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당하는 사냥개
하동연과 시연은 접속 캡슐에 누웠다.
[계정코드를 확인합니다. 환영합니다. 제이가님.]
[계정코드를 확인합니다. 환영합니다. 시엘라님.]
접속 캡슐 내부의 조명이 어두워지며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들은 이미 익숙한 사막 위에 서 있었다.
그들은 나브가 인근의 부활 포인트 근처에 서 있었다.
로그인과 로그아웃 중에 캐릭터가 사망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다보니 어느새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가급적이면 부활 포인트에서 로그아웃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었다.
부활 포인트를 중심으로 일정한 범위 안에는 NPC나 몬스터가 접근할 수 없어 안전한 접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이가가 인벤토리를 열어 1회용 순간이동 수정 두개를 꺼내어 들었다.
“호렌평야라고 했었죠? 바로 갈까요?”
[순간이동 수정]
= 부활 포인트 간 이동 (1회 한정)
캐쉬아이템인 순간이동 수정은 개당 10만원이라는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하지만 디멘션 온라인의 광대한 필드 넓이 탓에 비싼 가격 임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네”
시연이 작은 크리스탈을 건네받았다.
마음이 찝찝하다.
하동연을 만나 활짝 폈던 그녀의 인생은 스네이크라는 남자가 등장하며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시연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하동연과 있으면서 어느새 사라졌었던 쉬엔의 눈빛이다.
“그럼 가시죠.”
하동연의 오른손에 든 크리스탈이 빛나는가 싶더니 그의 몸이 보라색으로 물들며 그 모습이 사라졌다.
시연이 중얼거렸다.
“네놈 마음대로 되지만은 않을 거야….”
그녀는 어렵게 주어진 그녀의 행복을 망치는 자를 용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
빛이 사라지고 나타난 것은 사막이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이었다.
아직 대낮이었던 샤르크와는 다르게 노을이 광활한 땅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호렌지방의 시간대가 샤르크보다 더 빠르기 때문이다.
“시연씨! 여기 입니다.”
하동연이 시연을 불렀다.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스네이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스네이크는 GM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하얀 동물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의 이름처럼 뱀의 머리 모양을 한 하얀 가면을 시연이 증오 섞인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상대는 GM이다.
가진 힘도, 정보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녀가 약하다.
삼합회가 어느 정도 까지 개입해 있는지도 확인해야만 한다.
그녀는 삼합회라는 집단이 가진 폭력의 힘을 잘 안다.
만약 삼합회가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추적하기 시작한다면 아무리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
“네~ 가요.”
지금은 증오를 숨기고 힘을 기르며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을 때, 그녀는 저 뱀의 목을 물을 뜯을 것이다.
“꺄~ 노을이 진짜 아름다워요~ “
짐짓 발랄한 척 하는 시연을 하동연이 따듯한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확실히 그는 시연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다.
스네이크가 분위기를 환기했다.
“앞으로 한 시간 뒤, 하운드가 이곳에 올 겁니다.”
“정말 저희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GM끼리의 싸움에서.”
“물론입니다. 동연씨. 오히려 당신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스네이크가 웃으며 허공을 향해 손짓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당신만이 이 녀석을 사용할 수 있을테니까요.”
쿠웅.
스네이크가 허공에 길게 선을 긋었다.
그의 손을 따라 허공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노을로 물든 들판 위에 소환된 거대하고 길쭉한 것이 지면을 울렸다.
어찌나 거대한지 하동연은 눈앞에 거대한 가시가 박힌 성벽이 나타났다고 느낄 정도였다.
“9등급 게이트의 몬스터 오로치입니다. 당신의 클래스 몬스터라이더라면 이 오로치의 힘을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9등급 게이트라는 소리에 하동연은 순간 자신이 잘 못 들은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다.
9등급이라면 드래곤이 소환되는 등급이 아니던가.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거대한 성벽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생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보니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보인다.
성벽의 토대라고 생각했던 것은 거대한 뱀의 척추였고, 거대하게 솟은 가시는 뱀의 늑골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몬스터, 이미 죽은 상태인데요?”
정확히는 피부와 살이 모두 섞어 백골만이 남은 상태다.
“네. 하지만 아직 마력을 일부 남겨두었습니다. 10분 정도는 활동이 가능할겁니다.”
스네이크가 꺼낸 것은 9등급 게이트 몬스터인 오로치의 골격이었다.
아무리 레전드 등급인 몬스터라이더라고 할지라도 9등급게이트의 몬스터를 길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의 몸으로 잠시 동안이나마 움직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제가 신호하는 순간. 이 오로치와 함께 하운드를 덮치세요.”
스네이크가 그의 인벤토리를 열어 검은색의 망토 두개를 꺼내었다.
“하운드의 감각은 매우 예리합니다. 제가 신호가 있을 때까지 이 망토를 두르고 있으세요.”
***
드넓은 대지를 물들이던 노을이 저물어간다.
이제는 긴 지평선을 끝자락에 붉은 기운이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호렌평야에 빠르게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하운드가 나타난 것을 그때쯤이었다.
개를 닮은 하얀 가면.
새미 정장 차림도 그녀의 터질 듯한 몸매를 숨기지 못하고 있다.
“뭐지? 스네이크. 왜 이런 곳에 보자고 한 거지?”
스네이크가 하운드를 반겼다.
“제가 이곳에서 발견한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예전부터 스네이크는 어디서 이상한 것을 잘 찾아내곤 했다.
때로는 12사도 중 추적의 달인이 그녀가 아닌 스네이크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일단 한 번 보지.”
“그런데 하운드. 당신을 따라 다니던 그 세 분들은 어디에 간 거죠?”
“아. 내 사냥개들 말인가? 지금은 그들의 세계로 돌아갔다. 내일 학교라는 것을 가야 한다고 하더군.”
역시…
스네이크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인간들은 잠을 자야하니까요. 참 나약한 종족입니다.”
“뭐 그런 놈들에게 패배했던 우리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야.”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하운드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혹시 피테쿠스의 소식을 알고 있어? 그 녀석 휴가라는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한 뒤로 전혀 이곳으로 오지 않고 있다. “
“아뇨. 전혀 모르겠습니다. 피테쿠스님은 애초에 워낙 예측이 힘든 분이셨으니.”
“그래. 그렇지. 너도 그 녀석처럼 둘 다 그쪽에도 육체가 있으니 혹시나 하고 물어봤다… 그 자식.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짜증섞인 말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하운드를 바라보던 스네이크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하지만 하운드는 그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렇죠. 당신은 언제나 그렇게 저희를 감시하고 계셨죠.”
“응?”
“금지된 마법을 발동하는 데만 열 둘 중 넷이 죽었고. 그렇게 발동한 마법조차도 불안정하기 그지없었죠. 살아남은 이들 중 당신과 양치기는 이곳에 남게 되었고 성공적으로 과거로 돌아간 것은 오직 여섯. 그중에서도 애초에 목표로 했던 과거와 이곳. 양쪽 모두에 육체를 얻는데 성공한 것은 나와 피테쿠스. 단 둘 뿐이었죠.”
하운드가 스네이크 반대방향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말에 경계의 빛이 서렸다.
“넌 육체라고 말하기도 우스운 꼴이었지만 말이지. 그 이야기는 새삼스럽게 왜 하는 거지?”
“그저… 역사적인 날에 기억을 되짚어 보았을 뿐입니다. 제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당신은 모르시겠죠. 아십니까? 당신과 나 그리고 피테쿠스는 언제나 3명이서 같은 임무를 맡았었죠. 피테쿠스님은 우리 3명이 한 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우리들을 제외한 다른 GM들이 단순한 대행자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눈치 채지 못한 채… 그리고 우리들이 당신에게 감시당하는 처지라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정말이지 멍청한 원숭이 아닙니까? 하운드. 아니, 지옥의 문지기 켈베로스.”
스네이크가 그녀의 진명을 거론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스네이크!! 배신을 하겠다는 것이냐!!!”
“배신? 아니요. 저는 원래 제 것이었던 것을 돌려받으려는 것뿐입니다. 당신을 죽이고 저는 이 지옥에서 자유를 얻겠습니다.”
“이 미친 새끼가!!”
먼저 움직인 것은 스네이크였다.
스네이크의 주위에서 뭉쳐진 무형의 힘이 공간을 일그러트리며 하운드에게로 쏘아졌다.
하운드는 코웃음 쳤다.
“우습군. 본래의 육체에서 떨어져 나온 네가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했나?”
스네이크의 공격은 하운드가 손가락 하나를 까닥이는 것만으로 손쉽게 사라져버렸다.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 하운드가 스네이크와 똑같은 형태로 공간을 뭉쳤다.
같은 형태와 모양이지만 그 기세는 그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맹했다.
“힘의 차이가 느껴지나? 다시는 까불지 못하도록 철저히 교육시켜주지.”
스네이크가 황급히 뒤로 점프했다.
하운드의 공격이 그가 서 있던 지면을 갈아버렸다.
“크헉!”
하운드의 공격의 범위가 너무 컷던 탓에, 스네이크는 공격을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충격의 가장자리에 있었던 것만으로 스네이크의 내부는 진탕이 되어버렸다.
본신의 육체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사이에는 이 정도의 힘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뱀의 얼굴을 닮은 가면 아래로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스네이크가 거칠게 가면을 벗어 집어던졌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
스네이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입니다!!!”
하운드가 피식 웃었다.
“너도 갈 데 까지 갔군. 천하의 오로치가 이런 장난질이나 치다니.”
그 순간, 은은한 빛과 함께 스네이크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시연이 회복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주변에서 다른 이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하운드는 순수하게 놀랐다.
언덕위에 선 채 양손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시엘라를 발견한 하운드가 흥미롭다는 듯 턱을 괴었다.
“저 망토는… 그런가. 그래서 내가 눈치 채지 못했던 거군. 플레이어 동료라니 너 답지 않군. 하지만 어쩌지? 플레이어 같은 건 아무리 모여봤자….”
하운드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시엘라의 뒤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던 것이다.
“이건….”
“크롸롸롸롸롸!!”
그 순간 거대한 뱀의 사체가 그 몸을 일으켰다.
마치 땅이 뒤집혀 일어서는 것만 같다.
하운드 그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대체 어떻게!!”
하운드가 경악했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저것은 절대로 지금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동연씨!!!”
스네이크가 소리쳤다.
하지만 거대한 뱀 오로치의 머리위에 앉아 있는 하동연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죽여라죽여라죽여라죽여라죽여라죽여라죽여라죽여라
오로치의 정신은 단지 사체에 남은 사념뿐이라 할지라도 너무나 거대한 것이었다.
흰자위만 남은 눈으로 경련하면서도, 하동연은 오로치의 목소리를 충실히 따랐다.
하동연의 아바타, 제이가의 손이 지면을 향했다.
오로치의 입에 녹색의 독기가 고이기 시작했다.
[당신은 사망하였습니다.]
[사망 페널티를 받습니다.]
단지 공격을 명하는 것만으로 제이가는 사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로치의 시체는 그 자리에 오롯이 남아 그의 마지막 명령을 충실히 이어갔다.
“스네이크! 너 정말 미쳤구나! 여기에서 네 육신이 부서지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모르나?”
입가로 피를 흘리며 스네이크가 웃었다.
“괜찮습니다. 저에게 아둔한 전능자들의 기술이 만들어 준 육체가 있으니까요… 당신과는 다르게 말이죠.”
“젠장!”
거대한 뱀의 사체가 입에 머금고 있던 독기가 땅에 쏟아져 내렸다.
세상이. 녹아내린다.
스네이크가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이 사라진 이 곳이 기대되는군요!”
사망한 제이가와 힐을 하던 시엘라, 미친 듯이 광소하는 스네이크, 그리고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하운드까지.
모든 것이 초록색의 독기에 휘말려 녹아들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독기의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범람하는 독기에 모든 땅이 집어삼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호렌평야는 지도에서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