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116화 (116/215)

Monster Gate Tracking System

“정말 그 사람이 도와줄까요?”

“글쎄요. 하지만 절대 이런 일로 장난칠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좋겠지만….”

시연은 반신반의한 모양이다.

하동연은 시연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 삼합회의 추적자가 나타날지 모르는 나날.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잠도 충분히 잘 수 없었다.

삼합회와 전투라도 벌어지는 날에는 어김없이 반 강제적으로 살인을 저질러야만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그들을 바닥에서부터 조금씩 좀먹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그들을 쳐다보는 모든 사람들이 혹시 삼합회의 끄나풀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생겨버렸다.

“혹시나 그 사람도 삼합회와….”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어요.”

하동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혹여나 그 역시 삼합회의 일원이라면….”

어려울 것 없다.

만약 그렇다면 또 다른 하나의 살인을 할 뿐이다.

피이이익-

그때 하늘에서 칼둘기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동연은 눈을 감고 칼둘기의 시야를 공유 받았다.

“누군가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은신 능력자네요.”

눈을 뜬 하동연이 시연을 쳐다보았다.

형편없이 더러워진 상태에서도 그녀는 연꽃처럼 아름다웠다.

“다녀올게요.”

하동연이 칼둘기를 불러 침입자가 나타난 곳을 향해 날아갔다.

숲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아 하늘로 떠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숲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적막한 숲.

하동연이 다시 칼둘기와 시야를 공유했다.

그러자 거대한 고목 아래, 아무것도 없던 그곳에 반투명한 인간의 형태가 나타났다.

보통은 공중에서부터 침입자를 기습해 단칼에 죽여 버리지만 지금은 그렇게 해서는 곤란하다.

그는 공중에서 칼둘기를 소환 해제하는 동시에 리빙아머 유갑이를 소환해 탑승했다.

쿵.

그의 착지로 땅이 거세게 울린다.

육중한 갑옷을 입은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기사.

갑옷 이음새에서는 녹색의 불길과 같은 기운이 스믈스믈 피어오르고 있다.

평범한 리빙아머였던 유갑이가 하동연의 능력에 의해 강화된 모습이다.

하동연은 거대한 양손검을 들어올렸다.

양손검이 멈춘 곳은 정확히 은신한 침입자의 목 바로 앞이었다.

“역시 대단하시군요. 제이가.”

은신한 침입자의 입에서 꽤나 유창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침입자가 은신을 해제했다.

침입자는 푸른 후드티를 눌러 쓴, 상당히 잘생긴 청년이었다.

“제 이름은 슐트입니다. 쏜이 보내서 왔습니다.”

슐트가 슬쩍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그의 턱 바로 밑에 푸른 귀화를 피어내는 거대한 검이 살벌하게 번들거리고 있다.

“이것 좀 치워주시죠?”

하동연이 유갑이에게서 내려왔다.

하지만 바로 등 뒤에 소환을 유지시켜 언제든 다시 탑승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둔 상태다.

“…죄송합니다. 제가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이해는 합니다만. 그렇게 대놓고 경계 하실 거면 저는 그냥 가겠습니다. 저는 위협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와주기 위해 온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는 이미 주사위를 던진 상태다.

이제 와서 무얼 더 망설이겠는가.

하동연이 유갑이의 소환을 완전히 해제하자 슐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저희의 비밀거점으로 안내해 드리죠.”

슐트는 꽤나 준비성이 철저한 남자로 보였다.

그는 이동에 사용할 차와 갈아입을 편안한 옷, 그리고 간단한 음식까지 준비해 두었다.

차는 인적이 없는 산악지대로 향했다.

그가 속한 기관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비밀거점 중 국장이 위치를 알지 못하는 몇 안 되는 거점 중 하나였다.

지하에 위치한 비밀시설은 겉으로 보기에는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였다.

그곳에는 이미 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쏜을 그저 거대 길드의 길드장으로만 알고 있었던 하동연은 얼떨떨한 기분이다.

“제이가. 아니 미스터 하.”

“쏜…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별 말씀을요.”

하동연은 쏜을 보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영어가 짧은 하동연과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쏜이었기에 둘의 대화는 중간에서 슐트가 통역해 주었다.

“저분이 메일로 말씀하신?”

“네. 시연씨입니다.”

시연이 쏜에게 꾸벅 인사했다.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 특유의 미모는 여전했다.

“저런… 슐트에게 대략적으로 전해 듣긴 했습니다만. 어쩌다 삼합회에게 쫓기게 되신 건지?”

“후우우.”

하동연이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가 치솟는 감정을 추스르며 쏜의 질문에 대답하려는 찰나 뒤에 서 있던 시연이 한 발 앞으로 나왔다.

“그건 제가 말씀 드릴게요.”

“시연씨?”

시연은 하동연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의 매력적인 눈동자는 쏜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시연이 그녀의 붉은 입술을 열었다.

“사실 제가 과거에 삼합회 출신이었어요. 지금은 나왔지만요….”

“그래서 삼합회가 추적한다?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서?”

“네. 그래요.”

하동연에게 했던 변명 그대로다.

하지만 쏜은 하동연처럼 순순히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흐음… 고작 이탈자 한명을 잡기 위해 그 많은 인원이 동원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쏜이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통역을 해주는 슐트를 쳐다보았다.

슐트는 어깨를 으쓱하며 알아서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지금은 철저히 통역 일에만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이것 참.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상식적이지 않군요. 제가 입수한 정보와도 다르구요.”

쏜이 뭔가를 알고 있는 걸까?

시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녀는 그제야 반사적으로 하동연의 모습을 살폈다.

못들은 것인지 못들은 척 하는 것인지 하동연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쏜이 분위기를 환기 시켰다.

“오! 이런 많이 지치셨을 텐데 제가 눈치가 너무 없었군요.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쪽으로.”

쏜이 지하시설을 통과하여 그들을 방으로 안내했다.

그는 얼굴이 파리하게 질린 시연을 외면하며 하동연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의 메일을 받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신의 도우심입니다.”

“아. 네….”

“자. 이 곳입니다.”

지하시설은 거대한 암반을 깎아서 만든 것으로 보였다.

쏜이 안내해준 방 역시 벽이 자연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작지만 아늑하고 견고해 보인다.

이런 곳이라면 삼합회의 추적도 능히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쉬십시오.”

“저 쏜.”

“네.”

“혹시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지금 말씀해 주십시오.”

하동연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쏜은 슐트를 요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애초에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일리 만무하다.

심지어 이 비밀 시설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다니.

지금 쏜이 그를 돕는 것은 단순한 호의의 수준을 벗어나 있다.

“오 이런… 미스터 하. 현실에서도 상당히 직설적인 성격이시군요.”

쏜이 다시 한 번 신사적으로 웃으며 순순히 사실을 인정했다.

“네. 맞습니다. 저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떤 일을 하면 되나요?”

그는 이미 사람도 죽인 판이다.

거칠 것이 없다.

쏜이 하동연의 어깨 너머로 슬쩍 시연을 쳐다보았다.

“잠깐 단 둘이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단 둘이라고는 해도 통역을 위해 슐트는 따라 올 것이다.

결국 시연이 듣지 않는 곳에서 이야기 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네. 물론이죠.”

그들은 지하시설에 존재하는 작은 방으로 향했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쏜이었다.

“미스터 하의 상황이 힘든 것은 알지만….”

“아니요 괜찮습니다.”

하동연은 일방적으로 신세를 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쏜이 그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 더 마음이 편했다.

하동연은 지금 그의 상황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스네이크가 그에게 협력을 구하던 그때,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쏜이 고개를 끄덕이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최근 각성자에 대한 소식은 알고 계신가요?”

“조금은요.”

쏜은 그에게 현재 각국의 정부들이 발표한 각성자에 대한 법률을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하동연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커졌다.

“각성자 등록법은 예상 했었던 일이지만… 디멘션온라인이 불법이 되었다구요? 디멘션소프트는 아무 말도 없습니까?”

“디멘션소프트는 사실상 증발상태입니다. 기존에 저희가 알고 있던 디멘션소프트는 허상에 불과했죠. 그 진정한 정체를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하동연의 머릿속에 스치는 단어가 있다.

스네이크가 말했던 ‘윗분들’

아마도 그들이 디멘션소프트의 진정한 실체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쏜이 말을 이었다.

“하동연씨도 느끼겠지만 지금 정부의 행보는 전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각성자를 철저히 배제하려 하고 있으니까요.”

슐트가 책상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몇 장의 사진이었다.

“제가 속한 기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인공위성을 활용하여 몬스터게이트의 위치를 파악하려는 것이죠. 몬스터게이트 추적 시스템. MGTS입니다.”

쏜이 복잡한 형상의 기계장치와 위성사진 몇 개를 하동연 앞으로 내밀었다.

“결과적으로 MGTS 프로젝트는 성공했습니다. 기관은 몬스터게이트에서 발생하는 특정한 파동을 패턴화 하는데 성공했고, 매우 높은 정확도로 몬스터게이트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몬스터게이트 위치 파악 시스템은 오차율이 고작 100m 이내의 높은 정확도를 자랑했다.

“미국은 이 시스템을 다른 나라에게도 공개했습니다. 모든 국가들이 동시에 각성자 관리법을 시행하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죠.”

쏜이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사실 진행사항이 지지부진하던 프로젝트가 어찌된 일이지 갑자기 완성되어버린 것이 이상하긴 합니다만….”

하동연은 그런 쏜의 무거운 반응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몬스터 게이트의 위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요? 세상이 더 안전해지는 거잖아요.”

몬스터게이트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몬스터게이트가 진화하기 전에 손쉽게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몬스터로 인한 위험이 크게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하동연은 쏜이 그에게 맡기려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대체 어째서 쏜이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알려주는 것일까?

쏜이 그저 미국의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 그를 이 자리까지 부른 것은 아닐 것이다.

“위성에서 파악한 몬스터게이트의 파장을 분석하는 기기입니다. MGTS의 핵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당신이 이것을 파괴해 주기를 원합니다.”

하동연은 잠시 쏜이 지금 제정신인가 싶어 쳐다보았다.

“이유가 뭐죠?”

“국장을 비롯한 정부의 고위직들은 몬스터와 몬스터게이트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크게 오해하고 있죠. 지금처럼 MGTS만을 의지하고 각성자를 약화시키는 정책은 큰 문제가 있습니다. 작은 실수 하나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쏜이 마치 준비라도 한 것처럼 유창하게 말했다.

잠시 침묵한 뒤 하동연이 입을 열었다.

“그냥 각성자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니구요?”

쏜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동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 쏜이 말한 것이 이유의 전부라면 MGTS를 파괴하는 것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일 아침 날이 밝는 대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하나.”

쏜이 말을 이었다.

하동연은 제자리에 선 채 그런 쏜을 내려다보았다.

“또 하나 기관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있었죠. 각성자로 이루어진 부대. 이 프로젝트 역시 완성단계에 있습니다.”

“네. 축하드립니다.”

역시. 쏜이 말한 이유는 구실에 불과했다.

MGTS를 운영하는 동시에 각성자 부대를 준비하고 있다면 문제없는 것 아닌가.

짧게 대답하고 돌아서는 하동연을 쏜이 불러 세웠다.

“하하하. 역시 성격이 급하시군요. 조금만 더 이야기를 들어 보시죠.”

“죄송하지만 저는 그 시설을 파괴할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국장이라는 사람은….”

쏜이 하동연의 말을 끊었다.

“그 사람은 절대 재갈을 물리지 않은 개를 키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 각성자로 이루어진 부대가 창설되었다는 것은 그 각성자를 컨트롤하는 방법 역시 준비되었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후우….”

쏜이 또 다른 사진 하나를 꺼내었다.

거대한 수조에 쌓여있는 검은 물질들.

“이것 역시 위성시스템을 개발한 곳과 같은 시설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당신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지만, 이것이 있는 이상 당신과 그리고 당신의 연인을 언제까지 보호할 수 있을까요?”

하동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째서 이게 여기에….”

“물론 직접 확인해 보아야겠지만 제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지금 미스터 하가 생각하는 그 물질이 맞습니다.”

분명히 그는 수조안에 쌓인 검은 물질의 정체를 알고 있다.

하동연이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나브가 사막의… 검은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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