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56화 (56/215)

지하실의 몬스터

타르칸과 가이아는 곧바로 의뢰서에 쓰여진 장소로 향했다.

타르칸이 들고 온 의뢰서를 확인한 살집이 좋은 중년의 남성이 타르칸을 반겼다.

남자는 타르칸의 황동 팬던트를 보고 살짝 표정이 굳었다.

“응? 나는 실버등급 이상을 원했는데 전달이 잘못된 모양이군. 쟌이 이런 실수를 하는 녀석이 아닌데….”

용병등급은 오직 강함으로만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무력에 신뢰가 더해져야 하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사람들은 실버등급 이하의 용병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내 중년인은 특유의 사람좋은 미소를 지었다.

“새로 용병으로 등록한 친구인가 보군. 팬던트가 상처하나 없이 깨끗한 것을 보면 말이야. 아이언등급을 건너뛴 것을 보면 실력도 꽤나 있는 모양이고….”

용병국가의 주민답게 샤르크 사람들은 용병들보다 더 그들의 생리에 빠삭했다.

“좋아. 경험이 없는 친구라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뭐 괜찮겠지.”

중년인이 앞서 걸어갔다.

“자. 이쪽이야.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혼자 해결할 생각하지 말고 바로 말하라구. 그래도 의뢰비는 어느 정도는 챙겨 주겠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중년인이 타르칸을 안내한 곳은 집 바로 옆의 공터였다.

이용하지 않은지 오래 된 것인지 모래가 높이 쌓여 있다.

“이번 모래폭풍으로 입구가 드러난 모양이야. 아마 할아버지가 만들어 둔 것 같은데… 잘 모르겠군.”

과연 중년인의 말처럼 한 쪽 구석에 나무로 만들어진 여닫이문이 보였다.

바닥에 붙은 문은 낡았지만, 여전히 튼튼해 보였다.

끼이이익.

중년인이 문을 열자 요란한 경첩소리와 함께 지하로 가는 계단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둡고 음침하다.

“자. 여기일세. 잠깐 들어가 봤는데 꽤 넓은 것 같아. 뭐 특별한 물건은 없었고.”

“저. 이거 위험한 것 아닌가요?”

“그렇지. 그때 보니 벌레가 득실거리더군. 그래서 내가 용병을 찾은 것이 아닌가.”

중년의 남성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벌레를 무서워하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 혹시 몬스터는….”

“무슨 소린가. 자네도 알겠지만 몬스터의 마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네만….”

“아… 네. 그랬죠. 참.”

“싱겁긴. 그럼 기다리고 있겠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중년인은 어디론가 걸어가 버렸다.

타르칸은 그런 중년인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몬스터가 없다고? 그럼 이건 뭐야?”

[퀘스트가 생성 되었습니다.]

지하실의 몬스터를 퇴치하라.

보상 : 정수용 거름 천

[퀘스트를 수행하시겠습니까?]

***

“아까 그 아저씨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는데….”

역시 던전이랑 연결되어 있을 거라는 가이아의 말이 맞았던 걸까?

타르칸이 자신의 품에 숨어있는 가이아를 툭툭 쳤다.

“가이아 어떻게 된 거야? 이 안에 몬스터가 있는 건 맞아?”

“사실 나도 몬스터의 마력은 느낄 수 없어. 던전의 입구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럼 퀘스트 생성이 잘못된 건가?”

“그럴 리가! 시스템은 오류가 없어. 만약 시스템에서 오류를 발견한다면 그건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라 그 오류를 발견한 사람의 오류다!”

“뭔 개소리야….”

가이아의 말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한 가지 짐작 가는 바는 있다.

“은신 능력이 있는 몬스터….”

은신 능력이 있어 쉽게 감지되지 않는 몬스터는 의외로 많다.

문제는 그런 은신능력을 가진 몬스터들은 하나 같이 상대하기가 극히 까다롭다는 것이다.

“햐… 만약에 그런 거면 이거 밑지는 장사인데.”

타르칸이 투덜거리며 인벤토리에서 ‘꺼지지 않는 횃불’을 꺼내었다.

마나를 불어넣자 붉은 불이 막대의 끝에서 피어올랐다.

한 가지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은신 몬스터에게서 얻을 수 있을지 모를 놈의 정수다.

퀘스트가 생성 되었으니 정수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갑옷이나 망토에 은신 기능을 먹인다면 꽤 쓸 만할 거야.”

“근데 어차피 정수를 얻어도 당장 쓸데도 없잖아.”

타르칸은 현재 아이스오우거의 정수를 하나 가지고 있다.

스스로 퀘스트를 부여하기를 몇십번이나 반복한 결과 아이스 오우거의 정수 하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얻은 아이스 오우거의 정수는 아무곳에도 사용하지 않고 인벤토리에 고이 잠들어 있다.

“미리 준비해 두는 거지 뭐.”

아이스오우거의 정수는 계륵이다.

자신이 흡수하기에는 아이스오우거의 정수는 너무 약하다.

언월도 블루드래곤이나 과거 젠슨에게서 얻은 단도에 흡수시키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가이아에 따르면 일반적인 인첸트가 아닌 정수를 흡수시키는 방법은 오직 시스템으로 생성된 (퀘스트보상이나 전리품 상자) 아이템에만 적용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땅강아지나 전쟁개미 세트에 사용하기에는 힘들게 얻은 아이스 오우거의 정수가 아깝다.

결국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중에 다~ 쓸 일이 있을 거야.”

타르칸이 중얼거리며 어두운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탁. 탁. 탁.

타르칸의 발걸음을 따라 돌로 만들어진 바닥이 울린다.

지하실은 제작 연도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아주 튼튼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바닥에 모래가 조금 쌓여있는 정도일 뿐 전체적으로는 아주 깨끗했다.

확실히 엄청난 수의 벌레가 기어다니고 있었고 지하실 전체에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가 배어있었다.

“이거 청소하기 쉽지 않겠는데?”

남 일처럼 말하는 가이아를 바닥에 내려놓은 타르칸이 인벤토리에서 언월도를 꺼내어 왼손에 들었다.

“지금 청소가 문제냐?”

그는 ‘꺼지지 않는 횃불’을 든 오른손을 들어 지하실의 한쪽 구석을 비추었다.

특징 없는 모래색의 바위벽이다.

하지만 그는 이 벽에 뭔가가 숨겨져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유독 이 벽만이 횃불의 움직임에도 그림자의 방향이 변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르칸이 언월도를 조심스럽게 지하실 벽쪽으로 향했다.

스르륵.

마치 신기루처럼 언월도가 지하실 벽을 파고들었다.

언월도가 박혀들었건만 벽은 원래 그랬다는 듯 미동조차 없다.

“환영 마법?”

마탑의 마법사들은 매우 비밀스러운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사용한다는 마법 역시 보기 힘든 것이다.

타르칸이 조심스럽게 환영의 벽을 지나갔다.

어둡고 좁은 통로가 보인다.

그러니까 지하실은 지하실이 아니라 일종의 지하통로였던 셈이다.

“이거 점점 너의 지하실 던전설에 힘이 실리는데?”

좁고 깊은 지하통로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지하통로를 발견한 것을 집주인에게 알릴수도 있다.

아마 50코퍼 이상의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르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지하에 몬스터가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의 의심을 받지 않고 설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확인 과정에서 반드시 사람이 죽게 될 것이다.

“오지랖 오지랖 신나는 노래~”

“쉿. 가이아. 조용히 해. 놈이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몰라.”

그는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는 가이아를 제지시키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하통로를 따라 걸어 들어갈수록 지하실에 배어있던 그 퀴퀴한 냄새가 점점 더 진해져갔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르르르륵, 으으으극

그들이 찾고 있는 몬스터는 처음부터 은신따위는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그그그극

기척은 숨겼지만 무언가를 뜯어내는 소리를 낸다?

말이 되지 않는다.

다가갈수록 선명해지는 괴물의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타르칸의 시선이 자연스레 가이아에게로 향했다.

가이아 역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이건 잠깐 네가 들고 있어.”

타르칸이 가이아에게 횃불을 건네었다.

그가 횃불에 불어넣은 마나가 다 소진될 때 까지는 불길이 유지 될 것이다.

그는 버릇처럼 언월도를 고쳐잡으며 긴장으로 굳어진 몸을 풀었다.

그리 길지 않은 지하통로의 끝이 보인다.

지하통로는 양쪽 끝이 방으로 된 구조인 모양이다.

“어? 잠깐 뭔가 이상해.”

가이아가 갑자기 종종걸음으로 앞으로 뛰쳐나갔다.

당황한 타르칸이 황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

가이아를 따라 지하통로의 끝에 위치한 지하실에 들어간 타르칸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여졌다.

“그르르륵… 사…살려… 그으윽”

어두운 지하실에는 사람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수기 위해 만들어진 잔혹한 도구들이 널려있었다.

지하실의 벽에는 무언가를 기록한 종이들이 빼곡히 붙어있다.

그리고 그 지하실의 가운데, 피부가 모두 벗겨지고 온 몸이 기괴하게 뒤틀린 인간이 고통 속에 몸부림 치고 있었다.

***

“이 사람은 아니에요!”

쟌이 강하게 항변했다.

“이 마을에 도착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구요!”

“그래서 더 의심스러운 것 아닌가?”

타르칸이 지하실에서 발견한 것을 용병연합에 알린 뒤, 그 지하실에서 고문 받던 사람이 얼마 전 행방불명된 마을의 주민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에서 처음 용병등록을 했다는 건 아스너제국에서 넘어왔다는 뜻인데, 저런 꼬마 혼자서 칼날 산맥을 넘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분명 무언가 숨기는 게 있어!”

“아니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다토듀라 산이 화가나 씩씩 거리는 쟌의 어깨를 가만히 짚었다.

“지하실은 처음 토벤씨가 발견했고, 토벤씨가 정식으로 용병연합에 의뢰한 것입니다. 지금 그 말씀은 용병연합을 의심하는 겁니까?”

“아니 듀라씨.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듀라의 날카로운 말에 용병관리소에 모여든 마을 주민이 움찔거렸다.

용병국가인 만큼 지역 사회에서 용병관리소가 가지는 위치는 높다.

용병들과 척을 지게 된다면 이 샤르크에서 제대로 된 생활이 힘든 지경이니까.

“이 문제는 용병연합에서 책임지고 원인을 밝혀내겠습니다.”

“뭐, 뭐 듀라씨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그제야 마을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러났다.

쟌이 타르칸을 돌아보며 사과했다.

“미안해요. 등급이 낮은 용병은 덮어 놓고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게 이 나라 사람들의 습성이라….”

“아니요 괜찮아요.”

타르칸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온 몸이 뒤틀린 채 울부짖던 사람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몬스터의 짓이었을까?

“그보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죠?”

쟌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고문의 충격이 너무 컸나봐요. 응급 처치는 했지만… 여기는 신전도 없는 곳이고….”

“네….”

그때였다.

갑자기 타르칸의 귓가에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축하합니다. 퀘스트 ‘지하실의 몬스터를 퇴치하라.’를 완료하였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정수용 거름 천’을 획득하였습니다.]

[보상이 인벤토리로 이동합니다.]

‘이게 왜 지금…’

타르칸이 의아해 할 때, 멀리서 누군가가 용병관리소를 향해 허겁지겁 달려왔다.

“쟌! 듀라씨!!”

마을의 의원을 운영하는 남성이다.

“그 지하실에서 찾은 사람. 그 사람이 방금 사망했습니다.”

그때서야 타르칸은 깨닫게 되었다.

숨어 있는 몬스터가 사람을 해한 것이 아니다.

고문당한 채 죽어가던 그 사람.

시스템은 그 사람을 몬스터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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