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각 (1)
[4단계 몬스터 게이트 봉쇄에 성공하였습니다.]
[500DC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확실히 몬스터게이트를 닫는 것은 상당히 쏠쏠했다.
막대한 경험치를 얻는 것은 물론이고 보너스로 디멘션코인까지 얻을 수 있었다.
“후우….”
타르칸이 깊게 심호흡했다.
상당한 피로감을 느꼈던 것이다.
“고작 4단계에 이러면 안 되는데.”
몬스터게이트 근처에는 보통 몬스터의 밀도가 다른 곳의 몇 배로 높았기 때문이다.
“근데 나 방금 4단계를 고작라고 부른 거야…?”
살아있는 뼈를 해제하며 타르칸은 피식 웃었다.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검은 갑주가 머리부터 차례대로 목걸이 속으로 말려들어갔다.
그의 목걸이 살아있는 뼈는 각 갑옷의 부위들을 등록하는 것이 가능하다.
어느덧 그의 갑옷의 모습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이전이 곤충의 키틴질을 연상시키는, 몸에 달라붙어 탄력적으로 보였던 모습은, 이제는 마치 거목의 뿌리나 산맥의 줄기가 우뚝 서있는 모습이었다.
바위비늘전갈에게서 얻은 짙은 모래색의 전갈꼬리 모양의 방패와 더불어 전체적으로 갑옷의 외형이 커지고 웅장해진 것이다.
갑옷의 대부분을 암석 거수 바리스크에게서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있는 뼈’에 등록한 이상 데스나이트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검은 골격 같은 모습은 여전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타르칸의 갑옷은 좀 더 두터워지고 위협적이고 기괴해졌다.
“이제 서쪽과 남쪽은 거의 다 정리했네….”
마나를 감지하는 것도 많이 익숙해졌다.
아직 고통이 느껴지는 것은 여전했지만 마나를 느끼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벌써 한 달 째, 그는 오로지 나브가 인근에 나타난 몬스터게이트를 닫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브가를 찾는 플레이어들이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덕분이다.
게이트 브레이크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용병들은 썩 내키지는 않지만 플레이어들에게 협력하고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플레이어들과 마나를 느껴 몬스터게이트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는 용병들의 연합은 상당한 시너지를 내었다.
나브가 인근의 몬스터게이트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때는 나브가를 완전히 버리는 것을 고민했을 정도로 나브가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플레이어들이 몰려오면서 완전히 변해버렸다.
이런 플레이어들의 능력에 나브가의 남은 주민들은 희망을 품었지만 사르크를 비롯한 각국의 정치인들은 더욱더 플레이어들을 경계하게 되었다.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만.”
타르칸은 머리를 쑤시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가장 가까운 몬스터게이트는 서쪽으로 약 30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것 같다.
언월도 – 블루드래곤이 거의 다 부서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젠슨에게 받은 –훔친- 아스너 제국의 기사에게 수여되는 단검을 들고 있는 상태다.
“무기가 좀 나왔으면 좋겠다. 짧은 단도를 쓰려니 영 어색하네.”
데미지 자체는 낮지 않지만 거리가 너무 짧은 것이 문제다.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멋이 나지 않잖아. 멋이. 갑옷은 더 커졌는데 무기가 이게 뭐야.”
그는 육중하고 검은 광택이 흐르는 검은 판금 갑옷에 작은 단도를 들고 있는 것이 멋을 해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아직은 겉으로 드러난 자신의 모습에 관심이 많은 소년인 것이다.
“대장장이에게 언월도 제작이라도 부탁해야 하나… 대장장이가 만든 무기는 인챈트가 잘 안 되어서 별로인데….”
투덜거리며 뜨거운 모래 위를 달리던 타르칸이 무언가를 포착한 것은 그때였다.
사막 저 멀리 검은 점들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희미하게 고함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지만 거리가 거리인지라 잘 확인이 되지 않는다.
타르칸은 더 가까이 다가가기 보다는 좀 더 쉬운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쉽지만 고통스러운 방법.
“크윽”
내면의 밸브를 열자 다시 폭주하는 정보들이 뇌를 후벼파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어느 정도 이 밸브를 조정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마나를 느끼는 정도가 아닌 오감을 더 날카롭게 만드는 정도라면 편두통 정도의 고통으로 그치는 것이다.
- 챙 챙 챙.
과연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철과 철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 사이로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섞여있다.
- 죽여!!
- 삼합 길드에서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거냐!
- 이제는 길드전이다!
- 이럴 때 러시아 녀석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거야!
고함소리 사이에 그에게 익숙한 단어가 들어있다.
‘삼합길드? 삼합길드라면 분명히 칼날산맥의…’
칼날산맥과 샤르크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니 삼합길드에서 산맥을 넘어 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저렇게 플레이어들끼리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이계의 인간들끼리 서로 죽인다고? ‘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면의 밸브를 잠근 타르칸이 살아있는 뼈를 완전히 해제했다.
밝은 노란색 모래사막 위에서 검은색의 판금갑옷은 너무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동속도가 절반이 되는 잠행을 발동하고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다.
그는 최대한 플레이어들 가까이 접근한 다음 잠행을 써서 그들 코앞에서 관찰할 생각이다.
살아있는 뼈가 접히며 순식간에 작은 묵빛의 해골 목걸이가 되었다.
동시에 인벤토리에 들어갔던 베이지색의 샤르크 전통복장이 그의 몸 위에 생겨났다.
‘편리하단 말이지.’
그는 이 편리한 기능이 청소년이용불가 판정을 피하기 위한 누군가의 피땀나는 노력임을 절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베이지색의 샤르크 전통복은 이렇게 강렬한 태양빛 아래에서는 모래와 색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타르칸은 모래가 반동으로 튕기는 것을 조심하며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육안으로 플레이어들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 졌을 때, 그는 잠행을 발동했다.
모래위에 서 있던 타르칸이 희미해지듯 사라졌다.
그림자와 그가 밟고 있는 모래 위의 자취마저 순식간에 사라졌다.
타르칸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서서 플레이어들 간의 전투를 구경했다.
전투는 시시했다.
플레이어 개개인의 기량이 허접하다는 뜻이 아니다.
두 집단의 전력차가 너무 심했다.
‘오, 저놈은?’
삼합길드의 사람 중에 칼날산맥에서 싸웠던 환도를 든 무사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적절한 회복스킬 사용으로 그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힐러도 보인다.
애석하게도 머리가 잘린 상태이긴 했지만…
“흥! 길거리의 양아치 놈들이!”
근육이 거대하게 발달한 대머리 흑인이 환도를 든 무사의 다리를 자르며 냉소했다.
삼합길드의 길드원들의 전투센스는 나쁘지 않았다.
길드원들간의 협동도 완벽했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네놈들의 곰팡이 핀 무술 따위는 이미 오래 전에 연구가 끝났다고. 상대를 봐가면서 덤벼야지.”
아메루시카.
미국과 러시아의 연합이라는 이 터무니없는 조직은 디멘션 온라인 안에서 이미 하나의 국가 정도의 무력을 가지고 있다.
레벨로도, 전투 센스로도, 전략과 전술로도 아메루시카쪽이 월등히 앞선다.
심지어 지금은 아메루시카쪽이 머릿수도 더 많은 상황이다.
아직 죽지 않은 삼합길드의 길드원들이 서로 눈짓하더니 물러가기 시작했다.
아메루시카는 굳이 추적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중국 놈들. 언제 여기까지 넘어 온 거지?”
“산맥에 근거지를 틀었던 놈들이니 언제 왔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이 나브가에 좋은 사냥터가 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겠지.”
“젠장! 그럼 곱게 몬스터나 잡을 것이지 왜 시비냐고! 이렇게 몬스터가 널려있는 곳에서!!”
“낸들 알겠냐. 중 국놈들 생각 따위.”
인종차별적인 이야기가 한동안 오간 뒤에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자가 지시했다.
“모두들 이곳에서 잠시 정비한다. 부상자들은 치료하고. 사망자들로 균형이 깨진 파티를 다시 구성하겠다. 스란. 그때동안 혹시 근처에 몬스터가 없는지 이 근방에 디텍팅 마법을 부탁한다.”
“네.”
갈색머리의 여인이 대답하며 눈을 감았다.
강대한 마나가 그녀에게 몰려들었다.
‘정령이 속삭이는 땅’이라는 지속광역감지 마법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저 여자는…’
타르칸은 검은 땅 탐사 팀에 동행했던 스란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녀의 스킬들 까지도.
스란의 클래스 ‘선견자’는 전투력은 보잘 것 없지만 감지능력 만큼은 전 직업을 통틀어 최상위권이다.
‘어쩌면 들킬지도…’
타르칸이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잠행을 발동중인 그의 이동속도는 너무 느린 반면, 스란의 스킬은 잠행상태가 아니었다고 해도 피하는 것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스란을 중심으로 작은 원이 생겼다.
그녀의 신호와 함께 원이 폭발하듯 퍼져나갔다.
원의 선이 지나간 곳의 땅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선견자의 스킬 ‘정령이 속삭이는 땅’의 이펙트 효과다.
정령이 속삭이는 땅의 범위는 약 500m.
타르칸이 서 있던 곳을 넘어선다.
곧 스란의 스킬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으왁 뭐야 이거!!”
당황한 타르칸이 소리를 질렀다.
잠행이 해제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마치 트리처럼 온몸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뭐야 저 자식은.”
20명의 플레이어의 험악한 눈초리가 사막위의 트리를 노려보았다.
‘도망가자.’
거리가 거리인지라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얼굴을 정확하게 봤을 가능성은 낮다.
이런 외딴 사막에서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을 곱게 볼 리가 만무하다.
분명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상대는 아메루시카.
도망가는 것도 쉽지 않다.
“대지의 결박!”
“뿌리 묶기!”
“냉기 속박!!”
“마비 화살!”
원거리 군중제어기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그를 향해 CC기를 난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닥의 모래가 갑자기 물처럼 흐물해지며 그의 발을 묶었다.
사막에 있을 리가 없는 굵은 나무가 튀어오며 그의 다리를 붙잡으며 어디선가 불어온 강렬한 냉기가 그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었다.
그의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며 타르칸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다 죽여버릴까?’
그는 검은 땅에서 CC기가 많다고 하더라도 결국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디멘션 온라인의 시스템 상 플레이어와 NPC에게는 동일한 CC기가 횟수가 반복 될수록 지속시간이 줄어들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기본 지속시간이 10초라면 그 다음은 8초, 그다음은 5초, 그다음은 아예 일정시간동안 해당 스킬에 면역이 생기는 것이다.
혹여나 악의적인 플레이어가 저레벨 플레이어를 무한 CC기로 괴롭히는 경우를 가능한 방지하기 위해서다.
‘짜증나는데… 어차피 7일 뒤에 다시 살아나는 놈들이잖아…’
아메루시카의 길드원들은 개개인들 모두 타르칸 보다 레벨이 높아 보이고 숫자도 월등히 많았지만 그럼에도 질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 정도로 그는 상식 이상으로 강해진 것이다.
타르칸의 손이 검은 해골 목걸이를 감싸 쥐었을 때었다.
“모두들 멈춰요!”
플레이어들 가운데에서 광역감지마법을 사용하던 스란이 외쳤다.
“NPC입니다. 몬스터나 다른 길드 사람이 아니에요.”
“NPC라고?”
“스란의 감지스킬이라면 정확하겠지.”
“어째서 이런 외딴 곳에 NPC가 있는 거지? “
“글쎄요 그것까진 저도….”
“그거야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험악한 표정의 플레이어들이 다가온다.
타르칸은 아직 몸이 묶여있는 상황이다.
'스킬로 내가 NPC라고 알아냈다고?'
플레이어의 육안으로는 얼굴도 확인하기 힘든 거리다.
거기에 머리에 두건까지 두르고 있는 그가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을리가 없다.
‘저 갈색머리. 생각보다 더 위험한 여자였군.’
살아있는 뼈를 발동하고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망설여진다.
플레이어는 살인멸구 할 수 없다.
플레이어의 스킬을 사용하고 기묘한 무구를 착용하는 NPC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갈것이다.
그에 반해 자신을 단순한 NPC로 위장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목걸이를 쥐었던 오른손이 슬그머니 풀려 내려왔다.
대신 그는 두렵고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어이쿠!! 에구머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