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140화 (1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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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은 타르칸씨 차례겠네요.”

“서로의 카피본은 각자 처리하는 것으로 하지.”

“좋아. 문제없어.”

이전의 사례를 생각해 본다면 골렘은 검은 가시를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공격력, 내구도, 속도… 모든 면에서 압도할 자신이 있다.

골렘이 검은 가시를 사용하기 전에 먼저 찢어버리면 그만이다.

“음? 그러면 후마르씨는 어떻게 하죠?”

“후마르의 복사본은 다 함께 처리해야 할 겁니다.”

“네 그러죠. 저 사람의 복사본에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요. 하하하. 사실 저를 카피한 골렘이 후마르씨를 카피한 골렘보다 앞에 배치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슐트가 다시 은근슬쩍 후마르의 신경을 긁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후마르가 발끈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웃었다.

“훗. 지금 많이 건방 떨어둬라. 어리석은 녀석.”

긴 복도의 끝이 보인다.

이제 눈앞에 있는 은색의 장막을 지나면 거대한 방과 그 가운데 서 있는 골렘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타르칸을 흉내 내고 있는 만큼 이미 언월도와 검은가시를 소환해 놓은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든 타르칸은 은색 장막을 통과하는 것과 동시에 검은 가시를 전개했다.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음?”

“왜 그래?”

앞서 걸어가던 타르칸이 우뚝 멈추어 서자 한 발 뒤에서 따라오던 하동연이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그 역시 방의 모습을 확인하자 타르칸과 같은 모습이 되고 말았다.

방 한가운데 편하게 늘어져 있는 골렘의 모습은 이전의 26개의 골렘과는 사뭇 다른 형태였다.

“이게 타르칸을 카피한 거라고?”

“그럴 리가요.”

“이건….”

후마르가 침음성을 흘렸다.

“저건 나다.”

그의 어조는 어두웠다.

하동연 다음이 자신의 차례라는 것에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골렘의 은색의 몸체는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족히 8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체였다.

왜 골렘에 꼬리가 있냐고?

골렘은 거대한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몸의 형태는 일반적인 호랑이의 그것이었으나 머리는 상상의 동물인 해태의 것을 닮아 있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몸체 위로 금색의 줄무늬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해태를 닮은 머리에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빨들이 날카롭게 배열되어 있다.

“저 모습은 설마… 굼비라 인가?”

타르칸이 골렘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 이 몸의 진명을 알고 있는가?”

“108개의 송곳니를 가지고 있는 9단계 게이트의 마수형 몬스터.”

“건방지구나. 도전자여. 이 몸을 몬스터라고 부르다니.”

“그리고 여신의 탈 것이라는 것으로 더 유명하지.”

순간 후마르의 표정이 팍 찌푸려졌다.

“이것 참. 그딴 헛소문이 지금까지도 돌고 있나… 빌어먹을.”

뒤통수를 벅벅 긁는 모습이 여신의 탈 것이라는 말이 꽤나 불쾌한 모양이었다.

“후우… 사실 그건 말이다… 쩝. 아니다.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해봤자 변명 밖에 되지 않을 테지… 어이. 도전자여.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저것이 나의 진정한 모습이다. 아무리 심하게 열화된 상태라고 할지라도 쉽지 않을 거야.”

“조언 감사하군.”

타르칸이 고개를 돌려 눈앞의 거대한 괴물에 집중했다.

그들이 방안에 완전히 들어왔음에도 호랑이 형상의 골렘은 신경하나 쓰지 않고 바닥에 누워있었다.

“예의가 없는 것을 보니 당신을 카피한 골렘이 맞긴 한 것 같네요.”

“저것이 본래의 모습이라니, 당신 인간이 아닌 건가?”

“이 몸이 인간 따위가 아닌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후마르는 입을 꾹 다문 채 눈앞의 골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어딘가 그리워 보여 두 남자도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직 무방비 상태야. 먼저 포웜이로 공격하겠다.”

포레스트웜은 거대하고 강력하지만 그만큼 공격 루트를 예측하기 쉽고 운신의 폭에 한계가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지금 눈앞의 골렘과 같은 무방비 상태의 적은 완벽한 포레스트웜의 먹잇감이라고 할 수 있다.

“몸으로 조여 찌부러트려 주지.”

포레스트웜이 하동연의 손짓을 따라 전진하기 시작했다.

굼비라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골렘은 거대하지만 하동연의 포레스트웜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한다.

온 몸으로 휘감는 것에 성공한다면 활동의 제약을 빼앗는 것은 물론, 그대로 부수어버리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스르르륵.

항상 공격을 하며 사납게 울부짖는 포레스트웜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기어갔다.

주인인 하동연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골렘은 여전히 그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바닥에 엎드려 있을 뿐이다.

포레스트웜이 골렘을 중심으로 원을 그린 포레스트웜은 조금씩 원의 반경을 좁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엎드려 있던 호랑이가 일어섰다.

놈은 천천히 기지개를 펴더니 자신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포레스트웜과 그 포레스트웜 너머에 있는 네 사람을 여유롭게 내려다보았다.

“포웜아!!”

하동연의 외침과 함께 독사처럼 고개를 쳐든 포레스트웜이 골렘을 덮쳤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팟-!

순식간에 제 자리에서 점프한 골렘에 포레스트웜의 공격은 애꿎은 바닥을 치고 말았다.

“빨라!”

“스킬 없는 상태의 열화판이 이 정도라는 건가.”

골렘은 포레스트웜을 거세게 밟으며 다시 뛰어 올랐다.

포레스트웜의 거대한 머리가 초라하게 바닥에 처박혔다.

“뒤다!”

하동연의 의지가 전해진 즉시 포레스트웜이 꼬리를 세차게 휘둘렀다.

지금 골렘이 착지하려는 곳은 포레스트웜의 시야에는 보이지 않는 위치였지만 몬스터라이더는 자신의 몬스터와 시야공유가 가능하다.

녹색의 강철로 만들어진 철탑 같은 꼬리가 살벌하게 공기를 갈랐다.

정확한 위치와 타이밍. 하지만 골렘은 공중에서 자신의 몸을 뒤틀며 회전시키는 것으로 너무나 간단하게 공격을 피해내었다.

타닥.

- 크와아아앙

가볍게 지면에 내려 선 골렘이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 울부짖었다.

기묘한 전자음만을 내던 이전의 다른 골렘들과는 여러모로 다른 모습이었다.

“젠장! 포웜이가 상대하기에는 너무 빨라.”

“마나의 본질. 정수 강화.”

“그림자밟기.”

슐트가 골렘의 등허리 위로 순간이동한 것과 거의 동시에 타르칸의 강화된 검은 가시들이 골렘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 뒤를 포레스트웜을 돌려보내고 리빙아머에 탑승한 하동연과 언월도를 거머쥔 타르칸이 따랐다.

-크왁!

골렘이 몸을 틀며 자신의 등허리에 나타난 슐트를 향해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놀라운 유연성과 반응속도였다.

슐트는 임기응변으로 휘둘러지는 앞발을 향해 단도를 세웠지만 그마저도 허망하게 튕겨나가고 말았다.

‘단단해!’

퍼억.

자신의 상체보다 큰 앞발에 얻어맞은 슐트가 벽에 부딪친 뒤 바닥에 쓰려져 꿈틀거렸다.

인벤토리에서 회복물약을 꺼내는 것을 보니 생명에는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더 이상 전투를 속행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정수추출의 패시브효과가 발동합니다.]

다행히 검은 가시는 먹혀들었다.

거대한 골렘의 몸체에 비교하자면 작은 흠집 정도에 불과한 상처를 통해 정상적으로 정수추출이 발동한 것이다.

약간이지만 골렘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방어력과 공격력 역시 같은 비율로 떨어졌을 것이다.

“차아아아앗!”

하동연이 기합을 내지르며 쇄도했다.

타르칸과 마찬가지로 하동연 역시 근접공격 스킬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리빙아머의 방어스킬을 공격에 활용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의 등 뒤로 짙은 녹색의 귀화가 일렁거린다.

드레이크를 사냥할 때처럼 플레임아머를 등 뒤로 분사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가 골렘을 향해 돌진하는 속도는 흡사 유성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송곳니를 노려!”

“이를?”

타르칸이 외쳤다.

하동연은 마음속으로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충실하게 거대한 대검을 톱니처럼 솟아나 있는 골렘의 수많은 송곳니를 향해 겨누었다.

퍼어어억!

플레임아머의 추진력을 더한 하동연의 찌르기는 놈의 흉악한 입을 뚫어내었다.

녀석의 뒤통수에 거대한 하동연의 대검이 삐죽 튀어 나왔다.

머리를 완전히 관통하는 일격.

일반적인 생물이었다면 절명했을 터였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대검에 머리가 뚫린 상태인데도 골렘은 힘을 전혀 잃지 않은 상태로 거세게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와아아악

골렘은 머리를 꿰뚫은 대검을 털어내며 황급히 뒤로 도망쳤다.

그 바람에 대검에 자신의 안면이 잘려나가는 것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골렘이 뒤로 물러난 자리에 부서진 놈의 이빨 몇 개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굼비라는 108개의 송곳니를 가진 몬스터야. 그리고 송곳니 하나를 희생하는 대가로 어떠한 상처라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그 말은?”

“그래. 굼비라의 송곳니 하나는 목숨 하나와도 같아. 말하자면 108개의 예비 생명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

“미친. 그래서 이빨을 노리라고 한 거였군.”

하동연이 대검을 어깨위에 척 걸쳐 올렸다.

어느새 머리가 완전히 치유된 골렘은 그런 하동연을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크르르르

자세를 낮추고 노려보는 골렘의 모습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잊게 될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하동연과 타르칸 그리고 굼비라를 흉내내는 골렘 사이에 잠시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저 괴물을 100번 정도는 더 죽여야 한다는 거지?”

“아니 그 전에 송곳니를 모두 부러트리면 돼.”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으니까 하는 소리야.”

타르칸은 하동연의 말에 동의했다.

방금 일격은 머리를 관통한 것보다도 그 과정에서 송곳니 몇 개를 부러트린 것이 더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격으로 인해 골렘은 경계심은 극도로 높아진 상황이다.

좀 전과 같은 직선적인 공격을 성공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스킬. 특히나 액티브 스킬이 너무 부족해.’

플레이어들은 직업에 따라 레벨마다 직업스킬을 얻을 수 있다.

이 직업스킬은 40레벨 마다 선택하는 계열 공통 스킬과는 별개로 해당 직업의 고유 스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슐트의 ‘함포사격’이나 ‘바닷사람’, 하동연의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특수한 능력들이 그 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이지 타르칸은 처음 전직을 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직업스킬을 얻지 못했다.

전직 전 너무나 쉽게 ‘약점 포착’ 스킬을 얻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정수융합을 사용할 때 새로운 스킬을 얻거나 스킬이 변화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긴 하지만….’

그가 흡수한 정수는 벌써 3개.

적합도20%당 하나의 정수를 흡수할 수 있으니 이제 그가 흡수할 수 있는 정수는 2개뿐이다.

앞으로 그가 흡수할 정수를 더욱 신중하게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다.

‘물론 검은 가시와 정수사출은 좋은 스킬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으로는 부족해.’

타르칸이 정수사출을 전개했다.

부러진 날개 모양의 언월도의 날 위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정수사출을 이러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정수추출’의 패시브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그래서 정수에너지가 마르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유지가 가능하다.

다르게 말하면 정수에너지가 부족한 상황. 즉, 전투가 시작되는 시점이나 대량의 검은 가시를 강화해야 하는 순간에는 사용이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나의 본질 스킬 말고도 마나를 사용하는 스킬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잠시간의 대치 상황이 끝이 났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하동연이었다.

상대는 지치지 않는 골렘이다.

시간을 오래 끌어서 이득이 될 것이 없다.

“나는 오른쪽으로 가겠다. 너는 왼쪽을 노리면서 검은 가시로 송곳니를 노려 줘.”

“좋아.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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