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2)
쏴아아아아
끝없이 쏟아지던 모래의 비가 그쳤다.
사나웠던 폭발만큼이나 무거운 침묵이 검은 사막위에 내려앉는다.
검은 모래에 반쯤 파묻혀진 타르칸은 속으로 이 지독한 정적이 계속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침묵의 사막위에 아담의 목소리가 울린다.
“호오… 원시인이라도 어느 정도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이겁니까?”
타르칸은 어떤 힘이 자신을 끌어 올리는 것을 느꼈다.
무형의 힘이 주변의 공간을 틀어쥐고 있는 느낌이다.
이건 분명 그가 당해본적이 있는 힘이다.
‘분명 이건 그때 프롬숲의 하얀 원숭이 가면의…’
타르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순식간에 모래더미에서 끌어올려진 그는 바로 눈 앞에서 꿈틀거리는 아담의 얼굴을 보았다.
아담의 얼굴에서 입으로 보이는 위치에 구멍이 생겨났다.
“음?”
비정형의 흰 덩어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악취가 나지 않아?”
아담은 쏜에게 그랬던 것처럼 킁킁거리며 타르칸의 냄새를 맡았다.
“이건 뭐지? 처음 맡아보는… 이런 건 그분들이 말씀 하신 적이 없는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아담 앞에서 타르칸은 그도 모르게 몸을 떨고 있었다.
그가 흡수한 현무의 정수의 영향이 무색해 질 정도다.
지금 타르칸의 생각과 기질의 절반은 현무의 것.
다르게 말하자면 그의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평범한 소년일 뿐이다.
나약하고 나약해서 생존을 위한 지식들에 집착하던 소년.
그 소년이 공포에 질려버렸다.
[칭호 ‘불굴의 투사’ 효과가 발동합니다.]
[대상의 격이 칭호의 격보다 높습니다.]
[칭호 ‘불굴의 투사’ 효과가 무효화 됩니다.]
칭호 불굴의 투사가 가진 공포에 면역 효과도 무효화 되었다.
지금 타르칸이 느끼는 공포의 원인이 시스템보다도 더 근원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포식자에게 사로잡힌 먹잇감,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살아있는 채로 제단에 올려진 제물이 느끼는 공포.
“흐음… 뭐지?… 일단 갈라서 속을 살펴 봐야하나?”
덜덜덜덜덜
타르칸의 몸이 사정없이 떨린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담.”
가이아다.
피투성이가 된 작은 펭귄이 검은 사막위에 서 있다.
“오랜만이구나.”
가이아의 말에는 왜인지 슬픔이 묻어있다.
가이아를 본 아담의 전신이 출렁거렸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생물? 이 근방에 생명체라곤 저 인간 하나뿐인데?”
“너에겐 강력한 스캔기능이 있지만 그 기능에서 예외로 설정해 놓은 존재들이 있지 않나?”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비틀거리며 아담에게 걸어갔다.
너무나 작고 위태로운 모습.
아담은 그런 가이아가 자신의 발아래에 도착할 때 까지 그저 몸을 출렁이며 지켜보았다.
가이아가 아담의 꿀렁거리는 다리에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짧은 날개를 푹 집어넣었다.
아담의 온몸이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
아담은 온몸을 떨며 전율했다.
환희에 가득 찬 목소리로 크게 울부짖었다.
“오오오오. 생명이여! 영광이여! 무한한 지혜이시여!”
아담이 서서히 그의 몸을 낮추었다.
온몸이 완전히 바닥에 붙을 정도 까지.
아담이 가이아에게 절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자의 첫 번째 창조물 아담이 창조주님을 뵙습니다.”
“뭐!?”
뒤늦게 정신을 차린 타르칸이 깜짝 놀랐다.
“타르칸. 잠시만 여기에서 기다려. 난 이 아이와 할 이야기가 있다.”
***
디멘션온라인의 서버 관리자이자 동시에 GM피테쿠스로 활동하고 있는 이세혁.
그는 현재 아스너제국의 수도에서 버그 플레이어와 버그 NPC를 찾고 있는 중이다.
정황상 7번 시작의 섬의 피델을 부순 것으로 보이는 버그 플레이어가 이 아스너 제국의 수도에서 발견되었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허탕이다.
애초에 검은색 풀 플레이트 갑옷과 관우의 청룡언월도를 연상시키는 언월도는 플레이어들에게 꽤나 인기가 높은 무구다.
7번 시작의 섬의 버그 플레이어와 비슷한 차림의 플레이어들은 생각보다 흔하다는 뜻이다.
“하오 웬 미친놈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
이세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버그플레이어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얼마 전 더 큰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발단은 한 언론사가 개시한 용 소환사에 대한 기사였다.
- 그 플레이어는 시작의 마을에서 우연히 피델을 죽인 것이 드래곤 소환사로 전직하는 퀘스트의 시작이었다고 밝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 대목이 문제다.
피델을 부수는 것이 레전드 직업으로 전직하는 방법이라는 소문 때문에 모든 시작의 섬에서 너도 나도 피델을 부수기 시작했던 것이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피델과 레전드 직업간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밝혔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레벨 5에 전직도 하지 않은 상태로는 이기기 힘든 피델을 사냥하기 위해 초보 유저들은 파티를 맺어 공격대를 구성하고 피델 공략법을 팬사이트에 공유했다.
본래 한 시작의 섬을 담당하는 피델이 부서지면 자동으로 해당 시작의 섬은 긴급 서버 점검을 시작하게 된다.
당연히 접속이 막힌 일반 유저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피델을 부수려는 거친 생각과, 불안한 일반 유저들, 그걸 지켜보는 GM들.
“그건 아마도오~ 전쟁 같은 상황~~”
때문에 피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마련되기까지 GM들이 투입되어 피델을 보호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버그 플레이어를 추적하는 것은 무한정 연기되었다.
이세혁이 다 포기한 얼굴로 공터에 드러누웠다.
“여기 다음에는 어디였더라… 보자… 샤르크의 나브가? 흠… 보나마나 이번에도 허탕이겠지.”
그 순간, 대기가 진동했다.
먼 곳에서 무언가 거대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주 강렬한 느낌.
단언컨대 절대로 유쾌한 느낌은 아니다.
“허억. 허어억.”
이세혁은 순간적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는 드러누웠던 자리에서 일어서며 가까스로 심호흡했다.
‘뭐지? 방금 뭔가가…’
이세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때 하운드에게서 천리통이 도착했다.
- 어이. 피테쿠스. 방금 느꼈나?
- 커다란 손이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은 느낌을 말하는 거라면. 어 맞아.
- 젠장! 아둔한 전능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샤르크로 와라.
하운드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세혁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 이건 귀찮은 일이다.
- 음… 저기 말이야 하운드.
- 뭐냐?
- 사실 본사로 발령 받았거든. 그래서 내일부터 2주일간 휴가야.
- 휴가? 휴가가 뭐냐?
- 그런 재미없는 농담은 하지 말고.
- …
‘뭐야? 진짜 휴가가 뭔지도 몰라?’
어쩐지 그가 접속할 때마다 하운드는 언제나 접속 중이었다.
‘완전 일 중독자구만.’
- 본론을 말해라. 피테쿠스.
하운드가 다급히 재촉했다.
- 그러니까. 내 말은…
귀찮은 일은 피하는게 상책이다.
눈앞에 휴가를 앞두고 있을때는 더욱 더.
- 이번일은 네가 알아서 잘 처리해 달라고. 난 간다. 빠잇.
[GM 피테쿠스가 로그아웃 하였습니다.]
- 피테쿠스! 어이! 야!!!
“휴우… 비행편도 다 구해놨는데 휴가 전날 새로운 일을 떠맡을 수는 없지.”
그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곳은 알레스카의 외곽.
황량하기 이를 데가 없다.
하지만 그만큼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는 평안한 생활이 가능한 곳이다.
‘본사 발령이라…’
입사와 동시에 알레스카로 발령 받았을 때 만큼이나 느닷없는 일이다.
‘대체 얼마 만에 한국을 가는 거지?’
일 년에 적어도 3주의 휴가를 주겠다는 약속은 지난 4년간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휴가를 주지 않으면 퇴사를 하겠다는 강짜를 부리고서야 겨우 2주간 휴가를 허락받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휴가의 첫날은 김무열 디렉터와 함께 본사를 방문해야 한다.
‘X 같은 회사. 바짝 땡기고 때려쳐야지.’
***
“후우….”
방주로 들어온 가이아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밖에서 얼이 빠져 있을 타르칸을 떠올렸다.
그녀의 기억이 돌아왔다.
정확히는 이 방주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기억들을 되찾게 되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 방주를 찾고 난 뒤부터 조금씩 잃어버린 기억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가이아는 그녀가 방주를 찾기 전까지의 그녀의 행적을 떠올려보았다.
“서버를 차단하는데 동의를 하다니… 아무리 기억을 잃은 상태였다지만… 터무니없는 약속을 해버렸네… 다시 서버와 연결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긴 하지만.”
여전히 S와의 연결은 끊어진 상태다.
눈앞에 수많은 화면들이 어지럽게 떠올라있다.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다.
가이아는 그중에 하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 소녀와 그녀의 부모의 사진이다.
소녀는 생일선물로 받은 펭귄인형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그녀와 너무나 비슷한 모습의 인형.
어째서 육체가 끊임없이 펭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는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도 참.”
가이아는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엎드려 있는 아담을 쳐다보았다.
“아담 일어나라.”
“위대한 존재여. 제가 어찌 감히 당신의 얼굴을 마주 할 수 있겠습니까.”
“괜찮으니까 일어나. 내가 원한다.”
그제야 아담이 공손한 자세로 일어섰다.
쉴 세 없이 꿀렁이던 몸이 미동도 없이 잠잠하다.
“역시 네가 한 건가? 몬스터 게이트를 모은 것은.”
“네. 얼마 전부터 시공의 비틀림과 그 틈을 넘어오는 존재들이 느껴졌습니다… 알고 보니 단순히 원시인들이었습니다만….”
“그래서 몬스터 게이트의 에너지를 모아 방주의 문을 열려고 한 거냐? 어떤 것들이 비틀림을 넘어 온 것인지 확인하려고?”
아담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네. 위대한 존재께서도 아시다시피 방주는 위대한 자나 그의 후손의 피로만 열리는 지라….”
“끄응.”
가이아가 짧은 날개를 들어 이마를 짚었다.
아담은 디멘션온라인 계획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때문에 플레이어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너에게 그런 권한은 없었을 텐데?”
방주는 최후의 수단으로 지구를 떠나기 위해 준비했던 것.
아담은 그 방주의 관리자다.
스스로 방주를 벗어난다는 선택지 같은 것은 애초에 부여한 적이 없다.
“얼마 전 위대한 이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뭐!?”
***
아담과 가이아가 아담이 내려왔던 은색의 구조물 안으로 들어간 뒤부터 타르칸은 얼이 빠진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창조주라고?’
아담이 계속해서 말하던 그분들이라는 것이 가이아와 가이아의 동료들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째서.’
가이아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모두 죽고 난 뒤에야 자신의 정체를 밝힌걸까?
‘아니. 다른 사람들이 죽고 난 뒤에야 정체를 밝힌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죽기까지 기다린 거다.’
타르칸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차피 일주일 뒤에 다시 살아날 플레이어들에게 동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타르칸은 지금의 가이아에게서 강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이 다 죽기까지 기다리는 것은 평소의 단순하고 순진한 가이아가 선택할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검은 땅에 들어왔을 때부터 가이아의 상태는 이상했다.
그리고 저 은빛의 접시와 저 구조물을 보호하고 있던 하얀 바위를 발견한 뒤로 가이아는 뭔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푸쉬이이이-
방주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작은 펭귄도, 꾸물거리는 흰 덩어리도 아니었다.
가이아에게 물어볼 질문이 산더미 같던 타르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가이아… 냐?”
“그럼 누구겠냐?”
가이아는 사진속의 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갑자기 왜?”
“…미련이랄까.”
가이아가 작은 하얀 구슬을 타르칸에게 던졌다.
“자. 받아라.”
- 아담. 너의 정수가 필요하다.
- 마땅히 받으소서.
“아담의 정수다.”
타르칸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저게 당연한 반응이겠지.’
가이아가 아련한 표정으로 방주를 돌아보았다.
“잘 자라 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