의 곁으로 다가갔던 것이다.
“마, 마녀님!”
그의 목소리는 꼬장꼬장한 모습과는 다르게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녀님. 제발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빠져라 늙은이. 나는 지금 타르칸님과 대화중이다.”
“마녀님!!”
쟌은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길버트를 밀어내었지만 그럼에도 길버트는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타르칸. 저 할아버지 왜 저래?”
“그러게 말이다.”
***
스나단은 아스너 제국령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일반적인 마을치고는 규모가 크지만 그렇다고 도시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그런 마을이었다.
제국의 기사 출신인 길버트의 집은 스나단의 3손가락 안에 드는 크고 견고한 곳이었다.
“마녀님 이것도 한 번 드셔보십시오. 아주 살살 녹습니다. 하하하.”
“타르칸님. 적마의 뒷다리 사태입니다. 풍미가 뛰어난 부위입니다.”
“아니 필요 없어.”
은퇴한 노기사가 마녀에게 음식의 가장 좋은 부위를 발라주고 마녀는 그것을 방랑기사에게 양보했다. 방랑기사는 짜증난 표정으로 마녀의 수저를 거칠게 밀어내고 그 바람에 테이블 위에 떨어진 고기는 작은 펭귄이 날름 집어 먹었다.
“이야. 과연 별미네 별미야. 키야~”
리단과 리타까지 총 일곱이 모인 테이블에 오직 펭귄만이 만족하는 이 기묘한 모습을 수많은 스나단의 주민들이 모여 구경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마녀를 보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들의 시선에는 동경과 동시에 감출 수 없는 진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타르칸에게는 배알이 꼴리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동경? 당장 잡아 불태우려는 것이 아니라?’
탁.
결국 타르칸은 수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초대 감사했습니다.”
“잉? 나 아직 다 못 먹었는데?”
타르칸이 버둥거리는 가이아를 들어올렸다.
리단과 리타는 그 모습을 홀린 듯 훔쳐보고 있었다.
“쟌. 따라와. 아까 하던 이야기마저 하자.”
“네. 타르칸님.”
“잠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마녀님.”
길버트가 황급히 일어나 쟌의 팔을 붙잡았다.
“지금 감히 어디에다 더러운 손을 대는 거지? 타르칸님이 나를 찾으신다. 손이 통째로 녹아내리고 싶은거냐?”
“자, 자네. 제발 마녀님을 말려주게나.”
“타르칸님은 네놈이 함부로 부를 분이 아니시다! 이 미천한 것!”
“마녀님! 오랫동안 마녀님을 기다려왔습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늙은 버러지가.”
끝을 모르게 이어지는 지지부진한 실랑이에 타르칸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흐아… 짜증나네 진짜.”
타르칸이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가이아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에 달려들었다.
리타가 조심스럽게 가이아 곁으로 다가왔다.
“새야. 말하는 새야. 머리 만져 봐도 돼?”
“응? 음… 원래는 안 되는데 지금은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허락해 주지! 조심해. 난 섬세하니까!”
“응. 히히히.”
리타가 작은 손으로 가이아의 몽실몽실한 배와 머리의 깃을 쓰다듬었다.
“리단. 리단. 이리 와봐.”
리타의 부름에 리단이 조심스럽게 가이아를 향해 다가왔다.
“그치? 엄청 부들부들하지?”
“응… 따듯해.”
“흥! 이 몸의 털이다. 최고인 것이 당연하잖아?”
두 아이가 자신을 쓰다듬는 동안 가이아는 한껏 뽐을 내며 음식을 흡입하고 있었다.
‘저 자식은 어떻게 된 게 어린 아이들하고 수준이 똑같네.’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타르칸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쟌. 그래도 어르신이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도는 들어보는 게 어떨까?”
“네. 타르칸님의 명이라면 기꺼이.”
쟌이 공손하게 대답하며 테이블에 앉았다.
“말해라. 늙은이. 용건만 간단하게.”
“감사합니다! 마녀님. 감사합니다.”
길버트가 반색하며 리단과 리타를 불렀다.
“리단, 리타. 잠시 자리를 비켜다오.”
아이들은 아쉬운 눈으로 가이아를 쳐다보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아는 고기 스튜 들고 가면 알아서 따라 갈거야.”
“말하는 새랑 놀아도 돼요?”
“응 마음껏 가지고 놀아.”
“난 장난감이 아니야!”
반색하는 두 아이와 가이아가 방에서 나가자 길버트는 조심스럽게 쟌을 바라보았다.
그는 오래전부터 바래왔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마녀님. 저의 마나의 홀을 취해주십시오.”
“싫어.”
쟌의 대답은 빠르고 단호했다.
“너무 번거롭고 준비에 시간이 오래 걸려. 그리고 네 놈의 부탁을 들어 주면 다른 이들 역시 개떼처럼 달려들겠지. 이 지역을 담당하는 자매가 있을 것 아니야? 그 녀석에게 말하도록 해.”
“하지만. 서풍의 마녀님을 기다리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까지 차례가 돌아 올 런지….”
길버트의 말에 쟌이 깔깔깔 폭소를 터트렸다.
“아. 여기 담당이 걔였어? 푸흣. 고년 고거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쳤나 보네. 뭐? 서풍의 마녀?”
“마녀님 제발. 어떠한 대가라도 치루겠습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너 따위에게 바라는 것이 없어.”
그때 쟌이 고개를 돌려 타르칸의 쳐다보았다.
고양이를 닮은 그녀의 눈매가 교활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타르칸님은 다르지.”
타르칸이 눈이 절로 가늘어졌다.
“뭐하자는 거지?”
“타르칸님. 타르칸님이 원하신다면 이 자의 부탁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 줄 수 있습니다.”
“거래라도 하자는 거야? 내가 대체 왜?”
길버트와 리단은 단지 오늘 만난 사람일 뿐이다.
그가 이들을 위해 마녀의 요구를 들어줄 이유는 없다.
“거래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다만 제가 타르칸님에게 쓸모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내가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저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입니다.”
쟌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길버트에게 보여주는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아마도 길버트에게 하는 행동이 진짜 모습이겠지. 샤르크에서 만났을 때도 그랬으니까.’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길버트가 그를 간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역시 타르칸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만한 입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입술을 달싹이면서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길버트씨. 마나의 홀을 취해달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죠? 새로운 자살법인가요?”
“이 썩어빠진 몸뚱이를 가치 있게 사용할 유일한 방법이지.”
길버트가 타르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요즘 따라 자신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러지 마시죠. 제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타르칸. 정말 염치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부탁하네!!”
사실 까짓것 쟌에게 부탁 한 번 하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르칸은 몸서리 쳐질 만큼 마녀가 싫었고, 그 이상으로 자신이 마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 싫었다. 마녀의 꼭두각시 노릇은 한번으로 족하다.
미동조차하지 않는 타르칸을 보며 쟌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마나의 세례를 재현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이미 안착된 핵을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내었습니다. 그것도 두 가지나요. 그 중 한 가지 방법이 바로 마나의 홀… 그러니까 인간에게 이식된 몬스터 핵을 추출해 내는 것이지요.”
“그렇게 추출한 핵을 다른 사람에게 다시 이식이라도 한다는 거야?”
역겨운 상상을 한 타르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몬스터 핵을 재활용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만 한 번 인간 내부에 안착된 핵은 다른 생물에게 이식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생물이 아닌 경우에는 제한적이지만 그것이 가능했죠.”
“생물이 아닌 것?”
쟌의 무심한 눈동자가 길버트를 내려다보았다.
“타르칸님. 이자는 지금 리빙웨폰이 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는 순간 자신이 잘못들은 것은 아닌가 귀를 의심하게 되었다.
쟌의 설명이 이어졌다.
“리빙웨폰은 이름 그대로 살아있는 병기입니다. 자아가 없기에 에고웨폰은 되지 못하지만 오히려 더 활력이 강하죠. 이론상으로는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용자가 마나 사용자 이상의 힘을 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쟌이 화사하게 웃었다.
“이렇게 저희들은 이미 활용법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걱정 마시길.”
그녀는 타르칸이 기뻐할 것이라 여기고 있다.
마녀들이 마나의 핵을 사용할 방법을 찾았으니 그가 어쭙잖은 마음의 가책 따위는 버리고 홀가분해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너희들은 대체 얼마나 꼬여버린 거냐.”
하지만 타르칸은 두려울 정도로 뒤틀려버린 마녀들의 사고방식에 소름이 끼칠 뿐이었다.
“슐트가 말한 마녀들의 방법이란 게… 너희들이 교단과 다를 게 대체 뭐지.”
작은 탄식과 함께 그는 가벼운 탈력감을 느끼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그는 순간 길버트의 집을 둘러싸고 힐끔힐끔 구경하는 이들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라는 사실을 눈치 챘다.
그랑의 평균수명은 고작해야 40세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마을의 노인 전부가 모여 있는 것으로 보였다.
“설마 저 사람들 모두?”
“그렇다네.”
“미쳤군. 당신들 모두 미쳤어.”
“…우리는 이미 미친 세상에서 살고 있던 것 아니었던가.”
낮게 읊조리는 길버트의 시선은 거실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우리들은 이런 세상에서 이토록 질긴 목숨을 이어올 수 있었다네. 이제는 돌려줄 차례가 된 것이지… 그래. 죽은 나의 아들과 며늘아기를 위해서라도.”
쟌과 길버트 그리고 길버트의 작은 나무집을 둘러싼 많은 이들의 시선이 타르칸을 향했다.
많은 이들이 무기가 되기 위해 죽음을 바라고 있고, 그것이 자신의 한 마디에 달려있는 이 상황은 당연하게도 매우 부담스러웠다.
타르칸에게는 이들의 죽음을 결정할 권리도 의무도 없다.
타르칸은 일그러진 얼굴을 두 손에 파묻으며 씹어내듯 말을 내뱉었다.
“죽어서 무기가 되든 말든 그건 알아서 하라고. 상관없는 일에 날 끌어들이지 마.”
***
“저기 애들아? 나 좀 어지러운데.”
“히히히. 폭신폭신. 폭신폭신.”
가이아는 리타에 의해 공중대회전을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타르칸이 성큼성큼 다가가 가이아를 집어 들었다.
가이아가 울상이 된 얼굴로 그를 반겼다.
“오이오이 타르칸. 와 줬구나.”
그 사이에 어지간히도 시달린 모양이다.
“이 녀석들 악마야. 아마 신종 몬스터가 아닐까?”
“헛소리 그만하고 가자. 여기 더 있다가는 정신이 이상해 질 것 같아.”
“마녀는 죽였어?”
“아니 아직. 죽여도 유적이 뭔지 들어나 본 뒤에 죽여야지.”
혹시라도 던전의 입구라도 찾을 수 있다면 레벨업과 정수 수집에 월등히 유리할 것이다.
그때 문이 열리며 길버트가 방으로 들어왔다.
“길버트씨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자네 전에 들으니 유적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더군. 내가 기사단에서 활동할 때 우연히 들었던 고대인의 유적이….”
“저기요. 길버트씨.”
타르칸은 확 뻗쳐오는 열을 삭히며 말을 이었다.
리단과 리타가 방에 있다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목소리를 한껏 낮춘 상태였다.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그 정보를 대가로 마녀가 당신을 죽이는 것에 동의라도 하라는 겁니까?”
“하지만 내가 원한다네.”
“제가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결정을 하고 싶지 않아요.”
타르칸은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쟌을 노려보았다.
교활한 자식.
역시 마녀라는 족속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빠 벌써 가?”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리타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타르칸은 리타의 갈색 머리를 쓰다듬었다.
리타는 이제 다섯 살인 것 치고는 말도 잘하고 자기주장도 뚜렷한 아이였다.
“응. 이제 가야 해. 할아버지 말 잘… 아니다. 할아버지 말 듣지 말고 그냥 건강하게 잘 자라.”
너희 할아버지는 미친놈이니까.
과거의 자신처럼 마나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일까?
타르칸은 왠지 리타와 그런 리타를 지키기 위해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린 리단에게 정이 갔다.
‘이미 미쳐버린 세상이라.’
길버트의 말대로 리타와 같은 아이들은 앞으로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다.
때문에 리타는 그가 감내해야 했던 차별과 사회적 죽음은 경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안정된 사회의 보호도 누리지 못하겠지.
그는 무거워진 마음으로 괜한 말을 덧붙어 본다.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