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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라불리었다-136화 (136/215)

136

“으아아악. 끄으윽 끄아아악”

마치 이성이 없는 짐승이 우는 소리 같았다.

하동연은 화를 내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괴성을 연신 내질렀다.

미처 제지할 틈도 없었다.

아니, 이것을 제지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슐트는 하동연처럼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상태는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언제나 이지적으로 반짝이던 그의 눈동자가 시커멓게 죽어있다.

- 키에에에엑

하동연에 동조라도 하는 듯 복도 건너편에서 셀로브의 소리가 울렸다.

움찔.

슐트의 어깨가 잠시 움츠러드는가 싶더니 그의 하얗고 긴 손가락이 다시 자판이 빠르게 오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눈동자는 거멓게 죽어있는 상태였다.

슐트가 중얼거린다.

“삼합회….”

타르칸이 그런 슐트의 등 너머로 그가 조작하는 화면을 힐끗 쳐다보았다.

정확히 이해 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영상을 다른 곳으로 전송시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삼합회라… 그래. 삼합회가 저 영상을 본다면 더 이상 하동연을 쫒지 않겠지. 그렇다고는 하지만….’

슐트는 얼굴의 근육이 모두 말라버린 밀랍인형같은 표정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저 상태에서 내린 판단이라기에는 너무나 냉철하다. 슐트 역시 보통 인간은 아니군. 알고는 있었지만.’

- 키에에에엑

셀로브의 사나운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삼십? 아니 그 이상이다.’

타르칸이 새롭게 얻은 언월도 ‘부러진 날개’를 비스듬히 들어 올리며 통제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처리하고 오지. 후마르 그 동안 이 녀석들 딴 짓거리 못하도록 잘 보고 있어.”

“으아아아! 시연씨!”

시체에서 흘러나온 물에 엉망진창으로 더러워진 상태로 바닥을 구르는 하동연을 내려다보며 후마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타르칸은 텅 빈 복도위에 섰다.

환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지하를 가득 채우고 있던 독 연기가 상당히 옅어졌다.

불 켜진 복도 위에 살해당한 인간의 피 자국이 적나라하게 들어났다.

“쳇.”

하동연은 타르칸이 시작의 섬에서부터 인연이 닿아 있던 사람이다.

다른 이계의 인간들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고통스러워했었지. 어쩌면 저것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르지.’

-물론 당신은 NPC입니다.

어째서 지금 쏜 그 자식이 생각나는 걸까.

목이 잘린 시연의 모습 위로 흐릿하게 샤오린의 모습이 겹쳐진다.

만약 샤오린을 그랑대륙에서 만났다면, 자신도 하동연 만큼이나 슬퍼했을까?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더 진지하게 생각했을까?

그랬다면 샤오린은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을까?

나는 하동연의 말처럼 감정이 없는 척 사이코패스 흉내라도 내고 있는 건가?

아니면 쏜의 말처럼 그저 이 세계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일까?

흡수한 정수에 따라, 주위의 환경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만나는 사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인간에게 애초에 고정된 나라는 것은 없는 것인가?

‘그만!’

타르칸이 거세게 고개를 흔들며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 키에에에엑.

“마침 잘 됐다.”

콰드드득.

타르칸의 주위에 랜스형태로 강화된 검은 가시가 소환되었다.

“스트레스 좀 풀자.”

***

“소리는 다 질렀나?”

몰려든 셀로브들을 모두 처리하고 돌아오니 하동연이 잠잠하다.

“나 참. 민폐 좀 끼치지 말라고.”

“…그래. 미안하다.”

하동연이 고분고분 대답했다.

엉망이 된 몸이지만 눈동자만은 복수심으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슐트 역시 마찬가지.

“그럼 이제 지상으로 돌아가는 건가?”

“아니요.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시연씨를 해한 개자식들. 내 손으로 모두 죽여 버리겠어.”

“하….”

내심 짐작했던 일에 타르칸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제이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슐트는 좀 의외인데?’

그들은 슐트가 몸 담고 있던 속칭 ‘기관’이라는 곳에 동료의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아마 하동연의 복수의 대상에는 삼합회 역시 포함되어 있겠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세상이 극변할 것을 생각한다면 더욱 더.

하지만 타르칸에게는 그들의 선택에 대해 말할 의무도 자격도 없다.

“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슐트가 그에게 한 발자국 다가왔다.

“부탁, 아니. 제안드릴 것이 있습니다.”

“제안이요?”

“미군과 삼합회가 가지고 있는 검은 모래.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타르칸씨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요?”

“힘을 빌려주십시오.”

“제안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받을 수 있는 것은 뭐죠?”

“너를 따르겠다.”

하동연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이글거리고 있다.

“너의 종이 되겠다. 복수를 끝내고 나면 내 목숨을 너에게 주지.”

“종이라니… 너.”

터무니없는 말에 타르칸은 잠시 당황했다.

설마 하동연이 이런 제안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는… 솔직히 동연씨와 같은 약속은 못 드립니다. 하지만.”

슐트가 후마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타르칸씨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 목표가 무엇이든 저도 반드시 협력하겠습니다.”

“거 참….”

타르칸의 목표?

우선은 몸 성히 그랑대륙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랑대륙을 좀먹는 세력과 어머니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는 것도 목표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장기적인 목표라면… 그래. 이 세계와 그랑대륙간의 연결을 끊는 것. 서버라는 녀석을 막는 것이 되겠지.’

그 목표에 하동연과 슐트가 도움이 될까?

‘두 말하면 잔소리야. 이 녀석들은 나에게는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세혁의 기억에 따르면 서버라는 녀석의 본체는 그랑대륙이 아니라 이쪽 세계에 있어. 이쪽 세계의 인간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거지.’

고민에 빠진 타르칸에게 슐트가 쇄기를 박았다.

“그리고 미군과 삼합회는 이미 타르칸씨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계속 부딪치게 될 것 같은데요? 어찌보면 공공의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네이크도 있고 말이지. 뭐 그 자식은 내가 죽일 거지만.”

후마르가 낄데 안 낄데 구분을 못하고 불쑥 끼어들었다.

스네이크라는 말에 하동연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도전자여. 약자가 강자를 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너 혼자서는 진화하는 톱니바퀴에서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타르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후마르와 함께 던전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칭호 ’1인 레이드‘의 효과는 받을 수 없는 상황이야. 보스몬스터에게 추가 데미지를 주는 ’킹 슬레이어‘는 파티 상태여도 발동 할테고… 결론적으로 파티를 맺어 손해 볼 것은 없다.’

그는 그의 목걸이 살아 있는 뼈를 얻었던 던전인 ‘뼈의 요람’을 떠올렸다.

그곳의 보스였던 태아 모양의 스켈레톤은 지금이야 일초지적이겠지만 당시에는 목숨을 걸어야 했던 강적이었다.

던전은 위험한 곳이고, 만전을 기해 나쁠 것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그는 지금 그랑대륙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상태.

다시 이곳으로 올 수 있을 것인지 미지수인 상태에서 섣불리 약속을 하기는 곤란하다.

“후마르. 이것 하나만 물어보지.”

“5개의 질문 중 하나를 미리 사용하는 것인가?”

“쪼잔하기는. 쳇. 그래. 그런 걸로 하지.”

“좋다. 물어봐라. 그리고 이것을 끝으로 한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질문은 더 이상 받지 않겠다.”

“너도 내가 그랑대륙에서 넘어 왔다는 건 알고 있지?”

후마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 도착하는 즉시 이 기묘한 자에 대해 알파와 미르에게 보고할 생각이었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그런 것 같군.”

“그렇다면 그랑대륙에 원래의 육체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그랑대륙에서 다시 이곳으로 넘어 오는 것이 가능할까?”

“원래의 육체? 그렇군. 그게 목적이었나.”

“피델. 알지?”

후마르의 거대한 어깨가 움찔 거렸다.

시작의 섬에서 유저가 최초로 만나게 되는 NPC 피델은 이세혁의 기억 속에도 존재했다.

현실에서 만들어진 뒤 관리자를 견제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NPC를 관리하기 위해 각 시작의 섬으로 전송되는 기계장치.

그것이 이세혁이 알고 있는 피델이었다.

타르칸은 디멘션소프트를 뒤에서 움직이던 사도들은 피델과, 피델을 시작의 섬으로 전송시키는 방법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피델은 이쪽 세계에서 만들어진 뒤 시작의 섬으로 보내지지. 플레이어가 케릭터를 생성하는 과정과는 전혀 달라. 그렇지?”

“네, 네놈이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지?”

“그건 알거 없고. 만들어진 피델이 시작의 섬으로 가는 통로. 너희 사도들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때?

후마르는 넋이 나간 듯 했다.

그는 잠시 고개를 젓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역시 알 수 없는 녀석이야. 그래. 네 말이 맞다. 시작의 섬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있지. 물론 위치는 지금 알려줄 수 없다.”

“시작의 섬에서 그랑대륙으로 가는 것이야 당연히 되겠고… 그렇다면 그랑대륙에서 다시 이곳으로 오는 것은?”

“만약 성공한다면 너 또한 ‘두 세계의 육체에 연결점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니 아마 가능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아닌가 보네.

중얼거리는 타르칸을 향해 후마르가 말을 보태었다.

“하지만 시작의 섬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이용할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살아있는 자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도?”

후마르가 발끈 했다.

“당연히 이 몸에게는 그까짓 추위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지! 아둔한 전능자들이 사도들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을 뿐이다.”

‘추위라….’

타르칸이 후마르의 말을 곱씹으며 슐트와 하동연을 쳐다보았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아시겠죠? 저에겐 이 녀석을 한국으로 데려가는 것이 먼저입니다.”

“좋습니다. 지금 당장 어떻게 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상대니까요. 저희도 우선은 힘을 길러야 합니다.”

“어쩌면 다시 이 세계에 오지 못할 수도 있구요.”

“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저 또한 협력하겠습니다.”

하동연과 슐트가 잠시 서로를 부탁했다.

그리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숙였다.

“부탁한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타르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만은 약속해 주십시오.”

“뭔가요?”

타르칸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스네이크는 양보해 드리죠. 하지만 진린은 제가 죽입니다.”

***

그들은 곧바로 던전의 입구를 향해 갔다.

한국에 도착하는 목적을 빼놓더라도 던전에서 파밍과 레벨업을 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처음으로 가보는 던전이 현실 속에 있는 것이라니. 신기하네요.”

“처음이라구요?”

“네. 던전이 있다는 소문은 무성하지만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우니까요. 던전이 아직 구현되지 않은 컨텐츠라고 생각하는 플레이어들이 대부분입니다.”

서로 말을 편하게 하자는 제안에 슐트만은 끝끝내 존대를 고집했다.

한국어를 배울 때 반말은 학습하지 않아 어색하다나 뭐라나.

타르칸 역시 그런 그에게 맞추어 슐트에게는 존대를 하고 있었다.

슐트를 제외한 하동연과 타르칸 그리고 후마르는 서로 편하게 말하기로 했다.

“제이가. 넌 어때? 너도 던전을 가본 적이 없는 거야?”

“아니. 나는 길드의 의뢰로 몇 번 참여한 적이 있다.”

“길드에서 의뢰를?”

“하동연씨는 명실상부한 랭킹 1위였으니까요. 던전공략 뿐만 아니라 많은 고난이도 퀘스트를 해결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거예요.”

“그래. 그러고 보니 쏜의 의뢰로 아메루시카와도 두 번 정도 함께 던전 공략을 한 적이 있었지.”

분위기를 전환했나 싶었더니 쏜의 이름이 거론되자 슐트와 하동연의 분위기가 다시 침울해졌다.

“쯥.”

우울한 감정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타르칸은 두 사람이 마음껏 우울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후마르. 셀로브의 알들은 던전 입구 주변에 있겠지?”

“그래. 알을 놓은 장소의 마력이 강할수록 성장하는 속도가 빠르니까.”

“그럼 들어가기 전에 정리한번 하고 가야겠네.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입구에 셀로브가 있으면 번거로울 테니.”

타르칸은 뼈의 요람 때의 경험을 떠올렸다.

던전을 탐험하고 최종적으로 클리어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던전의 입구를 수십 번도 넘게 통과했었다.

“이 던전은 여러모로 특수한 던전이라 그럴 필요는 없을 텐데… 뭐 좋을 데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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