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92화 (92/215)

주정뱅이 (1)

“이쪽이에요.”

소녀가 안내하는 곳은 이번에는 다행히(?)도 꽤난 먼 곳이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타르칸은 한참동안 소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여기라고?”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여기 맞으니까 빨리 돈 줘. 하얀 모루 대장간의 아멜리아라면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

소녀를 따라 도착한 곳은 한 선술집이었다.

허름하고 더러운 술집의 외관은 도저히 아기 엄마가 있을 곳으로 보이지 않았다.

“흠… 혹시 거짓말이면 알지?”

“걱정하지 마. 당신 같은 사람한테 거짓말 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으니까.”

“나 같은 사람?”

“아저씨. 기사잖아.”

타르칸은 기사도 아니고 아저씨라고 불릴 나이도 아니다.

오히려 소녀와 비슷한 나이대 일 것이다.

그는 굳이 그런 사실을 지적하지 않고 소녀에게 은화를 던졌다.

“그래. 고맙다. 오늘 너 수지맞았네.”

“헤헤 고마워.”

소녀가 헤실거린다.

은화의 힘이다.

“안 가?”

“볼일 보고와 아저씨. 여기 길이 복잡해서 나가는데 길 안내가 필요할거야.”

타르칸은 수도에 처음 와봤지만 이미 지나온 길을 잊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아주 돈 독이 올랐구만. 길 안내는 필요 없으니까 꺼져.”

생돈을 날린 타르칸이 조금은 짜증난 기분으로 선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쩌든 기름 냄새, 그리고 싸구려 술냄새가 뒤섞인 불쾌한 공기가 가득 차 있는 공간이었다.

아직 취하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술 취한 사내 몇 명이 그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 자신의 불운을 끝도 없이 중얼거리고 있는 그런 장소였다.

타르칸의 감상은 간결했다.

“끔찍한 곳이네.”

그는 근처에 있는 그나마 가장 정신이 멀쩡해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혹시 여기에 아멜리아씨 있나요?”

“엉?… 누구?”

“아멜리아요. 하얀 모루 대장간의.”

“… 하얀 모루 대장간. 아멜리아….”

느릿하게 고개를 휘청이던 남자가 별안간 미친 듯 폭소를 터트렸다.

“푸. 푸하하하핫 크하하하핫.”

‘미친놈이군.’

타르칸이 남자에게 등을 돌렸다.

하지만 남자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크하하하핫. 어이! 아멕스!! 아멕스!!! 일어나봐 크하하하. 아니 이 꼬마 녀석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 푸하하하핫”

남자의 호들갑스러운 말에 시체처럼 누워 있던 남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 꼬마가 글쎄 아멜리아를 찾아왔다는군. 좀 일어나 봐 아멕스!! 크하하하”

“끄응.”

주점의 한구석, 쓰레기 더미를 쌓아 놓은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다.

그것도 상당한 거구의.

“으어… 머리가 부서질 것 같아… 젠장. 어이 린든. 너 방금 뭐라고 지껄인 거냐? 죽고 싶어?”

“아 아멕스 왜 화를 내? 내가 찾는 게 아니잖아. 이 꼬마 녀석이 찾는다고. 아.멜.리.아.를 말이지. 캬하하하하.”

“푸하하하!”

아멕스라 불린 남자가 초점이 맞지 않는 흐리멍텅한 눈으로 폭소를 터트리는 취객들 사이에 뻘쭘하게 서 있는 타르칸을 쳐다보았다.

“뭐냐 저 촌뜨기는… 어이 꼬마. 꺼져라. 어디서 듣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날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뒤지고 싶어 안달난 사람들 밖에 없다.”

아멕스가 다시 쓰레기 더미에 머리를 처박았다.

“아니 저는 아멜리아씨를 찾고 있다니까요. 얼마 전에 아이를 출산한!”

“끄하하하하하핫. 아!이!를! 출산한!!! 크하하하하.”

“키키킥 미치겠네 올해 웃을 것을 오늘 다 웃는구만.”

“어이 아멕스. 언제 또 아이를 낳은 거야? 푸하핫. 애 아버지가 누구냐? 린든 너 아니냐?”

취객들의 추태에 타르칸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 아멜리아씨를 알고 계시다면 말 좀 전해줘요. 아멜리아의 아버지 트렌 아저씨가 부탁한 일이 있어서 그러니.”

그 순간.

주점을 떠들썩하게 채우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마법처럼 멎었다.

이전의 요란만큼이나 커다란 침묵이 순간 주점안을 가득 채웠다.

쓰레기 더미에 박혀 있던 거구의 사내가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뭐? 누가 보냈다고?”

“빈 모루 대장간의 트렌씨요.”

타르칸이 트렌에게서 받은 장인의 증표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증표를 본 아멕스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맞구만. 빈 모루 대장간은 또 뭐야. 미친 영감탱이.”

아멕스가 중얼거렸다.

“나다.”

“네?”

“내가 아멜리아다.”

***

“으… 죽겠구만. 술을 끊던가 해야지 원.”

아멕스가 냉수를 들이키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당신이 아멜리아라구요? 하지만 트렌씨는 딸이라고 했는데요? 당신은 어떻게 봐도….”

“당연히 남자다. 이상한 눈으로 내 몸을 훑지 마라. 기분 더러우니까.”

아멕스가 다시 물을 들이키며 말했다.

“나를 낳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딸을 원했다고 하더군. 미리 이름까지 지어둘 정도로 말이야. 문제는 나는 남자였다는 거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버지라는 인간이 딸을 위해 지어둔 이름을 아들에게 붙여버릴 정도로 미친놈이었다는 거고.”

“그럼 아멕스는?”

“내가 만든 이름이다. 아버지는 내가 이름을 바꾼 이후로는 아애 나를 딸이라고 말하고 다녔었지. 미친 영감탱이.”

아멕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거칠게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분노의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보기와는 다르게 꽤나 어른스러운 면이 있는 모양이다.

매일 술에 빠져 살아가는 한심한 어른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 영감은 잘 살고 있는 건가?”

아멕스의 질문에 타르칸은 잠시 고민했다.

시작의 섬에서 이계의 인간의, 시스템의 노예로 살고 있던 트렌은 어떻게 보아도 잘 살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든 상태다.

그가 피델을 부순 이후 섬이 어떻게 변화 했을지도 알지 못한다.

시작의 섬에 대해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까.

“말씀드리죠.”

하지만 이건 그가 고민하고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그는 트렌의 부탁을 받았고, 최대한 성실히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다.

타르칸은 천천히 하지만 섬세하게 시작의 섬과 시작의 마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계의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섬과 그 곳에 NPC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트렌.

굳이 아멕스에게 할 필요가 없는 자신의 이야기는 배제했지만, 트렌과 관련된 것들은 전혀 사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지 않았다.

“…그렇게 트렌 아저씨가 이 장인의 증표를 저에게 맡긴 겁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타르칸의 이야기를 듣던 아멕스가 거대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그리곤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너 혹시 마약하냐?”

“….”

“아. 아니라면 미안하다. 하지만 솔직히 너무 황당한 이야기군.”

“이해합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럼 트렌 아저씨의 말을 전하겠습니다. 트렌씨는 손자라면 아델, 손녀라면 멜리라고 이름 붙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전부야?”

“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미혼인 아들에게 손자와 손녀의 이름을 가르쳐 주다니.

트렌은 마지막까지 장난을 친걸까?

“후우… 그랬나.”

아멕스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런 말을 남겼는지 이해는 가지 않습니다만….”

타르칸은 말을 잘 못 전했을 가능성도 없다.

그 증거로 트렌이 생성한 퀘스트가 해결되었다는 알림이 나타났던 것이다.

[퀘스트 ‘대장장이의 딸에게 아기의 이름을 알려주어라’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멕스는 잠시, 아니 꽤 오랫동안 침묵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먼 곳을 쳐다보던 아멕스가 불쑥 말을 꺼냈다.

“잠깐 날 따라 오겠나?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어”

타르칸이 아멕스와 함께 더러운 선술집을 나섰다.

문 앞에는 아직도 소매치기 소녀가 서성이고 있다.

아멕스가 눈을 부라렸다.

“뭐야? 레아. 너 이 녀석의 주머니를 노리는 거냐? 썩 꺼져!!”

“그, 그런 거 아니거든!!!”

소매치기 소녀 레아가 히익 놀라며 도망쳤다.

아멕스가 타르칸을 쳐다보았다.

“레아랑 아는 사이냐?”

“여기까지 길 안내를 해줬어요.”

아멕스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1실버를 주고 말이죠.”

그제야 아멕스가 한숨을 내쉬며 걷기 시작했다.

“조심해. 가까이 해서 좋을 게 없어. 질이 좋지 않은 아이다. 아니 정확히는 질이 좋을 수가 없다고 해야겠군. 이 수도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마치 동네 꼬마를 타이르는 듯한 말투다.

“그런 건 제가 알아서 해요. 아멕스. 저희도 오늘 처음 만나 사이 아닌가요?”

“그건 그렇군. 미안하군. 겉만 보면 순 꼬맹이라서 말이야.”

아멕스의 기준에서야 꼬맹이가 아닌 사람이 없을터다.

트렌을 닮은 것인지 아멕스 역시 상당한 거구였으니까.

“자 여기다.”

아멕스가 도착한 곳은 타르칸도 와 본적이 있는 하얀 모루 대장간이었다.

문에 걸린 거대한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돌리자 찰칵하는 부드러운 금속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영감탱이가 성격은 지랄 맞아도 실력 하나만은 귀신처럼 뛰어났지.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녹 하나 안 쓴 것 좀 보라구.”

문을 지키는 자물쇠와는 달리 대장간 안은 난장판이었다.

도둑이라도 든 듯 온갖 물건들이 바닥에 내팽겨쳐져 있고 그 위에는 뽀얗게 먼지가 내려 앉아 있다.

오랜 시간 방치된 결과다.

“아버지가 불경한 물건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교단에 잡혀간 이후, 이 대장간에도 교단의 병사들이 들이 닥쳤지. 무언가를 찾는 눈치였어. 결국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아멕스가 숙취로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흉가같은 대장간의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들고 온 것은 둥글게 말린 커다란 종이 두 장이었다.

트렌은 꽤나 악필이었던 모양이다.

종이의 상단에 각자 ‘아델’과 ‘멜리’라는 글자가 지저분한 글씨체로 적혀있다.

“아버지는 뛰어난 대장장이였지만 사실은 대장기술보다는 설계가 영감탱이의 주 특기였어.”

아멕스가 두 장의 종이를 펼쳤다.

종이 위에는 알 수 없는 선과 점, 원들.

도형들과 뜻이 이어지지 않는 글자들로 가득했다.

일견 어린아이의 낙서 같아 보인다.

아멕스가 두 종이를 겹치더니 그것을 대장간의 창문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어?”

의미 없이 나열되어 있던 선과 점들이 모여 도형을 만들고 이어지지 않는 글자들이 겹쳐져 문장을 만들었다.

두 개의 종이가 겹쳐진 모습은 확실히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설계도였다.

“이게 바로 그 녀석이군. 고대의 유물을 토대로 그려낸.”

“뭐죠? 전 봐도 잘 모르겠는데.”

“글쎄… 머릿속에 대충 그림은 그려지는데 대체 무슨 용도의 물건인지 모르겠네. 요상한 생김새야.”

“한 번 만들어 보는 건 어때요? 고대의 유물이라면 도와줄 만한 사람을 알고 있는데..”

타르칸의 말에 아멕스가 움찔하더니 빛에 비추어보던 설계도를 떨어트렸다.

그가 오른손을 타르칸의 얼굴 앞에 들었다.

손이 미세하게 덜덜 떨리고 있다.

“너무 마셔댄 모양이야. 어느새 이 모양이 되었더군. 그리고….”

아멕스가 망설이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교단에게 잡혀간 이유 또한 이것 때문 아닐까? 그런 정체도 알 수 없는 물건을 만들기는 무서워.”

“….”

타르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그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는 트렌의 장인의 증표를 꺼내 아멕스에게 건네었다.

이것으로 그의 역할은 다 끝낸 것이다.

아멕스는 증표의 뒷면에 음각된 자신의 이름과 그 주변에 검게 낀 손때자국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럼 전 가볼게요. 아. 가능하면 술은 끊는 것이 어떨까요? 그거 맛도 없잖아요.”

“그래. 더럽게 맛없지.”

타르칸이 씨익 웃으며 엉망진창인 대장간을 걸어 나갔다.

아멕스가 그런 타르칸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다시 자신의 손에 들린 장인의 증표를 쳐다보았다.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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