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149화 (14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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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르가 알려줬던 번호로 문자 메시지가 온 것이다.

문자를 확인한 타르칸이 슬며시 눈을 감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다.

사도들은 믿을 수 없는 집단이다.

알기 쉬운 성격의 후마르가 말을 바꿀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도들이 수작질을 걸 가능성은 충분하다.

“저쪽은 준비가 다 된 것 같네요.”

“정말 같이 안가도 괜찮겠어요?”

“네. 괜찮을 거예요.”

타르칸은 부드러운 모피로 만들어진 소파에 몸을 뉘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사도들의 목적… 그리고 그들의 능력.’

사도라는 놈들은 인간을 멸종시키겠다는 위험한 작자들.

‘나도 많이 강해지긴 했지만 두 명 이상은 감당하기 힘들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사도들과 접촉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사도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의 목표가 바로 그것이다.

‘인류의 멸종이 목표인 것 치고는 너무 약해.’

각성자들에 비해 사도의 숫자는 비교가 무의미 할 정도로 적다.

그렇다고 사도 개개인이 압도적으로 강한 것도 아니다.

‘물론 일반인보다 강하긴 하겠지만… 정상상태의 후마르와 하동연이 싸운다면 아마 하동연이 이기지 않을까?’

그는 후마르의 몸에 검은 가시를 찔러 넣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일반적인 소총은 피해를 주지 못했지만 중화기는 어느 정도 먹혀들 것이라 예상된다.

‘심지어 본체가 굼비라인 육체파 후마르가 그 정도라면 다른 사도들에겐 총도 유효할지도 모르지.’

심지어 지금 인간들은 검은 모래마저 가지고 있다.

검은 모래가 함유된 총알을 사용한다면, 저격 한번으로 사도를 죽일 수 있지 않을까?

한 마디로 말해 사도들은 너무 약하다.

그들이 가진 목표에 비교하면 황당할 정도로.

‘녀석들은 기다리고 있는 거야.’

이미 시작된 페이즈2, 세계 전역에 열리고 있는 단계 무차별의 몬스터게이트들.

이미 세상은 혼란에 휩싸였고, 앞으로 점점 더 강한 몬스터가 소환될 것이다.

‘천진에 터를 잡은 발록 같은 녀석들이 더 나타나기 시작하면 인간을 멸종시키는 것은 간단한 일이겠지.’

타르칸은 그때가 될 때까지 사도가 전면에 나설 일은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들에게 있어 인간의 멸종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상황에서 사도들이 해야 할 일은 변수를 제거하는 것이다.

‘뒷공작에 집중하겠지. 인간들을 분열시키고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거야. 만약 나라면 그렇게 해.’

뒷 공작에 집중하기 위해서 사도들은 최대한 자신들을 노출하기를 꺼릴 것이다.

그가 사도들이 함부로 그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였다.

타르칸은 휴대폰을 켜 다시 한 번 문자를 읽었다.

그가 가야할 위치와 시간이 적혀 있었다.

‘그래도 한 번쯤 실력 행사를 해줄 필요는 있겠지. 입을 막기 위해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말이야. 나를 건드리면 시끄러워 질 것이라는 걸 인지하도록.’

그는 인벤토리를 열어 납작한 플라스틱 팩을 꺼내었다.

안에는 삼합회가 그들을 치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검은 모래가 들어있다.

사도들에게도 검은 모래는 통한다.

아둔한 전능자들의 힘이 그들을 부활시키고 그들의 현재 육체를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아둔한 전능자. 그리고 그들이 만든 시스템. 검은 모래는 시스템이 부여한 모든 힘에 작용한다.’

디멘션온라인의 시스템에 의해 힘을 얻은 자신이 어째서 검은 모래의 영향에서 자유로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검은 모래는 그의 새로운 무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스킬은 검은 가시, 살아있는 뼈가 검은 색이라 갑옷도 검은 색. 이제는 검은 모래까지.’

그러고 보니 던전에서 그를 카피한 골렘도 검은 색이었다.

타르칸은 왠지 자신이 검은색과 인연이 많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

“그럴 듯한데?”

“실력 좋은 장인에게 맡겼으니까.”

타르칸의 마네킹 위에 입혀진 검은 전신갑옷을 보며 감탄했다.

가벼운 합금으로 만들어진 검은 갑옷은, 타르칸이 살아있는 뼈를 발동 시켰을 때의 모습과 판박이였다.

타르칸이 없는 동안은 장명석이 이 갑옷을 입고 그 행세를 하게 될 것이다.

“다른 두 명이 정보를 누설하지는 않겠지?”

“걱정 마. 애초에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리고 장명석 그 녀석이 다른 두 놈이 입을 놀리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확언을 하더라.”

타르칸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쓰레기라서 편한 것도 있네.”

하동연은 완성된 갑옷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타르칸을 복잡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정말 괜찮겠냐? 그런 놈들, 빨리 쓸어 버리는게 좋지 않겠어?”

사도들 이야기다.

하동연의 성격상 인간을 멸종시키겠다는 단체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영 찝찝했던 것이다.

스네이크에게 이용당했던 기억이 그런 그의 생각을 더 부추기고 있었다.

“할 수는 있고?”

“응?”

“뭐… 너와 나. 거기에 슐트씨까지 합세해서 사도들과 싸운다면 완전히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야.”

“그러니까!”

하지만 타르칸은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디까지나 사도들이 순순히 정정당당한 정면 승부를 받아준다면 말이지.”

“그거야 놈들이 도망갈 수 없도록 만들면 되는 거야.”

“…우리에게는 적이 너무 많아.”

타르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반면 사도들의 전력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어. 후마르가 말했듯, 사도들에게 협력하는 인간들도 존재한다. 그에 비해 우리는? 지금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없어.”

아쉽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싸움이 개인 대 개인이 아닌, 단체 간의 힘겨루기가 된다면 그들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제이가 너의 영향력이 크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다른 사람들을 설득 시키려면 사도들이 인간을 멸종시키려 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 그리고 사도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을거야.”

“….”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어. 아무리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말이야.”

잠시 침묵하던 하동연이 고개를 들었다.

“헌터들이라면?”

“응?”

“헌터들은 이제 막 조직되기 시작했어. 아직 법적 제도도, 단체도 불안정한 상태지. 만약 내가 이 헌터들의 구심점이 된다면?”

하동연의 갑작스러운 말에 타르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 슐트와 하동연이 헌터일을 시작하려던 이유는 오직 레벨업과 아이템을 위해서였지 헌터들을 규합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만약 너를 중심으로 한 각성자의 세력을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말할 것도 없지. 당연히 도움이 될 거야. 사도들의 계획을 막는 것에도, 너의 복수를 하는 것에도.”

단체의 방향성도 뚜렷할 것이다.

사도, 스네이크, 삼합회.

인간에게는 모두 암적인 존재들이니까.

‘하동연은 인간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동연 특유의 그 오지랖과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성향은 어쩌면 리더의 자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시연이라는 여자를 잃으면서 호구 같은 기질도 많이 없어졌으니….’

“좋은 생각이긴 해.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하동연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에 깊게 잠긴 듯,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눈빛이다.

“중요한 일은 슐트씨와 상의하는 게 좋을 거야. 너 머리 나쁘잖아.”

“뭐 그렇긴 하지.”

정확히는 머리가 나쁘다기보다는 권모술수에 약하다.

사실 슐트도 그리 나을 건 없지만 천상 호구인 하동연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럼 간다.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별 이상 없으면 바로 로그아웃 할 거야.”

“잠깐.”

문을 나서는 타르칸을 불러 세웠다.

“이거 가져가라. 이런 거 밖에는 줄게 없네.”

하동연이 건네는 것을 확인한 타르칸이 반색했다.

아이템 수리 키트와 이동용 수정 등 각종 캐쉬 아이템들이었다.

“이야. 제이가. 네가 웬일이냐.”

“NPC라면 구하기 힘든 물건들일 테니까.”

하동연의 말대로 장비수리키트가 전리품 상자에서 나올 확률은 지극히 낮다.

이동용 수정의 경우에는 아애 0%다.

“고맙다.”

타르칸이 하동연과 슐트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나섰다.

문자 속 위치는 한적한 도로 위였다.

사도들이 준비한 차가 그를 태우러 이곳을 지나갈 것이다.

그는 차를 탄 그 순간부터 사도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시작될 것이라 짐작했다.

은근한 긴장감이 가슴아래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이윽고 짙은 검정색의 밴이 그의 앞에 도착했다.

‘또 검은색이네.’

밴에 올라타는 그에게 운전수가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쇼.”

“네. 안녕하세요.”

“후마르씨의 은인이라지? 참 고마운 일을 해주셨어.”

타르칸이 날카로운 눈으로 차 내부를 살폈다.

딱히 위험한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운전대를 잡은 남자는 밋밋한 얼굴에 살짝 나온 술 배를 한,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흔한 아저씨였다.

하지만 타르칸은 남자의 눈동자에 남아 있는 흐릿한 기색을 놓치지 않았다.

‘던전 앞에서 봤던 남자들과 같은 기운이다. 이자 역시 보어라는 자의 정신계 마법에 조정당하고 있는 것인가.’

타르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운전수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후마르는?”

“후마르씨는 같이 못 왔어요. 급한 수술이 있다나봐. 하지만 걱정 마요. 후마르씨가 단단히 부탁해 놓았으니까.”

“네 그렇군요.”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다.

그야 어찌 되었든 피델이 사용하는 게이트까지만 가면 그만이다.

“아이고 잘 생겼네~ 아, 호칭은 타르칸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님자는 빼고 편하게 부르세요.”

“어이쿠.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고 허허허. 후마르씨 이야기와는 달리 예의가 바른 청년이만 끄껄껄껄.”

저 남자 너머에 보어라는 사도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름 정도는 물어 보는게 예의겠지.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남자의 입게 걸려있는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내 이름? 김무열이라고 부르면 돼. 김씨 아저씨라고 불러도 되고.”

“네. 저도 반갑습니다.”

“아 이거 참 명함을 줘야 하는데 얼마 전에 퇴직해서 말이지. 하하하. 워낙 불경기라 말이지.”

“네. 뭐….”

타르칸이 감흥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누군가가 조종하는 꼭두각시와 노닥거리는 취미는 없기 때문이다.

검은 밴이 도로위를 부드럽게 질주했다.

차 관리를 철저히 한 모양인지 엔진 소리가 안정적이었다.

“아. 타씨. 그거 알아? 이 정도로 깨끗하게 보존된 도로가 이제 지구에 몇 안 남았다는군. 몬스터가 범람하면서 죄다 부서져 버렸거든. 아마 더 심해질 거 같어.”

김무열은 꽤나 수다스러운 아저씨였다.

타르칸의 미적지근한 대답에도 끝임없이 말을 걸었다.

“언제는 안 그랬냐마는 지금은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거지. 사실 실감이 잘 안가지만 말야. 껄껄껄. 한국만큼은 몬스터가 나오는 족족 서로 경쟁하듯 사냥해버리니. 나 같은 사람은 고마울 따름이랄까. 무섭잖아 몬스터라는 거.”

몬스터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타르칸은 그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정신계 마법이 무서운 점은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 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보어랑은 어떤 사이죠?”

어떤 반응을 보일까?

타르칸은 뒷좌석에서 김무열을 살폈다.

하지만 어깨가 조금 굳는 것 외에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이것 참. 후마르가 같이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는 했지만… 설마 나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을 줄이야. 허허허. 하긴 후씨만큼 구워삶기 쉬운 사람도 드물지.”

“나에 대해서도?”

김무열이 특유의 털털한 웃음을 지었다.

“응. 내가 바로 보어거든.”

“…보어라고? 내가 설마 그 말을….”

“믿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만. 하하하.”

“꼭두각시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마인드 컨트롤 능력자가 함부로 움직일 리가 없잖아.”

“맞아. 물론 그렇긴 하지. 그런데 말야… 뭐랄까… 난 당신 팬이거든.”

타르칸이 눈을 좁혔다.

‘무슨 수작질이냐.’

눈앞에 있는 아저씨가 본체이든 꼭두각시이든 상관없이 조심해야만 한다.

상대는 정신계 마법의 마스터, 절대로 방심할 수 없다.

하지만 이어지는 김무열의 말에 타르칸은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플레이어이자 동시에 NPC. 7번섬의 관리자를 죽인 마녀의 아들. 두 세계의 육체를 가진 자. 그리고 이 세계의 진정한 해방자. 타씨는 모르겠지만 나는 타씨를 아주 오랜 시간동안 기다려 왔다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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