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79화 (79/215)

협력자

“흠….”

타르칸이 팔을 아래로 늘어트린 채 손바닥을 쫙 펼쳤다.

그의 손바닥 아래로 조금 전 바리스크의 턱을 갈라놓았던 검은 창들이 생겨났다.

스킬 ‘검은 가시’다.

‘검은 송곳니’가 변화한 스킬인 ‘검은 가시’는 더 이상 검은 송곳니처럼 한쪽 끝이 타르칸에게 닿아 있을 필요가 없다.

즉 원거리에서 투척하는 것이 가능하다.

[검은 가시]

교만에서 피어난 육체의 가시

- 가시 데미지 (힘에 비례)

- 독 데미지 (마력에 비례)

- 정수 게이지를 소모하여 강화 가능 (개수, 크기, 유도기능)

쐐에엑-

아니 투척 보다는 발사가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포격의 여운을 채 못 가신 바리스크의 몸에 타르칸이 쏜 검은 가시들이 박혀들었다.

워낙 먼 거리에서 발사한 탓에 처음의 공격과 같은 큰 타격은 주지 못했다.

하지만 괜찮다.

바리스크는 이미 놈이 가진 으뜸패를 써버린 상황.

바위의 포격을 사용하지 못하는 바리스크 따위는 타르칸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한다.

거기에 정수 흡수의 패시브 효과로 인해 모든 능력치가 하락한 상태에 독까지 걸렸다.

“가능한 언월도는 사용하지 않아야겠는데….”

타르칸이 중얼거리며 바리스크를 향해 다가갔다.

중간 중간 검은 가시와 정수 사출을 발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슬슬 새로운 스킬들에도 거의 적응이 된 것 같다.’

아담의 정수를 흡수한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가 가진 스킬들이 전반적으로 다 변해버린 것이다.

‘정수를 흡수 할 때마다 강해지는 것은 확실해. 그렇다면 다음은…’

왠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미 그가 다음에 흡수해야할 정수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이것이 아담의 정수에 남은 아담의 기억인지, 그렇지 않으면 가이아가 무슨 수작질을 해놓은 것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기억대로라면 그 녀석은…’

타르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상상만 해도 징그러웠다.

“아담의 정수를 흡수하면서 변한 스킬은 ‘검은 가시’, ‘만들어진 신의 형상’ 그리고 ‘첫 번째 가죽’… 이렇게 세개지. 처음 두개에 비해 ‘첫 번째 가죽’은 뭔가 애매하단 말이지.”

첫 번째 가죽은 검은 껍질이 변화한 스킬이다.

[첫 번째 가죽]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더라.

- 모든 데미지 경감 50%

- 저주 면역

첫 번째 가죽은 패시브 스킬이다.

데미지 경감은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이 적용되기 전의 데미지를 절반으로 줄여준다.

물론 말도 안되는 성능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발판이나 적의 행동을 막는 등 여러가지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었던 ‘검은 껍질’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뭐 이미 없어진 걸 어쩌겠냐만은…’

“그우우우웅!”

바리스크가 특유의 큰 북이 울리는 것 같은 소리로 울부짖었다.

어느새 다시 바리스크의 코앞까지 도착한 것이다.

바리스크의 단단한 육체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다.

이미 저항할 힘을 모두 잃은 몬스터 앞에서 타르칸이 기분 좋게 웃었다.

“오래 기다렸다.”

그가 바리스크 턱에 생긴 큰 균열을 향해 언월도를 휘둘렀다.

정확히 원하던 곳에 언월도가 박혀들었다.

“아차! 언월도는 안 쓰려고 했는데!!”

타르칸이 비명을 질렀다.

약점을 발견하자 자신도 모르게 버릇처럼 언월도를 휘둘러 버린 것이다.

“으아아아악!! 장비수리키트도 없는데….”

장비수리키트는 프리미엄 상점에서 구매하거나 전리품 상자에서 매우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사용 아이템이다.

전리품 상자에서 나올 확률은 대략 0.1%.

사실상 0에 가깝다.

가시개미를 학살하면서 수많은 전리품 상자를 얻었던 타르칸조차도 단 한번 밖에 얻지 못했던 아이템이기도 하다.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사용하는 장비수리 키트는 거의 대부분이 프리미엄 상점에서 구매한 것이다.

프리미엄 상점은 대부분의 게임에서 그러하듯 현금으로 아이템을 구매하는 상점이다.

이계의 돈을 가지고 있을리 만무한 타르칸에게는 장비수리키트는 상상속의 아이템과 마찬가지다.

“우우우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리스크가 쓰러졌다.

하지만 타르칸의 신경은 온통 언월도에 쏠려있다.

“아 씨. 여기 또 이 나갔네.”

언월도의 날코 부분에 이가 나갔다.

나브가에 대장장이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무기가 부서져서 못 쓰는 상황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그래도 방어구는 목걸이 덕분에 자가수리기능이 달려 있어서 망정이지… 살아있는 뼈가 보물이네 보물.”

그가 묵빛의 해골 목걸이를 쓰다듬었다.

“나도 슬슬 장비를 바꿀 때가 되긴 했는데 말이지….”

사실 방어구를 업그레이드해야 할 시점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아무리 유니크 등급이라지만 결국 2등급의 몬스터에게서 얻은 것이다.

지금 그의 방어구는 잘 쳐줘봐야 3등급 몬스터의 노말등급 아이템의 성능인 것이다.

“프롬숲에 훈련소에 칼날산맥에… 그동안은 끌려다니거나 도망친다고 너무 여유가 없었지. 그나마 오래 머물렀던 설산에 나오는 오우거가 주는 아이템은 냉기속성 둔기가 전부였고….”

마침 나브가의 인근에는 몬스터가 넘쳐나는 판이다.

그리고 그는 급할것이 없는 몸이다.

“좋아. 어차피 나브가 근처의 몬스터게이트를 닫아야 하는 거… 하는 김에 장비 업그레이드도 좀 해야겠다.”

***

하동연과 시연은 로그아웃한 이후에 스네이크가 기다리고 있는 폐공장을 찾았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한동안 자리를 비웠던 스네이크다.

하동연은 스네이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보고했다.

“또 다른 레전드 클래스요?”

“네 아이디는 타르칸. 들리는 말에 의하면 용을 소환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용이요? 그런 스킬이 있을 리가요. 용은 다른 몬스터들과는 다릅니다.”

스네이크는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혹시 스네이크님 그 기사 못 보셨나요?”

“아… 칼날산맥에서 용이 소환되었다는? 분명 삼합길드가 언급되었었죠.”

스네이크가 무언가 생각이 난듯 아 하는 작은 탄성과 의뭉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동연씨 제가 무슨 일을 준비하고 계시는 줄은 알고 계시죠?”

“네. 뭐…. 음료수를 파실 거라고….”

“이제 슬슬 여러분에게도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사실 이미 중국에서 생산되어 지난달부터 판매하고 있습니다. ‘크레이지 몽키’라고, 들어보셨나요?”

옆에서 듣고 있던 시연이 아는 척을 했다.

“그거 미국에서 엄청 핫하다고 인터넷에서 보긴했는데… 설마 그걸 스네이크씨가 만드는 거라구요?”

“네. 조만간 한국에도 아니, 전 세계에 판매가 시작될 겁니다. 그리고 이 음료가 플레이어들을 각성시킬 겁니다.”

하동연과 시연은 놀랐다.

음료를 판매할 것과 그 음료에 마나를 주입시켜 사람들을 각성시킬 것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일이 이렇게 빨리 진행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저 그런데 그 마나를 주입시키는 방법 말인데요. 대체 어떻게 하는 거죠?”

“피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단어의 등장에 하동연과 시연 모두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네?”

“정순한 마나가 녹아 있는 혈액을 음료에 소량 섞는 것입니다. 검출되지 않을 정도로 미량이라도 상관없습니다. 혈액의 양보다는 거기에 담긴 마나의 질이 더 중요하니까요.”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법에 하동연과 시연은 그만 얼이 빠져버렸다.

스네이크의 미소가 좀 더 진해졌다.

“방법이 좀 살벌하죠? 하하. 다른 사람을 각성시킬 정도로 높은 질의 마나를 가진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사실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정도죠. 다행히 저는 그런 마나를 가진 성실한 지원자를 만날 수 있었지만요.”

“네 그런 방법… 이었군요. 하..하하. 한국에서 판매가 시작되어도 저는 절대 안 마실 것 같네요.”

하동연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반면 시연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사람이 마시는 음료에 피를 섞었다고요?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시연의 격한 반응에 넌지시 시선을 옮긴 스네이크가 이유모를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건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입니다. 이해해 주시라 믿습니다.”

“그럼요. 캡틴! 우리는 이미 한팀입니다.”

이미 동연은 스네이크에게 완벽하게 넘어간 뒤였다. 그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위인이 바로 하동연이었다.

“고마워요. 동연씨.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했냐면, 중국에서 ‘크레이지 몽키’를 생산하는 것을 삼합길드에서 담당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 삼합길드요? 그 말씀은….”

“네. 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스네이크의 말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디멘션 온라인의 GM인 스네이크를 삼합회가 도와준다는 것은 삼합회와 디멘션소프트가 결합했다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네이크. 삼합회는 범죄조직 아닙니까?”

“아뇨. 이제는 저희의 협력자입니다.”

“삼합회가 디멘션소프트의 자금줄이었던 겁니까?”

“아뇨. 디멘션소프트와는 무관합니다. 삼합회는 철저히 저희 TF팀 프레데터에게 협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네이크의 말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았다.

회사의 한 팀을 돕지만 그 회사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대체 무슨 소리인가.

“애초에 디멘션소프트는 누구의 투자를 받아야 될 만큼 자금력이 약한 회사가 아닙니다. 그저 삼합회 같은 조직이 처리해줄 부분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저희가 그들을 고용한 것이죠. 하청업체 같은 개념이랄까.”

시연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왜 여기서 그들이 거론된단 말인가.

삼합회는 한때 그녀가 속해 있던 단체이자, 그녀를 바다에 익사시키려고 했던 단체다.

‘그럼 스네이크가 내 정체를 알고 있다는 건 삼합회 역시…’

자신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린다.

그런 시연을 내려다보며 스네이크는 남몰래 교활한 웃음을 지었다.

시연과는 다른 이유이지만 하동연 역시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삼합회에서 저지르는 수많은 악행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네이크가 말한 ‘삼합회 같은 조직이 처리해줄 부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절대 깨끗한 일은 아닐 것이다.

스네이크가 말을 이었다.

“아울러 말씀드리자면 앞으로 저희 팀은 디멘션소프트와는 별도의 노선을 걷게 될 겁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삼합회의 힘을 빌리게 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스네이크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디멘션소프트의 부서가 자신의 모체인 회사와 적이 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기 때문이다.

“네? 저희 팀은 디멘션소프트의 특별부서인거 아닌가요?”

“지금 말씀 드리기는 곤란하지만… 한 가지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디멘션소프트의 ‘윗분’들이 저희의 계획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단은 저를 믿고 따라와 주세요.”

하동연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를 전환시키려듯 스네이크가 조금 가벼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제가 왜 지금 삼합길드 이야기를 꺼냈는지를 말씀드려야겠군요. 공교롭게도 삼합길드의 길드장인 적룡아 님도 동연씨와 같은 말을 저에게 했었습니다. 레전드 클레스로 보이는 자를 칼날산맥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고요. 아쉽게도 그 플레이어와의 연락은 끊어졌다고 하셨지만, 뭐 덕분에 꽤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네이크가 하동연과 시연을 돌아보았다.

서늘한 눈빛으로 장난스럽게 웃었다.

“동연씨 정말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동연씨가 말한 그 시작의 마을의 히든NPC. 그자가 바로 지금 나브가에 있는 자칭 용소환사입니다.”

“네? 아니 그럴 리가….”

타르칸이라는 이름을 가진 NPC는 매우 흔하다.

아스너제국의 개국 공신중 한 명이 타르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팔자가 사나워진다는 이유로 위인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을 피하지만 그랑대륙에는 그런 관습도 없다.

굳이 따지자면 철수나 민준처럼 흔한 이름이 타르칸이다.

“타르칸이라는 이름을 가진 NPC가 하나 둘도 아니고… 단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하동연은 빠르게 부정하며 머릿속으로 두 사람을 비교해 보았다.

키, 사용하는 무기,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 특유의 말투, 검은 땅에서 보았던 싸우는 모습…

하동연은 순간 입을 쩍 벌렸다.

“허억.”

뒤늦게 시작의 마을 NPC 타르칸과 나브가의 용소환사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스네이크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 NPC를 놓치지 마세요. 나중에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가능하다면 동행하면서 그 NPC의 행적을 저에게 보고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자 그럼 오늘 저희가 모인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디멘션 온라인 안에서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특히 동연씨의 도움이요.”

“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맹목적이라 할 수 있는 동연의 모습에 스네이크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본론을 꺼냈다.

“최근 동료 GM 한명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더 이상의 부조리를 없애기 위해 그 GM을 처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GM은 결국 디멘션소프트의 직원인데 처벌은 디멘션소프트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할 문제 아닌가요? 저희가 대체 뭘 하라는 거죠?”

시연이 끼어들었다.

그녀의 말투는 날카롭게 날이 서있었다.

“디멘션 온라인에서 그 GM을 죽여야 합니다.”

언제나 그랬지만 스네이크의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어려운 문장을 사용하거나 은유적으로 말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비상식적인 이야기를 단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어차피 일주일 이후에 다시 부활하잖아요. 아니 애초에 GM에게도 그런 사망 패널티가 있기는 한건가요?”

시연의 가시 돋친 말에 스네이크의 입에 걸린 미소가 진해졌다.

“죽이는 것에 의미가 있냐구요? 있죠. 아주. 아주. 큰 의미가….”

스네이크의 웃음에는 광기가 묻어있어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그 광기를 눈치 챈 것은 오직 시연뿐이었다.

“준비는 이미 제가 모두 마쳤습니다. 디멘션 온라인에 접속하셔서 바로 호렌평야로 워프하시면 됩니다.”

스네이크가 폐공장의 한 쪽 구석을 가리켰다.

최신형의 접속기 세대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이런 건 또 언제 준비를… 드디어 비밀기지 건설을 시작하시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동연씨. 이번 일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이번 일과 비교하면 다른 문제들은 사소하다고 말해도 될 정도니까요. 반드시, 반드시 성공해내야만 합니다. 동연씨.”

스네이크가 접속기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스네이크의 전에 없던 비장한 말에 시연과 하동연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정말이지 이상한 일에 휘말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가시죠. 시연씨.”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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