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113화 (113/215)

불쾌한 추억

차를 이용하여 피 봉지를 설치한 곳의 반대편에 도착한 피테가 손목시계를 슬쩍 쳐다보았다.

- 지금쯤 피 봉투가 터져서 공기 중으로 닭 피 냄새가 퍼지고 있을 겁니다. 곧 슬슬 반응이 나타날 거예요.

동시에 영상 자막에 ‘고음 주의’라는 붉은색 자막이 크게 나타났다.

아니나 다를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코카투스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순간 온 사막이 괴조의 비명으로 가득 차버린 것만 같았다.

- 자. 시간이 되었네요. 빈 집 털러 갑시다.

피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침착하고 은밀하게.

하지만 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이 따라가기 벅찰 정도의 빠른 속도였다.

- 자. 몇 마리 안 남았죠? 대부분의 코카투스들은 지금 제가 설치한 미끼 근처를 서성이고 있을 겁니다. 저는 몬스터게이트만 빠르게 닫고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나레이션으로 피테는 몬스터게이트가 무엇인지 그리고 몬스터게이트를 닫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그동안 영상이 보랏빛을 흘리고 있는 몬스터게이트를 비추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영롱하면서도 음침한 빛.

피테는 품에서 권총을 꺼내 몬스터게이트를 겨누었다.

“엥 총?”

탕탕탕.

단 세발.

12.7mm 구경의 권총에서 발사된 세발의 총알에 의해 몬스터 게이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 이렇게 좋은 도구가 있는데 안 쓸 이유가 없겠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허무한데?”

그 순간, 영상 속에서 피테가 다급하게 외쳤다.

- 큰일 났습니다. 방금 몬스터게이트가 닫히는 것을 코카투스들이 눈치 챈 모양입니다.

피테의 말처럼 분노한 코카투스 무리가 사나운 기세로 그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영상이 일정하게 덜덜 떨리는 것이 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이 떨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긴장감을 더했다.

- 후… 오늘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그 말만을 남기고 피테가 코카투스 무리를 마주보며 달려갔다.

영상에 비치는 그의 뒷모습.

짧은 검을 크게 휘두르자 선두에 섰던 몇 마리의 코카투스가 맥없이 주저앉았다.

하지만 금방 그 자리를 매우는 더 많은 숫자의 코카투스들.

끝이 보이지 않는 흉폭한 몬스터의 물결 앞에 피테의 등은 너무나 작아 보였다.

솟구치는 피와 흥분한 몬스터들의 핏발 선 눈동자.

그것이 영상의 마지막이었다.

구독과 좋아요를 부탁한다는 마무리 영상을 보며 그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아… 여기서 끊으면 뭐 어쩌자는 거야!!”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죽은 거야 뭐야?”

“그거야 나도 모르지… 코카투스 숫자가 만만치 않았는데….”

“아씨… 궁금하게 만드네….”

30분이 넘는 영상이 순식간에 끝이 났다.

그들은 투덜대면서도 서둘러 구독버튼을 눌렀다.

“다음 영상 언제 나오려나….”

“조작은 아닌 거 같지?”

“퀄리티가 조작은 아닌 거 같아. 차라리 신작영화 예고편이라면 믿겠다.”

“와… 대박 채널 하나 찾았다.”

그들은 서둘러 그들이 찾은 영상을 친구들에게 공유하기 시작했다.

***

예상대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니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반응이다.

우튜부의 추천 영상에 올라가는가 하면 일일이 답장을 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댓글들이 실시간으로 달리고 있다.

타르칸은 방에 누워 영상에 달리는 반응들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사도 놈들 귀에도 들어 갔으려나?”

이대로라면 영상 몇 개만 더 올리면 수익전환은 물론, 은버튼을 건너뛰고 바로 금버튼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굳이 영상 수익전환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어차피 돈이야 진린에게서 타 쓰면 그만이니까.

띠링.

메신저의 알림이 울렸다.

샤오린이 보낸 메시지다.

- TK. 언제 돌아와?

- 아마 곧 갈 것 같아요.

타르칸은 일부러 차갑게 답장을 보내고는 다시 영상의 댓글들을 살펴봤다.

샤오린을 방으로 돌려보낸 그날 이후로 샤오린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타르칸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오고 있었다.

그를 향한 샤오린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샤오린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 스스로가 놀라울 정도다.

샤오린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자신은 언젠가 그랑대륙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설프게 마음을 받아주는 것은 오히려 잔인한 일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계의 인간들이 현자 타임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아니 그것과는 다른가?’

애초에 샤오린이 잘 알지도 못하는 자신을 왜 좋아하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도 지금 육체의 뛰어난 외모와 어느 날 갑자기 진린이라는 거물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어떤 환상을 심어준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이건 내가 아니라고.’

진짜 자신은 여기가 아니라 그랑대륙에 있다.

한참을 봐도 그가 찾는 댓글이 보이지 않자 타르칸은 휴대폰을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혹시나 사도가 댓글이나 달아 놓았을까 싶었더니.’

휴대폰을 가지고 우튜브를 시청하는 사도라…

안 어울리긴 하지만 이세혁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설사 우튜브를 보지 않더라도 이대로 계속 유명해 진다면 사도와 연관된 누군가가 접촉해 올 가능성이 높다.

‘나중에는 이름만 피테쿠스로 하는 게 아니라 사도 이야기도 조금씩 하면서 어그로를 끌어봐야겠어.’

썰을 푸는 식으로 사도들의 비밀을 폭로하다면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후우 뭐 좀 먹을까?”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는 몸이지만 이계의 음식은 매우 맛있다.

타르칸은 호텔 방에 비치된 메뉴판을 뒤적거렸다.

그는 이계의 음식중에서도 유독 단음식을 선호하는 그였다.

메뉴판의 다른 음식들은 건너뛰고 바로 디저트 쪽으로 넘어갔다.

“오늘은~ 뭘 먹어 볼까나~.”

***

타르칸과 피테가 묵고 있는 호텔은 비싼 값을 했다.

무엇보다 음식이 매우 훌륭했다.

타르칸은 식사를 마친 뒤 호텔라운지에서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수에 찬 눈동자는 사람 같지 않은 외모와 더해져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흡사 고독한 도시 남자의 포스를 풍기고 있는 그를 지나가는 호텔 여직원들과 호텔에서 묵고 있는 여자 손님들이 힐끗힐끗 훔쳐보고 있다.

벤쳐기업의 CEO? 유명한 예술가? 가문의 비밀을 알게 된 비운의 상속자?

저 남자, 대체 무엇을 고뇌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먹어도 배가 안 부르네. 한 그릇 더 먹을까? 그런데 내가 먹는 음식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는 거지? 남들처럼 대변 소변을 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타르칸은 그를 동경의 눈동자로 훔쳐보고 있는 여인들이 알게 된다면 환상이 와장창 깨질 생각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 중이었다.

“다음 촬영은 언제인가요? TK.”

“피테씨.”

피테는 꽤나 붙임성이 좋은 남자였다.

타르칸이 멋대로 붙이 피테라는 이름에도 어느새 익숙해진 모양이다.

“일단 이번 주 중으로 코카투스 사냥 후반부 영상을 올리도록 하죠. 다음 영상은 제가 위치를 좀 물색해 봐야겠습니다.”

“네! 헤헤.”

피테가 실없이 웃는다.

웃는 모습만 본다면 도저히 삼합회 같은 범죄조직에 몸담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피테씨.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죠?”

피테는 타르칸의 질문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잠시 주저하다 다시 질문했다.

“그건 제가 미국에 오기 전에 중국에서 활동할 때 말씀이신가요? 아니면 회에 몸담기 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뭐… 둘 다요.”

“음….”

피테가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리 대단할 건 없습니다.”

“사실 모두가 다 그렇죠.”

아니 당신은 좀 대단했을 것 같은데…

피테가 중얼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음… 제가 삼합회를 들기 전에는….”

피테가 과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사실 피테의 영어실력과 영상장비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으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저는 당시 유학중이어서 전후 사정을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듣기로는 아버지와 줄이 닿아 있던 공산당 간부가 어느 날 좌천을 당한 모양이었습니다. 어느 날 처음 보는 남자들이 집으로 쳐들어왔고, 모든 것을 가져가 버렸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요. 아버지가 평생을 걸려 모은 재산을 잃기 까지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피테가 담담히 웃었다.

“흔해빠진 이야기죠?”

타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불행에 공감하기에는 그는 너무 척박한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왔다.

‘결국 죽은 사람도 다친 사람도 없이 지금까지 잘 살아 있다는 거잖아.’

또한 그의 앞에 앉아있는 피테라는 남자는 자신의 불행을 핑계 삼아 타인의 피를 흘리는 선택을 했다.

조금의 동정심도 일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은 이상 어설프게 정의의 심판관 흉내를 낼 생각은 없다. 그럴 자격도 없었고.

샤오린이 말했듯, 저마다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니까.

“그런 그 뒤에 바로 삼합회에 들어온 겁니까?”

“바로는 아니지만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 있더군요.”

“어쩌다 보니… 그렇군요.”

“제가 여기로 파견되기 전까지는… 말 그대로 시키는 일은 뭐든지 했었습니다.”

“지금은 아닌가요?”

“하하 뭐 지금도 같은 신세이긴 하지만… 본국을 벗어난 뒤로는 그렇게 험악한 일은 떨어지지 않고 있네요.”

피테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표정에서 타르칸은 피테가 뭐든지 했었다는 일의 종류가 대강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정 궁금하시다면 비밀일 건 없습니다만… 그리 유쾌한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네. 이해합니다.”

잠시 시간의 여유가 있었을 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피테의 과거를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굳이 하기 싫어하는 이야기까지 들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느새 옛 기억에 잠긴 피테는 회상을 멈추지 않았다.

과장과 허세가 섞인 옛날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다른 조직과 싸운 이야기, 그러다 자신이 몇 명을 병원으로 보냈다는 허세. 수금을 하러 갔다가 돈이 아니라 몸으로 이자를 받아낸 이야기, 의뢰를 받아 사람을 뒤에서 손봐준 이야기 등.

타르칸에게는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피테의 말들이 결국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들렸다.

‘결국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착취하며 살아왔다는 거군.’

그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하고 싶지도 않은 징그러운 일이다.

타르칸은 피테에게 과거를 물어본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며 자리를 파하고자 했다.

그때 피테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한 여자가 생각나는군요. 본국에서의 마지막 임무였죠. 여러모로 이전과는 다른 임무였습니다.”

타르칸은 혹시나 싶어 물어보았다.

“…어떤 임무였나요?”

“높으신 분의 눈 밖에 난 한 여자를 담드는 간단한 일이었습니다만 하하하하. 아 그 여자가 얼마나 무거웠던지. 몸에 굵은 쇠사슬까지 묶어 놓은 겁니다! 어휴… 바다에 던지고 나서는 완전히 탈진해 버렸지 뭡니까. 하하하하.”

결국 별 다를 것 없는 이야기.

타르칸이 감흥없는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피테가 당혹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저… 제가 무슨 실수라도?”

“아니요. 괜찮습니다. 피곤해서요. 저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타르칸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사실 피테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거나 하다못해 자리를 지키며 이야기를 들어 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타르칸은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띠링

휴대전화가 울린다.

힐끗 쳐다보니 아직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들이 쌓여있다.

타르칸은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고 휴대폰의 화면을 껐다.

사도들의 행방을 떠올리며 타르칸이 눈을 가라앉혔다.

“빨리 좀 나타나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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