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55화 (55/215)

용병 등록

샤르크는 용병국가다.

애초에 6개의 초거대 용병단이 연합한 것이 샤르크의 시초였다.

비옥한 땅의 면적에 비해 압도적으로 거대한 불모지.

그 불모지에서 나타나는 강력한 몬스터들은 샤르크를 용병과 모험가의 천국으로 만들었다.

용병과 모험가가 많다는 건 달리 말하면 갈 곳 없는 떠돌이들이 몰려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타르칸과 같은 이들 말이다.

“휴러드. 그래서 말인데요. 이 마을에도 용병 관리소가 있나요? 자유용병으로 등록하고 싶은데….”

“그럼! 작은 마을이지만 여기를 거쳐 가는 용병들이 제법 되거든. 광장 옆 2층 건물이다.”

“감사합니다!”

반색하며 바로 밖으로 나가려는 타르칸을 휴러드가 불러 세웠다.

“아! 그런데 요즘 용병으로 등록하는 과정이 복잡해졌다는 소문이 있어.”

“네? 복잡해지다니요? 왜요?”

본래 용병으로 등록하는 것은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간단한 절차다.

이름과 간단한 신상명세를 제출하는 것만으로 가장 낮은 등급인 아이언등급의 용병명패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등급에 상관없이 일단 용병이 되면 사냥한 몬스터의 부산물을 제출하는 것으로 샤르크로부터 일정한 대가를 지급받을 수 있다.

그 실적이 쌓이면 브론즈, 실버, 골드, 플레티넘 순으로 등급이 높아지게 된다.

“뭐 듣기로는 샤르크 전역에 이상한 능력을 가진 인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나봐. 그런데 용병으로 등록한 그 녀석들이 기행을 일삼는다나 뭐라나….”

***

용병관리소는 건물 전면에 커다란 검과 방패를 달아놓았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용병관리소를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몇 일간 불어댄 모래바람 때문인지 용병관리소 안은 한산했다.

“어서오….”

문이 열리자 반사적으로 인사를 하던 관리소의 직원이 타르칸을 보고 멈칫했다.

한눈에도 앳되어 보이는 타르칸의 외모는 용병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단발머리의 여직원이 타르칸을 경계하는 것은 그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용병으로 등록을 하고 싶어요.”

“잠시 두건을 벗어 주시겠어요?”

어느새 타르칸은 천이나 투구같은 것으로 이마를 가리고 다니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휴러드의 말을 통해 여직원이 왜 이런 요구를 하는지 짐작한 타르칸이 군말 없이 거친 천으로 만들어진 두건을 벗었다.

계정코드 없이 깨끗한 이마를 본 단발머리의 여직원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네.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관리소의 직원이 2층으로 올라갔다.

얼핏 들리는 소리로 미루어 보아 이 관리소의 책임자에게 신규 등록을 원하는 사람이 왔다고 알리는 것 같다.

잠시 후 좀 전의 여직원과 함께 거구의 남성이 1층으로 내려왔다.

곰 같은 체구에 사자 같은 얼굴을 가진 사내였다.

남자는 일층에서 기다리고 있는 타르칸을 보고는 픽 웃었다.

“뭐야 이 핏덩어리는.”

남자가 터벅터벅 걸어와 1층의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에 털썩 앉았다.

“뭐 아무래도 좋다. 그 플레이언가 뭔가 하는 놈들이 아니라면 용병이 되겠다는 걸 막을 수는 없지.”

남자는 손으로 그가 앉아 있는 테이블의 반대편을 가르켰다.

“일단 앉지. 아. 나는 다토듀라 산. 그냥 듀라라 불러라. 너는?

“타르칸입니다.”

“글은 쓸 줄 아나?”

“네.”

“다행이군.”

아스너와 샤르크는 인접해 있어 언어와 문자가 크게 다르지 않다.

듀라가 타르칸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간단한 신상명세를 적기 위한 것이다.

“원래는 이게 용병으로 등록하기 위한 절차의 끝이지만… 최근에 사정이 좀 바뀌었거든.”

“사정이 바뀌었다는 말씀은?”

타르칸은 대충 예상은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듯 반문했다.

“뭐 네가 앞으로 용병으로 활동하려면 알고 있는 편이 좋겠지.”

듀라가 타르칸이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 동안 말을 이었다.

“최근에 샤르크의 전역에 마빡에 이상한 그림을 새긴 인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놈들은 스스로를 플레이어라고 부르더군.”

“플레이어? 이상한 이름이군요.”

“그렇지? 레이어라니. 레이스도 아니고…. 꼭 무슨 여자 옷에 붙이는 장식 같잖아.”

타르칸의 천연덕스러운 대꾸에 듀라가 낄낄 웃었다.

“뭐 이름은 계집애 같지만 실력은 나쁘지 않았지. 무엇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저돌적인 놈들이었으니까.”

“…그 사람들이 무슨 문제라도 일으켰습니까?”

듀라가 미간사이를 긁적였다.

그의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짜증이 드러난다.

“그 자식들 완전 미친놈들이야. 놈들을 용병으로 등록시켜 준 것은 협회의 큰 실수였다.”

“대체 그 사람들이 무슨 일을 벌였기에….”

“뭐… 그건 네가 용병으로 활동하다보면 자연히 알게 될 거야.”

그는 타르칸이 더 이상 플레이어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듀라가 서류를 흘깃 쳐다보았다.

신상명세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를 비워 놓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뭐 이건 이만하면 됐고, 잠시 따라 나와라.”

듀라가 뒷문으로 걸어갔다.

“어딜 가시는 거죠?”

“말했잖아. 절차가 조금 까다로워졌다고.”

듀라가 타르칸의 상체만한 거대한 대검을 어깨에 걸치며 씨익 웃었다.

“전에는 아무나 받았지만. 얼마 전 협회에서 사람을 가려 받기로 결정했거든.”

“가려 받는다는 말씀은….”

듀라가 사납게 웃었다.

“실력 좀 보자구.”

***

“이만하면 됐나요?”

“허억. 크어헉.”

듀라가 곰처럼 거대한 몸을 숙이고는 꼴사납게 헐떡였다.

“무… 무슨….”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듀라의 앞에서 타르칸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힘 조절을 실패했네. 이렇게 약할 줄이야.’

“흐아아….”

듀라가 급기야 땅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너… 혹시 아스너 제국의 기사였냐?”

표정이 굳는 타르칸을 보며 듀라가 멋대로 자신의 추측이 맞았노라 확신했다.

“역시 그랬나. 아스너의 기사놈들과는 몇 번 같이 토벌을 나간 적이 있지. 이렇게 귀신처럼 강한 것도 이해가 가는군.”

“저 그게….”

듀라가 두터운 손을 들어 타르칸의 말을 멈추었다.

“사정은 아무래도 좋아. 샤르크는 떠돌이들의 성지니까… 몬스터 잘 잡고 큰 문제만 안 일으키면 그만이다.”

듀라가 품안으로 손을 넣어 뒤적거렸다.

“자 받아라.”

황동으로 만들어진 팬던트다.

샤르크의 상징인 초승달이 새겨져 있다.

“적어도 실버 이상은 줘야겠지만 내 권한으로는 브론즈등급이 한계라서 말야.”

[업적 ‘샤르크의 용병-브론즈’를 획득하였습니다.]

[상시 퀘스트 ‘사막의 몬스터 퇴치’가 활성화 됩니다.]

상시 퀘스트인 [사막의 몬스터 퇴치]는 몬스터를 사냥하여 그 증거를 용병관리소에 제출하면 추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퀘스트였다.

용병 등급이 올라갈수록 추가로 얻는 경험치도 많아진다.

잠시 물끄러미 황동 팬던트를 쳐다보던 타르칸의 시선이 듀라에게 향했다.

“저 용병이 된 기념으로 바로 의뢰를 받고 싶은데요.”

“뭐!?”

잠시 황당한 눈으로 타르칸을 쳐다보던 듀라가 순간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하하. 실력만큼이나 당돌한 녀석이군. 좋아. 용병이 의뢰를 받겠다는데 안 될 이유는 없지. 쟌에게 팬던트를 보여주면 적당한 의뢰거리를 알려줄 거야.”

쟌은 예의 관리소 1층의 단발머리 직원이었다.

타르칸이 황동 팬던트를 보여주자 쟌은 작게 미소지었다.

“보기보다 강하시네요.”

쟌은 이미 브론즈 등급에 맞는 의뢰들을 고르는 중이었다.

워낙 작은 관리소였기 때문에 쟌은 뒷뜰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미 모두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서류를 정리하며 쟌이 느긋하게 말을 걸었다.

“이 일을 하다보면 말이죠.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된답니다. 대부분은 그쪽과는 다른 거친 사내들이죠.”

“네 뭐….”

타르칸은 아직 앳된 면모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외모에는 별 관심이 없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맞장구나 쳐주었다.

“그러다 보면 말이죠… 뭐랄까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기게 되더라구요. 그 사람이 풍기는 이미지, 말투, 느낌 같은 걸로 그 사람을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100%는 아니지만 뭐 70% 정도?”

“네 그렇군요.”

“근데 그쪽은 뭔가 특이해요.”

“네?”

한 귀로 흘리며 대충 고개를 끄덕이던 타르칸이 반문했다.

고개를 드니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쟌이 보인다.

“아무리 봐도 정체를 짐작하지 못하겠다고나 할까?”

쟌이 슬쩍 웃으며 타르칸을 바라봤다..

활기찬 단발과 잘 어울리는 미소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당황하는 타르칸에게 쟌이 의뢰서들을 건네었다.

“이 주변에 등록된 의뢰 중에 브론즈 등급이 수행 가능한 의뢰들이에요. 잘 살펴보시고 결정되면 알려줘요. 의뢰에 따라서 바로 의뢰인을 만나셔도 되구요.”

쟌이 건넨 의뢰서들은 얼핏 세어보아도 30개가 훨씬 넘는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다.

흔히 생각하는 토벌이나 퇴치, 호위 의뢰 이외에도 단순히 인력이 필요한 경우에도 용병들에게 의뢰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붕 수리나 농산물 수확 같은 일들을 아이언 등급의 용병이 수행하는 것은 샤르크에서 매우 흔한 일이었다.

“이, 일단. 숙소에서 결정한 뒤 말씀드릴게요.”

“네~ 그렇게 해요.”

왠지 부끄러워진 타르칸이 의뢰서 뭉치를 받아들고는 후다닥 용병 관리소를 빠져나갔다.

***

“흠냐… 이게 다 뭐냐.”

가이아가 길게 하품했다.

가이아는 이 샤르크의 작은 마을에 도착한 뒤 먹고 자기만 하는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모래에 파뭍힌 밭… 애완 고양이 실종사건… 무너진 창고 개조… 뭐야 이것들은.”

“내가 수행할 수 있는 의뢰 목록.”

“푸하하하하. 뭐야. 그렇게 용병 용병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이런 거나 하려고 용병이 된 거야? 이건 그냥 쪼렙퀘들이잖아.”

“우선 이런 의뢰들을 처리하면서 용병등급을 높이는 수밖에. 어쩔 수 없어.”

보통 떠돌이가 되는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뭔가 문제가 있었던 자들이다.

떠돌이의 성지라는 것은 곧 질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대거 몰려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때문에 아무리 실력이 출중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곧바로 브론즈 이상의 등급을 받을 수는 없다.

이른바 검증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오. 타르칸 이건 어때? 지하실 청소. 그나마 다른 것들 보다는 나은것 같은데.”

가이아가 의뢰서 하나를 타르칸에게 건네었다.

사용하지 않는 지하실을 청소를 부탁한다는 요지의 의뢰서였다.

“그냥 청소 잖아.”

“타르칸. 겜알못인 너는 잘 모르겠지만 자고로 이런 외딴 시골 마을의 지하실은 높은 확률로 던전과 이어진다고.”

“던전?”

타르칸은 클라프영지의 훈련소에서 봤던 노란색 게이트를 떠올렸다.

“확실해?”

진짜 던전이 있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골치 아픈 일이다.

타르칸의 반응에 가이아는 일단 한 발을 뒤로 뺐다.

“뭐 아님 말고… 어차피 의뢰를 받아야 한다면 그래도 길 잃은 고양이 찾아다니는 것 보다는 나은것 같은데?”

의뢰비도 50코퍼로 다른 의뢰들 보다는 조금 높은 편이긴 하다.

아직까지는 삼합길드에게 뜯은 돈으로 휴러드의 여관에서 지내고 있지만 언제까지 돈을 까먹으며 지낼수는 없는 일이다.

“좋아. 지금 이것저것 까다롭게 가릴 때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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