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94화 (94/215)

고대의 무기

“뭐냐 이 덩어리는. ‘이게?’ 라는 건 나보고 하는 말이냐?”

“음….”

아멕스는 슬그머니 설계도를 뒤로 숨기며 쿤타를 쳐다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신관과는 좀 다르군.”

사실 좀이 아니라 많이 다를 것이다.

정말 트렌의 설계도가 고대의 유물에 관한 것이라면 쿤타에게 물어 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할 것이다.

쿤타는 저래 봬도 수십 년 동안 고대의 문화를 연구했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아멕스가 그걸 원치 않는다.

“아멕스. 당신 자유에요. 스스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타르칸으로서는 아멕스가 물건을 만들든 말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사실 별로 관심도 없다.

그에게 신경 써야할 다른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 내가 널 믿어도 되나?”

“그냥 믿지 마세요. 그건 비밀로 간직하시구요. 몇 번 만들어보고 연구하다보면 뭐 언제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귀찮음이 뚝뚝 묻어나는 타르칸의 말에 아멕스는 신뢰를 가질 수 있었던 모양이다.

아멕스가 눈을 질끈 감으며 그에게 설계도를 내밀었다.

“후… 좋아. 타르칸. 너에게 나의 운명을 맡겨 보겠다.”

‘아 그런 것 좀 맡기지 말라고…’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해놓은 말이 있으니 이제 와서 모른 척 할 수도 없다.

“물어는 보겠습니다. 혹시 모를 수도 있으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그래. 알겠다.”

“그럼 내일 정오에 대장간으로 찾아가겠습니다.”

***

아멕스가 돌아가고 난 뒤, 타르칸은 쿤타에게 트렌의 설계도를 보여주었다.

흥분하며 설계도를 파고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쿤타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아니 모르겠는데?”

“고대의 유적에서 발견한 것이라고 하던데요?”

“야. 나라고 고대의 문명에 대해 전부 알겠냐? 나중에 슐트가 오면 물어봐.”

“슐트에게요?”

“그래. 그 녀석 시대 물건이니 알고 있겠지. 그 여자보다는 슐트쪽이 머리가 좀 돌아가더군.”

그렇게 다음날 아침이 되자 슐트와 타레사가 로그인했다.

둘 모두 표정이 어둡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두 이계의 인간은 설계도의 정체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슐트 뿐만 아니라 타레사까지도.

“이건 총이잖아.”

“총? 용도가 뭐죠?”

“무기야. 상당히 강한.”

“이걸 대체 어디서 얻은 거지?”

“고대의 유적에서 발견한 것이라고 했어요.”

고대의 유적에서 발견된 설계도를 이계의 인간이 자신의 시대 무기라고 한다.

툭.

쿤타가 타르칸의 어깨를 쳤다.

돌아보니 눈썹을 들썩이며 음흉하게 웃는 쿤타가 보인다.

마치 ‘내말이 맞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타르칸은 그런 쿤타를 외면하며 슐트에게 질문했다.

“만들 수 있나요?”

“재료만 있다면 가능하지. 하지만….”

총의 설계도를 보며 슐트는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다.

타레사가 말을 이었다.

“플레이어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NPC가 만드는 것은 가능은 할 거야. 디멘션 온라인의 NPC들은 현실 같은 자유도를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타르칸. 이건 정말로 위험한 무기야.”

“몬스터에게도 통할까요?”

“어느 정도까지는… 하지만 한계가 있겠지. 애초에 이건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니까.”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타르칸은 타레사의 불길한 말을 속으로 읊조렸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존재의 목적인 것.

그건 곧 몬스터가 아닌가.

살인을 상상조차 하기 힘들어하는 사회에서 살아온 타르칸에게 총이란 물건은 괴물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모르겠다고 대답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아니! 잠깐 기다려라.”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슐트가 불쑥 말했다.

“내가 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무슨?”

슐트가 타르칸에게 설계도를 건네주었다.

“그 NPC를 만나게 해줘. 우선 쏜에게 보고한 뒤 필요한 모든 정보를 주도록 하지. 물론 이것보다 발전된 모델의 총으로 말이야.”

“총이란 것이 종류가 많나보죠?”

“그렇지. 양산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럼 이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는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할지도… 물론 우리 기관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슐트는 잠시 로그아웃하더니 타르칸에게 아멕스를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다.

타르칸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수도의 길거리를 걸으며 타르칸이 중얼거렸다.

아멕스에게 슐트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생각보다 판이 커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뭐 내 손을 떠난 문제이지만.’

슐트의 설명대로라면 총이라는 물건은 인적이 드문 외지의 게이트 관리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살인용으로 사용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살인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그랑대륙 주민들이 서로를 죽인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플레이어의 평균적인 전투력은 이미 일반 시민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주민을 죽이고자 한다면 총이 없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총이란 물건이 고대신보다도 더 구미를 당긴다 이거지?”

타르칸이 바지로 가려놓은 발목에 찬 위치추적기를 의식하며 중얼거렸다.

애초에 이까짓 물건쯤이야 끊어 버리고 잠적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그가 지금까지 플레이어에게 협력해온 것은 단지 협력을 빌미로 플레이어들을 이용해 먹기 위해서다.

플레이어가 도움이 되지 않고 그저 타르칸이 정보만을 제공해야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는 가차 없이 플레이어들을 버리고 혼자서 움직일 것이다.

‘그나저나 신전이라.’

타르칸은 며칠 전 여관에서 느꼈던 강한 마나의 파동을 떠올렸다.

수많은 사체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듯한, 신전이라기보다는 공동묘지를 연상시키는 불길한 기운.

타르칸은 교단의 본부가 있는 하늘나루로 가기 전, 우선 수도에 있는 신전을 확인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타르칸이 북적이는 인도를 지나간다.

평범한 복장에 평범한 인상.

아무도 그를 주목하는 이가 없다.

‘잠행.’

그가 좁은 골목안으로 살짝 들어갔다 다시 빠져 나왔을 때, 그는 문자 그대로 완전히 모습이 사라졌다.

***

“중국이요?”

시연이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대답하는 동연 역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네. 한국은 너무 위험하다고 공장이 있는 중국 천진으로 거처를 옮겨야 한다고 하네요.”

며칠 전, 중국에 있는 스네이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제 디멘션소프트 본사가 있는 한국은 너무 위험하니 늦기 전에 중국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천진(天津)…. 하늘의 나루라….”

“본래는 천자의 나루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긴 하지만요.”

대답하는 시연의 표정이 어둡다.

누구보다 중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녀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그 어느 곳보다 무서운 장소다.

공장이 있는 천지이라면 현재 삼합회의 가장 많은 인원이 투입되어 있는 곳이 아닌가.

지금 그녀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자들의 아가리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시연씨.”

이미 세상은 변했다.

이제 각성자의 존재를 모르는 이는 세상에 없다.

새롭게 디멘션 온라인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디멘션 온라인에는 초심자, 뉴비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디멘션 온라인 안의 그 초심자들이 그랑대륙과 현실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몬스터 게이트와 몬스터들도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스네이크가 말이 모두 맞아 들어가고 있어요.”

반신반의했던 황당한 이야기들이 모두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러한 이유다.

불합리하고 자신들의 의사와는 반하는 스네이크의 명령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의 말대로라면 곧 디멘션소프트의 ‘윗분’들이 움직이기 시작할거에요. 스네이크의 말에 의하면 그자들이야 말로 모든 일의 원흉. 그리고 지금의 우리들은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강적이에요.”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시연씨. 이미 세상은 변했어요. 저도 삼합회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런 단체의 보호를 받으면 더 안전할 거예요… 시연씨는 아직 각성도 못한 상태잖아요. 이대로는 너무 위험해요.”

시연이 아무리 ‘크레이지 몽키’를 마셔도 힐러 캐릭터인 ‘시엘라’의 능력은 각성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그녀는 이미 야만전사 캐릭터인 황금 멧돼지의 능력을 각성한 상태다.

이전 캐릭터의 외모와 능력의 절반 정도를 얻었기 때문에 그녀가 다시 재각성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설명할 수 없었던 그녀는 하동연에게 그녀의 능력을 숨겼고 하동연은 그저 그녀가 아직 각성을 하지 못했다고만 믿고 있는 상황이다.

“시연씨. ‘윗분’이라는 놈들이 있는 디멘션소프트 본사가 바로 이곳 한국에 있어요. 스네이크가 먼저 말하지 않았어도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하지만 꼭 중국이 아니어도….”

하동연의 얼굴에 의아함의 맴돈다.

그는 시연이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이렇게까지 강하게 반대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항상 사소한 것들도 모두 그에게 맞춰주던 시연이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시연씨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거예요?”

시연이 조개처럼 입을 앙 다물었다.

그녀의 과거 모습은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된다.

‘혹여나 동연씨가 나의 과거를 알면 나를 버리고 떠날 거야….’

시연이 손을 꼭 쥐었다.

‘하지만. 하지만…’

시연의 머릿속으로 잊을 수 없는 그날 밤이 떠오른다.

쇠사슬에 돼지처럼 묶인 자신을 내려다보며 낄낄 거리던 남자들.

녹슬고 냄새 나던 배.

그리고 지옥처럼 검고 차갑던 그 바다.

두려움으로 팔이 덜덜 떨린다.

“시연씨….”

하동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쥐었다.

놀란 그의 눈동자가 보인다.

어깨를 감싼 커다란 손이 따듯하다.

놀랍게도 떨림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시연은 조금의 용기를 가져보기로 했다.

“동연씨. 할 말이 있어요.”

‘내가 쉬엔이었다는 것만 말하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 그리고 한국도 중국도 아닌 곳으로 가서 숨는 거야. 동연씨와 함께!.’

***

‘참 뻔한 여자라니깐.’

스네이크가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갑자기 하동연과 시연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가 예상하던 것 그대로다.

‘이렇게 생각한 그대로만 움직여 주면 재미가 없는데 말이야… 뭐 편하긴 하지만.’

스네이크가 고개를 들어 차를 마시고 있는 진린이 보았다.

삼합회의 회장이자, 국가를 제외한다면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집단의 수장.

얼마 전 전 세계 블랙마켓을 모두 손아귀에 넣은 남자.

바로 그다.

흉악한 소문과는 다르게 너무나 평범한 노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스네이크는 저 여유로워 보이는 노인의 속이 썩어 들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아마 몇 달 안 남았겠지. 길어봐야 일 년.’

비유가 아니다.

신체적인 면과 심리적인 면, 두 가지 측면에서 진린의 속은 썩어가고 있다.

천하의 검은 시장을 모두 손아귀에 넣은 남자라 할지라도 나이가 들어 노화가 진행되는 것만은 막을 수가 없었다.

진린 역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느끼고 있다.

초조할 것이다.

‘그리고 그 초조함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테지.’

스네이크의 눈이 교활하게 빛났다.

그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진린이 고개를 든다.

스네이크가 재빨리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어떻게 되었죠? 스네이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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